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71 산옥 - 아수라 후편(1)
    2022년 09월 14일 14시 58분 3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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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estar.jp/novels/22241232/viewer?page=1581 

     

     

     

     준비가 끝났다고 해서, 타카츠키 일행이 방을 나선 것은 5분 전의 일이다.

     

     안내된 마도식 승강기에는, 현재 타카츠키, 마린, 시시도, 시스터 마린이 올라가 있다.

     

     엘리베이터가 상승을 시작한 지 이미 20분 남짓.

     아직도 목적지에 도달할 기색이 없다.

     

     애초에 타카츠키가 조금 전까지 있던 방은 최상층이었다.

     상승에 따른 중력의 압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이 엘리베이터도 결코 느리지는 않을 터. 그만큼이나 울리던 전투음도 안 들리게 되었다. 어쨌든, 이미 협회가 공식으로 공개한 위치보다 아득히 높은 장소라는 것은 틀림없다.

     

     아직도 마린이 타카츠키를 어떻게 이용할 셈인지는 모른다. 모르지만, 대성군이 못된 짓을 꾸미는 것은 확실하다. 본래 자신의 몸도 아끼지 않고 틈을 보아 날뛰고 싶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대체, 어느 틈에......'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타카츠키는 손목에 떠오른 수갑 문양의 술식을 바라보았다.

     

     어느 타이밍에 걸었는지 방을 나서는 순간 떠오른 이 술식은, 현재 타카츠키의 마력, 완력, 일부 신경까지 봉쇄해서는 여러 행동을 제한하고 있다. 이래서는 시간 벌이도 못한다.

     

     다즈몬드가 사라졌다고 해서, 마린이 틈을 보일 기색은 없다. 옆에는 시시도도 있다. 그리고 현재의 타카츠키의 전투력은 일반인보다도 못하다. 힘으로 어찌 될 상황이 아님은 싫어도 느끼고 있다.

     

     뭔가 방법은 없을까.

     

     해답이 나오기보다 먼저, 승강기의 문이 천천히 열린다. 나와보니 이상할 정도로 넓은 대광장이 나왔다. 천장에서 바닥에 이르는 모든 면이 검은 색이어서 크기를 재기 어렵지만, 야구나 축구가 가능한 정도로는 넓다.

     

     천장, 바닥, 벽면에는 파란 선이 내달리고 있는데, 그 전부가 방의 중앙으로 모이고 있다. 그것은 옅게 빛나면서 맥동하여, 왠지 혈관과 비슷한 생물적인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다.

     

     방의 중앙에는 긴 상자 같은 것이 놓여있는데, 그걸 에워싸는 것처럼 십 여명의 검은 옷의 노인들이 서 있다. 단번에 타카츠키 일행에게 시선이 모인 것은, 멀리서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여긴....어디지...."

     지금까지 안내받았던 방과는 확연하게 이질적인 분위기에, 타카츠키는 무거운 어조로 마린에게 물어보았다.

     

     "견문의 탑의 최상층. 이곳에서 위는 옥외야. 높이는 아마 400km 정도. 중력은 술식으로 조절하고 있어서, 감각은 지상과 다름없겠지만."

     담담히 대답하는 마린이었지만, 타카츠키는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고도에 내심 경악하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도망칠 곳은 없다는 것과 같다.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은 없을까.

     타카츠키가 해답이 없는 문제에 골머리를 썩이면서 걸어가자, 이윽고 중앙에 있는 상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 관이다. 그것이 제단 같은 것에 올려져 있다.

     어째선지, 관을 시야에 담은 것만으로도 묘하게 기분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런 기묘한 감각에 당황하고 있자, 한 노인이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늦었구려, 류마린."

     "그래그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

     마린은 미안해하는 기색 없이, 노인들의 정면으로 걸어갔다.

     잘 보니 본 적이 있는 얼굴들이 모여있다. 마법협회의 최고 의사결정기관, 원로원의 중진들이 모인 것이다.

     

     "바니키스 회장과 연락이 안 돼. 그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의관 중 한 명ㅡㅡㅡ주름이 깊은 노인에게, 마린은 매우 단적으로 대답했다.

     

     "그 사람은 별이 되었어."

     

     "알기 쉽게 말해."

     "거의 죽었어."

     상대하던 일동이 술렁거린다.

     그 보고는 적대하던 타카츠키도 마찬가지로 충격이었다.

     

     "바보 같은, 무슨 뜻이냐!?"

