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64. 벚꽃길
    2021년 12월 02일 01시 32분 3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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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66/

     

     ※ 9화 및 앞 내용 요약 : 이자크와 왕자 덕분에 수국이 마력의 속성을 나타낸다고 알려짐 (9화 내용)→ 약학성 소속의 헤르만 폰 비팅이, 수국의 색이 하양이지만 평민이었던 슈테파니에 아프트의 장래를 걱정하여 그녀의 어머니에게 재혼을 제안.


     

     벚꽃길을 걸어가면서, 슈테파니에는 자신이 귀족이 되었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헤르만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어떤 마음으로 이 벚꽃길을 걷고 있었을까.

     왕립마도학교의 건물까지 이어지는 벚꽃길을, 교복을 입은 채로는 처음으로 걷는다. 오늘은 입학식이다. 평민인 채로 왔었다면 더욱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평민이어도 슈테파니에는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헤르만이라는 동지와 대화하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그와 함께 있는 편이 어머니가 숨 돌리기 쉬울 거라는 걸 깨달았다. 고생하는 종류가 바뀔 뿐이라면 어머니가 편해지는 쪽이 낫다.

     귀족 아가씨란 좀더 청초하고 가련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슈테파니에였지만, 백작 영애가 된 자신은 평민일 때보다 듬직해진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이 싫지는 않다.

     평민 시절의 친구와는 편히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대신 귀족영애 친구들이 생겼다.

     예쁘고 귀엽고 영애로서 올곧은 그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여태까지 노력해왔다.

     

     그녀들과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벚꽃길을 빠져나가, 학급 인원이 게시된 게시판까지 향한다. 작년부터 반을 나누는 기준이 속성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친구와 같은 반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교내의 지도 옆에 있는 게시판은, 평소에는 분명 행사 등의 알림에 쓰이겠지만, 오늘만큼은 반마다 적혀있는 성명의 일람이 주욱 늘어선 거대한 종이가 점령하고 있다.

     게시판 앞은 이미 인파가 생겨나 있었다. 자기처럼 직접 보러 온 자도 있고, 종자한테 확인시키고 있는지 주변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영식과 영애도 보인다. 어쨌든, 여성의 평균 신장인 슈테파니에로서는 후방에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뜀박질은 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자기 눈으로 확인할 수 없나 해서 까치발을 들어보았지만, 일람의 윗부분만 보인다. 성씨의 알파벳 순으로 나열되어있기 때문에, 비팅은 아랫쪽에 있을 것이다.

     크으으 하며 신음을 내고 싶은 기분이던 차에,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대신 봐줄까?"

     

     "아, 고맙습니, 다......"

     

     목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보았지만, 상대와 눈이 맞지 않았다. 남자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위쪽으로 시선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넥타이 부근에서 더욱 시선을 올려서야, 겨우 구릿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의 신장이라면 뒤에서도 여유롭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걸 찾으면 돼?"

     

     "저기...... 비팅, 이에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찾는 청년은, 아무리 보아도 슈테파니에보다 연상이다. 왜 상급생이 1학년 게시판을 보러 온 거람.

     

     "........오, 있다. 같은 반이네."

     

     "네?"

     

     청년이 중얼거린 말에, 슈테파니에는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일에 힘쓰느라, 측정을 걸러서 늦게 입학했어."

     

     그래서 연상이지만 같은 학년이라고 그는 말했다.

     슈테파니에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왠지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는데, 자주 있는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 탓일지도 모른다. 조금 지나자, 상대도 자신을 응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 뭔가요?"

     

     "......혹시, 하얀 수국을 키우던 애?"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기억할 리가 없지 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슈테파니에는 기억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방금 떠올랐다.

     

     "천사님을 데리고 있던 오빠!"

     

     "뭐?"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청년은 움직임을 멈췄다. 청년이 어떻게 해석할지를 고민하는 사이에도, 슈테파니에는 청년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했다.

     

     "오늘은 수호천사님이 없나요? 제가 커져서 보이지 않게 된 걸까요."

     

     그럼 아쉽다면서 슈테파니에는 낙담했다.

     그 날의 일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집을 보고 있었는데, 창가에서 반짝거리는 빛을 발견해서 뭘까 하며 흥미가 동하여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정말 예쁜 천사를 거느린 소년이 자기가 키운 수국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각주:1]

     그와 함께 있던 천사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눈부신 금발과 녹인 밀랍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피부도 투명하고, 손도 고왔다. 정말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전에 교회에서 기도할 때, 선행을 하는 자가 수호천사가 지켜본다는 설화를 들은지 얼마 안 되었던 슈테파니에는, 소년의 수호천사라고 판단했다.

     

     "아니면, 칭찬받은 수국이 시들어서 보이지 않는 걸지도....."

