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3.5부-16 소녀가 본 유성(5)
    2023년 03월 12일 18시 39분 55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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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위를 피하기 위해 건네준 담요 위에서 스스로 목을 베어 죽은 아이를 보며, 유이를 발견했었던 신부는 이 세상에 신의 위엄이 아직 닿지 않았음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
    네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차기 성녀로서, 극비리에 교회의 은밀퇴마부 관리 하에서 유이는 교육을 받았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사람의 생명은 덧없지만 소중한 것이다.

     
     ──── 그럴 리가 없어. 불면 날아가면 싸구려잖아.

     
     몇 번을 설교해도.

     아무리 자신의 생명의 존재를 축하해 줘도.

     
     유이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에 색깔은 없었다. 그저 무색의 세계에서 흘러가는 대로 부유하고 있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피를 붉은색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숨소리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귀.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뛰어난 눈. 위기를 감지하는 후각. 그것만 있으면 충분했다. 색채 따위는 필요 없었다.

     
     보호된 지 얼마 후, 호적을 다시 작성할 때 극동에 존재했던 옛 문명의 언어에서 '타가하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미 잃어버린 글자인데,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논(), 잔잔하게 펼쳐진 들판을 뜻하는 언덕(가하라) 합친 이름이다.

     자신을 보호해 준 신부들이 그렇게 설명해도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유이는 자신의 이름이 싫었다.

     
     유일한 존재이기에 유이라고 메모지에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뭐가 유일이냐.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이다. 죽어간 아이들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존재다.

     그래서 유이는 자신의 이름이 싫었다싫어했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었다.

     그냥 유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
    그런 사정이 없어도 당신은 유일한 존재랍니다. 가슴을 펴도록 하세요]

     

     


     

     모든 것이 통째로 구원받은  같았다.

     저주받은 유일성이 아닌, 그저 자신의 친구로서 유일한 존재라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단언했다.

     그때 타가하라 유이는 처음으로 '살아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입학식 .

     쓰러져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언젠가  살육의 현장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모두들 쓰러져 있었지만 빛에 매료되어 있었다.

     뛰어넘어 보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학생들도 많았다어떻게 그런 모습이 가능할까유이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대의 중앙을 보고 모든 것이 날아갔다.

     

     

    [
    진정한 영애란 단 한 명! 그것은 다름 아닌ㅡㅡ바로 , 마리안느 피스라운드랍니다!!!]

     

     


     단 한 명의 존재임을 이토록 큰 목소리로 선언할 수 있는 걸까.

     그녀의 눈동자에서 색깔을 보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열정.

     

     색이 있었다.

     치열한 빨강가혹한 붉은색불타오르는 광채.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하얗고 아름다웠다색이 있다그녀에게는 색깔이 있다그녀뿐만 아니라 모두가 색을 가지고 있다여기저기 알아차리지 못할  색이 있었다 하늘에는 별이 있고 눈동자 속에는 불꽃이 있고 손끝에는 섬광이 깃들어 있다.

     색이있다.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손을 보았다피부색이었다.

     온몸이 떨렸다.

     

     분명 '살아간다는 '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주어지는 대로선택받는 대로이끌림을 받는 대로 살아왔던  자신.

     누군가에게 주고스스로 움켜쥐고 발로 계속 걸어가는 그녀.

     

     죽은 것은 아니다죽은 것처럼 살아있지도 않다.

     다만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되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녀가 사는 세상을, 나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지 않던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원한다. 그것을 원한다.

     

     그 붉은 눈동자에 비친 세상을, 나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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