     

     "아니, 샤리아 양과 싸웠으니까 그야 죽는 게 당연하지. 오히려 왜 1대 1로 싸웠는지... 아무리 용머리가 호위해주고 있다 해도, 그렇게나 종가가 미웠던 걸까나."

     "다른 자들은 뭘 하고 있었나!? 회장을 지키는 것이 너희 임무 아닌가!!"

     "아니아니 몰라몰라."

     

     전장에 나온 것은 바니키스고, 손대지 말라고 말한 것도 바니키스다. 그 정도로 샤리아와의 악연이 깊었던 모양이다. 실력차도 신경 쓰지 않고 전투에 임하다니, 자신의 힘을 과신했다고만 생각된다.

     

     "우리들은 그런 쪽은 관계없으니까 책임 떠넘기지 마."

     아무래도 마린은 제대로 상대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태연한 얼굴로 손을 휘적거리며, 조금 전부터 내쫓는 듯한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설마 회장이..."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하지만 회장의 자리가 비었다면, 또 여러 가지 논의가 필요하겠구려."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노인들의 대화를, 마린은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타카츠키가 반항해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마린이, 여기 오고 나서는 왠지 실망하는 모습인 것은 기분 탓일까. 옆에 서 있는 시시도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회장의 공석 문제는 나중에 정하기로 하고, 지상에 온 마술사들은 아직 진정되지 않았는가?"

     "모모야마다 가문을 필두로 지원군이 왔으니 조금 더 걸릴 거라 생각해."

     그 말에 가장 빨리 반응한 것은 전 원로의원 중에서는 비교적 젊은ㅡㅡㅡ그렇다 해도 60대 중반 정도의ㅡㅡㅡ통통하고 너구리 같은 얼굴의 남자였다.

     

     "그, 그 상태로 의식을 시작해도 괜찮을까?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그 녀석들을 완전히 침묵시키려면 제1봉인 정도는 풀지 않으면 무리겠죠. 느긋하게 있으면 전 세계에서 적이 올 테니..."

     대성군의 적은 꼭 지상에 와 있는 부대만이 아니다.

     잇신사이가 이끄는 원정대는 톱 수준이 틀림없지만, 전 세계 각 지부의 혼란이 잦아들면 더욱 많은 군세가 견문의 탑으로 밀어닥칠 것이다. 대성군이라 해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계도 사토 소스케가 구멍을 해버렸으니까~... 애초에 구출 부대가 프랑스에 도착한 것 자체가 예상 밖이었다고나 할까.... 뭐 조금 칭찬이라고 하면 칭찬이지만... 밑에는 아직 크롬 왕언니랑 할아버지 둘, 그리고 로긴스도 있으니 괜찮을 거야. 애초에 거리가 너무 머니 의식은 방해받지 않을 거라 생각해."

     

     그 네 명이 있으면 밑은 안전하다. 

     

     "알았으니 다즈몬즈를 보내 다즈몬드를! 그 녀석은 지금 뭘 하고 있나!?"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해. 농화를 모으느라 밤을 새워서."

     

     "웃기지 마!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라고 생각하는 거냐!? 두들겨 깨워!"

     

     "직접 본인한테 말하지 그래?"

     마린의 그 한 마디에 못 견디겠는지, 여태까지 방관하고 있던 자들도 함께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뭐냐 그 말투는!"
     "이쪽이 부드럽게 대해주니 기어오르기는!"
     "대체 우리가 여태까지 대성군에 얼마나 투자했다고 생각을ㅡㅡ"

     

     "저기~"

     

     마린 치고는 무기질한 그 말이, 타카츠키의 고막에 들러붙는 것처럼 메아리쳤다.

     순간.

     눈도 안 깜빡였는데, 마린의 안드로이드들이 모든 의관의 목에 흉기를 들이밀고 있었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마린은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의원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서, 귓가에서 속삭이듯이 이렇게 말했다.

     

     "대성군과 원로원은 어디까지나 대등한 관계인 건 알고 있어? 제일 제대로 된 마술사인 회장도 죽었으니, 너무 큰소리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그 말에 따르듯, 안드로이드 중 1체가 노인의 피부의 표층을 나이프로 슬쩍 어루만졌다.

     노인의 얼굴에 조금씩 푸른 기운이 감돈다.

     그 반응에 다소나마 가슴이 후련해졌지만, 마린은 다시 평소의 어조로 표정을 느긋하게 바꾸고는 타카츠키 일행 쪽을 돌아보았다.

