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글라디올러스2021년 11월 14일 15시 53분 3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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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 무슨 일이 있었어?"
자습용 정원에서, 샌드백에 분풀이를 끝낸 니코에게 물어보았다. 니코는 긴 속눈썹을 붙인 눈동자를 부릅떴으며, 분수 가장자리에 앉아서 끝나기를 기다리던 아가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갑자기."
"음~ 왠지 기운 없는 느낌이라서."
"평소대로라고 생각하는데요."
아가씨가 그렇게 말하자 기분 탓인 듯한 느낌이 든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아니...... 드물게도 니코의 자세가 빈틈이 있다고나 할까, 칠 때의 각도가 똑바르지 않아서."
"전 모르겠네요."
아가씨는 이해할 수 없다며 눈을 반쯤 떴다. 여자아이인 아가씨에게는 주먹으로 말하는 것 같은 숨 막히는 화제는 재미없다는 뜻일 것이다.
"내 연기력도 아직 멀었네."
그렇게 말하며 아가씨의 옆에 앉는 니코. 나도 뒤따라서 니코의 옆에 앉았다.
"어제, 비가 왔었잖아."
"그랬지."
"장마라서 요즘 자주 내리네요."
장대비가 저녁부터 밤에 걸쳐 내렸었다.
"누나는 비오는 날에 몸이 안 좋아져."
"니코한테 누나가 있었구나."
"그래."
듣지 못한 사실에 가볍게 놀랐다.
"전에는 조금 두통이 있는 정도였지만, 요즘은 두통이 심해진 모양이라서 침대에서 쉬어도 힘들어해......"
유감스러워하는 아가씨와 생각에 잠긴 나를 보고, 니코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아, 빨리 장마 안 끝나나."
근본적 해결은 안 될 희망을, 니코가 중얼거렸다.
문득, 미세하게 떠오른 기척을 느꼈다. 신경 쓰인 나는 그 잔재의 원인을 거슬러갔다.
"자크?"
"뭐뭐 뭐 하는 거야!?"
거슬러가자, 나는 어느새 니코의 목덜미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조금 놀란 니코가 약간 몸을 빼고, 아가씨는 동요의 목소리를 내었다.
"...... 니코는 적성 속성이 뭐였더라?"
"바람인데?"
"그래."
니코의 대답을 듣고, 깨달은 위화감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했다.
"왜 니콜라우스 님의 냄새를 맡은 건가요!?"
"뭐? 아 미안. 하지만 뭔가 단내가 나서."
"땀냄새가 싫어서, 오드 콜로뉴를 뿌리고 있어."
"라일락이라. 나도 이 정도라면 좋아."
짙은 냄새는 싫지만, 이 정도로 은근히 난다면 괜찮다. 향기도 좋아하는 꽃이어서 좋다.
"전에, 자크가 나 같다고 말해줬잖아. 그래서 향수를 만들게 했어."
향수의 종류를 맞춰서 그런지, 니코는 기뻐하였다. 향수도 주문 제작할 수 있는 거였나. 몰랐다.
"....... 음? 아가씨, 왜 그래??"
어째선지 아가씨가 볼을 부풀리며 보고 있다.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네."
내가 왜 화났는지 생각하고 있는 동안, 니코가 사정없이 아가씨의 볼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그러자 아가씨는 부끄러운 듯 볼에 손을 대며 더 찌르지 못하게 하였다.
아가씨의 노려보는 눈길을 받고 있던 니코는, 문득 기분이 풀린 것처럼 미소를 흘렸다.
"뭐, 들어줘서 고마워."
"...... 저는 들어준 일 밖에 안 했는데요."
"충분해. 내가 그렇게 말하는 거니, 이제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말한 니코는 아가씨의 볼을 가볍게 잡아당겨서 웃는 모습을 만들었다.
"마침 피버퓨도 피어있으니, 아버지한테 나눠달라고 하자. 아마 두통을 억제해줄 거야."
"고마워. 그럼, 그 포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슬슬 돌아가자."
