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4
    2024년 01월 22일 17시 30분 3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소피는 주먹을 꽉 쥐었다.

     로렌츠는 평소에 얌전했던 소피의 다른 면을 보고 또 한 번 웃었다.



    "그리고 드레스들도 옷장에서 잠자는 것보다는 햇볕을 쬐고 싶을 테니, 이걸로 괜찮아요."

    "그렇군."





     반년이 지날 무렵부터 소피는 몸이 좋지 않은 날이 많아졌다. 확실히 저주가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소피는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연극이나 음악회를 보러 가기도 하고, 말을 타기도 하고, 물감을 묻히며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흙투성이가 되며 원예를 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로렌츠는 그 대부분을 함께 했다.



     둘이서 바다에 왔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린다. 다가왔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오는 파도에 소피와 로렌츠는 발만 담그고 있다.



    "차갑네요."

    "이제 가을이니까. 오래는 못 들어가겠어. 감기 걸리니까."



     분명 예전 같았으면 맨발로 물에 들어가는 것은 상스런 짓이라고 꾸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누구도 그것을 나무랄 사람이 없다.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스쳐 지나간다. 잠시 그 신기한 감각을 즐긴 후, 두 사람은 해변에 나란히 앉았다.



    "파도소리를 들으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나요?"

    "그래."



     파도 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분명 소피가 없어도, 이 소리가 로렌츠의 마음을 달래줄 것이다.



    "왜 그래?"



     로렌츠가 문득 옆을 보니 소피가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로렌츠는 손수건을 내밀었다.



    "에헤헤, 미안해요. 행복하다고 생각해서 그만. 맛난 것을 먹고 이렇게 파도소리를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서......"

    "참지 않아도 돼요."

    "...... 흐윽."



     로렌츠가 부드럽게 안아주자 소피는 눈물을 흘렸다.



    "무서워."

    "응."

    "사실은, 무서워요."

    "내가 꼭 해결할 테니까 믿고 기다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소피는 낙관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 열 달이 지났다. 일어나기 어려워진 소피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괜찮아?"

    "어머, 로렌츠 님, 일부러 병문안을 와주셨네요? 여자의 침실에 들어오다니...... 뭐, 이제 상관없어요. 몸가짐이 단정치 못하지만, 용서해 주세요."



     공작가의 소피의 방은 공작영애의 방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삭막한 풍경이었다. 더 이상은 필요 없다며 소피가 다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요. 부럽죠? 로렌츠 님은 공부하느라 바쁘시니 불쌍하네요."



     일부러 웃으며, 소피는 읽고 있던 책을 로렌츠에게 보여줬다. 로렌츠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리고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좋아하는 사과 타르트를 선물로 가져왔는데, 책이 더 좋았을까?"

    "와아, 사과 타르트도 좋아요! 감사합니다."



     로렌츠가 손수 접시에 담아 주자, 소피는 기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로렌츠 님이 추천해 주신 책도 읽고 싶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만둘게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아서요."

    "소피?"

    "설명하기 어렵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요, 몸 안에 검은 안개가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처음에는 옅었던 것이 점점 짙어져서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소피는 아주 담담하게 사실을 말했다.

     로렌츠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소피의 상태를 보면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면서.



    "로렌츠 님, 저는 이제 잊어버려도 괜찮아요."

    "무슨 소리야."

    "...... 거짓말이었어요. 역시 가끔은, 정말 가끔만이라도 좋으니 기억해 주세요. 그래야 저는 살아갈 수 있어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매일 생각할 테니까."

    "그건 안 돼요. 새로운 약혼녀를 더 소중히 여기세요."


    728x90

    '연애(판타지) > 수명 1년의 저주를 받았으니 마음대로 살아가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0) 2024.01.22
    5  (0) 2024.01.22
    3  (0) 2024.01.22
    2  (0) 2024.01.22
    1  (0) 2024.01.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