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Theater 4 과거-격정/현생+절망 scene 3
    2022년 03월 24일 03시 27분 4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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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0230fu/25/

     

     

     

     지방 촬영이라고 해도, 반드시 숙박을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전생에서는 밤을 새워서 촬영하거나 숙박하거나 하며 장시간 촬영했었지만, 지금은 영업규칙인가 뭔가 때문에 어른은 몰라도 아역 배우의 촬영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들은 남고, 아역들은 일시귀가라는 식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아역의 부모와는 다르게, 린과 쥬리아와 미미의 부모는 배우거나 아나운서 이거나 카메라맨이라서 스케줄을 쉽게 비울 수 없다.

     

     

     그런 고로.

     

     

     "밤에는 아사시로 사츠키 님, 요루하타 마오 님, 유우가오 테츠 님, 그리고 안주인님이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코하루 씨의 설명이 귀에 들리는지 마는지, 나를 포함한 어린애 네 명은 이을 떠억 벌리며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베이지 색의 벽과 기둥처럼 뻗어있는 장식.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높은 벽에는 사각형 창문이 줄지어 있고, 시선을 올려보면 푸른 지붕이 시야에 날아든다.

     

     "3대 전의 소라호시 당주께서 메이지 30년 경(1919년)에 본 자코비안 양식[각주:1]의 건축에 매우 감명을 받고 외국인 건축사한테 의뢰해서 메이지 35년에 완공한 호시소라 고유의 저택입니다. 박물관의 것 정도는 아니지만, 유지보수는 완벽합니다. 부디 편하게 지내시기를. 그리고 안주인님한테서 전언을 맡아놓았습니다."

     

     코하루 씨는 평소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고 우리한테 설명해줬다. 

     

     "대단해......"

     "츠, 츠구미쨩, 집까지 대단했네. ㅡㅡ결점, 없네."

     "무슨 말 하는 거야 미미. 츠구미는 틀딱 같다고."

     "린쨩 그거 날조니까 그만하지 그래?"

     

     최소한의 짐만 있었던 우리를 위해, 칫솔 등의 생활용품도 코하루 씨가 준비해준 모양이다. 고용인도 배치해놓아서 웬만한 일은 다 된다고 한다.

     코하루 씨의 안내에 따라 저택에 들어간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바꿔 신는 형식인 모양이다. 해외의 손님이라면 신발 위에 슬리퍼를 신겠네.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을 지나서, 방의 장소를 파악하며 짐을 놓는다. 넷이서 같은 침대다. 배선도 끌어왔느지, 콘센트가 있다. 린은 바로 휴대전화의 충전을 해두는 모양이다. 나는 그, 거의 안 쓰니까 줄지 않아서.

     

     "아, 오빠도 근처에서 촬영한다."

     "그랬어? 코우 군도 부를래?"

     "아니, 됐어. 호텔에 머문대."

     

     근처라고 말했지만, 린의 휴대전화이 화면에 표시되어 있는 지도를 보면 산 하나를 넘는 느낌이었다. 다만 위치상으로는 여기와 촬영지까지 거리와 별반 차이 없다.

     

     "흥, 오빠는 입이 더럽다고."

     "뭔가 말했는데?'

     "자."

     

     그렇게 린이 보여준 화면에는, 레인의 채팅 내역이 표시되어있었다.

     

     

     

     『오빠. 츠구미랑 같이 근처에 있는데, 함께 잘 거야?』

     『자겠냐 바보!』

     『이해가 안 되네. 츠구미가 있는데도?』

     『그게 어째서. 난 이미 ○○호텔에 방 잡아놨어』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함께였구나. 츠구미보다 아버지를 고른 거네』

     『기분 나쁜 표현하지 말라고 멍청아!!』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린이지만, 음, 이건 린이 나쁘다고 생각해......

     

     "둘 다, 짐 정리했어~?"

     

     둘이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 신변의 물품을 척척 정리하고는 미미의 짐 정리까지 도와준 쥬리아가 말을 걸었다. 활발한 이미지였지만 꽤 가정적이구나.

     

     "끝나면 연기 연습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아, 그, 그거라면 쥬리아쨩, 내, 내가ㅡㅡ"

     "응, 알았어. 바로 끝낼게!"

     "ㅡㅡ아."

     

     린의 손을 이끌어 재빨리 정리해나간다. 그렇게 하자, 쥬리아한테 연기 연습의 부탁을 받아서 대답한 것이지만, 대답이 미미와 겹치고 말했다. 동시에 말해도 10명까지 라면 들을 수 있는 하이스펙 보디입니다.

     

     "미미도 같이 할래?"

     "엥, 아, 나, 나, 나는."

