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37. 금색
    2021년 11월 14일 18시 54분 4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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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39/

     

     

     

     나무들이 더욱 푸르름을 더하고, 가을을 향한 준비를 느끼는 계절이다.

     하지만 정원은 여름의 더위를 색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선명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탄지는 벌레 쫓기도 겸하고 있다고 해요. 자크의 집에도 창가 등에 놓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가만히 꽃을 바라보고 있었나."

     

     꽃의 탑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면서, 류디아와 로이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다.

     

     "그런 일은 신경쓰지 않고 즐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요......"

     

     자신의 시야를 넓히고 싶은 류디아로서는, 로이가 가진 관점이 부러운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약혼하고 나서도 방문하는 빈도가 변하지 않았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뭔가 문제라도 있었나요? 다과회 같은 데서도 만났잖아요."

     

     "음. 역시 류디아 양이다."

     

     2주일에 한 번의 방문과 약혼자로서 동반하는 다과회로 충분하다는 류디아의 대답에, 로이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류디아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로이가 왠지 기뻐하는 모양이어서 추궁하지는 않고 다른 화제를 꺼냈다.

     

     "요즘, 옐크의 태도가 유연해졌어요."

     

     "그거 다행이다. 남은 적은 문 저편의 그녀뿐인가."

     

     "네......."

     

     두 사람만 있는 것이 좋다고 로이가 말해서, 호위인 에밀리아는 방 바깥에서 마테우스와 함께 대기하고 있다.

     

     "옐크 때처럼 제대로 대화했으면 한다고 생각하지만, 말 붙이기가 어려워서요....."

     

     "....... 말할 기회가 없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로군."

     

     문득 떠오른 생각에, 로이가 미소 지었다.

     

     "로이 님도 누군가한테 고전하고 있나요?"

     

     "부끄럽지만, 동생한테 좀."

     

     "크라우스 전하요?"

     

     약혼녀가 되어서 몇 번 인사했던 적이 있는 로이의 동생, 크라우스를 떠올렸다.

     

     "까다로워 보이는 분이셨지요."

     

     "아니. 크라우스의 그 태도는 어여쁜 류디아 양을 보고 긴장한 것이 절반, 내 탓이 절반이다."

     

     미안하다는 기색으로 로이는 미소 지었지만, 류디아는 전반의 설명에 무심코 볼을 붉혔다.

     

     "내 앞에서는 웃지 않게 돼. 그래서 류디아 양한테도 태도가 나빠져서 정말 미안하다."

     

     "그건, 역시 왕위 계승권 때문......?"

     

     "그런 모양이다. 현재, 필과는 거리낌 없이 대하고 있어. 사실은 상냥하고 잘 웃는 아이다."

     

     크라우스의 어머니인 제2왕비의 눈앞에서, 제1왕자의 약혼녀인 류디아는 그녀에게서 항상 견제받는 듯한 눈초리를 받고 있다.

     

     "말을 걸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싫어하는 모양이라서 그만. 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의심스러워."

     

     "그런가요......"

     

     약간 섭섭해하는 로이에게, 류디아는 의문점을 늘어놓았다.

     

     "조금 전부터 크라우스 전하를 감싸는 말만 하시고, 로이 님은 필 님과 마찬가지로 크라우스 전하는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네요. 정말 형답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 생각해준다면 기쁘겠어."

     

     "의외로 형답게 행동하고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류디아 자신도, 여동생인 플로라에게 언니다운 일을 할 수 없다며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으나, 옆에서 보면 잘하고 있다고 견습정원사 소년이 가르쳐주었다.

     

     "로이 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류디아 양...... 내 일로 그대가 슬퍼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플로라 양이 그대를 싫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니 안심해."

     

     "어찌 되었든, 서로 어떻게든 대화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그러자 뭔가를 떠올린 듯한 로이는, 반짝거리는 미소를 류디아에게 향했다.

     

     "류디아 양, 고집을 부려서 날 곤란하게 해."

     

     "네.......?"

     

     "그랬다는 걸로 해주지 않겠나?"

