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아에게 지금 하던 일을 맡기고, 나는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라고는 하지만 전생의 냉장고와는 구조가 다르다. 이 세계는 과학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대신 마법이 발달해 있다. 동력은 마력이다.
그 냉장고에서 아까 필리아와도 이야기했던 믹스 주스를 꺼냈다.
내 몫과 필리아 몫. 선반에서 두 개의 컵을 꺼내 내용물이 고루 섞이도록 붓는다.
한정 수량으로 판매되는 인기 상품인 만큼, 두 사람 몫을 따르다 보니 내용물이 완전히 비어 버렸다.
여기서 잠시 필리아의 상태를 살핀다.
필리아는 내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진지한 얼굴로 수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내가 지금 주스에 무슨 짓을 해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다.
"...... 후후후."
미소를 흘리며, 나는 몰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작은 병을 꺼냈다.
주머니에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크기의, 불과 2~3㎤밖에 되지 않는 작은 병.
그 안에는 이상할 정도로 진한 벚꽃색 액체가 가득 차 있다.
나는 병뚜껑에 손을 대고는, 실수로 내용물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병을 열었다.
그러자마자 병을 채운 액체가 뿜어내는 강렬한 향이 새어 나와 내 코를 강타했다.
달콤하고 녹아내리는 듯한 매혹적인 향기.
조금만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도 온몸이 반응하여 황급히 뚜껑을 닫았다.
ㅡㅡ음마의 추출물을 배합해 만든 액체 약.
이 세계에 마법이 있듯이 마족, 마물 등으로 불리는 신비한 생물도 존재한다.
아니, 나 역시 전생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환상의 종족, 엘프다.
그리고 그런 불가사의한 생물 중 하나에 음마가 있다.
일명 인큐버스, 혹은 서큐버스.
이름 그대로 존재 자체가 R18 등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야한 종족이다.
음마의 체액은 음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생물의 발정을 촉진하고 쾌락의 정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음마는 그렇게 냉정함을 빼앗은 후, 세뇌의 마법을 걸어 대상자를 음마 자신의 포로로 만들어 완전한 지배하에 둔다.
그렇게 한 번 정신을 지배당하면 결국 죽거나 지겨워질 때까지 계속 음마에게 조종당하게 된다. 설령 해방되더라도 쾌락 이외의 자극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 폐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런 점 때문에 음마는 매우 위험한 종족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음마의 추출물을 배합하여 그 효과를 희석시킨 것이 이 액체이다.
효과를 희석했다고는 하지만, 음마의 체액 자체가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쉽게 침범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단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매우 높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은데, 이 정도 양임에도 비슷한 약 중에서 가장 가격이 비싸고 개수도 이것 한 개밖에 없었다.
쇼핑 도중 필리아의 눈을 피해 몰래 구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힘들어서 가게 주인에게 환각 마법을 걸어 환각 속에서 거래를 하고 약을 빼앗아 왔을 정도였다.
무단으로 그런 마법을 거는 것은 범죄지만 ......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
게다가 돈은 제대로 두고 왔다. 어디까지나 환각을 통해 거래를 했을 뿐이다.
이렇게 힘들었지만, 일단 손에 넣으면 나머지는 쉽다.
향과 맛을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단맛이 진한 믹스 주스 등도 사면서, 드디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후후후, 이것으로 필리아를 ......"
이번 나의 계획은 이렇다.
첫째. 필리아 믹스 주스에 이 약을 넣는다.
둘. 필리아가 저녁 식사 중에 믹스 주스를 마신다.
셋. 발정 난 필리아가 "몸이 이상해요"라고 내게 부탁한다.
넷째. 항상 잘 챙겨주는 필리아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식으로 좋은 말을 하고서 같이 잠자리에 든다.
설령 필리아가 의지하지 않는다 해도, 이 경우 필리아는 나로부터 떨어져서 혼자 있으려고 할 것이다.
그때 상태가 이상해서 걱정이 된다며 찾아가면, 비정상적인 상태의 필리아에게 자연스럽게 네 번째 작전을 실행할 수 있다.
그리고 발정상태로 사고능력이 저하된 필리아라면, 단순히 걱정하는 모습을 가장한 나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즉,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
게다가 이 계획이라면 나중에 진정이 된 뒤에도 지금의 관계를 크게 망가뜨리지 않을 것이다 .......
조금 어색해질 수도 있겠지만, 금방 다시 원상 복귀될 것이다.
어차피 필리아는 그날의 자신이 이상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을 것이고, 나는 그저 그런 필리아를 걱정했을 뿐이라는 설정이다.
둘 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후후후...... 완벽한 계획이다. 나 스스로도 무섭다.
전에 도달한 자, '지전의 마법사'의 이명은 그냥 붙은 것이 아니다!
'전(全)'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아, 시작하자 ......!
오늘이야말로, 오늘이야말로 내 소원성취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