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0화 빚이 없는 관계(1)
    2023년 11월 13일 00시 10분 2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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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차 안이다.

     개장까지는 1시간 조금 남짓.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미묘한 시간, 그렇다고 그냥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을 아카츠키 미나토와 카미시로 시죠는 별 수 없이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원래 하던 일을 중단하고서 온 사람이다.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지금도 부하 직원에게 업무 연락을 하기 위해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그래도 여유가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미나토 씨. 빚 하나 진 거예요?"

    "...... 쉬게 해 준 건 고마운데, 그건 좀 과한 거 아냐?"

    "이런 곳에서 빚을 만들지 않으면, 미나토 씨는 좀처럼 빚지려고 안 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나에게 몇 개나 빚졌는지나 기억하고 있어?"

    "음~. 많이 있네요."



     언뜻 보면 날카로운 말의 응수지만, 잘 들어보면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이이기에 가능한 가벼운 말투다.

     아카츠키 미나토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것이었지만, 최근 친하게 지내는 쿠로네 코요미와 놀 때처럼 어딘지 모르게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건 그렇고 쿠로네 씨가 메이드 카페라니, 괜찮을까요?"

    "열심히 했으니 괜찮겠지."

    "오우, 신뢰가 두텁네요."

    "저 아이는 데뷔한 이래로 계속 우리의 무모한 요구에 응해 왔으니까. 결국은 해내는 아이야."

    "마망 ......"



     그 말에는 무언의 손날로 대답했다.



     ◆



    "슬슬, 시간이네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카미시로 시죠가 말했다.



    "생각해 보니, 너무 빨리 가면 민폐가 아닐까?"

    "글세요. 우리 때의 문화제는 외부에서 사람을 불러들일 수 없었으니까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웠으니, 지금부터 걸어가면 딱 개장 시간일 것이다.

     주변에도 멋지게 차려입은 학부모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정장을 입은 사람은 이 두 사람뿐이라 조금은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올 걸 그랬어."

    "회사에서 직행해 온 탓에 그런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뭐, 예전부터 둘이서 걷고 있으면 사람들이 쳐다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 시선을 받는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 폐를 끼치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싶다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도 있었다.



     이윽고 화려하게 장식된 교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개장이 되었는지, 인파가 몰려있지 않아서 순조롭게 입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교내에서는 이미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성황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다.



    "흥이 달아올랐네요. 이런 분위기는 이쪽까지 즐거워져서 좋아요."

    "너무 두리번거리지 마."

    "라고 말하면서도 내심은 들떠 있는 미나토 씨였습니다."



     카미시로 시죠의 팔을 말없이 쳐서 항의한다.

     어떤 말로 되받아쳐도 이 여자는 잘 피하기 때문에, 이렇게 물리적으로 호소하는 편이 빠르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다.



     교문을 지나 학교 건물로 가는 조금 긴 길가에는 학생들이 세운 노점이 즐비하게 있다.

     야키소바, 닭꼬치, 솜사탕과 같은 단골 메뉴부터, 야외에서 잘 모르는 연구 발표를 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먹거리들이 있다.

     그것들을 보면서, 두 사람은 미리 들었던 교실을 향해 걷는다.

     도중에 문화제가 되어 조금 흥분한 학생이 호객행위를 하는 정도의 이벤트가 있었지만, 아카츠키 미나토가 냉정하게 뿌리치고 도망친 덕에 별다른 말 없이 교실에 도착했다.



    "저기, 긴장되어서 어쩌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꼭 문화제에 가고 싶다고 한 건 미나토 씨였잖아요. 각오를 단단히 하고서 사랑하는 메이드를 만나러 가봐요!"

    "뭐!?"

    "자자, 뒷사람도 기다리니 들어가요 들어가. 실례합니다~"



     한 걸음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아카츠키 미나토의 등을 떠밀며, 교실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메이드에게 말을 건넨다.

     정장 차림의 성인 여성이 왔다는 사실에 메이드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생각을 바꾸고 안내를 시작했다.

     학생치고는 참 잘하는 것 같다며 카미시로 시죠는 감탄했지만, 그 옆에서 아카츠키 미나토는 절찬리에 얼어붙어 있다. 머릿속이 완전히 하얗게 질려서, 조금 있으면 쿠로네 코요이의 메이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살짝 패닉 상태에 빠졌다.

     방금 전까지 냉정하게 대처하던 여성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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