     

     "알겠, 어요."

     

     로이가 무엇을 할 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전제가 있는 편이 좋아 보여서 화해에 조금이라도 협력하고 싶었던 류디아는 수긍했다.

     

     "하지만, 그대를 울렸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이자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군."

     

     "왜 자크인데요?"

     

     류디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이는 그냥 미소 지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실례. 잊어서는 안 될 인물이 있었지."

     

     로이의 시선 끝을 류디아도 따라가자, 방문을 여는 곳에 짙은 금색 머리카락을 한 청년이 있었다. 류디아와 같은 눈동자가 경악으로 부릅뜨인다.

     

     "아버님?"

     

     아버지 제랄드가 무엇에 놀랐나 하고 류디아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로이가 건네준 손수건을 손에 들고 있음을 눈치채고, 오해를 이해하고 초조해하였다.

     

     "아, 아니에요......!"

     

     "류디아 양, 아마 그건 역효과라고 생각 아닐까."

     

     "전하,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 후,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다른 말을 용서치 않겠다는 분위기를 짓는 아버지한테서 오해를 푸는 데에 상당한 고생을 했다.

     

     

     며칠 지나, 아벤트로트 왕국의 성내에서 형제 두 명이 복도에서 얼굴을 맞대었다.

     

     "크라우스, 잘 지냈나?"

     

     로이가 싱긋 웃으며 동생에게 인사를 하자, 동생인 크라우스는 계속 시선을 돌리며 내뱉었다.

     

     "어제도 만났는데, 그렇게 변할 리가 없잖아."

     

     "그것도 그렇군."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던 크라우스는, 가벼운 인사말을 남기고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한걸음 내딛기 전에, 로이가 다시 말을 걸었다.

     

     "맞다. 이제부터 약혼녀의 집을 방문할 텐데, 크라우스도 오는 게 어떤가."

     

     "뭐? 어째서, 내...... 제가?"

     

     "류디아 양이 크라우스와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금 고개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상관없으니, 형을 돕는다 치고 어울려주지 않겠나?"

     

     곤란한 듯 어깨를 움츠리는 로이.

     

     "죄송하지만, 오늘은 일정이 꽉 차서......"

     

     "오? 오늘은 가정교사도 안 오는 날일 텐데?"

     

     이쪽의 예정을 파악하는 말에, 크라우스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께서 부르셔서."

     

     "시모네 님은 라임페퍼 후작부인의 다과회에 갔을 텐데."

     

     "여동생한테......"

     

     "필은 지금 예절 강사한테 혼나고 있을 무렵이군."

     

     크라우스는 크으 하고 신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알겠, 습니다......"

     

     "다행이다."

     

     담담히 승낙하는 크라우스에게, 로이는 미소 지으며 감사를 말했다.

     옆에 있던 크라우스의 종자가 동반을 요청했지만, 이쪽의 종자인 크라우스가 있으니 충분하다며 로이가 거절했다.

     

     

     에룬스트 공작저에 도착하자, 로이의 약혼녀인 류디아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카테시를 하며 맞이하였다. 인사를 끝내고서 정원에서 차의 준비를 하였다며 그쪽으로 안내하였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만나 뵈어도 정말 기쁘네요."

     

     "이쪽이야말로,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저, 크라우스 전하와는 좀 더 대화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로이 님께 고집을 부려보았답니다."

     

     "류디아 양은 아름다우니, 동생이라 해도 다른 남자를 소개해주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로이 님도 참, 농담만 하시네요."

     

     화기애애한 대화에, 크라우스가 느끼고 있던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흐뭇한 광경을 보자, 왜 자신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있는 건지 모르게 되었다.

     

     "형님은 약혼녀 분과 쌓인 이야기가 있겠죠. 저는 정원을 잠시 보고 오겠습니다."

     

     "아......"

     

     멈추려 하는 류디아의 목소리에 상관하지 않고, 크라우스는 산책길 쪽으로 떠나고 말았다.

     

     "과자를 준비하려는 구실로, 제 쪽에서 자리를 비울 예정이었는데요....."

