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놀란 님의 약혼녀인 파멜라 님은 요정처럼 고운 외모를 가진 아주 아름다운 분이다. 많은 약혼녀 후보들 중에서 놀란 님이 그녀를 선택한 것도 당연하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여학생들에게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놀란 님이 직접 선택한 것을 보면, 파멜라 님을 무척 사랑하고 계실 것 같다. 그런 놀란 님에게 파멜라 님과 앨런 님이 그렇게 얼굴과 얼굴이 맞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최근 그들이 유난히 친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앨런 님은 앞으로 제수씨가 될 파멜라 님과 친분을 쌓고 싶다고 했었지만, 그렇다 해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앨런 님의 마음은 이미 포기한 나였지만, 항상 부드럽게 내 편이 되어주는 놀란 님의 슬픈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넓은 발코니로 나오자 시원한 밤바람이 뺨을 쓰다듬어 준 덕분에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쉰 나는, 그러나 곧 다시 얼굴을 찌푸리게 되었다.
놀란 님과 내가 발코니로 탈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앨런 님과 파멜라 님도 발코니로 나왔기 때문이다.
약간 술에 취한 듯한 앨런 님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파멜라 님과 팔짱을 끼고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앨런 님의 몸에 파멜라 님이 섹시하게 몸을 맡기고 있다.
그런 모습에 당황하여 놀란 님이 다시 팔을 잡아당기려 할 때, 나는 앨런 님이 파멜라 님을 뜨겁게 바라보며 입을 맞추는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
결정적인 장면까지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나도 모르게 굳어 버린 나에게 놀란 님도 그들의 모습을 눈치챘다.
두 사람에게 냉랭한 시선을 던진 놀란 님은 "흐음"이라고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우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한 파멜라 님이 키득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앨런 님, 왜 나디아 님과 약혼을 하셨어요? 제가 더 잘해드릴 수 있었는데........"
"그래.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네가 곁에 있어줬으면 했어. 하지만 나디아의 뒤에는 재상이 있잖아. 그게 없으면 딱히 아무 재미도 없는 그녀를......."
거기서부터 앨런 님의 말씀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놀란 님이 양손으로 내 두 귀를 막았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아까 파멜라 님의 불륜을 보았을 때에도 보이지 않았던 분노의 표정이 그의 얼굴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시 앨런 님과 파멜라 님이 입술을 겹쳤을 때, 놀란 님은 마침내 내 양 귀에서 손을 떼고 파멜라 님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파멜라. 너와의 약혼은 이 시간부로 파기한다."
깜짝 놀란 파멜라 님은 놀란 님과 내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의 말에 얼어붙은 파멜라 님은 도움을 청하듯 앨런 님을 올려다보았다. 앨런 님도 내가 가까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나, 나디아. 이건 그 ......"
"형님"
나를 대신해 놀란 님이 입을 열었다.
평소 온화한 성격의 그였기에, 분노에 찬 말투가 무서울 정도로 강렬했다.
"오빠의 아내로서 훌륭한 국모가 되기 위해 혹독한 왕비 교육을 견디고 있는 나디아 님께 이 무슨 심한 말입니까. 그녀는 훌륭한 여성입니다. 그녀를 모욕하는 말만은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앨런 님의 표정도 순식간에 분노에 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말대꾸조차 하지 않던 동생이 저러자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술에 취한 기세 때문인지 짜증이 난 듯 입을 열었다.
"......흥, 나한테 의견을 말하다니, 건방진 놈.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나디아가 재상의 딸이 아니었다면 이런 약혼은 하지 않았을 것이야. 이 약혼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것. 재상 측에서 나에게 원한 거라고 ......"
(아아, 역시 그랬구나)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이라서, 실망감보다는 그저 메마른 웃음이 입에서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 뒤에서 낮고 근엄하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