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 전하는 바쁘시다고 엘베르토의 측근이 말하지만, 실비아도 잘 알고 있다.
(왕비 전하의 체면을 세워주는 거네요.)
매일 방에 엘베르트의 화사한 꽃이 배달되는 것도, 의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도 싱그러운 꽃은 왕세자비 교육에 지친 실비아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건 그렇고, 저주란 대체 뭘까?)
식사 때마다 엘베르트와 마주치지만, 실비아가 보기에는 정말 평범해 보인다. 저주에 걸린 것 같지도, 병에 걸린 것 같지도 않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려나)
실비아는 저주에 대해 잘 모른다. 점괘에도.
그렇다면 아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선은 역시 실비아를 부른 점쟁이인 칼페리에게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왕비와 함께 있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왕성 복도를 걸으며, 칼페리와의 약속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고 있자, 저쪽에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다가와서 말을 건네었다.
"어머 실비아 씨."
"모니카 님 ......"
ㅡㅡ모니카 디 잠펠라.
엘베르트 왕세자의 약혼녀 후보로 거론되던 후작가의 영애.
모니카는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흔들며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실비아 씨, 만나서 반가워요. 당신에게 물어볼 게 있어요."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가르쳐주셔도 될까요? 대체 어떤 비열한 방법으로 왕세자비 후보가 되었는지."
말투는 날카롭지만, 음색은 우아하다.
그 붉은 눈동자 속에는 격렬한 분노, 즉 질투가 담겨 있다.
자신이야말로 그 자리에 어울리는데, 왜 실비아가 그 자리에 있느냐는 분노다.
실비아의 가슴이 아려온다.
"그건 ...... 나도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말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모르는 것도,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왕세자의 저주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점괘에서 '진실한 사랑의 상대'로 뽑혔다는 말은 도우지 말할 수 없다.
실비아가 침묵하자, 모니카는 짜증스럽지만 조금은 안도하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주제는 잘 알고 계시는 것 같네요."
"............"
"충고해 줄게요. 과분한 욕심은 금물이라는 것을. 왕세자 전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저니까요."
"ㅡㅡ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저는 방해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아마 엘베르트는 모니카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이미 오래전에 저주가 풀렸을 것이고, 실비아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니카의 가냘픈 어깨가 떨리고 있다.
"이... 도둑고양이가!"
"잠펠라 후작영애.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실비아의 정면ㅡㅡ모니카의 뒤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에, 모니카는 힘차게 손을 들어 올린 자세로 얼어붙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엘베르트 왕세자였다.
보라색 눈동자가 호숫물처럼 조용히 모니카와 실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카는 얼른 손을 내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었다.
"아무 일도 아니랍니다, 전하."
"...... 그런가."
그렇게 말하고는 측근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모니카도 그 엘베르트의 뒤를 따라간다.
멀리서 반짝이는 두 사람을, 실비아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후훗"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실비아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검은 가운을 입은 보라색 머리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칼페리 님 ......"
"안녕하세요, 실비아 님."
달콤하고 깊은 향기가 퍼진다.
ㅡㅡ점쟁이 칼페리.
그녀가 바로 엘베르트의 저주를 풀기 위해 실비아를 부른 점쟁이였다.
짙은 회색 눈동자가 실비아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실비아 님,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
점쟁이의 방은 왕비의 방 바로 옆에 있는데, 이것에서도 그가 왕비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두운 방에는 향을 피우고 있어서 깊고 따스한 향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