     

     "그럼 0호. 슬슬 시작하니 그거 꺼내 그거."

     

     "네, 마스터."

     

     시스터 마린은 억양 없이 대답하고는, 휴대하고 있던 트렁크 케이스를 발로 열었다. 그곳에는 작은 랜턴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곳곳에 녹이 슬어서 오래되어 보이는 그것은, 내부에서 뭔가가 빛나고 있다.

     

     타카츠키로서는 처음 보는 도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랜턴의 안에 뭐가 있는지 눈치챘다.

     

     "...크롬이 말했던 것은, 이건가.........."

     "아니, 그 사람은 '씨'를 붙이는 편이 좋아 타카츠키 군. 진짜루."

     "대체, 어디서 이것을..."

     "찾으면 있는 법이야."

     씩씩하게 대답하는 마린이지만, 그럴 리가 없다.

     왜 '이것'이, 믿기 어려운 밀도로 보관되어 있나.

     아니, 다르다.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이것은ㅡㅡㅡ누구의 농화지?"

     정신 차리자 이마에 땀이 샘솟고 있었다.

     분가라 해도 몸에 흐르는 피가 눈앞의 것이 뭔지 알려주고 있다.

     초대 천위 마술사, 오르키스가 찾아낸 지옥의 업화.

     그 자손들만 쓸 수 있는 [공간소각술식-농화]가, 이 랜턴에 담겨있다.

     

     "얼레? 모르겠어?"

     의외라는 듯 묻는 마린의 말도 제대로 귀에 안 들어온다.

     

     "오르키스의 화염 이외에는~ 봉인의 겉표면도 부술 수 없으니까. 방계라고는 해도, 너 역시 육왕의 피를 잇고 있잖아?"

     

     "이것은, 내게 쓰게 하려는 게 목적인가..."

     

     "맞아. 특급마술사인 케텔보다 널 붙잡는 편이 훨씬 쉬우니까. 뭐, 아저씨한테는 그다지 다르지 않겠지만, 나중의 구속이라던가는 내가 귀찮으니..."

     아침식사 때 들었던 크롬의 말을 되새겨본다. 타카츠키를 붙잡은 것은 농화의 제어를 위해서라고 말했었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위협의 앞에서, 타카츠키가 더욱 강한 각오를 다지고 반항의 의사를 다진 그때.

     

     타카츠키의 눈앞에, 못 보던 여자가 서 있었다.

     

     "............앗."

     

     누구지.

     언제 나타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모르는 얼굴ㅡㅡㅡ은 아니다.

     긴 장발을 드리운 그 여자는, 하필이면 타카츠키의 부인, 타카츠키 후우카의 얼굴을 하고 있다.

     

     "너~ 그리운 냄새가 나네."

     그 여자는 후우카와 완전히 같은 얼굴로, 하지만 다른 어조로 속삭였다.

     

     "재의 냄새다."

     문득,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빨려 드는 것처럼.

     칠흑에 물들고, 어두운 눈물을 흘리는 두 눈알이 타카츠키를 바라본다.

     

     순간, 닭살이 돋아났다.

     호흡은 거칠고, 시야가 붉게 물든다.

     단번에 분출된 땀이 턱을 거쳐 바닥에 떨어진다.

     무릎이 꺾이고, 타카츠키의 몸은 그대로 지면에 빨려 들었다.

     

     "...컥....!?"

     위장에서 솟구치는 구토감에, 타카츠키는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어......잠깐, 뭐야 뭐야? 괜찮아?"

     

     웅크린 마린한테는 딱히 아무 이변도 보이지 않는다.

     시시도도, 의관들도.

     지금 것을 인식한 것은, 과연 자신만이었을까.

     의식이 혼탁해서 사고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지금의 환영은 관에서 나왔다.

     방금, 무엇을 보았지.

     무엇을 보게 되었나.

     

     "중요한 의식 전인데 왜 그래? 물 마실래?"

     "너희..........들은......"

     혀가 잘 돌아가지 않지만, 타카츠키는 필사적으로 말을 쥐어짜냈다.

     

     "왜? 역시 물 마시고 싶어?"

     "너희들은 저걸로......!"

     "잠깐 기다려. 아~ 지금 물 있나 없나...."

     "너희들은 저걸로... 뭘 할 셈이냐!?"

     

     "저기 0호, 물 없어?"

