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0 갈등(1)2022년 10월 10일 01시 05분 1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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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여왕 폐하!"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그보다 나는 여왕 같은 높은 신분이었나?
난 단순한 게이머다. 하나의 게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이머다. 여왕 같은 거창한 신분이 아니다.
"여왕 폐하. 부탁입니다. 눈 좀 떠주십시오......"
오열 섞인 말에, 난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이곳은 내가 살던 방이 아니었다.
이국의 정서가 느껴지는 방에서, 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조명은 없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만 광원이 되어있는 고풍스러운 방이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는 머리를 파묻고 있는 한 여성이.
"세리, 니안?"
나는 어째서 이 여성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
"여왕 폐하! 눈을 뜨셨군요!"
나의 한 마디에 오열을 그친 여성이, 확 밝아진 표정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난..... 난 어떻게 된 거지?"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여왕 폐하. 몸은 이제 괜찮으십니까?"
"난 여왕 폐하가 아냐."세리니안의 물음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여왕 폐하께선 여태까지의 기억을 잃으신 겁니까?"
"적어도 네가 무슨 말하는지는 모르겠어."
나는 평범한 게이머다. 단지 아라크네아를 사용하는 걸 조금 잘할뿐인.
......아라크네아? 그러고 보니 난 최근 아라크네아로 플레이했었는데?
"라이사! 여왕 폐하께서 눈을 뜨셨지만, 상태가 이상해! 좀 와줘!"
라이사? 그것도 들어본 일이 있다. 새 업데이트 때 플레이어블이 된 캐릭터다. 내 진영에 어느 사이엔가 추가되어서, 세리니안과 함께 기병의 돌격을......
"여왕 폐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그 라이사가 모습을 보였다.
게임에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등에서 곤충의 다리가 나 있고, 손에는 장궁을 든 아이다. 그녀는 등에 활을 메고는 내 곁으로 달려왔다.
"여왕 폐하. 기분은 어떠세요?"
"조금 혼란스러워."왜 나는 게임 캐릭터와 대화하고 있는 걸까. 내가 했던 게임은 RTS지 RPG가 아니라고. 그런데도 전부 리얼하다. 세리니안의 부드러운 뺨도, 라이사의 가느다란 팔도 만져보면 기분 좋은 감촉이 들 것 같다.
"기, 기분 좋으신가요. 여왕 폐하께서 원하신다면야."
"1?"
내가 생각한 말이 전해졌다.
설마, 그런가. 나는, 어쩌면ㅡㅡ
"세리니안. 내 신분을 가르쳐 줘."
나는 주저 없이 물어보았다.
"저희들의 여왕 폐하이십니다. 저희들을 승리로 이끈다고 약속하셨던 아라크네아의 여왕. 그것이 당신의 신분입니다, 폐하."
아아. 그랬구나.
나는 기억을 되찾았다. 여기는 아라크네아가 이물질로서 들어온 세계. 우리들은 슈트라우트 공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했기 때문에, 프란츠 교황국이 쳐들어오기 전에 슈트라우트 공국을 실력으로 지배하기 위해 진군하던 중이었다.
ㅡㅡ하지만, 언젠가 당신의 영혼을 구원해 보이겠어요. 당신이 악마가 그린 감옥 속에 갇혀버리기 전에.
이것은 감옥인가. 그 소녀는 무슨 말을 했던 걸까.
"떠올랐어, 세리니안, 라이사. 난 너희들의 여왕이었어. 그런 중요한 일을 잊다니, 어떻게 되어버렸던 모양이야. 난 너희를 승리로 이끌어야만 하는데."
난 한숨지으면서 세리니안과 라이사를 바라보았다.
"여왕 폐하!"
그러자, 세리니안은 내게 안겨들더니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목놓아 울었다. 마치 어린이처럼, 그녀는 마구 울어재꼈다.
"착하지, 착해. 세리니안은 기사잖아. 기사는 좀 더 의젓해야 하는 법인걸?"
"하지만, 하지만, 여왕 폐하께서 저희를 완전히 잊고 말면 어쩌나 싶어서.....! 그리고 여왕 폐하께서 눈을 뜨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서.....!"
내가 세리니안을 안아주며 달래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 젖은 얼굴을 들었다.
"벌써 눈물범벅이네. 걱정 끼쳐서 미안, 세리니안. 하지만 난 괜찮아. 난 이제 어디에도 안 갈 거야. 너희를 승리로 이끌 때까지는 어디에도. 내가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나는 그렇게 고하며 옷소매로 세리니안의 눈물을 닦았다.
"그래서 난 얼마나 의식을 잃었지?"
"이삼일 정도예요."내가 묻자, 라이사가 안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삼일. 그 사이의 움직임은?"
"없습니다. 적은 전력을 집중시키는 모양입니다."내가 묻자, 세리니안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가. 그럼, 당한 만큼 갚아줘야겠구나. 내가 죽을 뻔했던 은혜는 보답해줘야지. 죽음에는 죽음으로 말이다."
