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마왕2021년 05월 30일 15시 10분 5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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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 님, 힘드실 때 송구스럽습니다만, 저희들은 일단 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베루루엘은, 에리스를 둘러싼 채 꿈쩍도 하지 않는 와란의 보석상자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는, 그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마왕을 품고 날개를 퍼덕거리며 성으로 향했다.
"아, 그래, 그랬었다."
베루루엘의 품속에서, 마왕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생각났습니까?"
"그래, 전부 생각났다."
"그거 다행입니다. 머지않아 성에 도착할 것이니, 먼저 용자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하지요."
"그렇게 해."
베루루엘은 성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마왕을 눕히고는, 즉시 지하실의 마법진으로 향했다.
그곳은 악마에 대한 의식을 하는 장소. 소환과 송환도 여기서 행한다.
베루루엘은 마법진의 중심에 서서, 그 마력을 해방시켰다.
"아르메리안 대륙에서 활동하는 모든 악마들에게 선언한다. 여기에는 이미 마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제부터 자유다. 각자 스스로의 판단으로, 악마의 인생을 구가하라!"
동시에 마법진에서 빛이 일어났고, 베루루엘은 반짝임에 휩싸였다.
"아........"
여기는 천사습격이 끝난 와란. 자유의 산책로에서, 동료들과 호박머리의 처리를 하고 있던 마르코시아가 한순간 몸을 떨었다.
"마르코시아, 왜 그러니?"
"예, 마스터 마셰리, 방금 악마부관이 대륙 안의 모든 악마들에게, 마왕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강제력을 해제하겠다는 발신이 있었습니다."
"그건 무슨 뜻이래?"
"마왕이 나타나기 전의 세계로 돌아갔다는 뜻이에요. 악마는 악마로서 자유롭게 살라는...."
마르코시아는 마셰리의 물음에 솔직히 대답하면서도, 조금 곤란해지고 말았다.
악마인 나는 이 마을에서 쫓겨나는 게 아닐까 하면서. 하지만, 마셰리의 반응은 마르코시아가 우려하던 것이 아니었다.
"흐음. 네게는 관계없는 이야기네. 그럼 이대로 호박청소 속행!"
마셰리의 재촉을 받은 마르코시아는 미소지으며 호박청소로 돌아갔다.
주운 호박이 흐릿해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 것이다. 이렇게 기쁜데 눈물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베루루엘은 의식을 끝내고는, 다시 마왕의 침소로 돌아갔다.
"기분은 어떠십니까? 마왕님."
"그래, 최악이다."
마왕은 자신의 몸에서 마력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것을 느꼈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마법은 머릿속에 술식이 남아있다. 하지만, 아마도 행사할 정신력이 부족할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런데 기억 쪽은 어떻습니까?"
"이 세계에 오기 전의 나에 대해서 전부 생각났다. 내 본명도."
"그거 다행입니다. 그런데 천신에게서, 당신의 처우에 대한 선택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선택을?"
"하나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또 하나는 이 세계에서 생을 다하는 것입니다."
"저쪽의 세계와 이쪽의 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어떻지?"
"거의 같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오고 나서,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도 거의 300일이 경과하였습니다."
마왕은 원래 세계에서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연구자였다. 하지만 그 급진적인 사상을 우려한 학회에게 속아서 한직으로 좌천되었고, 실험설비를 몰수당했다.
이른바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 였다.
이미 마왕의 대답은 정해졌다. 하지만, 만일을 위해 사고실험을 해보았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갔을 경우에 대해서. 자신에게 후회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원래 세계로 돌아가서, 그를 한직으로 내몬 녀석들을 앙갚음해주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그는 잠시 그 계획을 상상하면서, 현실에 기반해 시뮬레이트해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도출되는 결과에 만족했다. 계획은 확실히 성공한다. 하지만, 그런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 것도 바보같다.
저쪽의 세계에 미련은 없다.
"베루루엘, 난 이 세계에 남겠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본명으로 부르겠습니다."