     [리얼 골드(콜라)라면 있습니다]

     "타카츠키 군 리얼 골드라면 있는데 어쩔래?"

     "됐으니 대답해!!"

     "아...그렇구나......"

     마린은 관과 타카츠키를 교대로 바라보더니, 짐작이 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는 자극이 너무 강했겠네. 미안 미안. 다음은 목띠로 조종할 테니 이제 안심해."

     마린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메마른 소리를 울리자, 타카츠키의 손등에 검은 개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걸 기점으로 사슬형 문양이 타카츠키의 온몸에 휘감겼다.

     

     폭왕의 목띠를 거는 건, 생각해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그렇게 안 한 것이 이상할 정도다. 애초에, 지금의 타카츠키한테 저항하려는 생각은 송두리째 뽑혀나간 상태지만.

     

     "시시도..........."

     그럼에도. 이제 소용없다고 알고 있어도, 물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너는... 자기가 무엇을 도와주고 있는지, 정말 알고 있는 거냐...!?"

     "뭐?"

     

     여기서 이름을 불릴 거라 생각 못했는지, 시시도가 땅에 엎어진 타카츠키를 내려다보면서 언짢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내 걱정을 해서 무슨 소용이지. 적어도 난 마린보다 이전부터 대성군에 있었다. 이 녀석들이 뭘 하려는지는 한참 전에ㅡㅡㅡ"

     그때.

     두둑. 하는 둔탁한 소리가 시시도의 대사를 가로막았다.

     그 소리를 끝으로 타카츠키는 움직임을 멈췄다.

     때린 것은 마린의 손날.

     생각보다 위험한 소리를 낸 마린은, 겸연쩍은 얼굴로 시시도에게 눈길을 주었다.

     

     "이런......잘못 쳤나...? 약하게 칠 생각이었는데......."

     "....그 정도로 어떻게 될 녀석이 아냐. 그보다 빨리 그거나 넘겨."

     그러자 마린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은검을 시시도에게 건넸다.

     

     "자 성건. 그렇게는 말해도 뒤죽박죽이니까 진짜로 취급에 조심해야 돼."

     "알고 있어."

     손에 든 간이성건을 칼집에서 빼내고는, 도신을 확인하려는 듯 손가락으로 만졌다. 아나스타샤한테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제 전투에는 못 쓴다. 그리고 호수의 정령과의 링크도 끊겼다. 그래서 이것은 의식을 위해 한번 휘두를뿐이다. 타카츠키가 신수를 속박하는 감옥에 불을 지피면, 다음에는 시시도가 관의 열쇠를 열 차례다. 실패는 용서되지 않는다.

     

     "그런데 마린. 우토 미즈키는 아직 살아 있어?"

     

     "뭐? 왜? 누군데?"

     낯선 이름에, 마린은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토 젠이치로의 가족이 왔다는 건 보고에 있었을 텐데."

     

     "아~ 뭔가 그런 애도 있었지 ."

     

     솔직히 마린으로서는 사소한 일이었다.

     

     "듣기로 아저씨 쪽의 우토가 신병을 회수해왔다고 아까 연락했었어. 아직 무사하지 않을까?"

     "그런가."

     

     "어라? 시시도 군 그런 꼬맹이가 취향?"

     "그럴 리가 있겠어..."

     

     시시도는 혀를 차면서 납득하고는, 공허한 눈으로 일어서는 타카츠키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야야...."

     

     어둠 속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손목을 가볍게 흔들어 오른팔의 저릿함을 가시게 한다.

     정면에서 얻어맞은 것은 30초 전의 이야기.

     이가라시 겐조와의 공방 도중에 쇠망치질을 정면에서 막아낸 결과, 나는 공기와의 마찰로 작렬하면서 대지에 낙하하였고, 그대로 운석 같은 기세로 지하 깊숙이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솔직히 타격을 방어한 것만으로도 이런 결과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정도로 이가라시 겐조의 타격은 무거웠다.

     

     "엿........차."

     구멍에서 기어올라서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 내려다보는 이가라시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 모습에는 그 어떠한 외상도 없다. 아니, 뼈가 부러졌거나 내장이 관통되기는 했었지만 곧장 재생해버린단 말이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적들은 죄다 즉시 재생해버리는 녀석들이었다.

     

     나도 재생능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껏해야 시간을 들여서 접골을 하는 정도다. 나메크성인이라면 "크억!!" 으로 끝날 상처도 내게는 중상이 된다.

