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장 1 프롤로그(1)
    2023년 10월 01일 19시 38분 1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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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를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방에 더 이상 올 일도 없겠지."





     첫날밤, 같이 쓰는 침실에서 나를 향해 그렇게 선언한 자는 오늘부터 나의 남편이 된 리카르도 리큐어 백작이었다.



     찰랑거리는 백은색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그는, 달빛을 받자 검은 가운과 어우러져 마치 악마나 인큐버스 같은 색시함을 내뿜는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첫날밤에 남편이 아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순위가 있다면 당당히 1위에 오를 만한 잔인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상처받은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안심하세요, 한밤중에 덮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 그래."



     내 말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고마워. 그럼 좋은 꿈 꿔라."

    "네, 좋은 밤 되세요."



     그리고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는 안쪽 문을 통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확인한 나는, 침대 위에 정좌하고 있던 몸을 풀고 만세를 부르며 침대에 몸을 눕혔다.



    "좋아, 나도 내 방으로 돌아가야지~"



     이제 다시는 사용할 일이 없는 침대다.

     침대 스프링이 망가지건 말건, 나는 있는 힘껏 몸을 튕기며 일어섰다.





    *****





     나는 마리아 리큐어 백작부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티니 남작가의 장녀였다.

     나와 리카르도 리큐어 백작은 오늘 막 정략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 정략결혼에는 세 사람의 의도가 얽혀 있다.

     리큐어 백작 가문과 마티니 남작 가문, 그리고 무려 왕실이다.



     사실 리큐어 백작가는 국내 최고의 치유 마법사를 배출한 가문이다.



     오래전 성녀를 맞아들였던 가문인 만큼, 그 힘은 전장에서 유용하게 쓰여 왔다.

     그와 동시에 다른 나라에 끌려가거나 암살당하는 등의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리큐어 백작가의 일족은 성녀의 혈통 때문인지 모두 성실하여 혼외자식을 남기는 일은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실 현재 귀중한 리큐어 백작가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단 두 명뿐이라는 것이다.



     현 리큐어 백작의 부모님이 영지의 시찰 중 도적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고, 그 사촌들도 전장에서 목숨을 잃어버려서 이제 리큐어 백작가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은 현 백작과 그의 딸 리디아 두 명뿐인 것이다.



     에탄올 왕가는 당황했다.



     리큐어 백작가는 에탄올 왕국의 전력의 상징, 성녀가 나라에 안착했다는 증거, 나라의 자랑이었다.

     그런 리큐어 백작가가 지금 그야말로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남은 것은 32살의 리큐어 백작 본인과 여섯 살 난 딸 리디아뿐이다. 



     딸은 아직 어린 아이고, 여섯 살이라고 하면 전염병에 걸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무엇보다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여성은 출산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낳아서 늘리라고 권유할 대상은, 어떻게 생각해도 리큐어 백작(남자)이 적임자였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리큐어 백작은 아내의 불륜으로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는 재혼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였다.



     제발 재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았으면 하는 왕실.



     정말 결혼하고 싶지 않은 리큐어 백작.



     양측의 치열한 공방은 일진일퇴를 거듭했고, 리큐어 백작은 강제로 야회에 불려 가 수많은 미인계를 당했다. 창녀, 미망인, 미혼녀, 평민에서 귀족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유혹을 피하다가 피로가 극에 달한 리큐어 백작은, 우리 가문의 인품 좋은 가장에게 이끌려 마티니 남작가에 찾아왔다.



     우리 가문의 인품 좋은 가부장이 배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 딸과 위장 결혼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위장결혼이라고 합니다만, 하하하."



     우리 집에 오자마자 그렇게나 진저리를 치던 리큐어 백작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나는 화를 냈지만, 의외로 리큐어 백작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 그렇게 해준다면 고맙지만......"

    "네? 싫지 않으세요? 저야 괜찮지만......"

    "뭐!?"



     그리 하여 나와 리큐어 백작가는, 왕가의 미인계를 피하기 위해 일단 1년 동안만 계약결혼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위장결혼을 하고서 헤어지면 리큐어 백작의 재혼에 들떠있던 왕가에서 뭐라고 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우리 집에 처음 온 리큐어 백작은 매우 피곤한 얼굴로 "뭐든 좋으니 1년만이라도 평온한 나날을 보내라"라고 중얼거려서, 누가 보아도 노이로제 상태였다.

     그런 백작에게 온화하고 느긋한 마티니 남작가의 식솔들은 크게 동정했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순식간에 계약결혼이 성사된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 결정된 나는 생각했다.



    (이런 평범한 나와 형식적이나마 결혼하게 되다니, 미남인 리큐어 백작은 상상도 못 했을 거야.......)



     연한 갈색 머리에 벌꿀빛 눈동자를 가진, 아주 평범한 얼굴의 남작가의 딸. 그렇다, 나는 딱히 미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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