     "아니, 항상 미미한테 어울리게 했으니까, 오늘은 츠구미면 돼."

     "근데, 뭐 하는 거야 쥬리아쨩?"

     "아무것도~"

     

     평소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중재하려고 하는 미미와, 삐진 듯한 쥬리아. 뭐 확실히 미미한테는 민폐를 끼치기 어렵지만, 나한테는 끼치기 쉽다는 말이겠지. 뭐라 말해도 난 쥬리아의 라이벌이니까.

     아니 아니 정리하고 있던 린도 연기 연습이라는 말을 듣고 눈을 빛낸다. 그 후로 정말 조잡한 손놀림으로 던지는 듯이 짐을 정리하고서, 기민한 움직임으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찍어줄 사람이 필요해."

     "스마트 폰의 삼각대가 있으니까 필요 없어."

     "엥......엥......?"

     "알았어 알았다고. 미미랑 둘이서 견학하면 되잖아."

     "어쩔 수 없네. 가자, 미미."

     "으, 응."

     

     문을 열자, 그곳에는 순정 메이드복을 입은 코하루 씨가 서 있었다. 호위도 경힘하고 있다는 듯한 말을 아버지가 해줬으니, 문 앞에서 경계해준 것이리라. 고개가 수그러진다.

     코하루 씨한테 연기 연습을 하고 싶다고 고하자, 그녀는 항상 그랬듯이 귓가의 통신기로 어딘가에 연락을 취했다. 그 행동을, 아이들 세 명은 입을 떠억 벌리며 올려다보았다. 응응, 그렇겠지. 이해해. 드라마 같은걸.

     

     "ㅡㅡ그럼, 썬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네."

     

     썬룸이란, 저택 안에서 햇빛을 받으며 느긋이 쉬는 방이다.

     우리들은 썬룸 중앙에 있는 긴 의자에 나눠 앉았고, 거기서 연기의 연습을 했다.

     

     "대본의 여기 말인데."

     "응응."

     

     꽤 이전의 장면이다. 미즈호(미미)가 괴롭힘의 중심이 된 지 조금 지났을 무렵, 히이라기 리리(나)와 적대관계인 아카리(쥬리아)가 괴롭히는 측에 선 것으로 괴로워하는 카에데(린)을 도와주려고 한다.

     리리는 카에데를 도와줄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쥬리아에게 "동료가 된다면 카에데는 괴롭히지 않고 풀어줄게." 라고 말한다. 이 푸어주는 상대에 미즈호는 포함되어있지 않다. 당연히 쥬리아는 그걸 눈치챘지만, 그럼에도 카에데를 구할 수단이 따로 떠오르지 않아서 괴로워했었지.

     그래서, 이 장면은 악이 되는 것을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리리의 말을 거절하는 부분이다. 극 중에서 아카리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며, 히이라기 리리로서는 첫 패배를 맛보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기가?"

     "응. 왜 고민하는 거지? 그걸 잘 모르겠어. 리리는 나쁜 아이니까, 너와의 약속 따윈 필요없어! 라고 하면 되잖아?"

     "음~ 그렇게 말하면, 아카리는 정의의 아군인데도 거짓말을 해버리는걸?"

     "그렇구나~ 하지만, 나쁜 아이, 나쁜 아이라~"

     

     이건 혹시, '나쁜 아이'인 자신을 상상할 수 없는 걸까? 그거라면 방법은 있다고 생각한다.

     

     "린은 알겠어?"

     "모른다!"

     "뭐, 린은 그렇겠네. 미미는?"

     "아, 저기, 저기, 그."

     "응, 무리한 말해서 미안했어. 그럼, 츠구미."

     "나쁜 아이였던 경우를 해보면 어때?"

     "뭐?"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먼저 '이 제안을 거절하면, 아니면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나?' 라는 상상을 해봄으로써,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아' 라는 마음이 움직인다.

     이것은 거절하는 흐름으로 이어져서, 성장이라고 말할 정도의 파워 있는 장면이다. 그 정도의 반발심이 있어도 좋지는 않을까?

     

     "나쁜 아이의 연기를 해보고,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면 착한 아이의 연기도 할 수 있지 않겠어?"

     "음~ 그래도, 나쁜 아이, 나쁜 아이라~"

     "그냥 연습인걸?"

     "그렇구나~ 음, 연습이라면 좋을지도. 응, 역시 내 라이벌이구나!"

     

     아무래도 알아준 모양이다. 그럼 이제는 애드립으로 연기해보자. 베이스는 대본대로.

     그럼, 이번에도 스위치는 가볍게. 완전 승리의 히이라기 리리는 본편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여기서만의 팬픽션이다.

     

     "그럼 씬ㅡㅡ액션!"

