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향수2021년 11월 08일 03시 17분 3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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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시작되었다. 조금 더 지나면 낙엽을 모아야 한다.
그런 계절 변화를 실감하면서, 나는 화단의 꽃의 옮겨심기를 돕고 있다.
오후가 되어서야 오늘 몫의 꽃을 모두 내렸다. 하루 종일 이 작업만 해버리면, 정원 전체의 점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분량을 나눠서 하고 있다. 손으로 땀을 닦고 있자, 저택의 하인 출입구에서 잘 아는 사람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카트린 씨. 외출하시나요?"
"안녕하세요, 이자크 씨. 네, 찻잎과 커피콩을 사러요."
"얼마나 사는데요?"
"커피는 콩의 상태로 살 거라서 조금 많이요."
메모를 보여달라고 해서 보니, 카트린 씨 혼자서는 무거워보이는 양이었다. 잠시 생각한 뒤, 나는 카트린 씨에게 부탁해보았다.
"저기, 제가 짐꾼으로 함께 가면 안 될까요?"
"네?"
"귀족들이 다니는 비싼 가게에 갈 기회가 없어서, 바깥만이라도 보고 싶었거든요."
"상관없어요."
내가 부탁하자, 카트린 씨는 당황하면서도 승낙해주었다.
"그럼 아버지한테 말하고 바로 돌아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가 곧장 달려가자, 카트린 씨가 내 등에다 대고 배려해주는 말을 해주었다.
아버지의 허가를 받고서, 카트린 씨와 중앙대로에 이어진 상점으로 향했다.
나는 커피 봉투를 품고, 녹차와 티세트 등을 다루는 홍차 전문점의 앞에서 카트린 씨를 기다리고 있다.
나 혼자서 상점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자, 마차가 눈앞을 통과했다.
길은 넓지만 만일을 위해 한 걸음 물러섰다. 무심코 그 마차를 눈으로 좇다가, 통과한 곳에 있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레 그대로 테라스 석에 있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떤 손님 두 사람에 눈길이 멈추었다.
"이자크 씨, 기다리게 했어요."
카트린 씨가 홍차전문점에서 녹차가 든 통을 손에 들고 나왔다. 나는 까페에서 시선을 떼며 돌아보았다.
"아뇨,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후후, 이자크 씨는 그런 점에 거짓이 없어서 곤란해요. 감사를 말해야 하는 건 제 쪽인걸요."
카트린 씨가 이제 가자고 재촉했지만, 방금 전 보았던 손님이 신경쓰였던 나는 다시 한번 카페 쪽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니요......"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어떤 인물을 눈치채고서 내가 말을 걸었다.
"형!"
"자크잖아.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드문 일인데."
저택 주방에서 만나는 요리사 형들 중의 한 사람이다.
"형도 쇼핑하러 왔어?"
"그래. 좋은 향이 나는 버섯이 들어왔다고 아저씨한테 들어서......"
"그럼, 이것도 덤으로 부탁해! 카트린 씨, 도중에 빠져나가서 죄송해요!! 먼저 형과 돌아가주세요."
나는 두 사람을 그 자리에 두고 달려갔다. 두 사람이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통과하는 마차와 사람을 피하며 카페의 테라스 석에 다가가자, 식사하는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줌마, 냄새나."
"뭐!?"
냄새의 원인인 여성에게 스트레이트 하게 고했다. 여자는 갑자기 나타나서 실례되는 말을 하는 나에게 경악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런 향수를 뿌리면, 밥도 차도 술도 맛없을 거라고."
식사를 하는 곳에서 향수를 뿌리고 있으면 요리의 향기를 방해해서 맛이 안 난다.
"향수는 조금 향기 나는 정도가 딱 좋아. 아줌마, 숙녀인데 그런 것도 몰랐어?"
"~정말 무례한 사람이네요!?"
분노로 얼굴을 붉힌 여성이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서, 나는 맞은편 소년의 두 팔을 붙잡았다. 나의 발언에 눈을 부릅뜬 소년이 겁먹은 눈을 내게 보내서, 똑바로 마주 보았다.
"여기에 남고 싶으면 내 손을 떨쳐내. 싫다면, 도망친다."
"뭐?"
소년한테만 들리도록 말하고서, 나는 소년의 팔을 붙잡으며 달려갔다.
"떡 화장 아줌마, 화장을 옅게 하는 편이 나을 거야."
떠나는 참에, 화장까지 같은 귀족 여성에게 한마디 고했다.
