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8. 잉크
    2021년 11월 26일 20시 49분 13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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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60/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괜찮아?]

     

     "뭐가?"

     

     흰 곰 너머의 에르나한테서 의문이 날아든다.

     

     [그..... 언니는 로이 오라버님과 약혼했잖아......?]

     

     "그랬지."

     

     [것 봐~ 왜 그런 식이야~!?]

     

     "뭐??"

     

     내 반응에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이유를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아가씨가 바뀌었다, 만나러 오기는 하는데, 호위인 반장이나 포치를 방패로 세우고 말하는 것이다.

     

     [그..... 껄끄럽게 되거나 하지 않았어!?]

     

     "조금 전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자크는, 언니를 소중히 생각잖아?]

     

     "무슨 당연한 말을."

     

     에룬스트 공작가의 하인들 중에, 아가씨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녀석은 없다. 바로 대답하자, 그렇지 않다면서 에르나가 화냈다.

     

     [그러니까, 다른 여자들보다 특별하게 귀엽게 보인다던가......]

     

     "아가씨는 미소녀니까 귀엽잖아."

     

     [그렇긴 하지만, 만일 언니 수준의 미소녀가 그 외에도 있다고 치고!]

     

     "미소녀라면 너도 그런데, 눈부시니까 싫어."

     

     [이쪽도 이자크는 사절이야!]

     

     "그보다, 아가씨 정도로 귀여운 여자가 그렇게 있을까?"

     

     [언니의 아름다움에 당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외모도 내면도 완벽하다고 에르나가 호언장담한 뒤, 분한 듯 신음소리를 내었다.

     

     [큭...... 언니가 미소녀만 아니었어도......!!]

     

     이 녀석 뭘 하고 싶었던 거냐.

     결국 에르나는 내가 바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그날은 바보를 연호하며 밤이 깊어갔다.

     

     

     이튿날, 휴일이어서 메르켈 교회의 고아원을 방문했다.

     시즌오프 때문에 내려간 아니카 님을 대신해, 고아원의 아이들이 받은 과제의 진척만 확인했다. 이른바 방학숙제다.

     

     "자크~ 이거 뭐라고 읽어?"

     

     "아, 이건......"

     

     읽지 못하는 단어가 신경쓰여서 다음을 못 읽는 아이들에게 의미를 가르쳐주자,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마력을 측정하고 싶은데 신부님은 언제 시간이 나나요?"

     

     신부님은 회중시계를 꺼내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마침 시간이 있으니, 지금부터 받을까요?"

     

     "부탁드릴게요."

     

     내가 알겠다고 하자, 신부님은 교회의 예배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시조의 목상의 아래에 있는 연단까지 가자, 신부님은 내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옆에 있는 문으로 빠져나갔다. 조금 지나자 양피지 두루마리 7권을 한 팔로 품고, 또 한쪽에는 작은 것 몇 가지를 갖고 왔다.

     신부님은 연단의 위에 들고 온 것을 두었다.

     

     "이자크 군의 속성은 뭐지요?"

     

     "물입니다."

     

     "그럼, 이것이군요."

     

     신부님은 양피지 중 하나를 펼쳤다.

     백지라고 생각했던 양피지는, 아래쪽 중앙에 직경 5cm 정도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이 부근에 이름을 써보십시오."

     

     "예."

     

     신부님이 가리킨 양피지 아랫 부분에 풀네임을 썼다.

     이름을 다 쓰자, 신부님은 작은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꺼냈는데 그것은 침이었다. 침 끝의 반대쪽은 실이 지나가는 구멍이 아닌 금속 장식이 달려있어서, 가봉 바늘처럼 생겼다.

     

     "검지손가락을 찔러서, 피가 조금 나오면 이 마법진에 손가락을 대십시오."

     

     "알겠습니다."

     

     신부님의 지시에, 나는 건네받은 침으로 검지 손가락을 찔렀다. 피가 배어 나오자, 손끝을 양피지의 마법진이 있는 부분에 대었다.

     그러자 마법진의 잉크가 번지더니, 나무가 급속히 성장하는 것처럼 뻗어나갔다.

     

     "그대로 멈출 때까지 놓지 말아주십시오."

     

     조금 지나자 잉크의 나무는 성장을 멈췄고, 가로수에서 자주 보던 나무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양피지의 세로 높이의 절반 정도. 내 마력량은 이 정도라는 것인가.

     

     "이제 손을 떼어도 괜찮아요."

     

     신부님은 양피지를 들고 잉크의 나무를 바라본 뒤, 그걸 말아서는 끈으로 다시 묶었다. 그리고 내 쪽을 보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어떤 마법을 쓸 수 있는지 보여주시겠습니까?"

     

     가능한 범위면 된다고 신부님이 덧붙였다.

     

     "음......"

     

     일단 마력으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물을 만들어서 공중에 띄웠다.

     

     "제 마력량으로는 이 정도밖에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미 있는 물을 포함에 조금 조작할 수 있는 정도고......"

     

     말하면서, 덩어리였던 물을 안개 상태로 만들고는 구름도 만들고 도넛 모양도 만들었다.

     수속성 마법은 충분하겠지 싶어서, 일단 마법을 해제하고는 바람의 마력을 손바닥에 모았다.

     

     "바람의 새는 이 크기 정도밖에 못 만들어서, 물건을 옮길 수는 없습니다."