"아니, 됐다. 난 이쪽의 인간으로서 살아가겠다. 모처럼이니 네 별명인 '베루루데우스' 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가겠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너, 베루루엘 때는 심각했었는데 이젠 제대로 돌아왔네."
"네, 아무래도 여성화가 되었을 때 머리의 나사가 몇개 빠진 모양입니다. 하지만 즐거웠습니다. 설마 마왕님이 제게 그런 짓도 하고 저런 짓도 할 줄이야......"
"그만! 남자의 모습으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그건 좁은 견해입니다. 그래갖고 자유를 표방하는 와란에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잠깐 시험삼아 지금부터 같이 잡시다, 당신에게 있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라 생각합니다."
"저기, 그 예쁜 어굴로 진지하게 그런 말하는 거 그만두지 그래?"
"그거 유감이군요. 적어도 작별의 인사 대신으로 한판 해볼까 생각했었습니다만."
"어째서 천사의 모습으로 그런 욕망에 가득찬 말을 하는 거냐고."
"왜냐면, 저, 천계의 욕망담당이었으니까요."
"그러셨습니까......"
.........
"자, 만담도 이쯤에서 해두지요. 조금 전 당신에게 건네드린 반지는, '대마도의 반지' 와 '정신의 반지' 입니다. 사용방법은 적당히 감정해주세요.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마력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그 두뇌에는 여러가지 마법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부디 유효하게 써주시길 바랍니다."
"그래, 고맙다."
베루루엘은 그의 표정을 들여다보며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은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가시겠죠? 그 여자의 마음의 상처는 정말 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걸 뿌리 채 뽑아서, 열려진 구멍을 당신으로 메꿔주십시오."
"흥, 오지랖도 넓구만."
"그럼 저도 슬슬 천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배웅해드릴 테니, 나가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 성은 자유롭게 쓰셔도 상관없으니까요."
"그래, 여러가지로 미안하군."
마왕은 마음에 들어하는 농부복장을 입고서, 머리에 밀짚모자를 썼다. 베루루엘한테서 빌린 반지의 능력은 이미 파악 끝. 이 능력이라면 스카이라이너의 술식 정도는 여유롭게 쓸 수 있다.
"그럼, 지금까지 고마웠다. 베루루엘."
"네, 이게 마지막 인사입니다. 베루루데우스 님, 평안하시길."
베루루데우스는 천사 베루루엘에게 절을 하였고, 베루루엘도 그에 맞추었다.
머리를 든 후, 베루루데우스는 돌아서서는 스카이라이너의 마법으로 와란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베루루엘은 그가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베루루엘도 발걸음을 돌렸다.
"자, 그럼 '우리들' 도 천계로 돌아가기로 하죠."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베루루엘은 자신의 가슴에 양손을 포갰다.
베루루엘은, 마왕과의 작별을 슬퍼하여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오열하고 있는 '장밋빛공주' 의 마음을 양손으로 따스하게 보듬고서, 천계를 향해 날개짓을 하였다.
베루루데우스는 와란에 도착하자 뒷처리에 애를 쓰고 있는 시민들을 제치면서, 마르게리타가 사는 아파트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마르게리타! 이야기를 계속하자!"
"이 사람 참 끈질기네, 바깥의 소금과 마늘도 안 보였어!? 정어리의 머리도 흩뿌려둘 걸 그랬어."
"시끄러! 사람의 얘기 좀 들어! 잠깐 들어간다."
베루루데우스는 현관에서 가로막고 있던 마르게리타를 밀어제끼듯이 방 안에 들어가더니, 매우 당연한 듯 낮은 테이블의 한쪽에 착 주저앉았다.
마르게리타는 한숨을 쉬면서, 자그마한 찬장에서 글라스는 2잔 꺼내들어서 베루루데우스의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과일주인데, 마실 거야?"
"그래, 마신다."
마르게리타는 도가지병에서 상쾌한 향기가 나는 액체를, 그의 앞에 놓인 글라스에 따르고, 다음엔 자신의 앞의 글라스에 따랐다.
