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 14 화 태자의 개인실에서
    2020년 12월 23일 05시 07분 4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0421du/15/





     매년 엄숙한 분위기에서 열렸던 왕립학교의 입학식. 하지만 작년에 열린 입학식은, 그렇게 엄숙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언뜻 보면 정숙을 유지하는 신입생과 그들의 보호자들이었지만, 어떤 한 소년이 단상에 오르는 순간, 새된 목소리가 회장 안을 가득 메웠던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맥스웰릭렌토스라고 합니다. 외람되지만 신입생 대표후보를 맡게 되었습니다."


     현 재상이며 릭렌토스 후작가 당주, 지오락릭렌토스의 장남, 맥스웰이었다.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는 그의 매혹적인 시선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자들이 매료되었다.


     그리고, 올해의 입학식 또한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작년 이상으로 입학식에 출석한 전원이, 그 소년이 단상에 오르는 순간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 이름은 크리스토퍼테오라스. 테오라스 왕국 태자인 제가, 외람되게도 신입생 대표로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명랑하고 상쾌한 목소리가 회장 안에 울려퍼졌다. 모든 사람이 왕국 역사상 최대의 신동에게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입학식이 끝나고, 밤의 무도회 준비를 위해 왕성으로 돌아온 태자가ㅡㅡ.


     "세계를 구할 성녀가, 히로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니! 마왕이 부활해버리고 말 거라고!"


     등의 말을 자기 방에서 외쳐대고 있다는 사실을.....


     "또냐....."


     멜로디와의 환담을 끊고 왕성에 있는 크리스토퍼의 개인실을 방문한 맥스웰은, 아직도 폭주상태인 '테오라스 왕국의 차세대 명군' 을 바라보면서 쓸쓸한 한숨을 쉬었다.


     어이없는 표정의 맥스웰은, 부르짖고 있는 그를 내버려두고 태자를 모시는 시녀들을 돌아보았다.


     "미안하지만, 평소처럼 빅티리움 후작영애를 불러줄 수 있을까? 아마 오늘밤 무도회를 위해서 마지막 의상 점검을 하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제 익숙해진 시녀들은 맥스웰의 지시를 따라서, 태자의 약혼자 후보필두인 빅티리움 후작영애를 부르러 갔다.

     어떤 사정에 의해, 정식 약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왕성에는 그녀를 위해 주어진 개인실이 존재한다.


     그 이유란 것은 태자를 달래는 역할이었다.


     "어머, 전하. 또 그렇게 외치시다니.......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크리스토퍼의 개인실에 찾아온 건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불타는듯한 붉은 머리칼은 허리보다도 긴 스트레이트 헤어.

     평범한 보석으로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째진 눈초리의 비취색 눈동자.

     균형잡힌 이목구비와, 도톰한 주황색의 입술은 15세임에도 이미 어른의 섹시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야말로 남자의 이상을 구현한 듯한 절세의 미녀, 안네마리빅티리움 후작영애가 맥스웰의 부탁을 받고 태자의 방으로 온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소꿉친구였던 그녀만이, 어째선지 발작을 일으키는 태자를 달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말, 저 피팅을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안됐지만 네가 아니면 지금의 그를 조용하게 할 수 없어서 말야. 미안하지만 부탁한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부탁하는 맥스웰을 보고, 안네마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쪽을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외쳐대고 있는 태자를 제쳐두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방에 크리스토퍼와 안네마리 두 사람만 남게 되자, 문에 손을 갖다대고 호흡을 정돈하며 주문을 외웠다.


     "정숙과 침묵을 지켜라 [사일런스] "


     안네마리는 마법의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이걸로 이제 무슨 짓을 해도 소리가 샐 염려는 없다. 안네마리가 무엇을 하든, 뭘 말하든, 그걸 알 수 있는 건 크리스토퍼 단 한 명.

     그렇다, 크리스토퍼가 비밀을 누설하지만 않는다면, 안네마리가 무슨 짓을 해도 문제없는 것이다.


     그녀는 방의 구석까지 간 후에, 걸려있는 갑옷기사의 장식품에서 검을 빼어들고는 태가를 향해서 달려나갔다.



     "체스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대로 히로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들 모두 죽는ㅡㅡ우갸아아아아아아!"


     칠칠맞은 절규가 방 전체에 울려퍼졌다. 하지만 안심하도록. 태자의 부끄러운 외침소리가 다른 자에게 들릴 걱정은 없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머리를 부여잡으며 지면을 구르는 크리스토퍼의 모습을 보고, 안네리제는 마음속 깊숙이 낙담한 표정을 띄웠다.


