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032 기병
    2022년 10월 10일 22시 34분 1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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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4568el/34/

     

     

     

     그날의 전투는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적의 기병이 오고 있어?"

     난 리퍼 스웜의 보고에 그리 대답했다.

     

     "예, 여왕 폐하. 적의 기병 집단 2만 5천이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쪽의 전선에 돌입할 모양입니다."
     "흠. 적도 결전을 원한다는 뜻인가."

     리퍼 스웜의 보고에, 나는 데자뷔를 느꼈다.

     

     어딘가에서 이런 광경을 본 듯한......

     

     "뭐 좋아. 대책을 취하자. 워커 스웜을 동원해."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기병을 끝장낼 수 있다면 나도 나름 유능한 지휘관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아라크네아에는 기승 유닛이 없기 때문에 기병을 처리하려면 머리를 써야만 한다. 여태까지 고민해온 결과를 여기서 보여주도록 하자.

     

     "적의 움직임은 추적하고 있나?"

     "디거 스웜들이 근처에서 척후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의하면 이 도로를 달려서 우리 전선이 있는 이 위치까지 달려오고 있다 합니다."

     내 물음에 리퍼 스웜이 보고했다.

     

     흠. 저돌적인 돌격이라. 하지만, 기병의 기세는 무서운 법이다.

     

     "워커 스웜한테는 명령이 도달했나?"
     "예, 폐하. 도달했습니다. 이미 실행 중입니다."

     난 워커 스웜한테 어떤 명령을 내렸었다. 이 전투를 좌우할 명령이다.

     

     "그리고 세리니안과 라이사를 불러."
     "예, 폐하."

     난 비장의 수단인 둘을 불렀다.

     

     "부르셨나요, 폐하."
     "부르심에 따라 왔습니다, 여왕 폐하."

     

     내 소집에서 5분도 안 되어 세리니아와 라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잘 와줬다. 현재 기병이 다가온다는 정보가 들어온 것은 알고 있나?"

     "예. 집합의식을 통해서."

     내 말에 세리니안이 수긍했다.

     

     "그 기병을 맞이한다. 세리니안, 라이사. 너희들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명령이시라면 뭐든지."

     

     내가 고하자, 세리니안과 라이사가 고개를 숙였다.

     

     "할 일은 간단해. 기병이 문제인 이유는 그 기세. 속도의 힘이다. 속도에 의한 충격이 생기는 게 문제라는 거다. 그것만 멈춰버리면 단순히 말에 올라탄 보병이 되어버린다. 속도가 없는 기병은 그냥 말과 사람이다."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에서도, 기병 유닛은 고속 상태가 되면 돌격 보너스가 붙지만, 속도가 낮아지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상대였다.

     

     "여기까지의 강행군으로 우리 전력은 5만까지 줄었지만, 적을 맞이하기에는 충분하다. 부디 화려한 마중을 해주자."

     리퍼 스웜들을 많이 소모했다. 여태까지의 전투는 무피해로 이긴 것이 아니라, 도시를 공략할 때나 성채를 공략할 때마다 피해가 나온 것이다.

     

     새롭게 스웜을 만들 준비는 되어있지만, 지금 만드는 것은 리퍼 스웜이 아니다. 다른 것이다. 여럿 모이면 막대한 효과를 내는 유닛을 생산하고 있다. 이것만은 완성될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자.

     

     "자아, 기병의 속도를 줄이는 법은 몇 가지 있다. 먼저 장애물. 말이 돌파할 수 없는 장애물을 설치하면 말은 정지해야겠지. 또는 막대한 수의 보병으로 기병의 충격을 차츰 줄여가는 방법도 있다."

     내가 고한 방법은 고전적인 전술이었다.

     

     "그렇다면, 저희들은 뭘 해야 합니까?"

     "간단해. 너희들은 최고의 장애물이 되어줘야겠다. 적이 절대 돌파할 수 없는 장애물로."

     

     세리니안의 물음에, 난 싱긋 웃었다.

     


     

     :"제군! 이제부터 우리들은 우리의 국토를 어지럽히는 침략자들을 상대로 싸운다!"

     그렇게 열변을 토하는 자는 로랑이다.

     

     가슴에 성기사의 증표를 붙인 그가, 모여든 2만 5천의 기병의 앞에서 그렇게 연설하고 있다.

     

     "적은 강력하다. 여태까지 싸워온 제후군은 전부 괴멸했다. 이제 조국을 지킬 전력은 우리들만 남았다. 프란츠 교황국의 군대는 국경선에서 우물쭈물대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는 수도 드리스도 함락되어, 대학살이 벌어진다."

     

     로랑이 그렇게 고하자, 기병들이 분노의 함성을 내질렀다.