     

     "너무 약혼녀답게 행동한 탓일까?"

     

     로이는 곤란하다기보다는 즐거운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류디아가 실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로이 님...... 왜 그렇게 즐거워하는 건가요?"

     

     "아니, 크라우스가 의외로운 반응을 보인 것이 기뻐서 말이다."

     

     "그런가요......?"

     

     "그래. 도망친 것도 아니니, 진정이 되면 돌아올 거다."

     

     "그렇게 느긋하면....."

     

     그러면서 천천히 홍차를 입에 머금는 로이를 보자, 류디아는 어이가 없었다.

     

     "쫓아가면 도망친다. 저쪽에서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 거다."

     

     "...... 크라우스 전하는 야생동물이 아니잖아요."

     

     류디아의 지적에, 내심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며 로이는 미소를 흘렸다.

     

     

     

     "바보 취급하는 건가!"

     

     크라우스는 짜증을 일으키며 정원 안을 걷고 있는 중이다.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불만을 털어놓아도 괜찮다.

     그러던 크라우스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 어디지?"

     

     아무렇게나 걸어간 탓인지, 어느 사이엔가 숲처럼 길다운 길이 없는 장소에 있었다. 산책길이라면 길을 거슬러가면 되겠지만, 수림만으로 빼곡히 둘러싸인 이곳에서는 방향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주저하던 끝에, 크라우스는 돌아갈 길을 찾으려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직후, 근처에 있던 수풀의 틈새에서, 쑤욱하고 사람의 머리가 크라우스의 눈앞에 나타났다.

     

     "우와앗!?"

     

     "얼레? 누구야 넌."

     

     동색의 두 눈동자가 크라우스를 보며 물어본다.

     

     "너, 너야말로 누구냐!!"

     

     "이 가문의 견습정원사인데."

     

     "정원사가 손님을 놀라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글치만, 이런 곳까지는 사람이 안 오는걸."

     

     내빈용 구역은 훨씬 저편이라고 소년은 말했다.

     

     "변명하지 마, 무례를 사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나를 저택까지 안내해!"

     

     "뭐야. 미아잖아."

     

     "아냐!!...... 잠깐, 주변을 보지 않았더니 방향을 모르게 되었을 뿐이다."

     

     "아 그래."

     

     "그, 그보다, 너는 신분을 생각해라! 나는 이 나라의 제2왕자, 크라우스 볼프강그 폰 로젠하임이라고."

     

     "레오한테 동생도 있었구나."

     

     바로 엎드릴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롭다는 눈초리를 할 뿐이어서, 크라우스는 동요했다.

     

     "내 얼굴을 보고도 모르는 거냐!?"

     

     "서민은 왕족의 얼굴 따위 몰라."

     

     "초상화라던가......."

     

     "그런 비싼 것은 근처의 교회에나 걸려 있을 정도인데."

     

     "....... 어쨌든, 내가 왕자라고 알았다면 태도를 바꿔!"

     

     "정말 죄송했습니다. 여태까지의 무례, 용서해주시기를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오....... 아, 알았으면 됐다."

     

     갑자기 소년이 사람이 바뀐 것처럼 정중한 사과를 하자, 크라우스는 말문이 막혔다.

     저택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라면서 몇 걸음 앞을 나아가고서, 크라우스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크라우스의 보폭에 맞추어 안내했다.

     

     "어이."

     

     "예."

     

     "가만히 있지만 말고 뭔가 좀 말해."

     

     "그렇게 말씀하셔도, 정원사 따위의 땀냄새나는 이야기를 들어봤자 귀만 더럽혀집니다."

     

     대답하는 말투가 너무 전형적이어서, 크라우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먼저 그 말투를 그만둬. 기분 나빠."

     

     "하지만......"

     

     "괜찮으니, 되돌려."

     

     "....... 이 정원 안에서만 이라고 눈감아주신다면야."

     

     "알겠다. 허락한다."

