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이 오갈 때마다 <비취>의 비늘가루가 흩날리며 가벼워진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겐가 ......"
노회하기 짝이 없다.
"유미에게는 통하지 않더라도, 너처럼 계집 한 명에 대의를 잃는 미숙한 자에게는 통하지."
복음이 건재한 가니메데는 검을 아주 쉽게 쳐내면서,
"큭......!? 헉......헉..........."
"...... 혈연도 없으면서, 뭐가 가족이냐?"
토해내면서, 듀어의 복부에 <비취>를 찔러 넣었다.
"소꿉놀이라면 몰래 해나가면 되었다. 부모도 없는 고아들이 모여 뭐가 가족이냐. 뭐가 복수냐 ......!"
"............"
<비취>에서 나오는 신록의 빛에 중독되어, 듀어의 몸이 연약해진다.
"이로스네한테는 찬란한 미래가 있었다. 베네딕트 님의 기치 아래, 종교 탄압의 마수에 맞서 정면으로 대전을 펼쳐야 할 영걸들이었다. 그것을 네놈은 ......"
"............"
"아아 ...... 네놈을 데려온 게 실패였군"
"앗 ............"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저승의 선물로 알려주마. ...... 엔제 교단에서는 특정한 조건의 아이들을, 엄선된 정예들이 비밀리에 모으고 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이어진다.
"네놈의 부모를 죽이고 갓난아기인 너를 데려온 자는 ...... 나다."
두 번이나 가족을 빼앗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밉나? 그래, 혈육을 살해당한 증오가 바로 그거다! 비교도 되지 않지! 네놈들은 그저 긁어모은 잡동사니에 불과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입에서 거친 분노의 고함이 날아온다.
"그런데도 나의 단 하나뿐인 손자를 ---- 커헉!?"
"가니메데."
다리에서 뽑은 도끼로 가니메데의 무릎을 쪼개고, 검을 든 왼팔과 옷깃을 움켜쥔다.
"크으으...... 으으으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복음을 펄럭여 이탈을 시도하지만, 한쪽 다리만으로는 좀처럼 움직일 수 없어 극심한 고통을 견딜 수밖에 없다.
"나는 너를 죽인다. 그것도 변함없고."
"아직도 그런 말을!"
"그리고 카난은 가족이었다. 지금 네게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확신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안도했다.
"같은 분노, 같은 슬픔이었다. 나와 카난은, 분명 가족이었다."
"무, 무슨......? 애초에 이제부터 어떻게 발버둥 치려고? 방금 도끼로 공격했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었을 텐데 ...... 그 선생한테 부탁이라도 할 건가? 설마 흑기사에게 부탁할 건가?"
그럴 필요는 없다.
"생각해 보니, 나보다 더 적임자가 있었다."
폭풍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조차 불태우는 그 불은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 설마!"
눈치챈 가니메데는 주변을 살피다가, 잔해를 헤치고 올라오는 그 모습을 발견했다.
공교롭게도 동시에 가니메데의 모습도 포착되었다.
"들리지? 카난의 영웅이 왔다 ......"
들끓어 오르는 분노에 사로잡힌 구리가, 원수를 보고 포효했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이 끝없이 터져 나와서, 전에 본 적이 없는 위험한 상태가 되었다.
[쿠오오오오오오!!]
"놔, 놔라, 놔라 이노오오오오옴!!"
머리를 찔러보아도, 때려보아도, 힘이 줄지 않는 팔다리와 악력으로 제압당한다.
지금의 구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정도로 무서운 모습을 보면, 가니메데도 이해한다.
"얼마나 카난이 소중했는지. 우리들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깨달아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단죄다 ......."
사색이 되어 발버둥 치는 가니메데를, 찾아온 구리에게로 밀쳐낸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구에 뒤덮인 가니메데는, 불에 탄 발톱에 피부를 찢겼고,
"끄아악!? 그만, 그만해 ......!?"
팔과 다리를 물어뜯기고,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살점을 물어뜯기고 내장을 파 먹히며,
"커헉, 크으...... 으으......!"
한동안 분노를 표출한 후,
"아아......아아............ㅡㅡㅡㅡㅡ"
눈물을 흘리며 몽롱해진 가니메데의 머리가, 통째로 씹혀서 산산조각이 났다.
"............"
"...... 구리 ......"
충분히 죽여버린 후, 구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말없이 서 있다가 이윽고 비통한 포효를 내뱉기 시작했다.
"...... 그래. 나도 마찬가지다......"
흐릿한 눈으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옛 시절을 추억한다.
복수를 했음에도, 비는 그치지 않는다.
복수를 이루었음에도, 마음은 맑아지지 않는다.
분노는 사라지고, 슬픔만이 커져 간다.
이곳에는, 네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