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83화 만난 지 수 개월 혹은 수년. 하지만 이름을 모른다. 현실이든 인터넷이든 일상다반사
    2023년 11월 18일 19시 19분 5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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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 지쳤다 .......

     

     그 후 남은 시간을 1초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해서, 어떻게든 스태프들이 세어준 사람들 모두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말할 수는 있었지만 ...... 행사 중에는 아드레날린 덕에 배고픔이나 피로감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는데, 성취감 때문에 긴장의 끈이 잠시 풀리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피로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한 달의 준비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행사를 견딜 수 있도록 체력을 단련하고, 간단한 리허설로 컨디션을 확인했는데도 이게 웬일인가. 역시 실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불평할 틈은 없었다.

     매니저가 열심히 마련해 준 약간의 시간에 일부러 사다 준 샌드위치를 꿀꺽 삼키는 것처럼 먹고, 스포츠음료로 수분을 보충한다. 마지막 디저트로 사탕을 핥으며 다음 스튜디오로 향한다.

     다음에는 3기생과의 합방 무대가 있기 때문에, 개인용 방음실에서 다수가 들어갈 수 있는 방송 스튜디오로 이동해야 한다.

     나로서는 개인실에서 통화하면서 하면 좋다고 생각하지만, 장비나 진행관계상 한 곳에 모여서 하는 게 편하다고 한다. 대면 합방은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게 되니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는데.......



     마음과 상관없이 물리적으로 무거운 방음문을 열자, 스튜디오에는 이미 3기생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제가 지각상습범입니다.

     빤히 쳐다보는 호기심 어린 눈빛은, 뒤늦게 들어온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느낀 것뿐이고 이것은 죄의식이 낳은 피해망상일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그러길 바라고 싶다.



    "아, 선배~ 또 늦으셨어요~?"

    "우윽."



     자책하고 있는 차에 치명타가 날아오자 숨이 막힌다.

     회의 때 자주 사용하는 기다란 책상의 맨 앞에 있던 작은 체구의 여성ㅡㅡ뭐, 내가 더 작긴 하지만ㅡㅡ구텐 이츠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넌 악마냐.

     사정이 있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인 만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리고 선배의 위엄으로 반박하는 것은 좀 꼰대 같다는 느낌이다.



    "이츠. 선배들은 바쁘시니 너무 장난치는 건 좋지 않아요."



     도움을 준 것은 긴 머리의 여성인 크리스티나 루티야였다.

     안경과 검은색의 긴 머리가 단정해서, 어딘지 모르게 지적이고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가슴은 왠지 불안하다.



    "아, 선배, 괜찮으시면 과자를 ......"



     살짝 다가와서 초콜릿을 건네준 것은 시시바 베아트릭스였다. 천연의 금발머리라서 진짜 혼혈인 것 같다. 이쪽은 믿음직하지 않은 분위기지만 가슴은 꽤 크다.

     만날 때마다 다가오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닌 것 같다.



     일단 여기 있는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몇 번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첫 만남 특유의 긴장감은 없다.

     버튜버가 되고 나서 자주 있는, 쿠로네코 씨와 쿠로네 코요이의 외모에 대한 이것저것에 대해서도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다.

     ...... 다들 가상 아바타와 현실이 다른데, 나만 유독 실물과의 차이에 과장된 리액션을 취하는 건 아직도 납득이 안 가지만.



    "선배, 제 옆자리가 비어 있어요."

    "아,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의자를 내어준 왠지 어른스러워 보이는 여성ㅡㅡ들리는 말에 의하면 나이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ㅡㅡ은 시엘 애드미럴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현실과 방송에서 가장 괴리감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방송에서는 활기찬 소녀를 표방하는 하이텐션 캐릭터인데, 현실에서는 조용하고 텐션이 낮다.

     아직은 자기 성격 그대로 방송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런 차이가 있는 사람을 상대하면 좀 거리감을 파악하기 어려워 ....... 이미 익숙해진 사쿠야 선배라든지.



    "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시엘 애드미럴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성인 여성, 리젤로테 폰 비브리오테크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현실에서는 항상 존댓말을 쓰는데, 역시 이 사람도 격차가 있는 부류다. 그리고 가상 아바타는 로리인데 현실은 어른이라는 것도 아직 익숙하지 않다.

     음, 왠지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으면 왠지 찝찝해진다.

     왠지 왼쪽 대각선 앞에 앉은 베아코가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가능하면 그쪽이 좋았는데.



     하지만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가 방해되니까 .......

     내가 시선을 던지자, 소노사키 미치유키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버릇인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려다가, 깔끔하게 면도한 턱에는 잡을 수염이 없어서 그런지 손을 내려놓았다.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는 항상 깨끗하게 하고 있어서 모르겠지만, 어쩌면 평소에는 수염을 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이 공간에서 유일한 남자인 데다 가운데 자리, 그리고 여섯 명의 여자애들에 둘러싸여서 아저씨도 불편할 것 같다.

     그러니 거기서 물러나라고 하지는 않겠다.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참아주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인터넷과 현실을 구분하기 위해 실명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은 사람이 많기도 하고, 방송 당일이기도 해서 혹시라도 이름이 뒤섞여 방송 중 사고라도 나면 곤란하니 계속 인터넷에서 쓰는 이름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 요즘은 스태프들을 포함해 사람들의 이름을 외울 일이 많아서 3기생들의 본명이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

     스즈키 하나코라든가 다나카 타로라든가 하는 이름 말이야 기억하고 있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베아코에게서 받은 초콜릿을 혀 위에서 굴려본다.

     이런 때일수록 선배로서 후배를 잘 이끌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왠지 따분해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혹시 내가 선언해야 합방무대가 시작된다거나 그런 식?

     어, 근데 딱히 스태프들은 아무 말도 안 해줬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애초에 시간 때우기용 대화를 하려고 해도 주제도 없고 .......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어린데, 대화는 나이 많은 사람이 주도하는 거잖아 ....... 저기, 아저씨? 아, 눈 돌리지 마, 멍청아!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다 보니, 긴 책상을 두 개 붙인 경계에 혼자 앉아 있던 구텐 이츠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양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기회로, 양손을 활짝 벌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선배도 왔으니 빨리 할까요!"



     라고 말했다.

     너 신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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