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1 위로연
    2020년 07월 30일 15시 39분 4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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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https://ncode.syosetu.com/n2894gj/11/

     

     

     

     

     

     독주회를 끝낸 나는, 간단히 말해서 하얗게 불타버렸다.

     

     뭘 하려고 해도 추욱 늘어져서, 한숨을 짓게 만드는 꼬락서니. 정확히는 단순히 체력이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응. 나이는 먹고 싶지 않네.

     

     사실은 당분간 잠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오늘은 오라버니와의 약속인 위로연이 있다. 위로를 하겠다면 가만 내버려둬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겠지.

     

     오늘의 드레스는 감색이며, 천에 은실의 자수를 넣은 것. 연령에 맞춘 차분한 디자인이다.

     

     잘 생각해보니 연회는 성녀가 되기 전에 참가했던 이래다. 오라버니의 즉위식 때의 연회는 결국 참여해보지도 못해보고 탑에 곧바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공들여 화장을 해놓자, 나는 이야기가 있다고 불려서 네이마르와 오라버니의 집무실로 향했다.

     

     연회는 오후부터였지만, 그 전에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한다.

     

     오라버니와 네이마르의 말로 살펴볼 때, 오늘부터 나는 '성녀' 가 아니다. 이미 '성녀' 로서의 본래의 직무는 은퇴했었으니까 이상한 논리였기는 했지만.

     

     새로운 성녀인 리이나는 잘 해가고 있는 것 같다. 마물이 제도까지 찾아온 일에는 놀랐었지만, 딱히 그녀에게 불만이 있어서라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정말 잘됐다.

     

     하지만 역시 나같이 이십 년이나 성녀를 계속하는 것은, 그녀가 '그렇게 하고 싶다' 고 생각할 때에만 그랬으면 좋겠다. 선택하지 못하는 인생에서 행복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소피아님을 모셔왔습니다."

     

     "들여보내."

     

     네이마르가 문을 열고, 나는 인사를 하고서 방에 들어갔다.

     

     황제의 집무실은 벽면에 역대 황제의 초상화가 걸려있어서, 조금 진정되지 않았다.

     

     넓은 방의 중앙에 놓여진 책상은 혼자서 쓰기에는 상당한 넓이였다.

     

     "왔는가."

     

     후우 하고, 책상의 반대편에서 한숨을 쉬는 오라버니.

     

     그 옆에 어째서인지 그라우가 서 있었다. 군복 정장을 착용하고 있다.

     

     "이전의 데송드 공작의 건 말인데."

     

     오라버니가 입을 열었다.

     

     그렇구나. 그 이야기인가. 확실히 위로연의 회장에서 말할 내용은 아니었다.

     

     "가문을 단절시키고, 국외추방하기로 정해졌다."

     

     ".......꽤 엄격한 처분이네요."

     

     사실, 미수로 끝났다고도 할만한 사건이어서 좀 더 너그러울 것으로 생각했다.

     

     "바보같은 말 마라. 국외 추방한 것이 온정이다."

     

     오라버니는 입가를 올렸다.

     

     "녀석은 이 나라를 오랫동안 지켜왔던 '성녀' 를 붙잡아서, 칼날을 들이댄 것이다. 이 나라에 있으면 누구한테 찔려도 불만은 말할 수 없지."

     

     "그럴 일은 역시나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요. 사형에 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그 자리에서 처형하지 않았던 제 이성을 칭찬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라우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하지만, 저는 무사했으니까요."

     

     "그것과 이것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탁 하고 단언하는 그라우.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근본적인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군 시설이어서 방심했었습니다. 어떠한 처벌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방심한건 저인데요? 장군은 나쁘지 않아요."

     

     나는 당황했다. 그라우는 나를 도와주었다. 처벌같은걸 받는다면 정말 이상한 것이다.

     

     "뭐, 그 일은 좋아. 일단 불온분자를 하나 제거했다는 것도 되니."

     

     그다지 사람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미소를 오라버니가 띄웠다.

     

     오라버니는 누가 뭐라 말해도, 정치가였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폐하. 장군에게 줄 포상을 보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너무하지 않습니까?"

     

     최고검사의 칭호와 같이 수여될 포상을 주지 않고 있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장군의 충성에 대하여 상응하는 영예를 부여하는 것은 위정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아아, 그건......."

     

     후 하고, 오라버니는 한숨을 쉬었다.

     

     "오 년 전부터, 나는 계속 그라우에게 협박받고 있네. 애초에 짐만의 생각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서. 고생하고 있네."

     

     그렇게 어려운 일인 것일까?