소년은 다리가 꼬이면서도, 잡아끄는 대로 달려왔다. 하지만 운동을 못하는지 나보다 느리다.
제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서 뒤쪽을 흘끗 보니, 여성 하인과 호위 같은 남자가 두 명 정도 따라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따라 잡힌다.
나는 곧장 길을 꺾어서, 가게와 가게 사이의 좁은 틈으로 들어갔다. 가까스로 어른 한 명이 지날 수 있을 정도의 폭이어서 그늘이었기 때문에, 만일을 위해 흑마법으로 덮어두었다. 움직이면서 기척을 지우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은 처음이어서, 잘 될지는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충분하다.
가게 사이를 빠져나와서 시장으로 나왔다. 인파가 단번에 시야를 덮는다.
"...... 기, 기다려!"
탄식 섞인 목소리에 다리를 멈추고 돌아보자, 숨을 들썩이는 소년의 얼굴에 한줄기 땀이 흐르고 있었다.
"너, 체력 없구나."
"기, 사의 가문도 아닌데, 귀족이 운동할 리가 없, 잖아......."
"하지만 레오라면 태연히 따라왔을 거라고."
"누구야, 그거......"
내가 이 나라의 왕자라고 말해도 믿지 않겠지.
"나, 이자크라고 해."
"저기, 이자크. 너, 왜 나를 도와줬어?"
"구해주지 않았는데?"
"뭐?"
소년은 놀랐지만,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가 자기 다리로 도망쳤는데, 왜 내가 구한 것이 된 거야?"
나의 말에, 소년은 입을 떠억 벌렸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빠져나오지 않았으니 대책을 생각해야 해."
"아......."
"자, 가자."
"그.....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가려고......?"
"피난도 겸해서, 서민인 나로서는 잘 모르는 일이니 상담해볼까 생각해."
"누구한테??"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나를 따라왔다. 하인용 입구를 통해 들어온 나는, 정원의 안을 걸었다. 그 뒤를 소년이 쭈뼛거리며 따라간다.
"괜찮으려나......"
"제대로 상담해보고, 잘 안 되면 내가 혼날 뿐이야."
숲 속 같은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가고 담장 밑을 빠져나가자, 소년은 멈추었던 숨을 토해냈다.
지금, 분수 주변에는 버베나가 빨강, 하양, 분홍, 보라의 순으로 뭉쳐서 빙 두르고 있다. 그것들의 높이가 분수의 가장자리보다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분수 가장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소년을 그곳으로 안내했다.
"너, 이름은....... 그보다, 새삼스럽지만 존댓말을 쓸 필요 있어?"
"훗. 정말 새삼스럽게. 됐어."
어이없었는지 웃고 말았다. 뭐, 어두운 표정을 짓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 나는 소년의 옆에 앉았다.
"나는 니콜라우스 폰 루들슈타트."
"그럼 다시 소개할게. 난 이자크 바움가르트너. 에룬스트 가문의 견습정원사를 하고 있어."
"뭐! 그럼, 여기는 공작가의 정원!?"
니콜라우스가 당황하고 있자 마침 담장에서 소리가 나서, 니콜라우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아, 아가씨. 마침 부르려고 생각했어."
"자크, 역시 여기에 있었네요. 데니스가 돌아오는 게 늦다며 걱정했어요."
웃으면서 아가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찾아줘서 고마워, 아가씨."
"따...... 딱히, 버베나가 피어있는지 보러 온 것뿐인걸요....."
"아, 아가씨. 저 녀석은 니코라고 해."
"....... 니콜라우스."
"맞다. 미안, 길어서 외우지 못했어."
"정령...... 이 아니라, 인간인가요.....? 자크, 그는 어딘가의 귀족 자제죠!? 왜 이런 곳에 데려왔나요!"
"주웠어."
아가씨는 놀란 뒤, 내 대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개나 고양이가 아니에요....."
"하지만, 치한한테 당하고 있었어."
"아앗~ 영애한테 무슨 말을!!"
아가씨는 치한이라는 단어에 깜짝 놀랐고, 니콜라우스는 수치심에 볼을 붉히고는 서둘러 내 입을 가로막았다. 나는 막은 손을 풀고서 니콜라우스를 돌아보았다.
"아가씨한테 상담하려고 생각했으니, 밝히는 편이 좋아."
"왜...... 왜 하필, 영애한테~?"
"여자의 의견도 필요하다고. 저기 아가씨. 이 녀석을 보면 어떻게 생각해?"