     "........정말 진짜 한심해. 이런 놈이 공략대상 중에 필두라니, 진짜 말도 안돼....."


     "아, 안나!? 너 언제부터 여기에! 그보다, 조금 건 네가 한 거냐!? 죽일 셈이냐고!"


     "그렇네, 그것도 좋을지도. 한번 죽어주지 않을래? 그렇게 한다면 혹시 더 왕자님에 어울리는 멋진 누군가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는걸."


     "너, 너무하잖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제야 아픔이 사그라들어 자아를 되찾은 크리스토퍼는, 검을 들고서 모멸에 찬 시선을 보내는 안네마리를 눈치챘다. 그것에 불만을 말했지만, 되돌아 온 건 한층 더 심한, 단어의 흉기였다.


     

     " [공략대상] 의 자각이 부족하단 말이야, 크리스토퍼. 아니, 구리타 히데키!"


     "그쪽이야말로, [악역영애] 니까 왕자한테는 상냥히 대해주지 않을래!? 아사쿠라 안나!"


     이 두 사람, 사실 일본인 전생자인 것이다.


     현생은 물론 전생에서도 소꿉친구였던 두 사람은 고등학교 3학년의 봄에 등교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두 사람이 사이좋게 왕자와 후작영애로 전생해버린 것이다.


     여섯 살 무렵에 첫 대면한 순간, 두 사람은 전생의 기억을 되찾아서 지금의 관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뭐? 너 설마, 히로인과 만나는 씬을 놓쳐버렸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아니, 난 나쁘지 않다고! 난 지정된 장소, 시간에서 히로인을 기다리고 있었어. 하지만 히로인은 나타나지 않았단 말야!"


     크리스토퍼가 제정신을 되찾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바로 소파에 앉아서 상담을 시작하였지만, 크리스토퍼의 발언에 안네마리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 세계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여성향 게임 [은의 성녀와 다섯 가지 맹세] 의 세계라면, 너와 히로인의 만남으로 시나리오가 시작될 거였는데. 그 만남이 없었다고오?"


     "노, 노려보지 마! 나타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잖아!"


     여성향 게임 [은의 성녀와 다섯 가지 맹세] 란, 안네마리가 전생에서 몰두했었던 여성향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크리스토퍼 또한 이 게임에 대해선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다.

     전생의 그에게 한 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도 이 게임에 몰입하고 있어서 덕분에 여러가지로 게임 지식을 들어놓았던 것이다.

     그보다, 히데키의 기억으로는 여동생과 안나는 같이 게임을 하고 있을 터였다.


     "히로인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래서 어쩌지 하고 고민하고 있었잖아! 이대로 히로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중에 부활할 마왕에 대한 비장의 수가 없다는 말이니까!"


     

     왕립학교에서 마법의 적성검사를 받은 히로인은, 막대한 마력을 가졌음에도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법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마왕이 부활하여 공략대상자가 생명의 위기에 내몰렸을 대, 성녀의 사랑의 맹세가 마왕을 정벌할 구제의 마법을 생성하여 세계가 구원받는 것이다.

     히로인의 마음 전부를 메우는 강한 결의와 맹세의 대사가, 하늘에 닿아서 성스러운 축복을 부여한다.




     [어머니, 저, 메이드가 될 거예요! 아버지도 신경쓰이지만, 전, 메이드가 되고 싶어요! 계속, 전생부터 계속 되고 싶었는걸요! 어머니도 했었던 메이드, 저도 될 거예요!]


     [......자신을 위한,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맹세......모두 갖추어졌다. 성스러운 소녀에게 축복을]


     [ㅡㅡ뭐!?]




     라는 것이, 누구를 공략대상으로 선택해도 히로인이 선언하게 되는 맹세의 대사였지만......


     "......이걸 봐."


     "뭐야 이건?"


     안네마리는 몇 장의 서류를 크리스토퍼의 앞에 내밀었다.


     "......이건, 올해의 왕립학교의 신입생명부?"


     "막 나온 최신판이야."


     "ㅡㅡ어이, 이건.......히로인의 이름이 실려있지 않잖아!"


     "맞아. 일단 히로인에 관한 정보는 조사할 만큼 조사해 봤어. 상업길드의 정보망도 빌려서 말야."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태자의 업적에는 안네마리도 깊게 관여하고 있다.


     그들의 공적 중 하나는 상업길드의 개혁에 있다.

     저소득층을 구제한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들의 진짜 목적은 상업길드의 폭넓은 정보력과 인맥을 만드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히로인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 수 없었어. 덧붙여 말한다면, 히로인은 아직 본무대에 오르지 않았다는 점 정도려나?"