     

     대책을 강구할 틈도 없이, 이가라시가 땅에 내려섰다. 숲의 나무들은 다 날아가서 황야가 되어버렸지만, 다행히 주위에는 사람의 기척이 없다. 여기라면 일단 평범하게 싸우기에 문제없어 보인다.

     

     "왜 그러나? 움직임이 빈틈투성이인데."

     이가라시의 면도칼처럼 날카롭게 연마된 투기가, 나의 피부를 어루만진다.

     

     내 움직임이 빈틈 투성이라기보다는, 이가라시가 조금 전보다 파워업 했다고 말하는 편이 올바르다. 흘러나오는 마력이 확실히 늘어났으며, 근육도 칸다타처럼 되어있다.

     

     아마, 떨어진 장소에서 지장보살과 대치하는 빅토르가 더욱 몇 체 쓰러트린 모양이다. 싸우기 시작할 무렵과는 이미 다른 차원의 존재로 보아도 좋다.

     

     이 수준의 전투가 되면 역시 나도 각오를 다져야만 하겠다.

     

     "네놈이라면, 오랜만에 이몸의 실력을 버틸 거라 생각했다만....."

     마치 불평을 늘어놓는 것처럼, 이가라시가 낙담한 표정으로 눈을 깔았다. 자세를 풀고는 있지만, 살기는 나를 향한 그대로다.

     

     어떤 상태든, 이 녀석과의 싸움에선 항상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아 보인다.

     

     "뭐, 이 정도인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가라시의 두 눈이 날 바라본다.

     다음 순간, 아무 전조도 없이 떨어져 있던 이가라시가 내 눈앞으로 몸을 날렸다. 바람 소리조차 안 나는 보법은 그것 자체가 예술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빠르다.

     그보다도 기척의 너무 희박해서 움직임을 읽기 어렵다.

     라이카의 돌진과 귀신의 전이보다도 예측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육박해온 이가라시가 유려한 동작으로 내 소매를 붙잡았다. 단지 붙잡은 것이 아닌, 그것만으로도 매우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내 공간 자체를 제압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

     아마도 [공간장악].

     공간을 뭔가의 힘으로 직접 붙잡고 있다.

     

     붙잡으려 드는 다른 쪽 손바닥을 팔꿈치로 쳐내고는, 그대로 소매를 잡고 있는 손을 손날로 절단한다. 베어버린 이가라시의 팔의 단면은, 마치 도자기처럼 무기질 한 질감이었다. 혈관과 근섬유, 뼈가 전혀 안 보인다. 뭐야 이거.

     

     지장보살과 동화된 뒤로 눈에 띄게 인간을 벗어나고 있다.

     

     체내에서 추가의 마력을 끌어내서, 그 모든 것을 오른팔에 수렴시킨다.

     

     노리는 것은 심장. 이가라시 겐조의 거체를 두른 장벽 채로 급소를 꿰뚫는다. 원래는 뇌를 파괴해서 일시적으로 의식을 앗아가고 싶지만 목부터 위는 특히나 방어가 단단하다. 지금 시점에서 내가 효과적인 대미지를 입힐 장소는 이곳밖에 없다.

     

     "업련소작대창."

     칠흑의 마력을 두른 나의 중단찌르기는, 그러나 이가라시의 글러브처럼 두터운 손바닥에 가로막혔다. 해방되어야 할 마력은 아주 조금만 이가라시의 손틈에서 분출되는 것에 끝났으며, 그 위력의 대부분을 손바닥에 흡수당했다.

     

     "이 정도인가?"

     

     따분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는 이가라시.

     하지만 여기까지는 예상한 일.

     공격을 막을 때 아주 약간 불안정해지는 자세를 노렸던 것이다.

     

     방어가 성공해서 생긴 찰나의 이완을 노려, 약간 벌어진 오른다리에 다리를 돌려 쓸어버린다.

     

     이가라시에 거체가 기운다. 한손은 아직 이가라시에게 잡힌 그대로지만, 지금의 자세에서 팰 수 있는 만큼 패자. 한 호흡 쉴만한 틈만 있으면 충분하다.

     

     "팔천련소작대포."

     그 자리에서 다리를 멈추고는, 전력의 연타를 이가라시의 온몸을 향해 자아낸다.

     도핑이 없는 한손 치기는 이것이 한계다.

     그대로 움직이지 마.

     너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게 들려줘.