내 등 뒤에 숨으려 하는 니콜라우스를, 아가씨가 지긋이 바라본다.
"빨려 들 것처럼 아름다운 분이네요......"
"역시 이 녀석 미남이지?"
여자보다 미인인데도 이상하게 여자로 착각하지는 않는다. 아가씨가 잠깐 정령이라고 잘못 볼 정도의 요절함도 있다. 나로서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 녀석한테서는 뭔가가 나온다. 페로몬 같은 것이.
"아, 인사가 늦어서 죄송해요. 저는 류디아 폰 에룬스트라고 해요. 이번에 당가의 하인이 실례했네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히익..... 아,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니콜라우스 폰 루들슈탈트입니다."
"....... 어이, 나를 사이에 두고 인사하지 마. 그보다, 왜 아가씨가 사과하는 거야."
"자크가 실례하는 것은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아가씨가 대신 사과할 것 필요는 없잖아. 내 일이니 내가 사과할래. 니코, 미안. 왠지 실례한 모양이다."
"모양, 이라니...... 네가 실례한 덕분에 살았으니 괜찮아. 그보다, 너 이름을 외울 생각 없지?"
"그것도 미안."
거듭 사과하자, 이젠 그렇게 부르라며 쓴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왜 그 일을 숨기려고 했나요?"
"왜냐면, 여자아이도 여성이라서......"
니코는 조금 전부터 아가씨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숨으려 했다.
"아가씨는 괜찮아. 레오 때문에 내성이 있으니."
"뭔가요, 그 근거는. 로이 님께 실례돼요. 그보다, 니콜라우스 님은 종류가 달라요."
"뭐~ 그럼, 아가씨도 니코를 성희롱하고 싶어?"
"성희롱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공작 영애인 제가 니콜라우스 님께 실례되는 일을 할 리가 없잖아욧."
"역시, 아가씨 멋져~"
아가씨가 가슴을 펴면서 선언했기 때문에, 나는 찬사를 늘어놓으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멋지다고 말해서 그런지, 아가씨는 나를 노려보았다. 칭찬이었는데.
나는 분수에 다시 앉아서는 니코에게 사정을 듣기로 했다. 니코에게 다시 앉도록 권하고, 나는 그 옆에 앉아서는 무릎을 가볍게 두들겼다.
"자, 아가씨."
"? 뭔가요?"
"그대로 앉으면 스커트에 꽃가루가 묻을 것 같아서."
"됐어요!! 자크의 위에 앉을 정도라면, 서 있을게욧."
"그런, 영애를 세운 채로 있을 거라면 저도 서 있겠습니다!"
"앉을 곳이 있으면 그냥 앉으면 되잖아."
"대체, 어째서 이렇게 심어놓은 건가요!?"
"귀엽다고 생각해서."
색의 블록으로 분수의 주위를 둘러싸면, 꽃의 액자 같아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이젠 됐어요......"
"고생하시네요. 류디아 님."
뭔가에 지친 듯한 아가씨에게, 니코가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니코는 무엇을 동정하고 있는 걸까.
어쨌든, 나는 아가씨의 손을 잡고 무릎 위에 옆으로 앉게 하였다. 이렇게 하면 니코와도 대화하기 쉽고, 꽃이 스커트의 옷자락에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니콜라우스 님, 사정을 여쭤봐도 되나요!?"
"아, 예."
니코는 송구스러워하면서도 경위를 가르쳐주었다.
"집안은 백작가지만, 아버지가 재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상위 귀족 분들이 자주 불러주십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다과회에도 빈번하게 참가했는데..... 몇 분에게 조카 선물을 고르는 걸 도와줬으면 한다는 등의 이유로 개인적인 초대를 받았는데, 그, 거절할 수 없어서......"
말하면서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니코.
"그래서, 성격 나쁜 아줌마한테 걸려버린 모양이라서 데리고 왔어."
"아줌마....... 지금은 됐어요. 그렇게 되면, 평민 아이가 데려간 상황이 되어서 저쪽은 소란을 피우고 있겠네요. 저택에 돌아가자마자, 미아가 된 니콜라우스 님을 우연히 찾아서 저희 집으로 초대했다고 루들슈타트 가문에 전해둘게요."
"아가씨, 능숙해."
"자크의 일이니, 상대는 자크가 에룬스트 가문의 사람이라고는 알 수 없겠죠.
니콜라우스 님, 돈을 갖고 있지 않아서 곧장 풀려났다는 걸로 해주실 수 있나요?"