     

     "그래! 화내라, 제군! 그 분노를 적에게 부딪혀! 우리는 일기당천의 대륙 최강의 기병이다! 우리가 발굽소리를 내면 적들은 겁먹고 떨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돌격한다면 적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사실 로랑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대륙 최강의 기병대는 닐나르 제국의 흑모기사단이라고 알고 있으며, 적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지니지 않은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병사들을 고무시키기 위해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들은 침략자의 수괴인 아라크네아의 여왕을 붙잡는다. 아라크네아의 여왕만 붙잡으면 침략자들은 단순한 마수나 다름없다. 마수를 쓰러트리는 건 모험가의 일이지만, 모험가들이 동부상업연합으로 망명한 지금 와서는 우리들이 해낼 수밖에 없다."

     로랑의 말에는 실소가 배어있었다.

     

     모험가들은 용병이 아니다. 그들은 전쟁터로 변한 슈트라우트 공국에서 재빨리 줄행랑을 쳐서, 프란츠 교황국과 닐나르 제국 사이에 있는 동부상업연합으로 도망쳐버린 것이다.

     

     "우리들은 적을 유린하고 아라크네아의 여왕을 붙잡아 침략을 끝낸다! 가자!"
     "와아!"

     2만 5천명의 기병이 일제히 소리 내며 무기를 부딪힌다.

     

     "척후의 조사로는 아라크네아의 본진이 이 험로 끝의 마을에 있다고 한다. 적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음은 틀림없지만, 슈트라우트 공국을 구할 사람을 우리들 뿐이다. 우리만이 최후의 희망이다."

     

     이제 공국에 남은 전력은 수도 드리스를 수비하는 수도방위군과 이 기병단밖에 없다. 수도 드리스의 수비 부대를 움직일 수 없는 이상, 기댈만한 것은 이 기병단만 남았다.

     

     "그럼 가자, 제군! 슈트라우트 공국에 영광을!"
     "슈트라우트 공국에 영광을!"

     그렇게, 기병단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목표는 적의 본진이 있는 마을.

     

     "적은 이 험로 앞이다."

     그리고 기병단은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나 있는 도로 앞까지 도달했다.

     

     저길 지나면 아라크네아의 본진이 있다.

     

     "정찰병이 돌아왔습니다."
     "수고했다. 보고는?" 

     "적은 경계태세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수는 3만. 그 벌레가 줄지어 포진해 있습니다. 적의 본대까지는 벌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알겠다."

     

     정찰로 파견했던 기병의 보고에, 로랑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군들! 돌격이다! 적을 유린하자! 준비는 되었나!"
     "조국을 위하여!"

     

     로랑이 각오를 묻자, 기병단이 소리 높여 외친다.

     

     "그럼, 돌격이다!"

     2만5천의 기병단이 로랑을 선두로, 아라크네아의 본진으로 나아간다.

     

     "적 확인, 적 확인!"

     

     아라크네아의 본대 앞에는 정찰병의 보고대로 벌레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상관 마라! 짓밟아라!"

     로랑은 그리 고하며 손에 든 랜스로 무수한 벌레ㅡㅡ리퍼 스웜을 꿰뚫고 말발굽으로 짓밟으며 그대로 안쪽으로 돌격해나갔다.

     

     "으아악!"

     

     하지만, 로랑이 적을 향해 계속 돌격하려 하자 양옆에서 비명이 들렸다.

     

     "장애물!? 어디에 숨어있었지!?"

     적이 포진한 좌우에는 기병용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날카롭게 깎은 나무가 쥐덫처럼 돌출된 장애물인데, 그에 겁먹은 말들이 속도를 줄이면 그때 리퍼 스웜이 뛰어들이 사분오열을 해놓았다. 때로는 뒤에서 돌진해오는 기병과 충돌하여 말이 장애물과 부딪혀 꼬챙이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기병용 장애물은 실로 교묘히 숨겨져 있었다. 장애물 전방에 리퍼 스웜을 배치하여 전방에서는 장애물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하여, 리퍼 스웜을 노려 돌격해 온 기병들은 장애물과 맞닥뜨렸다.

     

     "젠장! 양쪽 기병이 당했나! 하지만 아직 정면돌파가 남았다!"

     로랑은 그렇게 고하며 군마를 재촉했다.

     

     로랑이 통과한 뒤에는 시체가 된 리퍼 스웜만이 남았고, 그걸 짓밟으며 후속 기병이 돌격해왔다. 랜스와 사벨을 든 기병이 로랑이 열어놓은 길을 누비며 돌격한다. 양익의 기병이 없는 채로.

     

     "조금만 더! 이제 돌파한다!"

     

     리퍼 스웜의 군세에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는 이제 조금.

     

     "거기까지다!"

     

     하지만, 거기서 로랑의 앞을 막아서는 것이 나타났다.