     

     오라버니만의 생각으로 결정할 수 없다니, 무슨 일일까.

     

     "도대체 무엇을 희망하시는 건가요?"

     

     그라우는 오라버니의 안색을 살피듯, 눈을 향했다.

     

     "좋아. 허가한다."

     

     오라버니가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라우는 내 앞에서 무릎 꿇었다.

     

     "소피아님, 저의 부인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인으로 삼고 싶은 분이 있다고......."

     

     "긴 시간,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빈곤한 기사 출신이어서, 당신과는 상당히 격이 안 맞는 남자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여기까지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라우의 눈이 나를 포착하고 있었다. 가슴이 마구 고동치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녀가 아니어도, 황족이 아니어도. 제 마음은 항상 당신만을 보고 있습니다."

     

     아아.

     

     '말하지 않으면 안될 말을 하고 싶어지고 맙니다.'

     

     나에게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때, 그라우가 나에게 말했던 대사를 떠올렸다.

     

     그 때. 나는 아직 그의 안에서는 '성녀' 였으니까.

     

     눈물이 흘렀다.

     

     22년. 성녀인 나를 지키고, 그리고 나 자신을 지탱해주었다.

     

     "어떤가, 소피아. 짐을 돕는다고 생각하고, 장군에게 시집가주지 않겠느냐?"

     

     히죽 하고 입을 구부려서, 오라버니가 웃는다.

     

     "이 남자는 너무하네. 장군이 되어도 탑에 복무하러 가고 싶다는 등, 점점 내게 압박을 걸었었지. 널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버리면, 군을 그만둘지도 모르네."

     

     "저기......불쾌하셨습니까?"

     

     그라우가 불안한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니요. 저어......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미소지었다.

     

     계승의 의식, 그리고 독주회에서 인생에 이 이상의 행복은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은 이전까지 없었던 사랑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의 눈에 내가 비추어져 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다.

     

     "좋아. 그럼, 약혼을 발표하겠다."

     

     오라버니가 정했다는 듯이 단언했다.

     

     "예? 오늘에요?"

     

     너무 급전개함에 나는 놀랐다.

     

     "성녀를 정식으로 은퇴하게 되면, 혼담이 쇄도한다. 이런 일은 빨리 손을 쓰는 편이 수고가 적네."

     

     ".......저, 40세인데요."

     

     무심코 웃고 말았다. 정략결혼은 정말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나이는 관계 없습니다!"

     

     "그런 것일까요?"

     

     "당연합니다! 소피아님은 자신의 매력을 모르고 계십니다!"

     

     그라우에게 쳐다보여져서, 무심코 주춤하고 말았다. 기쁜 마음과 놀람으로. 여러가지 기분이 하나로 모여서,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크흠, 하고 오라버니가 헛기침을 하였다.

     

     "뭐, 저기. 소피아. 장군은 장군은 여러가지로 선입견이 강한 남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필요한 남자다. 좋은 아내로서 지탱해주게."

     

     "예,"

     

     나는 눈물을 닦으면서, 제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라우에게 에스코트 받으면서 연회장에 들어갔다.

     

     오늘의 회장은 가든 파티. 궁전의 내정원에서, 커다란 테이블을 늘어놓아서 다과회의 약간 호화판같은 형식이다.

     

     평범한 연회라면 주빈인 내가 피곤해질 것 같아서, 라는 오라버니의 배려인 듯 하다.

     

     애초에 남성에게 에스코트된 경험조차 없다.

     

     그라우의 팔을 손으로 부축하고서, 그냥 그것뿐인 행위로 동요하고 말았다. 나이도 있는 주제에. 라고 생각될 것 같아서 부끄러웠지만, 이런 것은 '습관' 이 필요한 것이다. 22년 연애스캔들 금지였었으니까, '습관' 일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너무 움직임이 쭈뼛쭈뼛하고 있어서겠지. 그라우가 걱정스럽다는 듯 들여다보아서, 더욱 심장의 고동이 빨라졌다.

     

     "미안해요. 저, 이런 일 처음이어서."

     

     바보취급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꼬옥하고 허리에 손을 두르고, 더욱 몸을 밀착시키게 되었다.

     

     "저, 저기......"

     

     "그런 귀여운 반응을 당하면,  절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라구요."

     

     달콤히 귓가에서 속삭여서,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차례차례로 인사를 해주었지만 무엇하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뭐야. 이거.

     

     안되겠다. 면역이 너무 없어서, 폭발해 버릴 것같다.

     

     "저기, 조금 봐주세요."

     

     무심코, 작게 항의했다.