ㅡㅡ결코 사람의 마음을 잊지 마세요.
안 잊어. 하지만 우리들은 해내야만 한다. 우리들은 보복해야만 한다. 마린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학살과 약탈을 벌인 녀석들을 상대로.
우리들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학살을 되풀이한다. 그것이 인간의 미덕 아닌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군!"
그렇게 소리치는 곳은 슈트라우트 공국의 제후군 진영이었다.
"우리는 승리를 위해 모였다! 그런데 왜 여기 앉아있어야만 하는지 말이다! 지금 당장 적과의 결전을 위해 나아가야 하지 않은가! 안 그런가, 제군!"
소리 내는 자는 아드리안 드 아르덴 후작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5만 병력을 데리고,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는 슈트라우트 공국 제14대 공작 레오폴드 드 로렌과 그 측근들을 비난하고 있다.
"지금은 참으셔야 해요, 각하, 지금 움직이면 적의 생각대로. 현재 프란츠 교황국의 군대가 움직였다는 정보가 들어왔어요. 우리들은 그들과 합류해서 전력을 다진 뒤에 적에게 돌격해야 해요."
그렇게 달래는 자는 레오폴드의 동생인 로란 드 로렌이다. 그에게는 이 제후군을 지휘할 권한이 있다.
"맞는 말이오, 아르덴 후작. 로렌 공은 적대자를 모조리 교수형에 처해버리니, 당신도 목매달고 싶지 않으면 로렌 공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 좋소."
"정말이지. 로렌 공한테 권력을 주는 게 아니었다. 샤론 공 때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샤론 공을 탄핵한 것은 큰 실책이었구나."
많은 제후들은 레오폴드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다. 그가 그에게 반발하는 제후를 학살한 일과, 그의 무능함 때문에 서쪽에서 아라크네아가 공격해온 것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화내지들 마시고. 형은 제대로 프란츠 교황국과의 동맹에 성공했어요. 이제부터는 닐나르 제국에도 아라크네아에도 겁먹을 필요가 사라졌어요."
로랑은 그렇게 고하며 제후들을 달래려 했다.
"그래서, 다음은 프란츠 교황국의 건방진 녀석들의 말대로 되는 겁니까. 닐나르 제국을 따르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지나 않으면 좋겠군요."
"프란츠 교황국도 결국은 오만한 대국 아니오. 자신들이야말로 신의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던데. 교황한테 거금을 쥐어주지 않으면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니, 빛의 신은 그 정도까지 속 좁은 신인 것일지."
로랑의 설득도 허무하게, 제후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프란츠 교황국은 좋은 동맹국이 될 거라구요. 틀림없어요."
로랑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도 프란츠 교황국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로란 경. 솔직히 말해보시게. 프란츠 교황국과의 동맹은 정답이었나? 당신의 형은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한 제후가 진지한 표정으로 로랑에게 물어보았다.
"지금은 판단할 수 없네요. 저로서는 샤론 공을 탄핵한 것이 실패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국난의 시기에 지도자가 바뀌는 건 큰 문제라고 생각하구요. 형인 로렌 공이 샤론 공 같은 지휘력을 발휘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로랑은 세자르의 탄핵에 반대했었다.
세자르의 말대로 아라크네아와 동맹했다면 지금쯤 이런 전투를 되풀이할 필요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 참. 어쨌든 우리들은 로렌 공의 배에 타고 말았다. 타버린 이상, 배가 잠기지 않도록 할 수밖에 없지."
로랑의 고백을 들으면서, 한 제후가 한숨을 지었다.
"그래. 우리의 손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로렌 공한테 반발하는 귀족을 끝장내고 영지를 불태운 탓에 우리의 손은 새빨갛게 물들고 말았어. 이것만은 기도해도 어찌할 수 없겠지."
여기 있는 제후군도 레오폴드의 명령으로 반항하는 귀족을 처형해 온 한패였다. 슈트라우트 공국의 단결을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그들은 반항하는 제후들을 교수형에 처하고 영지를 잿더미로 바꿔버렸다.
"보고! 보고!"
제후들이 대화하던 때,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적 괴물을 포착했습니다! 수는 50! 서쪽으로 향하여 도주!"
"왔는가! 실력을 보여줄 때로구나!"전령의 외침에, 제후들이 일어섰다.
"잠깐만요. 함정일지도 모르잖아요."
"여기서 안 싸우면 언제 싸우라는 말인가. 프란츠 교황국이 제아무리 동맹국이라 해도 우리나라를 지키는 건 우리다. 우리가 싸워서 우리나라를 지켜내야만, 프란츠 교황국도 우리의 독립에 경의를 표하지 않겠는가!"
로랑이 말리지만 소용없었다.
다혈질의 제후들은 여태까지의 복수라는 것처럼 병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향했다. 기병 1600, 보병 15만이 제후군은 서쪽으로 사라졌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로랑이 제후군의 괴멸 소식을 들은 것은 이틀 후였으며, 그는 동쪽을 향해 남은 제후군을 이끌고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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