담장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가씨의 호위인 포메라니안을 언급하며, 니코는 화제를 마무리했다. 나와 아가씨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습용 정원에서 나갔다. 담장을 빠져나오자, 포메라니안이 나무 기둥에 기대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날, 니코는 피버퓨의 꽃다발을 받아서 돌아갔다.
나는 오늘 신경 쓰였던 그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신경 쓰였다.
조금 지난 어느 날, 나는 은매화의 화분 사이에 있는 문을 열었다.
"나 왔어."
"실례합니다."
문이 열리자, 따라온 니코는 외투의 후드를 벗으며 나 다음으로 인사하였다.
"어머, 어서 오렴. 정말 예쁜 아이네."
"니코는 미인이긴 해. 그보다, 왔어?"
어머니는 왔다고 대답하며, 차를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이거 편리하긴 하지만, 이 시기에 겨울용 외투는 너무 더워."
니코는 은밀 효과가 있는 외투를 벗으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휴일에 니코를 집으로 초대한 것은 좋았지만, 그는 남자여도 미인이라서 이대로 오기에는 위험하다. 그래서 부탁해서 빌렸다.
"그건 미안하군. 여름용도 다음에 만들도록 하지."
"아니, 이런 거 늘리지 말라고."
먼저 와 있었던 외투의 주인이 맞이하면서 사과하였다.
니코는 누구냐라고 물어보려도 입을 벌린 채 말문을 잃었다. 어디선가 본 모양이어서, 갈색 가발을 뒤집어쓴 레오를 응시했다. 몇 초 후, 떠오른 듯한 니코는 믿을 수 없는 것이라도 본 듯 눈을 부릅떴다.
"전하......?"
"오이겐 하고는 자주 대화했었지만, 니콜라우스와는 인사 이외에 처음으로 대화해보는군."
레오의 긍정을 듣자, 니코는 내 어깨를 붙잡으며 레오에게 등을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보았다.
"왜 왕자님이 자크의 집에 있어!?"
"그 외투, 레오한테서 빌린 거니까."
"그러니까, 왜!?"
"음, 우연히 미아를 주워서??"
"뭐든지 줍는 거냐......"
레오와 알게 된 경위를 간단하게 설명했더니, 니코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되는 거냐고."
"뭐가?"
"저 녀석, 디아 양의 약혼자잖아."
"그랬지."
"그랬지, 라니......"
"아가씨와 약혼하기 전부터, 레오와 아는 사이였으니."
"아, 그러셔."
질문의 의미를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자, 니코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나한테 물어볼 만큼 물어본 니코는, 레오 쪽으로 돌아섰다.
"여기서는 레오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래.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다. 자크의 친구라서 그런가."
"이젠 익숙하답니다. 저도 니코라고 부르면 돼요."
"고맙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니코는 대체 무엇에 익숙하다는 걸까.
마침 그때, 노크 소리가 나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오늘은...... 풉!?"
"어머 이런, 미안해요."
현관 앞에서 대화하던 탓에, 방문했던 마리야가 니코의 등에 부딪혔다.
조금 코를 부딪혔는지 얼굴을 한 손으로 부여잡으며 마리야가 부딪힌 것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올려다보았는데, 그곳에는 니코의 얼굴이 떡 하니 있었다. 그 순간 마리야는 새빨개지며 얼어붙더니, 멍해진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니코의 얼굴의 효과를 다시금 인식하고서, 차근차근 떠올렸다. 전생에서 여동생과 대화했던 여성향 게임에는 캐릭터 속성이란 것이 있었지.
"...... 이런 걸 뭐라고 했더라, 페로몬 계?"
"페로몬이라니 뭐야?"
"아마 꽃 같은 향기가 나는 미인을 말한다고 생각해."
"과연, 그야말로 니코를 말하는군."
"그런 칭호 필요 없어요. 그보다, 이 땋은 머리 아가씨의 걱정이나 하라고요."
칭찬받는 느낌이 안 든다며, 니코는 실눈을 뜨며 우리들을 지적하였다.
"마리야, 미안. 괜찮아?"
웅크린 마리아의 시선과 높이를 맞추면서 말을 걸었다. 취한 듯한 상태가 된 마리야는, 조금 지나자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자크으~"
"깜짝 놀랐지. 미안했어."