     

     "무리입니다. 22년이나 참아와서, 이미 한계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40세의 아줌마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숙이고 걷는다니, 정말 비웃음 당할 것 같은걸.

     

     그런데도. 설령 비웃음 당해도,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자각했다. 부드러운 눈동자도, 상냥한 목소리도, 따뜻한 온기도,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떨어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라는 이유로, 소피아는 그라우 장군에게 시집가기로 되었다."

     

     연회의 후반. 오라버니가 그렇게 단언하자 위로연은 축하연으로 바뀌었다.

     

     차례차례로 보내지는 축하. 왠지 근질근질하다.

     

     끝이 다가오자 인사를 하라고 들어서, 나는 인사 대신으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게 제일 나다운 인사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한 것으로, 무언가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정원에서 부르는 것은, 탑에서 숲을 향해 부르던 때처럼 푸른 하늘이 보여서 이상한 기분이었다.

     

     연회의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었던 나는, 마물의 기척을 느꼈다.

     

     "뭐지?"

     

     "새?"

     

     박쥐와는 다르다. 무지개빛의 커다란 새가 무리를 지어 상공에 나타나서, 천천히 내려와서는 정원의 나무에 앉았다. 대형의 앵무새다.

     

     주위의 소란을 제쳐두고, 나는 앵무새의 앞으로 걸어갔다.

     

     "당신, 마물이지요?"

     

     앵무새와 같으면서, 앵무새가 아닌 것. 박쥐 때와 같은 것을 느꼈다.

     

     "그래."

     

     에? 대답했어? 한 마리의 앵무새가 목소리를 올렸다.

     

     "우리들, 대성녀, 부탁있다."

     

     앵무새의 대사에 주변이 떠들썩해졌다. 나는 모두에게 진정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악의는 없어보였지만, 자극은 하고 싶지 않다.

     

     "지금성녀, 훌륭해도, 우리왕, 대성녀, 못잊어. 인간마을, 왕, 못온다."

     

     지금성녀는 리이나를 말하는 것일까. 그럼, 대성녀는 나?

     

     "우리왕, 대성녀, 나라에, 초대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나에게 마물의 나라에서 노래해 주었으면 하다고?"

     

     파닥파닥하고 말하고 있었던 앵무새가 날개소리를 내자, 함께 날아온 앵무새 무리가 입에 물고 있던 것을 내 눈앞에 떨어트리고 갔다. 반짝반짝 빛나는 돌이, 수북이 쌓였다.

     

     "이, 이것은, 마석입니다."

     

     돌을 주워든 네이마르가 놀람의 목소리를 내었다.

     

     마석은 경계의 탑 부근에서 드물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광석이다. 이것은 여행비인 것일까. 아마 평범하게 채굴할 때의 일년 치 정도는 될 것 같다.

     

     "하, 하지만,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말았어. 이제 성녀로는 못 돌아가."

     

     "다르지않다. 그래도, 왕, 대성녀, 부른다."

     

     앵무새의 말에 나는 그라우와 오라버니 쪽을 보았다.

     

     "정말로 마물인 것이냐? 애초에, 말이 통하다니 있을 수 없어."

     

     오라버니의 의문은 적절하다. 마물하고는 절대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우리, 원래, 말못한다. 사람말안다. 하지만, 못쓴다. 이새라면, 말한다."

     

     "결국, 성대가 없다는 말이구나. 하지만, 말은 이해하고 있다니.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네이마르가 드물게도 얼굴에 홍조를 피웠다.

     

     "마물의 나라에 내가?"

     

     바로 가보고 싶다. 그곳은 도대체 어떤 장소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내 노래를 들어주었는지 알고 싶다.

     

     "갑시다, 소피아님."

     

     그라우가 나에게 끄덕였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정말요?"

     

     이 나이에, 원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꿈꾸는 아이들 같은 모험을.

     

     "폐하. 신혼여행은, 부부끼리 마물의 나라에 다녀오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어이, 그라우."

     

     오라버니는 당혹함을 숨기지 못했다.

     

     "폐하, 이것은, 절호의 기회입니다. 의사소통이 안된다고 생각했었던 마물을 알면, 공존도 가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평소에는 신중했을 네이마르가 의욕이 있어 보인다.

     

     "그 나라는 탑에서 얼마나 걸리는가?"

     

     "사람이면, 열흘."

     

     앵무새가 대답했다.

     

     "알겠다. 소피아의 안전은 보증할 수 있겠지?"

     

     "당연. 대성녀, 우리들에게, 지식준다."

     

     나는 그라우의 팔을 끌어안았다. 무모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둘이서 나아가는 길에는 커다란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펼쳐지는 하늘은 어디까지나 푸르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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