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2 온화한 시간
    2024년 01월 01일 17시 26분 0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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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에 앉은 에디스는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라이오넬과 마침 시선의 높이가 거의 같았다. 가까이서 바라본 그의 고요한 색을 머금은 청자색 눈동자를, 에디스는 역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의 시선을 가까이서 느끼자 다소 쑥스러워하면서도 에디스는 입을 열었다.



    "제대로 이야기를 하려니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후작가의 라이오넬 님께서 평민이었던 제 이야기를 해도 흥미를 느끼실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요 ......"



     라이오넬은 에디스의 말에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너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 알고 싶어. 넌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영애들과는 다른 점이 많아. 내게는 좋은 의미로. 그래서 평민으로 살던 시절의 네 이야기도 들려주었으면 좋겠어. ...... 내가 너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물론 단순히 평민이냐 귀족이냐 하는 과거의 신분 차이로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너 자신의 매력에 의한 것이지만. 그러니 아무 거리낌 없이 너에 대해 알려주었으면 좋겠어."



     그의 말에, 에디스는 볼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서 오크리지 백작가에 입양되게 되었는지부터 말씀드릴게요."



     에디스는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후 그녀를 데리러 온 할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아버지가 백작가 출신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오크리지 백작가에 입양되어 삼촌에게 입양되었다는 이야기를 간결하게 들려주었다. 라이오넬은 고개를 끄덕이며 에디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에디스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부모님과 함께 시골 마을에서 살 때만 해도 아버지가 귀족 가문 출신이고, 가문에서 도망치듯 백작 가문을 떠났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버지는 완전히 평민들의 삶에 녹아들어 있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평범한 가족이었어요."

    "네가 온화한 가정에서 소중하게 자랐을 거라는 것은 너와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느껴져. 부모님을 잃으셔서 힘들었겠지....... 사랑의 도피로 가출을 하면서까지 함께 하기를 선택하다니, 아버지는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셨나 보네."



     에디스는 라이오넬의 말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가 여행 중 고열로 쓰러졌을 때 어머니가 도와줬던 것이 두 사람의 만남의 계기가 되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어머니가 만든 약과 헌신적인 간호 덕에 완쾌된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요."



     라이오넬도 에디스의 이야기에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이야기네....... 오크리지 백작 가문 출신인 네 아버지가 약에 대해 잘 아는 줄로만 알았는데, 네 어머니도 약에 대해 잘 알고 계셨구나."

    "네. 아버지는 약에 대한 지식은 해박하셨지만, 오히려 어머니가 약 만들기에 더 능숙하신 것 같았어요. 약초를 달여 약으로 만들고, 어떻게 조제해야 하는지는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 더 많았어요."

    "그 지식을 바탕으로 너는 오크리지 백작가의 약장사도 도와줬어? 분명, 너는 그 지식으로 오크리지 백작가의 약장사도 도운 것 같던데?"



     에디스는 자신이 시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라이오넬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느 정도는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돕기 시작했던 오크리지 백작가의 약장사는 어디까지나 정해진 종류의, 원래부터 도매로 판매하던 약품에 관한 것이었죠. 제가 부모님의 약국을 도울 때는 환자 개개인의 증상에 맞게 약을 조제했기 때문에 조금은 내용이 달라요. ......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약국은 작은 약국이었지만, 약이 잘 듣는다며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어요."



     에디스는 아담한 시골 마을에 있을 때 회복된 환자들이 감사의 뜻으로 야채와 과일, 꿀, 치즈 등의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부모님께 가져다주던 광경을 떠올렸다. 에디스의 부모님은 건강해진 그들을 항상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라이오넬은 에디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왠지 상상이 가. 분명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았겠지."

    "약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약초 자체는 그리 드물지는 않은 것들이 더 많았지만, 어머니는 종종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환자의 증상을 잘 듣고 그들의 회복을 기원하며 약을 조제하는 것이 비결이라고요."



     에디스는 늘 웃음을 잃지 않던 다정다감했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에디스도 약을 조제할 때면 항상 약을 먹는 사람이 잘 낫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네가 만들어준 약이 잘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내 몸의 회복을 기원해 줬기 때문이 아닐까?"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라이오넬 님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담겨 있으니까요."



     라이오넬과 에디스는 환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한동안 소소한 대화를 이어갔다. 라이오넬은 고위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거드름 피우는 모습이 없어서, 에디스는 정말 대화하기 쉬웠다.

     라이오넬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많이 높아진 것을 발견한 에디스는, 깜짝 놀라며 라이오넬에게 물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했네요. ...... 이제 곧 점심이네요. 라이오넬 님,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그리고 배고프지 않으세요?"



     에디스와 완전히 친해진 라이오넬은, 환한 눈빛으로 그녀를 기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서 나도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벌써 정오가 되었다니. 피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평소에는 식욕이 별로 없는데, 오늘은 조금 배고픈 것 같아. 이렇게 몸 상태가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는데."



     라이오넬의 활기찬 표정을 보며, 에디스 역시 기쁨에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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