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해빙2021년 11월 16일 21시 51분 4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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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갑자기 왔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아니카 님과 대화하는 알바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서리에 젖어서 더욱 윤기 나는 상록수의 잎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이자크는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집의 정원을 자주 바라보네."
다니엘님은 감탄과 흐뭇함을 섞어서 미소 지었다. 나는 눈앞의 둥근 잎이 빽빽이 밀집한 나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꽝꽝나무의 배치와 가지치기하는 법이 달라서 재미있어요. 동백나무의 이파리도 색이 좋구요."
흘끗 다리엘 부부 쪽으로 눈길을 주다가, 아니카 님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맞은 순간 위화감을 느끼고, 나는 내심 의아해했다.
아니카 님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 당신은, 누군가요?"
나는 깜짝 놀랐다.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 는......"
마음의 준비가 미처 안 되어서, 더듬거리게 된다.
"저는, 이자크 바움가르트너입니다."
"그래, 이자크라고 하는구나."
누구더라,라고 대답하는 아니카 님은, 처음으로 나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 사실에, 나뿐만이 아니라 다니엘 님도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뚝, 하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또 어딘가에 녹지 않은 눈이라도 남아있나 생각했는데 아니카 님이 조금 깜짝 놀랐고, 다니엘 님도 이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의미를 몰라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볼에 따스한 것이 전해져서, 그것이 눈물이라고 눈치챘을 때는, 눈에서 마구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니엘 님의 눈이 걱정스러워하는 것으로 바뀌어서, 나는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아. 아니에요.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이자크......"
"아니라구요!"
"아니카 님이, 저를 보아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계속 눈물을 닦고 있자, 아니카 님이 앞으로 와서는 시선을 맞추기 위해 웅크렸다.
"지금까지 미안했구나."
"아니......."
나의 모습을 보고, 아니카 님은 미소 지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아니카 님은 나를 양팔로 안아주었다.
"나도 정말 고맙다."
애써주었다며, 다니엘 님도 따스한 눈길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뒤, 정신을 차린 아니카 님은 약간 기억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어서 자기 방에서 쉬게 되었다. 나는 눈의 붓기가 낫고 나서야 비트 후작 저택을 나섰다. 아니카 님이 진정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다니엘 님이 말해주었다.
다음 달부터 알바가 사라진다는 실감이 안 들어서, 나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집으로 똑바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아서, 다른 곳에 들렀다.
익숙한 담장이 있는 길까지 도착해서, 그 담장에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문의 열쇠는 다이얼 식이라서, 그 번호를 아는 저택의 하인이라면 모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들어간 뒤 열쇠를 다시 걸고서, 숲처럼 빼곡히 나 있는 나무들의 구역으로 나아간다.
휴일이지만 자습용 정원의 상태를 보는 정도는 괜찮겠지.
담장 밑을 빠져나오자, 뭔가 옅은 태양빛을 반사시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 자크?"
그것이 아가씨의 머리카락이라고 눈치챈 것과, 아가씨가 이쪽을 돌아본 것은 동시였다.
"아가씨는 대단한데."
나의 갑작스러운 말에, 아가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무슨 일인가요? 오늘은 휴일일 텐데요......"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서."
아가씨의 반응이 없다. 눈을 부릅뜬 채 얼어붙은 모양이다.
"아가씨?"
왜 저러지 하며 다가가서 얼굴을 들여다보려고 하자, 아가씨의 얼굴이 단번에 새빨개졌다.
"!! 왜.......!?"
아마 날 혼내려는 모양이지만, 어째선지 말이 제대로 안 나오는 모양이다.
"그, 그래서, 저를 만날....... 일이란 뭔데요?"
"좋은 일이 생겼어."
"좋은, 일?"
"응. 조금 노력했던 일이 있었는데, 오늘 이제야 그게 인정받았어."
"그건...... 잘 됐네요."
"맞아."
".......... 그것뿐인가요?"
"기뻐서, 아가씨한테 말하고 싶어 졌어."
"그....... 으."