     

     "아........ 그건 아냐."

     

     소중히 돌보던 수국이었지만, 몇년 후에는 수명 때문에 시들고 만 것이다.

     

     "여어, 이자크. 혼자라니 드문 일이군."

     

     청년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인파가 일제히 거리를 두었다. 덕분에, 슈테파니에도 게시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멀어진 주변 사람들을 보고 무슨 일인가 하여, 슈테파니에는 둘러보았다. 둘러본 김에 시야에 들어온 학급표에서 친구인 공작 영애 류디아와 같은 반임을 확인했다.

     

     "먼저 아가씨의 반도 확인해두려고 생각해서. 레오, 마침 잘 됐어."

     

     "어째서지?"

     

     "너,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고."

     

     "음?"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슈테파니에는 청년의 옆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이제야 보인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슈테파니에는 눈을 부릅떴다.

     

     "천사님!?"

     

     "것 봐."

     

     슈테파니에가 놀란 나머지 외치자, 청년은 천사에게 이해를 구했고, 천사는 이해를 하지 못하여 얼어붙었다.

     몇 초 뒤, 천사한테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뭐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지."

     

     "미남도 힘들겠어."

     

     "그 때 제대로 말을 주고받지 않은 게 문제였군."

     

     "어, 어째서 천사님이 학교의 교복을 입고......?"

     

     "이 녀석, 천사님이 아니라 왕자님."

     

     "네?"

     

     "거기다가, 2학년."

     

     "네에!?"

     

     천사라고만 생각했던 금발 청년이, 설마 인간이었을 줄이야. 거기다 이 나라의 왕자였다니. 그렇다는 말은, 친구인 류디아의 약혼남이잖아. 지금까지 다과회에서 같은 공간에 있어도 멀리서만 보았기 때문에, 눈부시다는 것만 알고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었다.

     

     "비팅 백작 영애, 이름은 들은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로이. 이 나라의 왕자다. 인간이라고 인식해주면 기쁘겠다."

     

     그 미소에, 슈테파니에는 양심의 가책에 휩싸여서 즉시 지면에 손을 대며 사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일단은 귀족 영애이기 때문에, 카테시를 하고서 인사와 사과를 했다.

     

     "아으, 슈, 슈테파니에 폰 비팅이라 하옵니다. 매우 실례되는 오해를 하고 말아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놀라긴 했지만, 칭찬할만한 것이니 상관없다. 그리고 비팅 백작영애."

     

     "네."

     

     "입학식 뒤에 시간이 있을까. 용건이 있는데."

     

     역시 화내고 있다.

     그렇게, 슈테파니에는 생각했다.

     

     "이자크도 나중에 류디아 양과 함께 와줘. 그러는 편이 설명하기 쉬우니."

     

     "잘 모르겠지만, 알았어."

     

     그 후 학생회장으로서 인사하러 단상에 오른 로이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슈테파니에는 혼자서 거북한 입학식을 견디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에서 수업의 선택 방법 등의 제반 설명을 들은 뒤, 슈테파니에는 담임교사의 안내로 학생회실을 방문했다.

     

     "실례합니다......"

     

     긴장한 슈테파니에가 학생회실로 발을 들이자, 의외로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니콜라우스 님! 적당히 좀, 자크한테서 떨어지세요."

     

     "싫은걸? 계속 서 있어서 힘들단 말야."

     

     "그럼 앉으면 되잖아요!?"

     

     "하지만, 자크는 서 있잖아."

     

     "아니, 다른 사람들이 서 있는데 나만 앉을 수는......"

     

     "...... 디아 님과, 니코 님?"

     

     있을 거라 생각지 못한 인물을 보고, 슈테파니에는 눈을 휘둥그레 하였다.

     잘 보니, 류디아와 니코 이외에도 생각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 학생회장이 쓰는 탁자를 향해 앉은 로이의 등 뒤에 푸른 머리와 붉은 머리의 남학생이 서 있었고, 시선을 옮기자 휴식용이라고 생각되는 소파에서 은발의 학생이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여어, 와줘서 고맙다."

     

     "파니 님!? 계셨네요."

     

     로이가 일어나서 슈테파니에를 맞이하자, 그녀의 방문을 눈치챈 류디아가 소파에 앉은 채 머리만 돌아본 것을 부끄러워하여 몸가짐을 바로 하며 헛기침을 하였다.

     류디아의 맞은편 소파에 앉도록 권유받아서 슈테파니에가 앉자, 메이드가 홍차를 앞의 테이블에 놓고 물러났다.

     

     "그럼, 불러낸 건 말이다만......"

     

     "아, 네."

     

     "그대의 마력에 대해서다."

     

     "........ 네?"

