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8부 167화 친구 집에서 자자(2)
    2023년 02월 26일 20시 55분 4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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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까지 주물러대냐며 내 뚱뚱한 배를 주물러대는 이그니스님의 손을 툭툭 치고, 나는 재빨리 킹 사이즈보다 더 큰 침대 가장자리로 피신한다. 이그니스님은 그 모습마저도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어딘지 모르게 먼 눈으로 호화로운 침대의 천막을 올려다보았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세상은 넓고 사람의 마음은 변덕스럽도다. 그대 하나 신하로 맞이할 수 없고, 아직 함락하지 못한 나라는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만 남았도다. 음,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놈이군! 푸하하하하하하!"

     "이그니스 님은 세계 정복이라도 하시려는 건가요?"

     "그래. 세계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면 사뭇 자랑스러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세상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그것을 다 알 수도, 내다보기도 힘들다. 결국 내가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왕이 된다고 해서 지금과 무엇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

     어딘지 모르게 달관하는투로 말하는 황제의 옆모습은, 욕심도 없고, 무욕도 없어 보인다. 결국 사람이 사람인 이상 혼자서 세상의 모든 것을 관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신이 아니라면 그건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혼자서 수억, 수십억 인류의 동향을 일일이 파악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황제가 되었다. 용신의 제자가 되어 인지를 초월한 힘을 얻었고, 너라는 진정한 친구도 얻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니 앞으로는 내리막길만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이그니스님의 약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거침없는 나 같은 남자라도 가끔은 이렇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문득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방황하는 밤이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음, 참으로 철학적이고, 보편적이고, 무의미한 질문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건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아직 30대잖아요, 이그니스님. 앞으로 50년 이상은 더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 전혀 나답지 않아. 생각해도 소용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은 것을."

     "뭐 괜찮아요. 누구나 불평하고 싶을 때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만 괜찮다면 들어줄게요.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몸에 해가 되니까요."

     "하하, 정말 든든한 친구가 아닌가. 음, 나는 정말 좋은 친구를 가진 것 같구나."

     중년의 위기라고 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마음은 알겠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무서워지는 사람이구나. 수십 년만 더 지나면 아버지도, 카가치히코 씨도, 경호원들도 다 죽고, 그때 중년의 아저씨가 된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인생이 불안해진다. 왜냐면 다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니까.

     그런 게 무서워서 사람들은 결혼이나 아이를 원하는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결혼하고 싶지 않고 아이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상, 노후가 고독해질 수 있는 것은 자기 책임이다. 그게 싫으면 고아라도 입양하든 동년배의 인생 파트너를 찾든 뭐든 해야지... 아니, 셰리와 스승님이 있잖아.

     수만 년을 살아온 용신과 기본적으로 생물학적 수명이 없는 인공지능이라면 내가 죽은 뒤에도 훨씬 더 오래 살아있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된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물론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또 다른 문제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고,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그땐 세상이 뒤집어질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 될 테니 어쩔 수 없겠지.

     "야, 호크, 너는..."

     술에 취한 건지, 흥청망청 놀다가 지친 건지, 담요를 끌어당겨 그것을 감싼 이그니스 님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말끝을 잇지 않고서, 이그니스 님은 그대로 잠이 들기 시작했다. 참으로 무방비 상태로 잠든 모습이다. 그만큼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

     항상 시대의 최첨단을 혼자서 달려가는 듯한 황제 폐하도 가끔은 걷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걸음을 멈추고 문득 뒤를 돌아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이그니스님의 대등한 친구로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함께 바보짓을 하며 웃어주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거 하나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분명.

     나는 침대 한구석으로 쫓겨난 두 개의 덱을 테이블 위에 두고서, 그 다음 자신도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폭군에게도 악덕 상인에게도, 친구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친구들과 즐겁게 바보짓을 하며 보내는 휴일은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되었으니,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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