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7부 235화 돼지에게 주는 선물 From 카가치히코
    2023년 03월 29일 23시 47분 09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728x90

     

     매년 12월 25일은 여신강림제다. 여신이 이 세상에 내려온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 전야제인 12월 24일부터 25일까지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성대하게 축하하는 것이 관례이며, 속칭 '신성한 6시간'이라 불리는 24일 21시부터 25일 3시까지의 6시간 동안 아이 만들기를 하면, 여신의 축복을 받아 튼튼하고 건강한 남자아이를 임신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9월생들이 꽤 많다. 다들 여신의 가호를 받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세상에도 역시 강림제에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과 24일 밤 착한 아이의 침대로 산타클로스가 찾아온다는 전승이 존재하여, 다시 한번 산타의 위대함을 느낀다고 호크가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12월의 초입.

     카가치히코는 호크에게 줄 강림제 선물을 사기 위해, 연일 눈발이 흩날리는데도 불구하고 꽤나 붐비는 겨울 거리를 걷고 있다.

     

         ◆◇◆◇◆

     극동의 섬나라, 쟈파존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육십을 넘길 때까지 이국땅을 밟아보지 않고 살아온 나는, 우연한 인연으로 호크 공의 밑에서 신세 지게 된 후, 아직 모르는 것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예를 들어, 강림제이라는 축제를 축하하는 관습 따위는 고향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림제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호크 공의 집에서는 매년 강림제를 축하하는 연회가 성대하게 열린다. 이는 비단 그 일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한 해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고 친목을 다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평소에 신세지고 있는 호크 공과 그 가족, 동료들, 저택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소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눈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들고 거리로 나섰지만.

     선물이라면 차나 김, 혹은 청주 등이 무난하지 않을까? 아니,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소녀들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과자가 좋을 것이다.

     호크 공이 선물한 목도리 같은 방한용품으로 가린 입가에 문득 미소가 떠오른다. 예전에 섬기던 카구라자카 가문의 저녁 무렵의 활기가 문득 떠올랐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제2의 고향. 영원히 얼굴을 마주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옛 주군들.

     이렇게 얼굴을 가릴 필요도 없지 않겠나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내 몸이 건재한 것도 모두 그날, 그 온천에서 호크 공을 만난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음을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그는 왜 자신과 같은 정체불명의 수상한 노인을 그렇게까지 믿어준 것일까. 누군가가 거짓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허황된 거짓을 마법을 부리지 않고도 쉽게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일까.

    [카가치히코 선생님!]

     주군들의 명예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는 몰살의 업을 짊어지고, 살인죄를 짓고, 이 손을 씻을 수 없는 피로 물들이고 도망쳤다. 도망치고 도망치고, 어디로 갈 곳도 없이 계속 도망치면서 나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 모든 것이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살인을 자행한 죄인, 기누사다 호오즈키마루는 죽었다. 여기엔 그저 늙은 산원숭이 카가치히코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사후 지옥에서 어떤 심판을 받든, 그곳에 이르기 전 잠시 유예를 받았다. 그렇다면 내 남은 생을 은인인 그를 위해 바치고 싶다고, 지금은 그렇게 바랄뿐.

    "어머! 누구인가 했더니 카가치히코 선생님!"

    "음, 사사메 공이므니까?"

     저택의 모든 사람들에게 줄 화과자와 호위병들에게 나눠줄 청주를 사러 상가로 향하는 길.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작은 식당의 여주인이자 까마귀 수인의 피를 이어받은 반수인인 사사메 공이, 양손에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춥다고 생각했더니 눈도 내리네요! 선생님도 쇼핑하러 오셨어요?"

    "강림제에 세의를 선물할까 생각했스므니다."

    "어머 선생님! 세의라니, 정취가 없네요! 그것은 선물이라고 하면 되잖아요!"

    "흠, 선물이므니까."

     등 뒤로 뻗은 검은 날개만 빼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여주인은, 서양식 사투리까지 더해 성격도 말투도 다소 딱딱하지만, 농익은 미모와 까마귀의 젖은 깃털 같은 긴 머리와 하얀 피부는 많은 손님들의 동경의 대상이다.

    "선생님도 다음에 우리 송년회에 꼭 참석하세요! 환영할 테니까요!"

    "조만간 또 가겠스므니다."

    "기다릴게요!"

     우아함보다는 활기찬 모습으로 영업하는 여주인은, 두 팔에 많은 짐을 힘차게 들고는 새빨간 일본식 우산을 흔들며 가게를 떠났다. 생각해 보면 그녀도 혼자서 쟈파존을 떠나 브랜스턴 왕국에서 가게를 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과거와 사정이 있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 혼자만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남몰래 과거를 짊어지고,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가슴에 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발버둥 치고,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 선생님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면 저는 행복할 겁니다]

    [만약 선생님이 스스로의 의지로 이곳을 떠나고 싶은 날이 오기 전까지는, 누가 뭐라 하든, 여기가 선생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카가치히코 선생님은 여기 있어도 괜찮습니다]

     아아. 문득, 호크 공을 작은 식당에 데려가면 기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가림이 심하고 편식을 하지만, 맛있는 것에는 환장하며 예의 바른 아이다. 단골손님들과도 금방 친해질...... 아니, 불가능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 그 아이는 겉으로는 친절하게 행동하지만, 어딘가 불편해 보이면서 구원을 청하듯 슬며시 다가올 것이 틀림없다.

     그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생각하게 되다니, 역시나, 정말 못된 할아버지다.

     사람들로 붐비는 상점가. 유유히 흔들리는 술집의 불빛에 촛불을 연상하며 죽은 아내를 떠올리고, 그녀와 함께 목숨을 잃은, 태어나지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이 세상을 떠난 자식을 떠올린다.

     비록 혈연관계는 아니더라도 이 살인마 노인을 가족이라고 말해준 착한 아이. 바라건대 조금만 더 그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 저승으로 가는 것은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지만. 아니면 그대와 같은 장소로는 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곳에서 모두와 함께 지내고 싶다고. 나는 그렇게 기원하고 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