"이 방에 들어온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이곳이 백합의 정원이었다면, 당신은 지금쯤 거꾸로 내걸렸겠지."
"흥. 그런 거야 반격해주면 된다고."
......
누구랄 것 없이, 2명은 내뿜었다. 그리고 서로의 글라스를 가볍게 부딪혔다.
"그 소녀는 어떻게 되었어?"
"그래, 그 녀석은 천계로 돌아갔다."
"그래, 역시 천사님이었네."
"맞아."
.......
"저기, 마르게리타."
"뭔데, 베루 씨."
"함께 살지 않을래?"
.......
.......
베루루데우스의 갑작스런 말에, 마르게리타는 경직되어버렸다.
"뭐?"
"그러니까, 함께 살지 않을래?"
이 남자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더럽혀진 나한테 무슨 말하는 거래? 어? 어?
어느 사이엔가 베루루데우스는 마르게리타의 옆에 앉아있었다.
"계속하자."
베루루데우스는 자신의 글라스를 테이블에 두고는, 마르게리타의 글라스도 그녀에게서 빼앗아서 테이블에 두었다.
그는 그녀의 볼에 손을 대고서, 반쯤 강제로 그녀의 얼굴을 그에게로 향하게 했다.
마르게리타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경직된 그녀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살포시 포개어졌다.
마르게리타는 다시금 달콤한 세계에 사로잡혔다.
실 한가닥으로 지탱하였던 이성으로 이 남자는 역시 마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그에게 빨려들어갔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시 악몽이 덮쳐왔다.
"죽인다."
그의 말에, 그녀는 다시금 패닉에 빠졌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마르게리타는 필사적으로 외치면서 그의 이곳저곳을 물어뜯고, 등을 손톱으로 긁고, 몸을 비틀어 그에게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강인했다. 마르게리타는 도망칠 수 없어서, 계속 베루루데우스의 몸에 상처를 주면서도 그의 애무에 젖어들었다.
무서워무서워무서워무서워! 살려줘살려줘살려줘살려줘!
마르게리타는 마음에 남았던 상처에 의한 공포가 재점화되어서, 쾌락에 빠지지 않겠다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마르게리타의 의식은 멀어져갔다. 세계가 흰색이 되어갔다.
마르게리타는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뜨는 것이 무서웠다. 이런 꼴을 당한 후, 눈을 뜨면 앞에는 참혹한 결과만 남았었기 때문이다. 악취를 풍기는 대량의 오물이 있거나, 이곳저곳에 굳은 피가 묻어있는 인간의 목이 있었으니까.
눈을 뜨면 그 시절처럼, 자신에게 벌을 주려는 것처럼, 몸을 찌르는 우물의 차디찬 냉수로 자신의 몸을 씻어내야만 한다.
눈을 뜨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눈치챘다.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은 부드러운 감촉을.
그녀의 허리를 지탱해주는 부드러운 감촉을.
그것은 따스한 감촉.
마르게리타는 살짝 눈을 떴다.
"여어, 안녕."
눈앞에는 그녀의 마음을 헤집은 남자의 미소.
그녀는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나의 상처 채로 마음을 헤집었다고. 헤집은 마음에 파고 들어온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마르게리타는 눈에 뜨거운 것을 그렁거리면서도, 그에게 내뱉었다.
"정말 너무한 남자네. 책임은 져줘야겠어."
"당연하지."
베루루데우스는 그녀에게 입술을 포갰다.
잠시동안의 키스 후, 마르게리타는 베루루데우스의 귓가에서 속삭였다.
"다음엔 상냥하게 해줘."
"그래, 맡겨줘."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얼마 후, 마왕이었던 남자는 와란 시민에게서 친밀함의 뜻으로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도적길드 예능부문리더 '여왕벌' 의 기둥서방.
'밀짚모자의 베루 씨' 라고.
※ 선정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거의 편집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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