"그야 물론."
"이번 일로 인연이 생겼고, 확실히 어머님은 루돌슈타트 백작부인과 친했을 터이니, 이후의 무슨 일이 생기면 당가에 들러주세요.
다만...... 사정을 숨기고 어머님께 협력을 구할 생각이라서,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건 참작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피난장소를 확보했어도, 근본적인 원인을 어떻게 해야 돼."
"상대가 여성이라는 것이 좀......."
"맞아~"
상대가 남자라면 실력행사도 가능하지만, 여성에게 그런 짓을 해버리면 니코 측이 범죄자로 취급된다. 나와 아가씨가 고민하고 있자, 니코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일단 여태까지의 스트레스를 발산하자고."
"뭐?"
나의 제안에, 니코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를 무릎에서 내린 뒤, 나는 오는 도중에 들른 빨래건조대 부근에서 가져온 천주머니를 열었다.
"그건 뭔가요?"
커다란 주머니에서 꺼내 든 가죽 베개 같은 덩어리를 보고, 아가씨와 니코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샌드백 같은 거."
스승과 훈련할 때 쓰는 도구를 갖고 왔지만, 이름은 모른다. 방패처럼 드는 타입이다. 얼추 크기가 있어서 발차기를 할 때도 쓰인다.
"좋아, 언제든 와보라고."
"어? 어?? 어...... 어떻게 해야.......?"
니코는 가죽 주머니를 든 나를 보며 당황한다. 전투 훈련은커녕, 한 번도 싸워본 일이 없는 모양이다.
"이걸 있는 힘껏 때려. 재수 없다거나 망할 할멈 같은 불평도 하면서."
"재수 없다는 게 뭐야?"
"기분 나쁘다는 의미."
"이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길래......?"
"일단, 후련해져."
니코도 아가씨도 잘 모르겠다는 모습이다. 일단 쳐보라고 말하자, 니코가 쭈뼛거리면서 주먹을 만들고는 가죽 주머니를 쳤다.
"약해. 있는 힘껏 쳐. 그리고 주먹은 더 꽉 쥐고."
"에잇......."
조금 전보다는 힘이 들어갔지만, 아직 약하다.
"소리가 안 나왔어. 재수 없다고 말해봐."
"그....... 그런 짓은......."
"여기는 아무도 듣지 않으니, 아무리 험한 말을 해도 괜찮아. 자."
만일을 위해 아가씨에게 귀를 막도록 손짓으로 전하자, 양손으로 귀를 막아주었다.
약간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면서, 니코는 목소리와 함께 주먹을 꽂아 넣었다.
"재, 재수 없어......!"
처음으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와는 주먹의 감촉이 다른 것을 알아챘는지, 니코가 눈을 빛낸다.
"잘하네."
"확실히, 조금 후련해졌어......."
그렇게 한동안 스트레스 발산을 하고서, 이후의 대책을 다시 생각하였다.
"계속 어머님의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님은 눈치채고 있지 않아서 오히려 상대를 감싸고 마는 일도 있어......"
"어떻게 피해야 좋으려나....."
"아."
내가 무심코 낸 목소리에, 두 사람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대상이 되지 않으면 좋잖아?"
"무슨 의미인가요?"
"니코를 보는 시선이 바뀌게 되면, 저쪽에서 다가오지 않게 되니 일부러 도망치지 않아도 돼."
"그런 일도 가능해요?"
"아마 가능해. 하지만....."
"니코한테도 위험성이 있어. 앞으로는 친구가 생기기 어려워질 수도 있고, 좋아하는 애가 생겼을 때 고생할지도...... 아니, 분명 그렇게 돼."
"할게."
니코가 제안을 듣기도 전에 대답해버려서, 나는 깜짝 놀랐다.
"...... 꽤 각오해야 하지만 괜찮겠어?"
"그런 역겨운 경험을 할 바에는, 무슨 짓이든 할게. 애초에 여자들이 다가와서 그걸 질투하는 건지 얼굴을 놀리는 녀석들 밖에 없어서 동성 친구도 없어. 그리고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만일 좋아하는 애가 생겼을 때 깨끗한 몸을 유지하는 쪽이 중요해!"
"그, 그래....."
나는 눈앞으로 다가온 니코의 어깨를 붙잡고 거리를 두면서, 생각난 제안을 말했다.
"니코가 여장남자가 되면 돼."
""여장남자??""