"뭐야, 뭐야, 저거 뭐야아~"
"응, 말하지 않았었지. 미안."
"뭐야, 시험하고 있는 거야!?"
"응?"
"하지만...... 질 수 없는걸~!"
마리야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 건가.
후반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한 마리아한테서 손을 떼고는 돌아갔다. 먼저 식탁으로 간 두 사람에게 돌아가자, 질렸다는 표정의 니코와 싱긋 웃으며 차를 마시는 레오가 있었다.
"....... 자크, 너는 어디에서든 자크네."
"나는 나라고."
니코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마리아 양은 눈썰미가 있구나."
"디아 양한테는 말할 수 없겠네......"
레오는 어째선지 마리아를 칭찬했고, 니코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일단 차를 모두 마신 후, 두 사람을 내 방으로 안내했다. 레오의 호위인 마테우스 형은 식탁에 남도록 하였다. 두 사람은 침대에 앉게 하고, 나는 세 발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오늘은 왜 부른 건데."
"그전에. 니코, 풍속성 마법으로 바깥에 소리가 나지 않게 해 줄 수 있나?"
"이 정도의 넓이라면 가능해."
니코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방음벽을 방 전체에 둘렀다.
"땡큐."
"다른 사람이 들으면 위험한 말?"
"아니, 아직 나의 억측인데, 아니었을 때 오해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무슨 뜻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니코에게, 나는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했다.
"니코의 가족 중에, 암속성인 사람 있어?"
"없어."
루들슈타트 백작가는 풍속성인 사람이 많은 가계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에서 암속성을 발견했길래?"
"전에 니코의 머리카락에 붙어있었어."
나의 말에, 니코는 목덜미에 걸린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날, 에룬스트 저택에 오기 전에 만났지?"
"음...... 나가기 전에 언니가 머리카락을 빗어줬어."
마침 내가 확인했던 부분이었다고, 니코는 기억을 떠올렸다.
"만진 상대에게 옮는다는 말은, 그만큼 암속성 마법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 니코의 누나가 몸이 나쁜 것은, 사실 저주받은 게 아닐까 싶어서."
가정이 가득 실린 말이었지만, 니코의 안색이 변했다.
"누구야, 그 녀석."
"아니, 아직 모른다니까.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레오도 오게 한 거라고."
니코는 성을 내면서도, 들었던 허리를 내렸다. 다만 눈은 노려보는 채다.
"그래서, 왕자님이 어쨌는데."
"난 기척을 읽는 것밖에 못해서, 레오라면 어떤 마법인지 알 거라 생각해서 불렀어."
"나는 반대로 마력의 기척을 못 읽지만."
"일단, 확인을 해보려고 니코의 누나를 병문안 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상관없지만......."
병문안은 승낙해줬지만, 니코는 매우 이상하다는 듯 레오를 바라보았다.
"왜 이런 일에 협력해주는 거지요?"
그의 물음에, 레오는 밀랍색 눈동자를 가늘게 하며 미소 지었다.
"빚을 베푸는 거니 문제없다. 그리고."
"그리고?"
"이자크가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위해주는 상대에 흥미가 생겼다."
니코가 눈을 부릅뜨고는 내 쪽을 향했다.
"숙였어......?"
"어."
"....... 바보."
어쩔 수 없는 녀석이라면서, 니코는 무언가를 견디려는 듯 미소 지었다.
니코의 병문안도 승낙받아서, 어머니가 마련해 준 피버퓨와 라벤더의 찻잎이 든 자루를 들고 갔다.
루들슈타트 저택의 정문 현관에 마차가 도착하여 니코를 앞세워서 들어가자, 집사와 몇몇 메이드가 공손히 맞이해주었다.
"니코, 어서 오렴."
"어머님, 이제 왔어요. 친구들이 언니의 병문안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괜찮나요?"
"어머, 니코가 친구를 데리고 오다니 처음이구나."
기쁨에 젖어 야단법석인 니코의 어머니에 비해, 니코는 겸연쩍은 듯 미소 지은 얼굴 그대로였다.
"혹시, 네가 자크 군?"
"아, 예."
"만나서 기쁘단다. 이 아줌마는 엘비라라고 해. 이제부터 니코와 사이좋게 지내주렴."
