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3 일어나는 바람
    2024년 01월 10일 09시 51분 1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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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리스와 켄돌 사이를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불꽃이 가로막자, 켄돌은 뒤로 튕겨져 나가면서 화염의 벽을 올려다보고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대체 이건, 무슨......"



    이리스는 눈앞에서 켄돌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커다란 불꽃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



    아주 작았던 불길이 순식간에 타오르는 불길로 변했을 때, 이리스는 그 불길을 일으키는 강한 바람의 기세를 느꼈다.



    그리고 이리스는 자신을 보호하듯 감싸 안아주는 부드러운 바람의 존재도 느꼈다. 그 바람 덕분에, 이리스는 불길의 열기와 그 외부의 거친 바람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그 순간, 이리스의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그리운 바람 마법의 감각에 이리스의 눈에는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그대로 공중에 떠 있던 이리스의 몸은 따스하고 힘찬 두 팔에 안겼다.



    "이리스, 늦어서 미안해. 괜찮아?"



    아름다운 마베릭의 얼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리스를 들여다보고 있다. 곧이어 날카로운 소리가 나면서 이리스의 팔다리를 묶고 있던 밧줄이 스르륵 풀렸다. 이리스는 양팔을 둘러 마베릭을 꼭 껴안았다.



    "마베릭, 님 ......!!!!"



    긴장이 풀린 이리스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마베릭은 아직 조금 떨리는 이리스의 몸을, 두 팔로 감싸 안은 채로 꽉 껴안아 주었다.



    "무서웠지. 다친 데는 없어?"

    "...... 네, 괜찮아요."



    마베릭은 이리스의 팔다리에 여전히 붉은색으로 남아있는 밧줄 자국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켄돌은 이리스를 안고 있는 마베릭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헬레나에게 갔을 텐데 ......"



    켄돌의 말을 들은 이리스는 놀란 듯이 마베릭에게 감긴 두 팔을 풀려고 했지만, 마베릭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그 팔에 힘을 주어 부드럽게 이리스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얼어붙은 듯한 눈빛으로 켄돌을 바라보았다.



    순간, 소용돌이치는 듯한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이리스가 숨을 멈추면서 마치 생물처럼 격렬하게 춤추는 바람을 느끼고 있을 때, 켄돌의 몸은 바람에 휘감겨 공중에 뜨더니 벽에 세게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실내가 크게 흔들렸고 천장에서 미세한 잔해와 먼지가 흩날리며 쏟아져 내렸다. 켄돌은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허물어졌다.



    마베릭이 정신을 잃은 켄돌을 힐끗 쳐다보자 실내의 바람이 멈추었고, 동시에 불타오르던 불꽃의 벽도 천천히 사라졌다.

    마베릭은 이리스를 쳐다보다가, 차분하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헬레나라는 아가씨를 찾아간 것은 빈센트를 구해준 아가씨에 대한 보답이 주된 목적이었는데...... 빈스를 구해준 것은 그녀가 아니라 이리스, 너였구나."

    "빈스 님이라면, 혹시 ......?"



    처음 만났을 때 얼굴이 심하게 부어올랐던 마법사의 얼굴이 이리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크게 다쳤던 것을 네가 구해줬지? 그는 내 동생이야....... 봐봐, 빈스도 여기 왔어."



    마베릭이 가리키는 시선 너머로 얼굴을 돌리자, 이리스에게 미소 짓는 그리운 푸른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드디어 다시 만났네요, 이리스. 지난번에는 정말 신세 졌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어떻게 할까요?"



    빈센트는 벽가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켄돌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뭐, 이대로는 감옥행이겠죠. 그는 기사단의 전 부단장이었지만 ......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 몰락했군요.

    ...... 저로서는 이리스에게 이런 일을 당하게 하다니, 바람의 칼날로 공중분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지만요."



    이리스에게는 다정한 눈빛을 보내는 빈센트였지만, 그가 켄돌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빛에는 격렬한 분노의 빛깔이 역력했다.



    "저기, 잠깐만요."



    당황한 이리스가 빈센트를 말리자, 그는 피식 웃었다.



    "뭐, 농담이지만요. 이리스, 무슨 일인데요?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어요?"



    이리스는 말을 골라가며 대답했다.



    "저기, 이 분...... 켄돌 님은 제 오랜 지인이에요. 그리고 저...... 그가 여기까지 데려오긴 했지만, 결국 더 이상 어떤 일을 당한 것은 아니라서요. 그래서 그......."

    "호오, 이리스. 그를 감옥까지 보낼 필요는 없다는 뜻인가요?"

    "그래요. 더 이상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것만 이뤄진다면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아요."



    빈센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정말 착한 아가씨군요...... 젊고 연약한 아가씨를 사지를 묶어서 납치해 놓은 것 치고는 형벌이 너무 가벼운 것 같기도 하지만요. 형님은 그걸로 괜찮으시겠어요?"



    마베릭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 나도 그 녀석에게 최대 규모의 바람 마법을 날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이리스가 그렇게 말한다면, 다시는 이리스의 곁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이리스의 의사를 존중해 주겠어."

    "알겠습니다. 뭐, 역시 구금과 심문은 피할 수 없을 테니 그를 적절한 부서에 넘겨주도록 할게요."

    "그래, 부탁한다."



    빈센트는, 마베릭과 그의 품에 안긴 이리스의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제가 두 분을 방해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겠지요. ...... 이 뒤처리는 제가 할 테니, 그리고 레노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제 둘이서만 저택으로 돌아가세요. 레노도 이리스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미안하지만 네 말에 따르겠어, 빈스. 그럼, 가자, 이리스."

     

    마베릭의 말에 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빈센트에게 감사의 미소를 짓자, 빈센트는 이리스를 눈부시게 바라보았다.



    "이리스, 다음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게 해 주세요. 제가 그 끔찍한 부상을 당하고 지금 이렇게 회복된 것은 당신 덕분이니까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을게요."

    "저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빈스 님."



    마베릭이 이리스를 안고 마차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본 빈센트는, 방금 전까지 이리스가 갇혀 있던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폐가를 둘러보았다.



    빈센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리스가 이런 인적이 드문 폐가에 납치되었음에도 무사히 발견된 것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법의 속성을 인정받지 못했을 이리스 앞에 갑자기 불길이 나타난 것도. 역시 형님의 말대로 5가지 마법 속성 말고도 어떤 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아....... 어디, 나도 마법사단의 서고에서 조사해 보도록 할까)



    빈센트는 다시 폐가 안으로 들어가, 벽가에서 목을 축 늘어뜨린 자세로 움직이지 않는 켄돌의 곁으로 다가갔다.



    (...... 음?)



    빈센트가 켄돌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굳게 닫힌 켄돌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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