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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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1월 29일 18시 53분 1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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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아름답다.

     갇혀 있는 나한테는, 격자무늬 창으로 잘려나간 네모난 하늘만 보일 뿐이지만.



    "오늘은 몇 월 몇일이죠?"

    "수정의 달 1일."



     간수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하지만 나는 이 간수가 꽤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원래 죄수와 말을 주고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정중하게 대답을 해 주니까.



     나?

     하르트 아미스 선제후가의 딸 아즈라엘이라는 사람이야.

     지금 세간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잘 몰라.

     하지만 귀인감옥에서 딱히 부족함 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걸로 보면 상상이 가.

     죄를 지은 아가씨로 남아있겠지.



     무슨 죄로 감옥에 들어갔냐고?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니, 안 했기 때문에 죄인이려나.

     나는 1년 전까지만 해도 황태자 월터 전하의 약혼녀였어.



     황실을 지탱하는 대귀족 선제후 가문 중에, 월터 전하께 어울리는 영애가 나 말고는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선택된 것은, 단순히 내가 가진 커다란 마법의 힘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뿐이다.

     표현을 바꾸자면, 어처구니없는 규모의 마력을 가진 탓에 당첨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약혼녀란 무급 노동자, 아니 노예와 같은 존재다.

     주변국과의 전투에다 도적 소탕에 마물 퇴치에 내몰린다.

     마력이 쌓일 틈도 없다.



     그러는 와중에도, 너는 왜 항상 제도에 있지 않느냐, 파트너가 없어서 망신을 당했다며 바보 전하가 투덜댄다.

     아니, 미리 말해 주었다면 잉여 마력을 억지로라도 짜내서 날아서 돌아왔을 텐데?

     나중에 말해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사실 어떻게 하라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보 전하가 공식적으로 애인을 갖기 위한 방편이었다.

     나도 그때는 순수한 소녀였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다.



    [그 보기 싫은 머리카락을 잘라라!]



     이것도 아호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다.

     마법사가 머리를 자른다는 건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전하께서는 마력이 머리카락에 쌓인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약혼녀로서 황태자 전하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머리를 싹둑 잘랐다.



     어차피 일이 바빠서 마력을 쌓을 시간이 없었다.

     내 어마어마한 최대 마력량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고.

     큰 마법을 쓸 기회도 없었다.

     머리카락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만큼, 마력 회복이 빨라서 편리하다는 측면도 있었다.



     그랬는데 이번엔 이렇게 말했다.



    [건국제가 있다. 주변국 인사들도 초대하였으니. 시범으로 네 마법으로 화려한 연출을 보여줘라]

    [네? 무리인데요]



     아니, 왜냐면 머리를 잘랐는걸.

     내가 아무리 마력이 많아도 필요한 만큼의 마력을 모을 수 없는데 화려한 마법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치입니다만.

     

     건국제는 카이즈미리아 제국의 위신을 대내외에 알리는, 황제 가문의 가장 중요한 행사다.

     바보 전하가 상당히 낙담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문제는 신성해야 할 건국절에 내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약혼을 파기당하고 명령 불복종으로 죄를 뒤집어썼다.

     그래서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거다.



     말수가 적은 간수가 흘린 바에 따르면, 나는 희대의 악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황태자 전하의 파트너로서 사교에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등 황실의 말을 전혀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니, 시키는 대로 군에 동행했으니 당연히 제국에 있을 수 없었던 거지만?



     다만 카이즈미리아 제국 최대의 마법 전력인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없다고 하여.

     나는 제도에 있으면서 헛소문을 퍼뜨리는 여자로 찍혔다.

     어머, 너무해.



     그런 바보 전하지만, 국민들의 평판은 사실 굉장히 좋다.

     얼굴만 보면 씩씩한 귀공자이고, 귀족학교의 성적도 확실히 좋고, 검술도 제법 잘하는 편이니까.

     게다가 악녀인 약혼녀의 횡포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니 당연해, 응응.



     다만 종종 군과 함께 행동했던 나로서 말하자면, 바보 전하에 대한 장군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폐하가 아닌데도 명령을 내린다, 월권행위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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