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슈기린의 애정은 속박과 세뇌로 비칠 수 있다.
학자로서, 사람으로서 형은 다른 학자나 지인 친구들에게 널리 인정받고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렌드 군은 영리하다. 스스로 칼을 내려놓고 당주가 되기 위한 길을 걸었다. 키리에는 ...... 재능 있는 검보다는 계속 그림을 그렸었지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 브렌 군이 검을 멈추지 않는다고 설득했더니 알아차렸지."
증오하는 슈기린을 처단하고 형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라기린.
"하지만 브렌 군은 어떻지? 몇 번을 말해도 소드 님이 상대가 되지 안 함에도 불구하고, 바보처럼 막대기를 휘두르네? 모처럼 나름대로 뛰어난 두뇌를 가졌는데도, 이 무슨 재능과 시간의 낭비인지 ......"
온화한 겉모습을 유지하며 사회에 녹아들던 라기린이 다시 독선의 송곳니를 드러낸 것은 ...... 자신과 달리 자율성을 중시하며 키우려는 레이시아 때문이었다.
"내게 맡기라고 해도, 몇 번을 충고해도 그녀는 고집스럽게 거부할뿐. 정말...... 그렇게 울면서 괴로워할 바에야, 약탕을 마시지 말고 말 한 마디로 너희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닥쳐 ......"
모두에게 사랑받는 레이시아, 그리고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
라기린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결코 깨닫지 못하는, 그것은 질투였다.
"오빠 ......"
"세레스티아 님도 너를 우리 손으로 묻는 것을 묵인해 주셨다. ............ 고뇌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라."
그 어머니의 일이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들을 걱정하며 울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보검 그레이 ....... 멍청한 ...... 정말 그레이와 계약해서 마왕군을 멸망시킬 생각이야?"
"읏 ......?"
렌드로부터 듣지 못했던 것을, 라기린을 통해 알게 된다.
라기린을 놓치지 않으려고 출구에서 막고 있던 키리에가 렌드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게 뭐. 어머니는 내게 두 사람을 맡기셨다."
"아아, 너까지도 ............ 죽음에도 여전히 가증스러운."
무훈을 세우면 지위가 올라간다. 두 공주를 마왕군으로부터 지켜낸다면, 자신이 죽더라도 소덴 가문의 작위는 올라갈 것이다.
작위가 높아지면 그만큼 좋은 인연, 좋은 진로를 찾을 수 있다.
"치, 잠깐만!"
"키리에, 브렌을 부탁한다."
보검 그레이에 관한 서적의 설명에 따라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그레이의 칼날에 대고 피를 빨아들인다.
"............?"
"안심해라, 키리에. 내가 말했잖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자 의아해하는 렌드의 틈을 파고들어, 라기린이 칼날을 잡는다.
그리고 왼손 약지를 미끄러뜨린다.
"공부하지 그랬어. 니다이가 계약의 위험을 고려해 왼팔을 베어버린 의미를 생각했어야 했어."
모든 역사책이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계약에 관한 잘못된 서적을 선택해 전달하고 있었다.
왼손 약지에 흐르는 피가 그레이로 스며든다.
"넌 니다이가 될 수 없어."
칼날의 맥박이 점점 커져 .......
"크윽!"
"오빠아!"
마치 사람이 변한 것 같다.
날카로운 회심의 발차기로, 렌드가 제단에 쓰러졌다.
"ㅡㅡ죽어라!"
키리에의 강력한 찌르기.
하지만 그레이의 검끝이, 찌르는 궤적을 마음대로 조종하여 소리도 없이 바닥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칼날의 중간을 가볍게 한 번 친다.
"............"
그러자 너무도 어이없게도 칼날이 두 동강이 나고 만다.
"...... 언젠가 너희들도 알게 될 거야. 내 말과 행동이 옳았다는 것을."
웃고 있었다.
키리에의 옆을 지나가는 그 사람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가끔씩 보였던 것과 같은, 활기발랄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