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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아직은 쇠약해져 있는 왕비의 마음에 이그니스 폐하라는 독극물의 투하...... 아니, 오랜만에 만난 오라버님의 위문은 분명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가증스러운 자식이라 부르며 혐오하고, 과거에 잔혹한 짓을 가했던 내다 버린 자식인 오빠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그녀는 제국이라는 큰 후원자를 잃었고, 여신교의 총본산에서도 여존남비 사상에 물든 과격파가 일소되어 현재의 여교황은 온건파이며, 왕국 지부장의 가메츠 할아범은 공작가와 골드 상회와 연결고리가 있다.
그런 배경이 있었지만, 드디어 왕비님이 깨어났으니 애처가인 국왕 폐하와 어머니를 생각하는 첫째 왕자는 만만세. 둘째 왕자인 루타바가 님은 내심 '그냥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크게 아쉬워하는 것 같았지만, '죽으면 죽는대로 귀찮아질 텐데 어쩔 수 없지 없잖아'라고 피클스 님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피클스 님과 로사 님은 어떨까? 물론 사전에 이야기를 나눈 것이 당연하잖아. 이미 열여섯 살에 제로 공작의 공무를 일부 대신하고 있는 로사 님도 이제 와서 약해진 왕비와 제1왕자파를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깨어난 왕비가 전생의 기억을 되찾거나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이그니스 폐하에게 전력을 다해 시비를 거는 시점에서 십중팔구 괜찮을 거라며 기우로 끝났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부활한 여왕님의 쾌유를 축하하기 위해, 성에서는 연일 파티 삼매경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로써 한 건이 해결되었으니, 경사스러운 일들이 벌어진 셈이다.
"그러고 보니, 로리에는 악기 연주 같은 걸 할 수 있어?"
"악기요?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예전에 잠입수사를 할 때 익힌 적이 있습니다만."
"그렇구나. 올리브도 그렇고, 로리에도 그렇고, 역시 프로페셔널은 달라."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제 연주 같은 건 악보를 재현하는 것뿐인 재미없는 것. 진심을 담은 열정을 손가락에 담아 연주하는 프로 연주자들에 비하면,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 않을까 싶네요."
"둘 다 같은 말을 하고 있어."
무심결에 웃음을 터트린 나를 보며, 올리브와 로리에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한번 연주해 보라고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로리에는 일찍 자리를 떴고, 나는 다시 올리브에게 피아노를 치게 하면서 문화제에서 부를 노래 연습을 하였다.
놀랍게도 올리브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불렀다. 그것도 꽤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저음 파트를 고군분투하는 동안 고음 파트를 쉽게 부를 수 있게 된 올리브의 연주를 들으며, 둘이서 합창 연습을 계속했다.
"오우~ 너희들! 시간 있으면 마작이라도 하자고! 뭐 하는 거야?"
"보고 모르는가. 도련님이 문화제에서 부를 노래 연습이다."
"어머, 이 노래 그립네."
"어머니?"
크레슨과 함께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설마 이 멤버로 마작을 할 생각인가? 그보다 어머니도 의외로 의욕이 넘치는구나. 의외......는 아닌가. 전 술집의 간판녀, 나중에는 바닷가 카페 레스토랑의 여주인이었던 만큼 꽤 강한데 더해 호신술에 대한 소양도 있다고 하니, 마작 정도는 할 줄 아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난하고 가게 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 없었지만, 가게에 오는 젊은 학생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것을 가끔씩 들었거든."
"그렇구나. ...... 같이 노래할래요?"
"어머, 괜찮겠니? 그럼 이 엄마도 호크랑 함께 노래를 불러볼까나?"
열여섯 살, 정신적으로는 이제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어머니를 쫓아내는 것이 더 부끄러워 보였기 때문에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제안했다. 매우 행복해 보이는 어머니의 미소에, 나는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전생의 부모님을 조금이나마 떠올리게 되었다.
"어이! 너!!"
"놓칠 것 같나?"
서둘러 도망치려는 크레슨의 꼬리를 낚아채는 올리브, 유능하다.
"너어, 나한테 애들 노래나 부르라는 거냐?"
"뭐 어때. 목욕탕에서는 매번 기분 좋게 노래하고 있잖아?"
"그것과 이건 다른 이야기라고!"
"어머, 잘 됐네. 고음 두 명, 저음 한 명으로는 밸런스가 맞지 않으니, 둘씩 나눠서 부르면 딱 좋을 것 같아. 어때?"
"여기서 나를 버리고 혼자 도망치는 그런 비겁한 겁쟁이는 되고 싶지 않겠지?"
"귀찮은 일에서 도망치는 건 부끄러움도 뭣도 아니라고! 젠장! 너네들 나중에 기억해라!!"
마지못한 표정으로, 언짢아하며 체념하는 크레슨. 의자 뒤에서 악보를 들여다보며 매우 즐거워하는 어머니. 유창하게 연주를 재개하는 올리브. 나는 어머니와 크레슨에게 가사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면서,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금 어색하게 시작된 이 우스꽝스러운 합창은, 카가치히코 선생이 저녁이 다 되었다고 우리를 부를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