     

     크라우스가 조건을 받아들이자, 소년은 잠시 다리를 멈추고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딱딱한 것은 잘 못해서 다행이야. 나는 이자크라고 해."

     

     견습정원사 소년을 따라가면서, 크라우스는 질문을 던졌다.

     

     "잘 못하는 것 치고는, 꽤 달변가였던데."

     

     "짧은 시간이지만 대타로서 연습해서 그래."

     

     "대타?"

     

     "네 형, 약혼녀를 정할 때까지 후보와의 댄스를 거절했었잖아."

     

     "정원사의 일에는 댄스의 상대도 포함되어 있나?"

     

     "레오 같은 말을 하네."

     

     "이자크라고 했던가. 이름을 댄 상대를 너라고 부르는 것은 불경 이전에 실례다."

     

     "미안. 으음, 크라...... 뭐였더라?"

     

     크라우스는 무심코 화가 났다.

     

     크라우스 볼프강그 폰 로젠하임이다."

     

     "크라......보?? 귀족과 왕족들은 왜 그렇게 이름이 길어?"

     

     "넌 머리가 나쁜 거냐!?"

     

     "응."

     

     순순히 인정하는 소년을 보고, 크라우스는 힘이 빠졌다.

     

     "...... 그럼, 그냥 볼프라고 말하면 돼."

     

     소년은 그거라면 외울 수 있겠다며, 미소를 담은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곳까지 오다니. 볼프는 체력이 꽤 있네? 운동하고 있어?"

     

     "검술을 배우고 있지. 휘두르기도 자주 하고 있어서, 이 정도는 별 것 아냐."

     

     "대단한데. 하지만 아직 형한테는 이기지 못하네."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전부 무시당하고 말았다. 

     

     "형 하고는 몇 살 차이나?"

     

     "반년 밖에 차이가 안 나. 학교에 들어가면 같은 학년이 돼."

     

     어째선지, 견습정원사 소년은 멈춰 서더니 돌아보았다.

     

     "저기, 손 내밀어 봐."

     

     그가 오른손을 펼쳐 보였기 때문에, 뭐냐고 생각하면서도 크라우스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왼손을 펴서 그곳에 가까이했다.

     

     "봐, 내 쪽이 크지?"

     

     "그래서 어쨌다고."

     

     "내 키는 볼프의 형보다 크지?"

     

     "그래."

     

     "하지만, 그건 내가 볼프의 형보다 나이가 많이 때문이야. 지금의 반년은 크지만, 앞으로 몇 년 지나면 열심히 연습하는 볼프 쪽이 강해질지도 몰라."

     

     크라우스는 생각도 못한 사실을 듣자, 눈을 휘둥그레 하였다.

     

     "뭐, 나는 검을 배우지 않았으니 지금의 볼프한테도 지겠지만."

     

     "이자크와 대련할 때는 봐주겠다."

     

     "그거 고마워."

     

     "이자크는 별난 녀석 같아."

     

     "그래?"

     

     "에룬스트 가문의 사람인데도, 형의 일을 물어보지 않잖아."

     

     "왜 그런 것을 물어봐야 해?"

     

     너무 관심 없어하는 소년의 태도가 우스워져서, 크라우스는 조금 웃었다.

     

     "신경 썼던 내가 바보 같다."

     

     "잘 모르겠지만, 물어보면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본성을 고자질할 셈이었다."

     

     "본성?"

     

     "그래. 형은 오만하고 심술궂다."

     

     "뭐...... 그런 성격은 하고 있었지."

     

     소년의 중얼거림에서 동의라고 받아들인 크라우스는, 기분이 좋아져서 수다를 떨게 되었다.

     

     "글치. 교활하고 사람을 몰락시켜도 태연하게 있을만한 사람이라고!"

     

     "헐~"

     

     "그런데도 그걸 모르는 녀석들이 형을 차기 국왕이라고 말하고 있어. 내 쪽이 왕에 걸맞은데도!"

     

     "볼프, 왕이 되고 싶어?"

     

     "당연하지."

     

     "왜 왕이 되고 싶은데?"