     

     "ㅡㅡㅡ"

     

     구타의 감옥의 앞에서도, 이가라시는 자세를 고치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뭐지 이 위화감은.

     

     뭐라고나 할까, 내 주먹은 결코 이가라시에게 닿지 않는다.

     정신차려보니 내 움직임이 정체되어 있다.

     아니, 정확히는 천천히 움직이고는 있다.

     배경 전부가 엄청나게 느려졌다.

     대기 중의 먼지가 확실히 인식될 정도로,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자세를 고친 이가라시가, 내 눈앞에서 완만한 동작으로 양손바닥을 마주쳤다.

     

     완만하다기에는, 그 움직임은 스로우 모션의 영향을 안 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 녀석만 태연히 움직이는 걸 보면, 이 현상은 이가라시의 능력에 의한 것인가.

     애초에 어느 틈에 새로운 팔이 돋아난 거지.

     

     "금강계 - 점겁(点劫)."

     마언과 함께, 이가라시의 등에 거대한 술식이 구축되어간다. 원형과 사각형이 중첩된 금색의 마법진은 순식간에 시야를 뒤덮더니, 이윽고 이 전치 전체를 삼켜버렸다.

     

     이거, 왠지 전에 본 적이 있다.

     이 감각, 시공간 왜곡에 의한 시간 지연인가.

     

     바보 같은, 말도 안 돼.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겐사이나 메리 노트일 터.

     이것도 지장보살의 힘인가.

     마음먹은 대로 공간에 간섭하다니, 오오모리 씨에 견줄만한 범용성을 자랑하는 능력ㅡㅡㅡ그야말로 신의 힘이잖아.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다.

     왜 공간파쇄술식의 사용자인 나의 공간까지 간섭하고 있는 거지.

     

     어쨌든 이대로는 위험하다.

     초조함이 가속하는 와중, 이가라시가 조용하게, 하지만 굳센 동작으로 양손을 중단에 들었다.

     

     "삼천종앵-철위성종(鉄囲星鐘)."

     이미 전개해놓은 금색의 술식에, 곡선과 직선이 백겹 천겹 중첩되어 기하학 문양을 그린다.

     내 머리가 본격적인 위험을 알리고 있다.

     

     큰일 났다.

     저건 정말 위험해.

     

     "팔천진(八天震)."

     물 흐르는 듯 내지르는 손바닥.

     직격 당하기보다 빨리 칠흑의 마력을 온몸에 둘러서, 내 주위에 있는 금색의 술식을 불태운다. 

     

     공간을 뒤흔드는 나의 주먹은 악마 같은 속도로 가속하여, 어떻게든 이가라시의 공격에 맞서는 타이밍으로 재시동.

     

     주먹과 손바닥이 충돌한 순간, 주위의 대지가 통째로 소멸했다.

     

     "크ㅡㅡㅡㅡㅡ윽!?"

     

     뼛속까지 둔한 아픔이 달린다.

     고막 안쪽까지 울리는 무거운 금속음.

     주먹이 부딪힐 때마다 재해급의 진동이 천지를 뒤덮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가라시의 타격음은 종소리와 흡사하다.

     

     날카롭게 내지르는 장타의 하나하나가 나의 연사를 모조리 소멸시킨다. 마치 날벌레와 먼지라도 내쫓는 것처럼 손바닥을 거듭 휘두르는 모습은, 살육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태연한 모습이다.

     

     그리고ㅡㅡㅡ

     

     "ㅡㅡㅡ윽.......하아..."

     서로의 공방이 끝을 맞이할 즈음에는, 주위의 대지에 몇몇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다.

     충돌의 에너지에 의해 녹아버린 지반이 용암이 되어 우리의 발치에서 붉게 흐르고, 싱그러웠던 숲은 지옥 같은 광경으로 변모하였다.

     

     ".........네놈의 1000이 나의 1이라는 것인가."

     

     이가라시가 마그마 속을 유유히 걸어 나가며, 목뼈를 꺾는다.

     

     녀석의 말대로, 내가 내지른 연타는 총 8발이었다. 이가라시의 손바닥은 공간 채로 나의 공격을 허물었고, 파문이 퍼지는 것 같은 묘한 타격으로 8천 번의 구타의 기세로 전부 봉쇄시킨 것이다.

     

     "날벌레 무리와도 같은 볼품없는 기술이다. 움직임에 위력도 줄었구먼. 그 계집들을 신경 쓰는 겐가?"