     

     스웜의 하반신과 어여쁜 여성의 상반신을 지닌 괴물.

     

     세리니안이다. 세리니안이 로랑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

     "못 비켜! 물러나는 건 그쪽이다!"

     로랑이 외치자 세리니안이 검은 칼을 든다.

     

     "비키지 않는다면 실력으로 밀어붙인다!"
     "어디 해보던가! 그리고 그 무력함 앞에 무릎 꿇어라!"

     

     로랑의 랜스가 다가오자, 세리니안이 로랑을 향하여 도약.

     

     전부 한순간이었다. 로랑의 갑옷은 베여 선혈이 튀어올랐고, 세리니안은 갑옷에 깊은 상처를 만들며 지면에 내려섰다.

     

     "다음!"

     

     세리니안의 상대는 로랑만이 아니다. 로랑이 데려온 무수한 기병단을 상대하는 것이다. 세리니안의 파성검이 춤추자, 기병단이 연이어 베여버린다.

     

     "갑니다!"

     다음은 세리니안의 뒤에 서 있던 라이사가 장궁으로 기병을 노렸다. 기병이 머리를 꿰뚫려 쓰러지자, 그 시체 때문에 뒤의 말이 넘어진다.

     

     "아직도 전진하는 거냐!?"

     "이젠 안 되겠어! 후퇴, 후퇴!"

     기병들이 퇴각하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양측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퍼 스웜이 일제히 좌우에서 공격해서는, 기병단을 찢어발긴다. 기수에게 뛰어들고 군마를 뜯어먹어서, 로랑의 뒤를 잇던 기병단을 시체로 만든다.

     

     "후퇴! 후퇴!"
     "아직 로랑 경이 남아있는데!?"

     장애물에 막혀 전진할 수 없게 된 양익의 기병들도 후퇴하기 시작한다.

     

     "알게 뭐야! 우리 목숨이 먼저라고!"

     

     하지만, 그것도 가로막혔다.

     

     험로 양옆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리퍼 스웜이 뛰어내린 것이다. 기수들은 머리 위에서 공격해오는 리퍼 스웜에게 손발도 못쓰고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계속 살점이 베여나갔다.

     

     "여기까진가......"

     로랑은 복부에 깊은 상처를 입고 누워있었다.

     

     "아아. 네가 지휘관이었구나."

     쓰러져 있는 로랑에게 그렇게 말을 거는 자가 있었다.

     

     "너는......그 마린의 만찬회에서......"
     "그래. 네 도움을 받았었지."

     

     나타난 자는 만찬회 날에 만났던 소녀.

     

     "설마, 네가 아라크네아의 여왕은 아니지?"

     "공교롭게도 맞다. 내가 아라크네아의 여왕이다."

     농담조로 로렌이 물어보자, 아라크네아의 여왕은 어깨를 으쓱했다.

     

     "세리니안. 그의 상처를 압박해. 그가 아직 죽으면 곤란해. 그한테는 물어볼 일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그레빌레아의 명령에, 세리니안은 로랑의 상처를 눌러 출혈을 억제했다.

     

     "물어보겠는데, 샤롱 공은 아직 살아있나?"
     "......샤론 공은 형이 죽였어. 형은 자신에게 거스르는 모든 것을 죽였어. 그리고 끝내는 홀로 남게 되었고."

     그레빌레아의 물음에, 로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넌 자신의 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나?"

     "그래, 잘못되었어. 형은 프란츠 교황국만 믿고 폭군처럼 행동했지만, 결국 프란츠 교황국에서도 배신당했거든. 샤론 공이 탄핵되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좀 더 나은......"

     

     로랑은 거기까지 말하고서 입에서 피를 흘렸다.

     

     "네가 형을 설명할때 증오심이 느껴진다. 실제로는 어떻지?"

     "미워. 형은 슈트라우트 공국을 붕괴시켰어. 그 책임도 안 지고 도망치겠지. 그게 밉지 않으면 뭐가 밉겠어......!"

     그레빌레아의 물음에, 로랑은 증오심을 불태웠다.

     

     "난 슈트라우트 공국을 사랑했어! 이 나라를 좋아했어! 이 나라가 번영하기를 기원했어! 그런데, 형이 모든 걸 망쳐버렸어......! 이제 누구도 원래대로 못 되돌려......"

     로랑은 그렇게 고하며 힘없이 어깨를 떨궜다.

     

     "네가 아직 슈트라우트 공국을 위해 싸울 수단이 있다면 어쩔 건가?"
     "아직......? 이 상처로는 이제 못 살아나. 불가능해."

     로랑은 아라크네아의 여왕 그레빌레아의 말에 한숨을 지었다.

     

     "방법은 있다. 널 배신한 형과 프란츠 교황국에 복수할 방법이....."

     아라크네아의 여왕 그레빌레아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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