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후편(1)
    2024년 01월 19일 23시 09분 4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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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런 님, 그건 듣고 못 지나치겠군요요."



    어깨가 움찔할 정도로 위엄 있는, 얼어붙을 듯한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며 나는 무심코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 아버지 ......!)



    거기에는 평소에 거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화난 듯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자리에 계셨던 것일까.



    자신의 실언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말문이 막힌 앨런에게,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딸과의 약혼을 원했던 것은 앨런 님, 당신 쪽이었잖습니까. 거짓말이라니 좋지 않군요. 그리고 저는 한 나라의 재상이기 전에 나디아의 아버지입니다. 소중한 외동딸이 이렇게 모욕당했는데 침묵할 수는 없습니다. 귀하와 나디아의 약혼은 이대로 끝이 난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국왕 폐하께도 이 사실을 즉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그런 ......"



    나는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의 말에 놀라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이 나라의 왕비로 세우는 것이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앨런 님이 무슨 짓을 하든 모른 척하며 견뎌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핏기가 가신 앨런 님이었던 반면, 파멜라 님은 아직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앨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앨런님, 그럼 저와 약혼해 주실래요? 저를 이 나라의 왕비로 삼아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파멜라 님을 노려보는 앨런 님을 보면, 분명 눈치채고 있는 것 같다.

    제1왕자 앨런 님과 제2왕자 놀란 님을 지지하는 파벌은 나뉘어 있다. 나와의 약혼이 결정되고 재상인 아버지가 뒤를 받쳐주면서 앨런 왕자의 왕위 계승이 거의 확실해졌지만, 그것이 백지화된 것이다.

    그리고 나와의 약혼을 파기할 것이라면, 차기 국왕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앨런 님이 이 약혼을 제안한 이상 아버지인 재상의 노여움을 사는 일은 최소한 피했어야 했다는 것을.



    아버지는 아직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했지만, 내 몸을 부축해 주고 있는 놀란 님에게 시선을 옮기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딸을 감싸주셔서 감사합니다. 왕비 교육이나 학원 공부 면에서도 딸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것 같더군요....... 딸아이도 집에서는 앨런 님이 아니라 놀란 님의 이름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아버지, 그건 비밀로......"



    너무 부끄러워서 황급히 아버지의 소매를 잡아당긴 나는, 항상 침착해야 할 놀란 님의 뺨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셨다.



    "내가 너와 앨런 님과의 약혼을 허락한 것은 그것이 너의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과연 네가 앨런 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인지, 아니면 네 마음은 놀란 님에게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은 그래서 너희들의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왔다만......"



    아버지가 앨런 님에게 다시 한번 냉랭한 눈빛을 보내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는 다음으로 놀란 님이 시야에 들어오자, 이번에는 차분한 눈빛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제가 딸의 마음이라는 중요한 점을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 같군요."



    아버지의 말씀에 담긴 의미에, 나는 내 마음이 아버지에게 다 드러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놀란 님에게도 전달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러면 놀란 님을 곤란하게 만들겠어......)



    하지만 놀란 님은 나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으며,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환한 표정으로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더니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 서로 약혼을 파기했지만, 만일 나디아 님이 싫지 않으시다면. 다시 한번 저와 약혼해 주시겠습니까?"



    나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답을 했다.



    "네. 기, 기꺼이 ......!"



    그렇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앨런 님이 아닌, 나를 다정하게 지지해 주는 놀란 님을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폐가 되게 하지 않으려고 내 마음을 계속 숨겨왔지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그리고 내 손을 잡고 기쁜 듯이 일어서는 놀란 님의 모습에 믿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한숨을 돌린 모습의 아버지도 놀란 님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손을 맞잡고 서로의 볼을 붉게 물들이는 우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

    아버지로부터 약혼 파기의 전말을 들은 국왕 폐하께서는 앨런 님에게 매우 화가 나신 듯, 앨런 님에게서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고 놀란 님에게 주셨다고 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멜라 님도 알란 님을 떠난 것 같다는 소문을 들었다.



    왕궁을 찾아가 놀란 님에게서 사정을 듣고 있던 나에게,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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