"예."
"어, 이쪽은?"
"....... 레오, 야."
니코는 당황하면서도 레오를 소개하였다.
"어머나, 친구가 두 명이나 생긴 거네! 레오 군도 잘 부탁해."
"예. 잘 부탁드립니다."
"....... 어머님, 언니의 병문안을 가도 되나요?"
"그러렴. 하지만 만일 이제가 자고 있다면 깨우면 안 돼."
"그럼 그때는 이 꽃만 놓아도 되나요?"
들고 있던 제비고깔의 꽃다발을 보여주자, 엘비라 님은 미소 지으며 수긍했다.
"물론이지. 예쁜 꽃 고맙구나."
니코가 빨리 가자고 재촉해서, 우리들은 그를 따라갔다.
"어머님이 왕자님을 눈치 못 채서 다행이야."
엘비라 님이 보이지 않게 되자, 니코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니코의 누나의 방에 도착하자, 니코는 안에서 시중을 들던 메이드를 물리게 하고, 우리들을 방 안으로 들였다. 마테우스 형은 방 바깥에서 대기시켰다.
"언니, 자고 있어?"
니코가 말을 걸어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침대에 다가가자, 짙은 갈색 머리의 여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자고 있었다. 감은 눈 밑에는 어렴풋이 가마가 떠올라 있다.
"어젯밤에 계속 비가 오는 바람에,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잠들었어."
잠든 니코의 누나뿐만 아니라, 니코까지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자크, 어때?"
"....... 흑마법의 기척이 나."
레오의 물음에, 나는 정령의 기척을 느끼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듣자, 니코의 연보라색 눈동자에 분노의 불길이 타오른다.
"조금씩 침식되는 점에서 보면, 본인에게 각인을 하던가 가까이에 모체가 있을 거다. 증상이 시작된 이후로, 나도 헤로이제 양과 한번은 만났지만 각인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러니 아마 후자겠지."
마차로 이동하는 중에 니코한테서 증상과 경위를 들은 레오는 즉시 원인을 파악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각인이 있을 가능성은 없어?"
"그랬다면, 헤로이제 양 자신에게 생각나는 점이 있을 거다. 이자크, 모체를 찾을 수 있을까?"
"글쎄. 해보기는 할게."
하지만 이곳저곳에 어렴풋한 어둠의 잔재가 남아있어서 찾기 어렵다. 어디부터 찾을까 고민하다가, 일단 갖고 온 꽃다발을 꽃병에 꽂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헤로이제 님의 침대가에 있는 꽃병에는 이미 손님이 있었다.
"솔체꽃?"
"그래. 언니의 약혼자가 보냈어."
내가 보라색 솔체꽃에 눈길을 주자, 니코가 불끈 화를 낸 표정으로 가르쳐주었다. 그 반응으로 보아, 누나의 약혼자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추측된다.
"완전 애라서, 겨우 두통이라며 안 오고 그 꽃도 누가 대신 들고 왔는걸."
약혼자가 직접 병문안을 온 적은 없는 모양이다.
"약혼자에게 보낼만한 꽃은 아니군."
레오가 의아하다는 듯 솔체꽃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비애에 관한 꽃말을 가진 꽃이다."
"오."
"그랬어?"
나와 니코의 반응에, 레오는 의외로운 듯 눈을 휘둥그레 하였다.
"흥미 없는 건가?"
"꽃은 그냥 피어있을 뿐인데, 사람이 멋대로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건 이상하잖아."
"난 여태까지 받는 쪽이어서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았는걸."
"그런가."
우리들의 의견에 납득한 레오는 흥미롭다며 미소 지었다.
"...... 레오."
"왜 그래."
"아마도, 이거 같아."
솔체꽃을 바라보다가 눈치챘다. 헤로이제 님의 근처에 있어서 기척이 짙은가 생각했는데, 헤로이제 님이 두르고 있는 기척보다도 왜곡된 암속성의 기척이 느껴진다.
확인을 위해 레오가 솔체꽃의 꽃병을 양손으로 감싸려 하자, 꽃에서 잉크가 번지는 것처럼 문양 같은 것이 떠올랐다.