     

     린의 호령, 부드럽게 스며드는 히이라기 리리라는 악의의 물. 그 교활하고도 순진무구한 악의에 부추겨지는 것처럼, 나는 아카리의 볼에 손을 댄다.

     

     

     "카에데를 구하고 싶다면, 내 친구가 되면 돼."

     

     

     무릎을 약간 굽혀서, 시중드는 것처럼 아카리를 올려다본다. 동공이 조금 열려서 동요가 시점을 흐려지는 것을 보자, 독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 기뻤다.

     

     

     "무슨, 말하는 거야. 내가 미나호를 배신할 거라, 생각한 거냐!?"

     "하지만 그렇게 하면, 카에데는 놓아줄게. 괴롭히지도 않을게."

     "구두약속이잖아."

     

     

     고개를 숙여서 내 시선에서 도망치려 한다. 귀여운 아이.

     

     

     "그래. 하지만 거짓말이었다면 네가 말리면 되잖아."

     "그, 건."

     "사실이었다면, 카에데가 풀려날 뿐이야. 간단하지?"

     

     

     원래라면, 여기서 아카리는 거절한다. 위험성이 많아서 어리석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히이라기 리리를 패배시킨 일인 무엇보다 그녀의 힘이 된다.

     ㅡㅡ하지만, 그것은 지금과는 관계없는 이야기.

     

     

     "정말로, 카에데를 구해주는 거냐?'

     "그래, 물론."

     "알, 았어. 네, 친구가, 될게."

     "후후, 후후후후후, 아핫ㅡㅡ그럼, 증명해야겠네?"

     "무엇, 을?"

     

     

     창가로 다가가서, 장미를 한송이 고른다. 강조를 위해 장식된 하얀 장미다. 어린애가 만져도 다치지 않게 배려된, 가시 없는 장미다. 아름다운, 장미.

     

     

     "장미의 꽃말을 알고 있니?"

     "? 아니. 몰라."

     "빨강은 '정열', '희망', '사랑'."

     "하양, 은?"

     

     

     입가에 댄다. 그것의 의미를 새기는 것처럼.

     

     

     "순결."

     

     

     더럽지 않은 하양. 더러움이 없는 순백. 청순, 또는 순결. 장미의 저편에서 보는 아카리는, 달빛에 비친 수면처럼 희게 일렁이고 있다.

     

     

     "짓밟아."

     "윽."

     "악의로, 폭력으로, 아픔으로, 힘으로, 증오로ㅡㅡ쾌락으로, 짓밟아."

     

     

     내민 장미를, 아카리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든다. 장미를 든 손을 들어 올리고 눈을 꾹 감은 뒤, 입술로 소리 없이 자아낸 대사는ㅡㅡ타락의 증거.

     

     

     "미안."

     

     

     내동댕이 친 장미가, 지면에 닿자 꽃잎이 흩어진다. 내 말이 새겨졌을 것이다. 짓밟고, 짓밟아서 새하얀 꽃잎이 더러워지고 부서질 때마다, 그녀의 얼굴을 쾌락으로 일그러진다.

     

     즐거워. 즐거워. 즐거워. 즐거워.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아아,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나, 하얀 것이 검정으로 물드는 일이 즐거울까?

     

     

     "뭉개져, 뭉개져, 뭉개져, 뭉개져!!"

     "후, 후후, 아하, 아하하하하ㅡㅡ"

     "크흐, 하하하, 뭉개져, 뭉개져, 뭉개져엇!!"

     "히, 하, 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핫!!"

     

     

     텅 빈 눈으로 웃음소리를 내는 아카리의 발밑에서, 더럽고 찢겨진 꽃잎을 한 장 주워 든다.

     

     

     "자, 이제부터 계속 함께야. 내 친구."

     

     

     더러워진 꽃잎에 입을 맞추자ㅡㅡ마비될 것만 같은 쾌락의 맛이 났다.

     

     

     "ㅡㅡ컷!"

     

     

     ㅡㅡ린의 말에 돌아온다. 쥬리아가 정말 좋은 연기를 선보이는 바람에, 무심코 스위치를 깊이 넣고 말았다.

     쥬리아도 아직 되돌아오지 못한 모양이라서, 망연자실하게 흩어진 장미를 바라보고 있다. 역할에 몰입한 탓에 주저 않고 장미를 짓밟고 만 것이지만...... 나중에 부모님과 코하루 씨한테 사과하자. 꽃한테 나쁜 짓을 하고 말았다.

     

     "쥬리아쨩, 어때?"

     "ㅡㅡ나......어, 라......?"

     "쥬리아쨩?"

     "아아, 응. 왠지, 알았을지도."

