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8 크레이그의 약혼녀
    2024년 01월 02일 19시 00분 3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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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스가 그랑벨 후작가에 온 지 반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오후, 라이오넬의 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던 라이오넬과 에디스에게 라이오넬의 아버지가 말을 건넸다.



    "말했던 대로, 곧 크레이그와 약혼할 예정인 유제니 님이 올 거다....... 두 사람 모두 준비는 이미 된 것 같구나."



     휠체어에 앉은 라이오넬은 연회색 정장에 눈동자와 같은 색의 청자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라이오넬과 마주 보고 있는 에디스는 라이오넬에 맞춰 고급스러운 광택이 나는 청자색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에디스의 드레스는 원래 옷이 별로 없던 그녀가 그랑벨 후작가에 온 후 라이오넬의 뜻에 따라 그녀에게 새로 주문해 준 옷이었다.



     라이오넬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모습에 미소지으며, 밝은 표정의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라이오넬, 네 몸은 정말 좋아졌구나. 나도 아직 믿기지 않을 정도로."



     휠체어 없이 생활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지만, 휠체어 위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그는 감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흙빛으로 변했던 라이오넬의 얼굴은 본래의 하얗고 매끈한 피부를 되찾아가고 있었고, 검은 머리도 서서히 윤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약하게 움푹 파인 눈매도 이제는 시원한 아름다움이 느껴질 정도로 변했고, 그 눈동자에는 희망에 찬 강한 빛이 담겨 있었다.

     라이오넬은 에디스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그녀의 손을 잡고, 아버지를 향해 웃었다.



    "아버지, 이 모든 것이 에디스 덕분입니다.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이 집에 온 후부터 에디스는 늘 제 곁에서 저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저는 에디스에게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 엊그제 방문 진료한 의사도 기적이 일어났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으니까. 에디스가 기적을 일으켜준 거겠지."



     라이오넬이 앞으로 1년 정도만 살 수 있을 거라고 진단했던 의사는, 다시 한번 그를 방문했을 때, 갑자기 생기를 되찾은 듯한 라이오넬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에디스는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아뇨,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에요. 게다가 라이오넬 님은 언제나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이렇게 멋진 드레스까지 만들어 주셨으니까요. 제가 오히려 라이오넬 님께 감사드리고 있답니다."



     날씬한 에디스의 몸매를 따라 흐르는 청자색 드레스는, 그녀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빛나게 했다. 라이오넬은 드레스를 입은 에디스의 모습을 눈부시게 바라보다가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드레스도 너에게 잘 어울려서 아주 아름다워. 에디스, 네가 곁에 있어줘서 나는 정말 행복해."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라이오넬의 아버지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저택 밖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와 마차 바퀴소리를 듣고 복도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왔나 보군. 우리도 슬슬 갈까? ...... 아체, 너도 거기 있지? 함께 유제니 님을 마중하러 가자꾸나."



     라이오넬의 아버지의 말에, 라이오넬의 방문 틈으로 아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장미색의 작은 드레스를 입은 아체는 마치 인형처럼 사랑스러워서 에디스는 그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라이오넬이 손짓을 하자, 아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오빠에게 달려왔다.



    "라이오넬 오라버니!"



     오빠에게 달려온 아치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라이오넬을 안겼고, 오빠는 에디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에 에디스의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체 님은 정말 천사야 ......!)



     아체는 조금씩 에디스의 존재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았다. 최근 들어 그녀는 은근슬쩍 라이오넬과 에디스 주변에 나타나서, 에디스와 눈이 마주치면 수줍어하면서도 빙그레 웃어주곤 했다.



     라이오넬과 손을 맞잡은 아체와 발걸음을 맞추며, 에디스는 천천히 라이오넬의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라이오넬의 아버지의 뒤를 따라 저택의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



     현관 앞에 서 있는, 크레이그에게 팔을 잡힌 한 영애의 모습과 그녀의 부모로 추정되는 인물의 모습이 에디스의 시야에 들어왔다.

     라이오넬의 아버지는 그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며, 라이오넬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에디스를 돌아보았다.



    "이쪽은 얼마 전 장남 라이오넬과 약혼한 오크리지 백작가의 에디스 님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라이오넬의 아버지가 소개하자, 에디스도 정중하게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라이오넬 님과 약혼하게 된 오크리지 백작가의 에디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들어 크레이그 옆에 나란히 선 영애를 다시 한번 바라본 에디스는, 그 모습에 놀랐다.



    (어머.. 정말 예쁘시다 ......)



     그곳에는 윤기 나는 밤색 머리카락에 푸른빛이 도는 청록색 눈을 가진 날씬한 아가씨가, 크레이그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에디스는 의붓언니인 달리아도 미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눈앞에 있는 아가씨는 차원이 다른 미인이었다. 흠잡을 데 없이 단정한 얼굴의 그녀는 부드럽게 에디스에게 미소를 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에디스 님. 저는 크레이그 님과 약혼하게 된 유제니라고 합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숙녀다운 행동도 완벽한 유제니의 모습에, 에디스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유제니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라이오넬에게 시선을 옮겼다.



    "...... 라이오넬 님, 오랜만에 뵙네요. 약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유제니."



     유제니의 말에 라이오넬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어서 유제니는 라이오넬과 손을 맞잡고 있던 아체를 쳐다보았지만, 아체는 반짝이는 눈으로 유제니를 올려다보더니 슬그머니 몸을 돌려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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