"느끼는 아픔 등이 증폭되는 저주가 걸려있군."
"그 녀석......"
"니코, 아직 빠르다. 그리고 이걸 푸는 방법이 먼저다."
"풀 수 있니......?"
"괴롭힘 정도니까, 이 정도라면 나도 풀 수 있다."
확신에 찬 레오의 말에, 니코는 안심했다.
"푸는 것만 해도 좋겠지만....."
레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그리고 조용히 화내는 니코와 꽃을 악용하여 언짢아하는 나를 제각각 쳐다본 뒤, 응 하며 뭔가를 결정한 것처럼 끄덕였다.
"범인한테는 훈계의 십자가를 돌려주자."
검지와 중자를 세운 레오가 솔체꽃을 향해서 십자를 만들자, 떠올랐던 문양과 흑마법의 기척이 흩어졌다.
"벌써 풀었어?"
"그래. 만일을 위해, 헤로이제 양에게 붙은 어둠의 인분은 닦아두자."
레오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빛이 입자가 헤로이제 님을 휘감았다. 그 뒤에는 내가 느끼고 있던 어둠의 기척이 사라졌다.
니코는 우리들 쪽을 향해 미소 지었다.
"고마워."
니코가 웃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목소리는 죽이고 있었지만, 쉬고 있는 사람의 방에 오래 있을 수도 없어서 니코의 방으로 이동했다.
"쿤 후작가에서, 손에 십자의 멍이 든 자를 찾으면 돼. 그 자가 술자다."
"난 확인만 할 셈이었는데......"
저주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생각이었고, 해결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역시 빛의 왕자님이네."
"그게 뭔가."
"레오는 빛속성이니깐."
그러고 보니 여성향 게임의 메인 히어로였지. 잊고 있었다.
"내가 빛 마법을 쓴 것은 마지막뿐이었다."
"뭐? 그럼 방금 것은 뭐였던 거야."
"정보수집과 추적에 능한 것은 암속성이다."
니코는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무리 마력량이 많다고 해서......"
"아무래도, 난 빛과 어둠의 2 속성 소유자인 모양이라서."
레오는 반짝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불쑥 대답했다.
"지금, 방음의 막 치지 않았는데......"
"언젠가는 알려질 테니 문제없다."
"아아, 그러셔."
니코는 피곤하다는 기색으로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 근데 자크는 왜 놀라지 않니?"
"음? 쓸 수 있는 마법을 쓰는 것뿐이잖아."
나의 대답을 듣고 니코는 긴 한숨을 쉬었으며, 레오는 어째선지 만족한 듯 웃었다.
"빛 속성과 다르게, 암속성은 쓰기 편리하다."
"난 엷은 막을 치는 것 밖에 못해서 편리한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마력이 적은 나에게 동의를 요구해도 곤란하다.
"...... 당신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돼."
"니코는 이상하지 않다."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야?"
"여장남자한테 말할 대사가 아니란 말이야."
즉시 부정하는 우리들을 보고, 니코는 매우 어처구니가 없었던 모양이다.
돌아갈 때는 엘비라 님이 배웅해주었다.
며칠 후, 니코한테서 헤로이제 님이 순조롭게 회복 중이라는 보고를 해주었다. 저주의 꽃은, 약혼자가 아니라 그를 사모하던 메이드가 한 짓이라고 한다.
"범인이 여자면, 팰 수 없잖아."
"남자였으면 팰 생각이었어?"
니코가 상대를 때릴 셈이었다는 것에 놀랐다. 물리적인 해결이라니, 귀족으로서 좀 그렇지 않나.
"여자의 질투는 무섭네요."
그런 감상을 늘어놓는 아가씨.
"아가씨는 그런 걱정 필요 없잖아."
"네?"
"아가씨를 좋아하는 상대라면, 분명 딴 여자를 쳐다보지 않을 것 같아."
"뭐...... 실제로도 딴 데 보고 있지는 않네."
니코가 실눈을 뜨면서 내 쪽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왜 나를 보는 거냐.
"니, 니콜라우스 님, 오오오해라고요......!?"