     

     혼날 거라 생각했던 슈테파니에는, 생각지 못한 내용이 나오자 무심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슈테파니에의 반응에 약간 의아해하면서도, 로이는 말을 이어나갔다.

     

     "별의 꽃은, 지금 무슨 잭이지."

     

     "하양, 이에요."

     

     별의 꽃이란, 슈테파니에가 약술성에서 지급받은 신종의 수국을 말한다. 지금은 기숙사의 방에서 돌보고 있다. 꽃잎 모양이 별에 가까워서 별의 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모양이다.

     

     "다시 말해, 귀족 중에서도 마력이 강한 편인 류디아 양의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그대의 마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그, 런가요.....?"

     

     "그래. 마력 측정의 결과로 보면, 그대의 마력량을 넘어서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마력이 강하는 말을 들어도, 슈테파니에는 확 와닿지 않았다. 어느 속성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태까지 아무리 연습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력이 있다고 들어도 실감이 와닿지 않았다.

     

     "류디아 양으로도 무리라면, 그대보다 마력이 강한 자의 옆에 있다면 속성 발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마술성과 약학성이 낸 추론이다."

     

     "네에."

     

     "그런고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대보다 마력이 강한 자들이다."

     

     "네?"

     

     "불이라면 예레미아스, 물이라면 베른하르트, 바람이라면 니콜라우스, 번개는 동생인 크라우스다. 빛이라면 나, 암속성뿐이라면 리스 선생님 쪽이 나보다 강하다. 토속성은..... 유학 중인 슈테르넨제 왕자 전하가 제일이지만, 외국에 데리고 갈 수는 없으니."

     

     "저기...... 제가 어느 속성인지 선택하라는 뜻인가요?"

     

     "일단은."

     

     "일단?"

     

     "국가로서는, 역시 귀중한 빛 속성 보유자가 한 사람이라도 늘어나는 편이 좋으니까. 되도록 나와 행동을 함께 해줬으면 하는데."

     

     "하지만, 그건......"

     

     가장 큰 문제이며 걱정되는 인물을, 슈테파니에가 바라보았다. 시선을 눈치챈 상대는, 작게 고개를 기울이며 친구를 바라보았다.

     슈테파니에의 시선 끝을 확인하고서, 로이는 미소 지었다.

     

     "그대는, 나와 류디아 양이 연애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알고 있다. 거기다, 류디아한테는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밝혀도 되나 망설였지만, 류디아가 침착한 모습으로 홍차를 마시는 것을 본 슈테파니에는 "네."라고 긍정했다.

     

     "류디아 양과의 약혼은, 마력이 강하고 가문의 격도 어울리기 때문에 이루어진 거다. 그대는 가문의 격 이상의 교양을 배웠으니, 빛속성 소유자만 된다면 그녀 이상의 이익을 제시할 수 있지. 그렇게만 되면, 나와 류디아 양의 파혼도 쉬워질 거다."

     

     "로이 님, 그렇게 간단히......"

     

     "이미 아바마마를 포함해 의논은 되었으니 괜찮다. 이제는 그녀에 따라서겠지만."

     

     그렇게 간단히는 안 된다고 류디아가 언급하려 하자, 로이는 밑준비가 끝났다고 대답했다.

     

     "....... 잠깐만요. 설사 왕자 전하와 디아 님이 파혼을 하고, 빛속성이 되기 위해 전하의 옆에 있어도 괜찮다고 한다면, 그건 다시 말해 제가 약혼하게 된다는 뜻인가요?"

     

     "빛속성이 되었을 경우라면, 왕족이 되어주는 편이 호위하기 쉬우니 그렇게 되겠지."

     

     "전하의 의견은요!?"

     

     "하하하, 괜찮다. 나의 의사이니."

     

     "어, 하지만......"

     

     "나는 그대가 좋으니 문제없다."

     

     미소 지으면서 한 선언에, 슈테파니에는 얼어붙었다. 그녀의 뒤에서, 그의 동생인 크라우스가 홍차를 내뿜었다. 다른 사람들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대에게 원하는 것은, 첫째는 나를 좋아하게 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약혼할만한 가치를 증명시켜달라는 거다. 그에 응할 수 없다면, 국익을 선택하지 않고 나 이외를 선택해도 돼. 그다지 시간의 유예는 줄 수 없지만, 잘 생각하고 대답해주길 바란다."

     

     마지막 한 마디에, 슈테파니에는 안심했다. 어린 시절에 헤르만이 하던 말과 비슷하다. 그때에도 잘 생각해보라고 들었었다. 그것은, 슈테파니에 자신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생각해보겠다며, 슈테파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혼란스럽지만, 제대로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슈테파니에는 그렇게 주먹을 움켜쥐면서 각오했던 것이었다.


     

    1. 9화 후반의 내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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