     "무슨 말이지?"


     "히로인의 이름은 알고 있어?"


     "분명...... '세실리아레긴바스' 다. 레긴바스 백작의 숨겨진 자식이잖아?"


     "숨겨진 자식이라고 해야 할까, 모친 쪽을 찾았더니 자식을 발견해서 들인 거야. 하지만 상업길드를 통해서 최근 백작가의 매매기록을 확인했는데....여성용 상품의 매입은 전혀 없었어."


     ".......다시 말해, 레긴바스 가문은 아직도 히로인을 찾지 못했다?"


     "그 가능성이 높아......이래선 찾을 방법이 없겠어."


     안네마리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하, 하지만 히로인의 이름은 알고 있으니,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생김새도 은발과 유리색 눈동자였지? 둘 다 드문 색이니 곧장 발견되지 않을까?"


     ".....모습은 어쨌든, 이름으로는 무리야. 왜냐면, 그 이름은 백작가에 들어간 후의 것이니까."


     "그랬어?"


     "히로인의 모친은 원래 백작가의 메이드였는걸? 아무리 그래도 볼썽사나운 일이야. 딸이 기이한 눈으로 보여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새로운 이름을 붙여줬다고 해."


     "저기, 그럼 그 전의 이름은.......?"


     "아쉽게도 게임에선 등장하지 않아. 애초에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게임에서 설명해주지 않았으니까. 전생에서는 여름에 발매될 팬북에서 그 의문이 풀릴 거였는데!"


     안네마리를 "젠자아아아아앙!" 하고 외치면서 매우 분한 듯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정말! 모처럼 히로인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나타나지 않은 거야, 히로인! 그 신비적이고 큐트한 미소를 생으로 볼 수 있다고 기대했는데!"


     ".......너, 진짜 귀여운 여자애만 좋아하는 구나?"


     크리스토퍼는 약간 몸을 돌려서 안네마리한테서 몸을 떼었다.

     솔직히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다.


     "볼 수 있는 게 취향도 뭣도 아닌 연약한 태자의 바보같은 얼굴 뿐이라니 너무 하잖아!"


     "그거, 너무 심한 말 아냐!?"


     "적어도 렉트님! 나의 최애 커플, 히로인의 호위기사 렉트님을 보고 싶어! 연약할 뿐인 크리스토퍼와 다르게, 진짜 꽉 조여진 잔근육이 멋진 미남이야!"


     "나도 너 따위 보다 히로인과 약혼하고 싶다고! 난 너 같은 쭉쭉빵빵이 아니라 히로인같이 청순한 슬렌더 체형이 취향이라고!"


     이제는 시비 거는 말이 되었다.


     "뭐라고......내가 이 모델 체형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갸아아아아아아! 위험해에에에! 진짜 죽는다니까! 그만둬!"


     "시끄러! 죽엇!"


     "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안네마리는 아직도 검을 손에 들고 있었다. 크리스토퍼가 말한 섬세함이 없는 발언에 자제심을 잃은 안네마리는, 현생에서 배운 유례없는 검기를 태자에게 주저없이 선보였다.



    ◆◆◆



     조금 지나서, 태자의 방문이 열렸다.

     문 앞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던 맥스웰은 평소의 일이기는 해도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너희들, 항상 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뭐냐니요.......저는 그냥, 전하를 달래줬을 뿐이에요."


     방에서 나온 안네마리는, 볼을 상기시키고 약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반면 크리스토퍼는, 무언가가 뽑혀나간 듯이 피곤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맥스웰 일행이 밖으로 나오자, 바로 마법에 의한 방음이 사라졌다.

     하지만, 소리가 사라졌어도 문과 바닥이 흔들리는 건 보면 알 수 있다.

     문이 쿵쿵 흔들릴 정도로, 안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너희들, 왜 정식으로 약혼하지 않는 거지?"


     맥스웰이나 시녀들은, 이제 그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뭐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무슨 말씀을요, 맥스웰님. 저와 전하가 약혼이라니...."


     "......말도 안돼, 맥스웰."


     크리스토퍼는 방에 남았고, 안네마리는 옷을 입어보기 위해 자기 방으로 되돌아갔다.


     "계속 둘이서 같이 있으면서, 어째서 약혼을 안 하는 걸까? 폐하와 후작께서도 뭘 하고 계신 거지?"


     설마 두 사람이 정식 약혼을 비밀리에 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맥스웰이었다.






     "결혼 따위 해봐....첫날 밤에 바로 미망인이 되어버릴 테니."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