니코는 예예라고 대충 대답하면서 아가씨를 달래었다.
"자크, 적당히 해."
아가씨의 머리를 탁탁 쳐주면서, 니코가 내게 주의를 주었다.
"나, 뭔가 위험한 말이라도 했어......??"
"그럼 자세히 설명해볼까요~?"
지금까지 가만히 서 있던 포메라니안이, 손이 안 보이는 소매를 들어서 해설을 자처했다. 그러자 얼굴이 새빨개진 아가씨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만두세요. 디아 양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잖아요."
니코가 그렇게 포메라니안을 말렸다.
그날 밤, 열흘 남짓 만에 곰 전화로 에르나에게 연락하자, 불평 다음으로 계속 레오에 대한 자랑을 들었다.
[잠깐! 나만 말하게 하지 말고, 이자크도 뭔가 좀 말하지 그래?]
"뭐~"
멋대로 말한 것은 에르나 쪽이면서.
"그래도 딱히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는데."
[좋은 일이 있었다던가, 뭔가 있었잖아!]
"....... 아, 니코의 누나의 병이 나았었지."
[잘 됐네. 니코라니 누군데?]
[음.....? 설마, 그 니코는 재상의 아들인 니콜라우스 폰 루들슈타트는 아니지?]
"그거 맞아."
[뭐어~!? 왜 이자크가 니코 언니를 만났어~?]
치사다고 외치는 에르나가 시끄럽다.
"엥? 에르나의 앞에서도 니코는 여장남자처럼 해?"
[뭐? 거짓말, 왜 벌써 여장남자처럼 되었어!?]
"벌써라니 뭐야. 니코를 만나본 적 있지 않아?"
[생일 파티에서 인사했을 뿐인걸. 그것만으로도 여장남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진짜 미인이었지만!!]
뭔가 대화가 맞지 않는다. 여장남자인 니코를 만나지 않았는데, 왜 에르나는 니코를 니코 언니라고 부르는 걸까.
[이자크, 기억 안 나? 그대의 별에도 여장남자가 있었잖아!]
"몰라. 미니 게임의 종류라면 모르지만."
[RPG파트에서]
"아....... 마력만 높고 물리 공격과 방어가 낮았던 롱헤어."
여장남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몬스터가 있는 숲에 갈 때 필수 멤버가 히로인과 물리 공격 한방에 죽는 롱헤어의 남자여서, 파티 구성으로 고생했던 것은 기억한다.
"........... 그 롱헤어, 니코였어?"
[맞아, 왜 물어보는 거야]
다시 말해, 니코는 그대의 별의 공략 캐릭터라는 뜻이다.
[니코 언니는 말이야, 천성적인 마성의 미모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여자들한테 푸대접을 받아서 여혐이 되었어. 인간 불신도 포함되어서 공략난이도가 높은 캐릭이야. 아, 여자라고 해도 가족은 별개라서, 저주받은 채 잠들었던 누나가 학교에 갈 수 없었던 탓에, 누나의 몫까지 자신이 다하려고 여장남자로 분장해서 학교에 다닐 정도로 가족을 사랑하는......]
길다.
[그래서, 히로인 이외의 캐릭터들과 함께 누나의 저주를 풀게 되어서야 겨우 니코 언니의 신용을 얻을 수 있어서....... 아앗!]
"뭐야. 다 말했어?"
갑자기 에르나의 목소리가 커져서, 깜빡 잠들뻔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자크, 니코 언니의 누나의 저주를 풀었어!?]
"내가 아냐. 푼 사람은 레오인데."
[뭐, 로이 오라버님이? 그래, 로이 오라버님의 일도 그래! 그것도 이자크 탓이지!?]
멋대로 단정 짓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보다, 졸려.
"이제 애들은 자. 나도 잘래."
[잠깐, 이자크!?]
졸음이 한계여서, 나는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이야기를 들으라느니 뭐라느니 하며 에르나의 불평이 들려왔지만, 조금 지나자 조용해졌다.
내일도 일해야 되니 늦잠 자지 않게 해야지. 꽃봉오리의 느낌으로 보면 내일은 글라디올러스가 피어날지도 모른다. 피어나면 아가씨에게 가르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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