"하는 척만 해도 되니, 남자인 채로 말투라던가 몸짓을 여자처럼 하는 거야."
"확실히 주변에서 보는 시선은 달라지겠지만, 그걸로 효과가 있겠나요?"
"니코를 이성이라고 생각하니 대상이 되는 거야. 하지만 그 상대한테서 동성의 반응이 돌아온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겠지."
"그런가요?"
"여자다운 말투와 몸짓이라니......"
무엇을 참고해야 좋을지 모르는 니코가 아가씨 쪽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주의를 주었다.
"아가씨는 참고가 안 돼. 귀여우니까."
"앗......!?"
갑자기 아가씨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럼 어떤 식으로 하면 돼?"
니코가 아가씨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은 뒤, 내게 물어보았다.
"음~ 1인칭은 저(アタシ)로 하고, 뭔가 충고하는 듯한...... 의견을 팍팍 말하는 느낌."
"뭔가, 기가 세지 않으면 할 수 없어 보여......"
"니코는 미남이니,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정도가 좋아. 물리 공격을 못하는 대신, 미인인 것을 무기로 삼는 거야."
"이 얼굴을 무기로......?"
잠깐의 침묵 뒤, 니코가 결심했는지 해볼게, 라며 중얼거리는 것처럼 말했다.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니코는 입을 열었다.
"류디아 양도 꽤 귀엽지만, 저의 아름다움에는 당해낼 수 없네요."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기며, 니코가 고압적으로 내뱉는다. 그러자 아가씨가 화를 냈다.
"...... 반론하지는 않겠지만, 왠지 열 받네요."
"아앗, 죄송합니다. 류디아 양!"
"돌아가지 마, 니코. 성공했잖아."
"뭐?"
"아가씨, 어떻게 느꼈어?"
"동성의 지적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남자라고 의식할 수 없어요."
아가씨의 감상을 듣고, 니코는 효과를 실감했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나...... 저, 이걸로 갈게요!"
"오~ 힘내. 스트레스 발산이라면 또 어울려 줄게."
"고마워."
니코는 미소를 지으며 수긍했다.
"....... 자크는, 정말 묘한 것만 떠올리네요."
"그래?"
"심각한 문제였을 텐데, 왠지 바보 같아졌는걸요. 묘해요."
"그랬나?"
나는 칭찬하는 게 아니라고 알면서도 웃었다.
그날, 니코는 아가씨와 저택으로 돌아가서 에룬스트 가문의 마차로 돌아갔다고 한다.
1개월 후, 정원일을 하고 있자 평소처럼 아가씨가 찾아왔다. 아가씨의 뒤에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손을 크게 흔들며 아가씨를 제치고 나섰다.
"쟈크, 왔어요~"
"니코. 또 온 거냐."
"어째서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크를 만날 때에 한해서 니콜라우스 님이 찾아오는 건가요.....?"
"디아 양. 나를 니코라고 부르기로 했잖니."
태연하게 볼을 부풀리는 니코를 보며, 아가씨는 진저리를 쳤다.
"너무 뻔뻔하지 않아요?"
"어머, 연기를 하려면 철저하게 해야 들키지 않지 않겠니."
"니코는 좋은 배우가 될 것 같아."
내가 감탄해서 중얼거리자, 니코는 기쁜 듯이 싱긋 미소 지었다.
"그것도 괜찮겠네. 그래서, 자크ㅡㅡ"
니코가 미소를 지은 채, 내 어깨를 꽉 붙잡는다.
"좀 패게 해 줘."
말투의 갭이 심했지만, 나는 이미 익숙하다. 시도했던 스트레스 발산 방법이 마음에 들었는지, 니코는 정기적으로 나에게 상대를 부탁하게 되었다.
"조금 지나면 다 치우니까, 기다려."
"빨리 하라고~"
낙엽을 빗자루로 쓸면서 니코의 상대를 해주었다. 니코는 기다릴 수 없다며 내 등에 달라붙어서는 재촉하였다.
"그럼 좀 떨어져."
"맞아요, 자크의 일을 방해하지 마세요!
"어머나, 디아 양. 부러운가요?"
"아, 아니에요!!"
놀림당한 아가씨는 즐겁게 웃는 니코를 보며 얼굴을 붉히며 화냈다. 그 후로 두 사람의 말다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하라고 니코에게 말을 해주고 작업에 전념했다.
최근, 작업 BGM이 활기차게 되었다.
뭐, 아가씨가 따분하지 않으니,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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