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27부 232화 돼지에게 주는 선물 From 올리브(2)
    2023년 03월 29일 17시 51분 22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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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쉬는 숨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차가운 거리를 걸으며 한숨을 내쉰다. 자신을 용서하기는커녕 용서할 수 없는 이유들만 이렇게 눈처럼 또다시 새롭게 내려앉아 차갑게 얼어붙으며 쌓여간다. 마왕을 토벌하러 갔을 때도 그랬다. 나는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는 쓸모없는 존재였다. 이제 그런 추태는 싫다고, 누구보다도 치트 능력인 신역의 힘을 원하게 된 것은 아마 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됐다. 그래도 좋다. 이번만큼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을 여유가 없다. 위급할 때만 쓸모없는 나에게는 이제 그런 고집을 부릴 만큼의 자존심도, 체면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다.

    [올리브!]

     처음 도련님을 만났던 그날, 눈이 마주쳤을 때. 순간 거울을 보는 줄 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힘차게, 웅변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눈이었다. 대략 다섯 살짜리 아이의 눈은 아닌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의 호크 골드라는 아이는, 마치 자해행위처럼 위험천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도 그만하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자학적이고, 내성적이고, 자기혐오의 덩어리 같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자신도 그녀를 잃은 그날부터 주변에서 그렇게 생각하도록 살아왔다는 것을.

    [올리브, 저기, 부탁이 있는데, 지금 시간 돼?]

    [미안, 잠깐만 괜찮겠어? 저기, 민폐가 아니라면 말인데]

     정말 비굴하고, 비열할 정도로 자학적이고, 구제불능일 정도로 후진적이고, 동정심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내성적이었다. 그런 호크와 함께 지내면서, 문득 전장에서 쓴 안젤라에게 보낸 편지가 떠올랐다. 강림제까지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폭설에 갇힌 야영지의 어둠 속에서 손수 써 내려간 편지.

     지금은 그녀에게 도착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편지를 쓰면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날 미래의 아이 이름을 생각했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생각났다. 남자였다면. 여자였다면. 그렇게 들떠서 몇 번이고 생각했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정말, 괜찮겠어?]

    [그래. 그럼, 돌아가자]

     돌아가자, 우리 집으로. 내가 있을 곳으로. 그를 귀여워하게 된 계기가 처음에는 그저 대가성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다르다. 내 의지로, 이번만큼은 지키겠다고 맹세한 것을 지켜낼 것이다. 한번 잡은 손은 다시는 놓지 않겠다. 빼앗기지 않겠다, 그 누구도. 설령 상대가 여신이든 신이든, 절대로. 뻔뻔하다고 욕을 먹어도 좋다. 최악의 남자라고 욕을 먹어도 상관없다. 이번만큼은 정말 중요한 것을 실수하지 않겠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

     다행히 지금의 나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 내가 또다시 성질 급하게 실수할 것 같으면, 그건 잘못된 거라고 지적해 주는 동료들이 있다. 서로 돕고, 응원하고, 웃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

     고민 끝에 구입한 선물은 귀여운 돼지 디자인의 분홍색 털실 슬리퍼였다. 나름대로는 어린이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용성을 중시한다면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시간이 있는 날, 이른 아침 도장에서 수련을 할 때. 호크는 맨발로 얼음처럼 차가운 도장 바닥에 서 있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싫어하면서도 열심히 수련을 하긴 하지만, 추워서 펄쩍펄쩍 뛰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연습이 시작될 때까지 이 신발을 신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다행히 나으리나 마님이 견학을 올 때는 도장 내에서 슬리퍼를 신는 것이 허용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것도 가져와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예쁜 포장지로 포장된 선물을 안고, 저택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다소 들뜬 발걸음으로 올라간다. 도련님의 기뻐하는 얼굴을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는, 그런 조금은 들떠서 꼬리를 흔들어대는 내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다. 도련님과 만나고, 사람들과 만나고, 조금씩 변화하면서 여기까지 걸어온 지금의 나다.

     얼어붙는 듯한 심신의 추위도, 고통도. 지금은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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