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30화 갑작스러운 권태기(1)
    2024년 06월 22일 07시 29분 1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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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



     어둠 속에서, 크리스토퍼는 중얼거린다.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아서 자신의 모습조차 파악할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오른팔이 화끈거린다는 것뿐이다.



     마치 바늘 같은 것이 무수히 많은 바늘로 오른팔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왼손을 가까이 가져가려고 하면, 바깥을 향하여 바늘이라도 있는지 손가락 끝을 쿡쿡 찔러서 여전히 아프다.

     그것은 마치 밧줄에 바늘이 붙어 있는 것 같달까. 조금씩 오른팔을 묶으며 바늘이 파고들어서 점점 더 아프다. 빼고 싶어도 바늘이 가로막고 있어 빼내지 못하고 고문하는 것처럼 계속 아프다.



    "...... 이런 꿈, 빨리 깨어났으면 하는데."



     크리스토퍼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 고통도 참을 수 있지만, 아픈 것은 아픈 것이라서 빨리 어떻게든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왠지 움직이기도 힘들어서, 그는 누운 채 멍한 상태로 멍하니 있었다.



     그런 어둠의 공간에 갑자기 빛이 나타났다. 크리스토퍼의 눈앞에 네모난 빛이 켜졌다. 그것은 마치 TV 화면 같았고, 실제로 무언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잠깐, 크리스토퍼 님은 제 약혼자예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만 좀 해, 안네마리]



    [크리스토퍼 님은 제 약혼자이니 그녀의 편을 들지 말아 주세요!]



     TV 화면에는 크리스토퍼와 안네마리, 그리고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은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화면 너머에서는 질투심 많은 여자의 촌극이 열리고 있는 것 같다.



    (그보다, 저기, 안나잖아. 우와, 정말 꼴불견이네)



     약혼자 크리스토퍼에게 접근하는 여자에게 마구잡이로 트집을 잡는 안나의 모습에, 화면 속 크리스토퍼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겠지. 나도 안나가 그 안네마리였다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거야....... 아얏!"



     오른팔의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밧줄과 바늘이 오른팔을 더 파고들었다. 그리고 순간 깨달았다. 이 화면의 빛에 의해 오른팔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크리스토퍼는 오른팔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크리스토퍼의 오른팔을 감싸고 있던 것은 가시 같은 식물이었다. 자세히 보니 가시가 계속 자라고 있어서 앞으로 더 커질 것 같다.



    "세상에."



     크리스토퍼는 무심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왜 내가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한탄하지만 대답은 알 수 없다.

     TV 화면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크리스토퍼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우와 ......"



     화면 너머에서는, 안네마리에 이어 실수를 저지르는 크리스토퍼의 모습이 있었다. 그토록 안네마리가 주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흑화하여 중간보스로 변한 크리스토퍼였다.

     은발의 소녀가 무언가를 외치고 있지만, 크리스토퍼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에게 검을 겨누었다.



    "흑화하면 내가 저렇게 되는 거야? 미소녀에게 칼을 겨누다니, 나 정말 싫어. 진짜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눈을 깜빡이는 순간, 화면의 영상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어둠에 빠져 있던 크리스토퍼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소녀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인물은 쿠리타 히데키였다.



    "...... 실화냐고."



     눈을 뜬 크리스토퍼는 작게 중얼거렸다.






    ◆◆◆



    "크리스토퍼 님, 잠시 드릴 말씀이."



    "빅티리움 후작영애, 조금만 조용히 해줄 수 있을까."



     학교에 등교해 수업이 시작되기 전 시간에 말을 걸어도, 크리스토퍼는 책을 읽으며 그렇게 대답할 뿐이라서 이야기할 틈도 없었다.



     반 친구들도 크리스토퍼가 갑자기 안네마리에게 냉랭한 태도를 취하는 것에 당황했지만, 말을 걸지 말라는 듯한 그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크리스토퍼 자신도 처음에는 자신의 태도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자신도 안네마리에게 상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면 비정상적으로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넘쳐나서 상담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 분위기는 학교무도제 실행위원회에도 영향을 미쳐서, 위원회는 항상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크리스토퍼도 안네마리와 사무적인 대화까지 싫어하는 것은 아니어서 위원회 활동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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