     

     조소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가라시.

     

     켄쨩 일행의 현재 위치는 우려사항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가라시 겐조의 실력은 경이로웠다.

     

     "방금 전의 그것은 더 못 꺼내나? 설마 그 정도로 로긴스가 죽었을 리는 없겠지."

     

     이쪽은 아직 모든 손패를 보일 수는 없다.

     생각 없이 전력을 낼 수 없는 이상, 지금의 시점에서는 큰 기술은 피해야 한다.

     이대로 최소한의 공방만으로 이가라시의 버릇과 약점을 알아내어, 이때다 싶을 때를 위해 준비를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다.

     

     "침묵인가."

     이가라시는 실망한 얼굴로 한 마디 더.

     

     "뭐 좋다. 겁쟁이의 머리를 따는 것도 또한 여흥."

     시팔 말했겠다 이 새끼.

     그렇게나 필살기를 보고 싶다면 보여주마.

     

     그 자리에서 가볍게 도약하여, 이가라시와 나를 연결하는 최단거리를 직선으로 내달린다.

     

     주먹에 검은 불꽃을 지피고서, 팔의 회전을 한계까지 이끌어낸다.

     자아내는 것은 [일만오천련소작대포].

     시간의 흐름을 조작하든 안 하든 그것까지 불태운다.

     이대로 지옥까지 일직선으로 떨어트려주마.

     

     "십오천진."

     

     데엥~

     새해의 시작에 듣던 종소리가 공기를 진동시킨다.

     마치 이 세계 자체를 뒤흔드는 듯한 대진동에, 내보낸 마력탄이 송두리째 상쇄되었다.

     

     이거다.

     녀석 또한 나와 비슷한 계통의 기술을 지니고 있다.

     그것도 위력이 종이 한 장 차이다.

     파괴장으로 방어했음에도 적잖은 진동이 뼛속까지 울린다.

     

     하지만 연타 자체는 접근하기 위한 연막.

     이렇게 육박하는 일 자체가 본래의 목적이다.

     

     연타 후의 경직을 캐치하여, 이가라시의 안면을 재빠르게 움켜쥔다.

     내장은 아무리 쳐도 효과가 적다.

     그렇다 해도 안면은 장벽이 너무 단단해서 공격이 안 통한다.

     그렇다면, 그 장벽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허작대포."

     팡, 하는 작고 둔탁한 소리가 난다.

     내부에 직접 내보낸 파괴의 마력에 의해, 이가라시의 안면이 조금 부풀었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눈에 띄게 효과가 적다.

     내부까지도 전과는 다르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것은 나로서도 예상했다.

     여기서부터 또 이어나간다.

     이가라시의 내부라면 로긴스의 결계 내와 비슷한 공간일 터.

     전력의 초작으로 이가라시의 뇌를 불태운다.

     

     "업련초작대포."

     이가라시의 안면이 폭발한다.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검은 화염이 분출되며, 남은 마력이 주위의 대지를 불태운다.

     백스텝으로 후퇴하면서, 나는 불길에 휩싸인 이가라시에 천천히 초점을 맞췄다.

     들어갔다.

     꿰뚫기는 섬세한 기술이기 때문에 병용을 아직 못한다.

     이것이 지금의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위력의 침투경이다.

     

     연기가 조금 걷히자, 그곳에는 머리가 죽을 정도로 부풀어 오른 이상한 생물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뭔가 싶었지만 잘 보니 이가라시였다.

     

     거의 2등신의 캐릭터 같은 상태가 되어버린 이가라시였지만, 부풀어오른 얼굴은 차츰 원래 사이즈로 축소. 끝내 파열하는 일 없이 자력으로 폭파의 충격을 견뎌내고 말았다.

     

     이걸로도 안 되나.

     어떻게 하면 죽는 거지 이 녀석.

     

     하지만 역시 지금 것은 통했는지, 이가라시는 고통의 표정으로 머리를 누르고는 왠지 비틀거리는 다리로 휘청거렸다.

     

     "...지금 것으로 날 죽이려면, 앞으로 천 발은 필요할 것이야."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는다.

     

     "각오해라, 망할 아귀 녀석."

     연기가 완전히 걷히자, 이가라시의 팔이 3개가 되어있었다. 

     

     "어?"

     

     오른팔 하나, 왼팔 둘.

     밸런스가 나빠 보인다는 감상이 먼저 나왔지만,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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