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8부 171화 강함과 약함과 상냥함과(1)
    2023년 02월 28일 08시 27분 2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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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슨, 봄이라고는 해도 몸이 차가워질 거다?"

    "음, 주인이냐."

     보름달이 유난히 높이 떠 있는 흐린 달밤. 골드 저택의 지붕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크레슨 옆에 앉은 나는, 로리에가 준비해 준 물병에 따뜻한 백탕을 부어 조금 식힌 후 마셨다.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조금 쌀쌀하다. 따뜻한 물의 온기가 서서히 퍼져나가며 입안에 약간의 단맛이 퍼져나간다.

     결국 네모필라 양이 임신한 아이는 클슨의 아이가 아니었다. 아기와 크레슨의 마력 파형 패턴의 일치율은 50%가 아니라 고작 3%에 불과하다. 완전히 타인 수준이다. 처음에는 그쪽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지만, 얼마 후 정식으로 국립병원에 도입된 혈연감정과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 같은 결과가 나오자 그쪽은 일련의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태아의 아버지가 아님이 분명해진 이상, 결혼도 낙태 비용 지불 의무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큰 낭패를 본 크레슨은 크게 낙담한 모양인지 요즘 며칠 동안 밤마다 옥상에서 멍하니 달을 쳐다보고 있다고 하여 걱정이 돼서 찾아간 것이다.

    "화났어?"

    "화 안 났다고."

     

     내게서 등을 돌리는 크레슨.

     "...... 미안."

     "그러니까 화 안 났다고."

     일주일 동안 생각해 보라고 해놓고서 정작 마지막 순간에 사다리를 떼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내 고뇌는 대체 뭐였냐'고 화를 내도 불평할 수 없다.

     "나한테 그런 권리는 없다고."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 와!
     
     벌떡 일어나 책상다리를 한 크레슨이, 내 잠옷의 목덜미를 잡고 자기 앞에 매달아 놓는다. 마치 고양이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는 나. 간신히 발이 붙어서 괴롭지는 않다.

     "어이. 이번 일은 전부 내가 뿌린 씨앗이다.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며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라고. 주인이 신경 쓸 일 아냐."

     "그럼 왜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 대뜸 나를 싫어하는 줄 알고 걱정했다고?"

     "너무 부끄러워서 어떤 얼굴로 너희들 앞에 나가야 할지 몰랐다고. 그토록 야단법석을 피웠는데, 실제로는 그냥 헛발질이었다니. 누가 더 창피하다고 생각하겠어?"

     "별 생각 안 해. 문제가 생기면 다 같이 협력해서 해결하는 식으로, 그렇게 계속 해왔잖아. 그리고 나 역시 항상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니까, 조금 정도는 평소와 반대가 되었다 해서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않겠어?"

     흐릿한 달빛 아래. 불길한 식인 호랑이처럼 사나워 보이는 강인한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일그러진다.

     "아니면 네모필라 씨를 좋아했어?"

     "아니, 딱히."

     "그럼, 진짜 아이를 갖고 싶어 졌어?"

     "아니라고."
     
     "그럼, 뭐야?"

     "그걸 모르겠으니까 나도 헷갈리는 거잖아!"

     밤하늘에 크레슨의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진다. 이웃에 폐가 되니 자제해 달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재빨리 마법으로 방음 결계를 쳐버렸다. 이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안심이다.

     "모르겠다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멍하니 있는 건 처음이야! 아, 진짜 모르겠어! 기분 나빠 죽겠어!!!"

     지금까지 바람둥이 무뢰한으로 살아온 크레슨에게 자신의 아이가 생긴다거나, 가정을 꾸린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해본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을 보면서 가족이 생긴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했으니까.
     
     그 말은 곧, 조금은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가족에 대한 책임, 생명에 대한 책임. 지금까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을 맹수가 갑자기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인내를 배우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때로는 나보다 상대를 우선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 미지의 영역이다.

     사람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한다. 해보지 않은 것, 모르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모르는 것에 처음 도전한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미지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 모순되는 것 같으면서도 양립할 수 있는 그 복합적인 감정들을 일주일 동안 마주한 탓에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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