     

     쥬리아는 고개를 흔들고는, 그렇구나, 그렇구나라며 곱씹듯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아앗, 장미!"

     "응, 장미는 치워야겠네."

     ""아니, 으으, 미안. 확실히 이건ㅡㅡ나쁜 아이야."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쥬리아한테, 응, 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렇구나,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하면 되는 거구나."

     "맞아."

     "그래서 좋은 아이가 되는 거고."

     

     쥬리아는 되새기는 것처럼 중얼거리고 있다.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이미지를 명확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 대단해. 정말로 해결해버렸어."

     "응. 맞아. 나의 츠구미는 대단해."

     

     린쨩, 내가 언제부터 네 것이 되었는데?

     

     "정말, 해결했구나! 고마워, 츠구미!"

     "난 대단한 일은 하지 않았어."

     "그렇지 않다고? 그리고 왠지, 츠구미가 하는 '나쁜 아이'의 연기, 꽤 재미있ㅡㅡ"

     

     ㅡㅡ처음에는, 무거운 것이라도 떨어졌나 생각했다. 팡, 하고 커다란 소리가 나자 어깨가 들썩인다. 돌아보니, 문을 열고 여기를 노려보는 여성ㅡㅡ쥬리아의 어머니, 사츠키 씨다.

     난 무심코, 카사바 사라의 흔적을 더듬어보려는 듯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화장으로 희미해진 팔자주름, 들어 올려진 눈꼬리에 잡힌 주름. 세월을 거듭한 흔적은 제대로 새겨져 있지만, 그 똑바른 자세와 긴장으로 굳어버린 얼굴은, 틀림없이 사라의 것이었다.

     

     "ㅡㅡ어머니?"

     "그렇게나 말했는데. 무슨 속셈이니? 쥬리아!"

     "아, 아냐. 연습으로."

     "연습? 나쁜 아이의 연습이라도 하고 있었니!? 그런 일, 언제, 이 엄마가 허락했어!?"

     "저, 저, 는."

     

     검막. 노호성. 감싸려고 맡에 나선 미미가, 떨어진 꽃잎을 날려버릴 기세의 노호성에 놀라 숨어버렸다. 겁먹은 미미를 눈치챘지만, 그럼에도 쥬리아를 혼내는 기세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ㅡㅡ그래서 나는, 잠깐 생겨난 의식의 틈새를 누비고 앞으로 나섰다.

     

     "저기, 죄송합니다! 제가 어울리게 했어요!"

     "그래. 나쁜 친구가 생긴 거네?"

     "아, 아냐, 츠구미는 라이벌이지, 나쁜 아이가ㅡㅡ"

     "그럼, 네가 나쁜 아이가 된 걸까? 대답해, 쥬리아."

     

     자기 어머니의 말에, 놀라서 눈을 부릅뜨는 쥬리아. 쥬리아는 괴로운 듯 가슴을 부둥켜안고,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며ㅡㅡ눈물을 한 방울 떨구고 달려갔다.

     

     "!!"

     "잠깐, 쥬리아쨩ㅡㅡ꺄악."

     "와앗!? 어, 어린애!?"

     

     달리던 내게 부딪히는 사람. 모르는 남자 목소리. 틈새를 누비고 달려가서 앗 하는 사이에 사라진 쥬리아. 내 다리라면 쫓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쫓아갈 수밖에 없어!

     

     "잠깐만, 부탁이야, 쥬리아쨩!"

     

     내디뎠지만, 힘의 계측을 잘못했다. 발을 헛디뎌서 쓰러지자, 시야가 양탄자로 가득해졌다.

     

     '부딪혀......!'

     "어이쿠, 위험! 너, 무사해!?"

     

     조금만 더 있으면 부딪히려는 차에, 내 몸이 공중에 떴다. 조금 전의 모르는 목소리의 남자가 내 허리를 감싸 도와준 것이다. 수염 난 얼굴의 남성. 얼굴은 사격형이고 다부지지만, 작고 둥근 눈은 부드러운 어른 남자다.

     

     "도대체 왜 그래?"

     "아, 아버지!?"

     "미미! 무슨 일이 일어났지!?"

     

     몸을 일으켜서, 이제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복도를 멍하니 바라본다.

     

     "츠구미 님."

     "......코하루 씨."

     "바깥에는 나갈 수 없도록 손써두었습니다. 고용인이 찾기 시작했으니, 지금은 안으로."

     "네."

     

     툭툭, 하며 땅을 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빗소리는 내 실의를 흘려주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못했던 나를 비웃는 것처럼, 창에 비친 나의 볼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빗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1. 제임스 1세(1603~1625) 치세를 중심으로 한 영국 17세기 초의 건축 양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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