아가씨는 얼굴을 붉힌 채,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귀까지 빨개진 아가씨를 보고, 아직 추운 시기니까 열이라도 있나 걱정했더니, 오히려 휴일까지 직장에 오지 말라고 혼나서 돌아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자, 다니엘 님의 연락이 왔다.
내가 비트 후작저를 방문하자, 올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응접실에 안내되었다.
"오늘은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가 인사를 하자, 다니엘 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딱딱하게 하지 않아도 돼. 확실히 오늘은 손님으로 불렀지만, 너는 이제 나의 작은 친구니까."
그대로 맞장구를 칠 수도 없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문득 아니카 님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미소 지었다.
"제대로 인사하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아니카 폰 비트랍니다. 다니엘한테 이런 귀여운 친구가 생기다니 부럽네요."
"이자크 바움가르트너입니다. 에룬스트 공작가에서 견습정원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자크 군, 제가 당신한테 심한 짓을 해버렸네요. 사망한 에리어스의 대신을 하게 만들다니......"
"아뇨. 저는 다니엘 님의 허락을 받고 병문안을 왔을 뿐입니다."
"그랬었네요. 하지만 제 안에서는 에리어스의 기억과 뒤섞이고 말아서, 구분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렇습니까."
아니카 님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자크, 여태까지 고맙다. 네 협력 덕분이다. 어떻게 사례를 해야 좋을지......."
"아뇨, 알바비는 매번 받았잖아요. 제가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다면 다행이죠."
다니엘 님께 사례는 충분하다며, 웃으면서 전했다.
"....... 그러고 보니, 전에 제랄드의 감사하는 방식이 곤란하다고 말했었지?"
"예? 공작님의 끌어안기 공격 말이요? 맞아요, 조금은 키가 자랐는데도 여전히 애들 취급하신다구요."
"그런가......."
"하지만, 왜 갑자기 물어보시죠?"
"아니, 친구에 대한 경의를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무언가를 참으려는 듯 주먹을 꾹 쥔 다니엘 님의 손을, 아니카 님이 다독이려는 듯 쓰다듬었다. 그 후에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자크 군, 나는 메르켈 교회의 고아원에서 읽고 들려주기를 시작했단다."
메르켈 교회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다.
"내가 에리어스를 잃고 절망한 것처럼, 부모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그들이 살아갈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지 뭐니."
"다행이네요."
"그래서 말인데......"
아니카 님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고아원의 아이들과 잘 대화할 수 있도록, 때때로 상담을 해줄 수 없을까......?"
"저로도 괜찮다면, 상관없어요."
아니카 님은 내가 쉽사리 승낙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눈을 부릅떴다.
"아니카, 제대로 말해야 해."
다니엘 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니카 님을 재촉한다.
"저기...... 이자크 군."
"예."
"뻔뻔한 이야기인 것은 알고 있단다. 하지만 내게 채점을 해주지 않으련?"
"채점......?"
"내 기억의 어디가 이자크군의 것인지, 이후로도 만나서 가르쳐줬으면 해. 네 일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알바가 끝나면, 다니엘 부부와는 멀어지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듣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기쁜 제안입니다."
자연스레 미소 짓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후에도 만나는 일은 아가씨한테 비밀인가요?"
"아니, 내가 다시 제랄드한테 의뢰할 테니, 류디아 양한테 숨기지 않아도 괜찮아."
"다행이다. 아가씨한테 그다지 숨기고 싶지 않아서요."
"......이자크 군은, 류디아와 어떤 관계니?"
나와 다니엘 님의 대화를 듣고, 아니카 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단순한 하인과 아가씨라고는 말할 수 없어서, 조금 고민했다.
소년만화에 자주 있었지. 약점은 그다지 보이고 싶지 않지만, 상대는 인정하고, 힘내가고 분발하게 되는......
"아. 라이벌입니다."
"라이벌.......?"
"예. 아가씨를 보면, 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래, 멋진 관계네."
"예."
말로 표현할 수 있어서 후련해진 나는, 기세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나는 알바에서 다니엘 부부의 친구로 승격했다. 아직 견습정원사지만, 조금은 성장한 것 같아서 기쁘다.
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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