     

     "어마마마께서 내가 왕이 되는 것을 바라고 계셔서다."

     

     소년은 깜짝 놀란 눈으로, 크라우스를 바라보았다.

     

     "난 네가 되고 싶은가 물어보았는데, 왜 어머니의 이야기가 되는 거야?"

     

     "왜냐니......"

     

     그 앞의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나, 는......"

     

     어째서 왕이 되고 싶은가.

     자신은 정말로 왕이 되고 싶은가.

     의문이 혼란을 불러서,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다.

     

     "...... 너, 너도 가업이니까 정원사로 일하고 있지 않은가!?"

     

     "아닌데? 나는 되고 싶어서 된 건데? 아버지도 어머니도, 정원사가 되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구."

     

     크라우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견습정원사 소년은 이상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왠지, 형의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붕 뜬단 말이야. 볼프가 생각해서 말하는 거 맞아?"

     

     "하지만, 어마마마께서....."

     

     "볼프."

     

     이름을 불러서 고개를 들자, 볼프의 머리를 쓰다듬는 소년.

     

     "내 어머니가 말했었어. 배를 아파하며 낳았기 때문에 자신의 일부처럼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고 말이야."

     

     크라우스는 눈을 부릅뜨며 얼어붙었다.

     어머니와 다른 의견을 가져도 된다고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의 충격이었다.

     

     "....... 나는, 제왕학의 수업은 어려워서 좋아하지 않아. 형님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분하지만, 검술의 지도를 받는 건 즐거워. 필...... 여동생이 기뻐해 주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켜는 것도 좋아."

     

     혼잣말처럼 말하지만, 견습정원사 소년은 분명하게 크라우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바마마는, 내 앞에서도 국왕답게 행동해서...... 조금 무서워."

     

     그래서 그 아바마마를 상대로 '가족 모두 함께 식사하고 싶어요' 라며 항의했던 여동생의 용기를 존경했다.

     

     "그래서, 왕이 되고 싶은지는, 잘 몰라."

     

     "그래도 되지 않아?"

     

     "뭐?"

     

     "우리 나이대에서 꿈을 찾은 녀석은 거의 없어. 난 운이 좋았을 뿐이고."

     

     "그런가."

     

     크라우스는, 그냥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신 차리고 보니, 자연스레 입술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조금만 더 있으면 산책로 부근으로 나올 거야."

     

     소년이 가리킨 방향을 보자, 나무 그늘이 끊기는 저편으로 본 적이 있는 화단이 보인다.

     그를 따라서 나무들 사이를 지나 산책로로 나오자 햇빛이 강하게 느껴져서, 크라우스는 무심코 눈을 감았다.

     문득 옆 사람이 침묵하는 것을 깨닫고 소년 쪽을 바라보자, 질렸다는 표정을 한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뭐냐?"

     

     "볼프의 눈동자, 금색으로 빛나서 대단한데~! 머리카락도 백금이고."

     

     "금......? 은일 텐데......"

     

     의외로운 말에, 크라우스는 허를 찔렸다.

     형인 로이는 금의 왕자, 크라우스는 은의 왕자라고 자주 불리고 있다.

     금발의 형과 은발의 자신의 모습에서 나온 말이지만, 암암리에 형보다 못하다는 비유로도 쓰이고 있다.

     

     "은이라면, 더 거울처럼 반사하잖아. 이렇게 부드럽게 빛나는 건 백금이고."

     

     평민인 그가 어떻게 희소금속인 백금을 아는지는 이상하지만, 금속의 구별은 확실히 할 줄 아는 모양이다.

     

     "볼프의 금은 부드러운 색이라서 좋아."

     

     "...... 뭐, 무슨 말이냐, 너는!!"

     

     "갑자기 왜 그래."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라우스는 소년을 툭 쳤다.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주먹을 받고, 소년은 의도를 알지 못해 말만으로 항의했다.

     

     "안내, 수고했다."

     

     "그래."

     

     한껏 분풀이를 해서 진정한 크라우스는 정중히 인사하였고,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하던 작업으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자크, 또 보자."