     

     참새 크기의 새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둠의 장막은 친다 해도 기척을 줄이는 정도밖에 못하구요."

     

     바람의 새를 곧장 해제하고 흑마법으로 전환한다. 사람 앞에서는 처음 써보지만, 이미 다 들킨 상태에서 이 장막을 써도 효과가 있을지.

     

     "불은 몇 초 동안 켜는 정도고, 빛은 시험해보아도 조금 따스하게 빛날 뿐이죠."

     

     어둠의 장막을 해제하고, 손끝에 마력을 집중시키자 양초에 불이 붙은 것처럼 불이 몇 초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빛 속성 마법은 너무 희귀해서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일단 이름대로 빛나게 해 보았지만, 반딧불처럼 희미하게 은은하게 빛내는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까지 보여주고, 남은 속성은 보여주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전기는 정전기가 한순간 파직 거릴 뿐이라서 하고 싶지 않아. 토속성은 지질을 읽을 수는 있지만 산성이냐 알칼리성이냐 정도만 읽을 수 있다.

     

     "....... 신부님?"

     

     신부님 쪽을 바라보자, 조금 전까지의 미소가 사라지고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 

     

     "............ 저기, 주문의 영창은?"

     

     "엥. 정령이 도와주고 있어서, 없어도 괜찮아요."

     

     "다른 속성을 쓸 수 있는지 시험했습니까......?"

     

     "예. 적성 속성보다 어느 정도나 안 맞나 생각해서요."

     

     "이자크군의 마력량은 평범하지만, 속성 이외까지 쓸 수 있는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측정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시즌 오프가 끝나고 아가씨의 가족이 공작령에서 돌아오자, 가을에 접어들었다.

     

     "역시 이자크도 화속성을 못 다루는 건가."

     

     "그래. 힘들어서 그다지 쓰고 싶지 않아."

     

     벨은 요즘, 속성 내성 이외의 마법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를 실험해보고 있다고 한다.

     

     "나도 화속성만큼은 잘 못써서..... 레미아스가 바보처럼 써댄 인상이 강해서 그렇겠지만."

     

     "그럴지도."

     

     문득 시선을 느껴서 옆을 보자, 정자 내측에 달린 벤치에 앉은 아가씨가 불만스럽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즐거워 보이네요."

     

     "재미없었어?"

     

     "재미없지, 는...... 두 사람만 잘 모르는 대화를 하고 있어서....."

     

     아가씨는 마술 쪽 이야기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뇌속성이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신경 못써서 미안했어."

     

     옅은 금발을 쓰다듬으며 사과하자, 아가씨는 볼을 붉히며 다시 화냈다.

     

     "그, 그런 일로 얼버무려도...... 애들 취급하지 마세요......!"

     

     "에엥."

     

     아가씨도 이제 열 살이니, 머리를 쓰다듬으면 애들 취급한다고 느끼는 걸까.

     어떻게 사과할까 생각하다 방한복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을 떠올려서, 그걸 꺼내고는 아가씨에게 내밀었다.

     

     "미안."

     

     "이건.....장미?"

     

     황색 장미로 보이는 것을 보자, 아가씨는 눈을 부릅떴다.

     

     "은행잎으로 만들었어. 오래가지 않아서 건네줄지 말지 고민했지만......"

     

     "이자크는 손재주가 좋구나."

     

     "떨어지는 은행잎을 꽃다발처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서 해보았어."

     

     감탄하는 벨에게,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은행잎 다발을 받아 든 아가씨의 반응이 없다.

     

     "...... 어째서, 이걸 제게 주는 건가요?"

     

     "내가 노란 장미를 좋아해서."

     

     나의 대답에, 아가씨는 눈을 휘둥그레 한 뒤 미소 지었다.

     

     "그런가요, 자크가 좋아하는 것을 제게......"

     

     아가씨의 중얼거림은 잘 들을 수 없었지만, 기뻐해 준 모양이다.

     

     "소중히 할게요."

     

     "엥, 하지만."

     

     "꽃도 언젠가 시드는걸요. 잎이 시드는 게 어쨌다고요."

     

     "아가씨, 멋진데~"

     

     아가씨는 눈썹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되나요......"

     

     영문을 모르겠다고 아가씨의 표정에 쓰여 있다.

     

     "아가씨, 올해의 생일선물은 무지개면 괜찮겠어?"

     

     "괜찮지만...... 왜요? 갑자기."

     

     "밤의 무지개, 보여준다고 약속했었잖아."

     

     더 자라면 보여준다는 약속을, 과연 아가씨는 기억하고 있을까.

     

     "......."

     

     "광원이 적은 밤에 무지개라니 무슨 원리냐?"

     

     아가씨가 뭔가를 말하기보다 먼저, 벨이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질문했다.

     

     "나도......"

     

     "안 돼요."

     

     "안 돼."

     

     나와 아가씨는 거의 동시에 벨의 부탁을 거절했다.

     

     "레오의 약혼녀의 집에 벨이 밤늦게 있으면, 좋지 않다고."

     

     "아...... 그랬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레오가 구실을 만들어 준 덕분이라고 떠올린 벨은, 기가 죽어서는 경솔했다며 사과했다.

     

     "똑같을, 리가 없겠지요....."

     

     그때의 나는, 적어도 원리만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벨의 대응을 하느라 아가씨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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