     

     "다음에는 헤매지 마~"

     

     고개만 돌아본 소년은, 미소를 작게 흘린 뒤에 손을 흔들었다. 그의 등이 나무 그늘로 파묻힌 것을 확인하고서, 크라우스도 앞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했다. 또 보자라고 한 것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당분간 걷자, 저편에서 형인 로이와 약혼녀 류디아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류디아는 크라우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안도한 모양인지 미소 지으며 발걸음을 빨리하였다.

     

     "크라우스 전하, 다행이네요. 좀처럼 돌아오지 않으셔서 걱정했답니다."

     

     "괜찮다고 하지 않았는가."

     

     류디아는 로이가 너무 느긋할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조금 전의 짜증을 느꼈던 대화도, 단지 사이가 좋아서 그랬을 뿐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의 심경의 변화에, 크라우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죄송합니다. 걸어갈 때마다 색깔이 바뀌어서, 그만 안쪽까지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좋은 정원이네요. 여동생한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네, 사랑스럽죠. 자랑하는 정원이니, 마음에 들어 하셔서 기쁘답니다."

     

     문득 시선을 느낀 곳을 보자, 형인 로이가 이상하다는 듯 밀랍색 눈동자를 향하고 있었다. 이런 표정도 짓나 하면서, 크라우스는 놀랐다.

     

     "뭡니까?"

     

     "아니...... 1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던 것을 봐서 말이다."

     

     놀랐을 뿐이다, 라며 로이는 부끄러워했다. 평소의 읽기 어려운 미소가 아닌, 감정을 알기 쉬운 형의 미소에 크라우스 쪽이 더욱 놀랐다. 그리고 형이 웃은 원인을 눈치채고는 욱 했다.

     

     "저도 웃을 수 있습니다."

     

     "알고 있어."

     

     형 앞에서 웃어본 기억이 없는 크라우스는, 어떻게 알고 있는지 고개를 갸웃하였다.

     크라우스는 입을 닫으며 형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형님은, 왕이 되고 싶습니까?"

     

     "그래. 이 나라가 좋으니까."

     

     "그럼, 형님도 운이 좋았던 거로군요."

     

     "맞다. 나는 운이 좋아."

     

     "저는...... 일단, 형님한테 지는 것이 분하니 검술에 힘쓰겠습니다."

     

     "그럼, 나도 힘내야겠군. 동생한테 볼품없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으니."

     

     "그런 일을 신경 썼습니까......?"

     

     "그런 일이라니."

     

     진지하게 되물어보는 로이를 보며, 크라우스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노력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걸 들키면 볼품없잖아."

     

     우스워져서, 크라우스는 무심코 너털웃음을 지었다.

     

     "류디아 양, 해냈다! 크라우스의 경계가 풀렸다!"

     

     "앗.......!?"

     

     "잘 됐네요, 로이 님."

     

     크라우스는, 형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일일이 반응하니 부끄러웠다. 그걸 구태여 약혼녀에게 보고하니 더욱 그랬다.

     

     "난리법석은."

     

     "나한테는 중대사였다."

     

     "크라우스 전하, 괜찮으시다면 다음에는 필 님과 함께 오세요."

     

     "전하는 됐어. 언젠가 형수님이 될 테니."

     

     크라우스의 말에, 류디아와 로이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무언가를 떠올린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럼, 크라우스 님으로 괜찮나요?"

     

     "그래."

     

     "이 플록스와 꽃의 탑이 피어있는 동안, 또 셋이서 오자."

     

     "꽃의 탑?"

     

     "다음에 올 때 가르쳐주마."

     

     "딱히, 난 필과 둘이서 함께 와도......"

     

     "내 약혼녀의 집인데 나를 빼놓다니 섭섭하군."

     

     "...... 생각해 둘게."

     

     화해한 형제의 대화를, 류디아는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다.

     

     저도 에밀리아와 저런 대화를 나누고 싶네요.

     

     로이를 본받아서 자신도 힘내자며, 류디아는 마음 어딘가에서 자신을 고무시켰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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