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색2021년 11월 25일 23시 21분 2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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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오너라~!"
석양이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 거드름 피우는 목소리가 에룬스트 저택의 정면 현관에 울려 퍼진다.
목소리의 주인을 맞이한 류디아는, 현관문을 닫고서 약간 얼굴을 실룩대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다.
"...... 예레미아스 님, 그렇게 소리치지 않으셔도, 눈앞의 제게 닿는데요."
"전하의 선물을 전달하러 왔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로이한테서 맡아온 한 송이의 가을 장미를 꺼내 들었다.
"오늘은 꽃이 그대로네요."
"그래, 뭉개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전에는 왔을 때는, 장미를 꺼내들 때 너무 기세 좋게 휘두르는 바람에 꽃잎이 전부 날아가버렸던 것이다. 이번에는 꽃잎이 무사한 모양이다.
"모처럼 와주셨는데, 차라도......"
"아니, 전하를 따르는 형태가 아니고서야 약혼녀 공의 저택에 들어갈 수는 없는 법. 조금 정원을 보여주게 한다면 충분하다만."
"그럼, 안내해드릴게요."
"감사한다!"
여기까지가 매번 나누는 문답이다.
정자에는 선객이 있었는데, 안쪽의 벤치에 걸터앉아서 류디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크, 피곤한 차에 미안해요."
"아니, 이젠 돌아갈 뿐이니까. 그리고 아가씨가 사과할 일이 아니잖아."
견습정원사 소년은, 핼쭉 웃고는 류디아의 사과를 사양했다.
"어때, 오늘은 흩어지지 않았다고!"
"불합격."
이전, 예레미아스는 꽃의 배달에 실패했기 때문에, 견습 정원사 소년에게 대화할 가치가 없다며 상대해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꽃의 상태를 유지했으니 괜찮을 거라 확신했지만, 실눈을 뜬 그에게서는 쌀쌀맞은 대답이 돌아왔다.
"어째서!?"
"살리기 쉬운 길이였지만, 네가 너무 강하게 움켜쥐어서 짧게 잘라야만 돼. 가시를 빼지 않았다면 네 손이 부상을 입었을 거라고."
설명하면서, 견습정원사 소년은 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내 들고는, 예레미아스가 쥐고 있는 부분보다 윗부분의 줄기를 비스듬히 잘랐다. 그리고 포장지로 다시 싸서는 류디아에게 돌려줬다. 원래는 살아있는 동안 조금씩 잘라서 오래 유지하는 것이라고 그는 가르쳐주었다.
"레미아스, 전력으로 하면 다 되는 게 아니라고."
"무슨 일에도 전력으로 임하는 게 뭐가 나빠."
"실제로, 꽃이 두 송이나 못쓰게 되었잖아."
"꽃이 너무 약했을 뿐이다!"
"그거, 부녀자와 노약자 상대로 말할 수 있어? 기사를 목표로 한다고 했지. 지켜야 할 대상이 약하다고 해서 마구 부상을 입혀도 될까?"
예레미아스는 대답을 못한 채,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게 꽃 부분은 지켰으니 성장했네."
"다음번에는 이긴다!"
그렇게 선언하고서, "안녕이다."라고 말한 예레미아스는 발걸음을 돌려 돌아갔다.
"도대체 무엇의 승부인가요??"
"글쎄?"
정자에 남겨진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본다.
"자크는 민폐가 안 되나요?"
"아니, 꼬맹이들과 놀아주는 느낌이라서, 조금 그리워."
"그립다니요?"
"꼬맹이들도 슬슬 집안일을 돕게 되어서, 얼굴은 보지만 그다지 놀 수 없게 되었어."
이제 꼬맹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다며, 견습정원사 소년은 웃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아가씨의 얼굴 보는 것도 기쁘고."
"!?"
류디아는 자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크는 왜 매번......!!"
질타의 대사는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젠 됐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소년은 "또 보자."라고 말하며 귀갓길에 접어들었다.
1주일 후, 다음은 베른하르트의 순서였기 때문에 탈없이 서쪽의 정자까지 안내되었다.
사자를 연상시키는 난잡한 길이의 진홍색 머리카락과 야수를 연상시키는 예리한 녹색 눈동자가 거친 인상을 주지만, 사실 몸가짐이 침착하고 예의 바른 소년이다.
"그래서. 오늘의 질문은 뭔데?"
견습정원사 소년이, 베른하르트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무영창으로 마법을 쓰려는 생각을 했어?"
"주문을 외우는 것이 부끄러워서."
바로 대답했다. 대답의 내용을 들은 베른하르트와 류디아는 눈을 휘둥그레 하였다.
"부끄러워......?"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의 베른하르트가 복창하며 확인한다.
"주문은 평소에 안 쓰이는 단어가 많잖아. 그런 근지러운 거, 말하든 말하지 않든, 왠지 부끄러워."
"후훗, 그런 것을 신경 썼던 거네요."
류디아는 무심코 작게 웃고 말았다.
"딱히 상관없잖아."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흠, 참고가 되었다. 고마워. 그래, 전에 들었던 공물 말인데, 나도 해보았더니 마력 발동의 부담이 조금 줄어들었다! 계속한다면 이자크처럼 마력 소모 없이 발동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 경과의 관찰이 정말 기대돼! 그렇게 하면, 여태까지 도전하지 못했던 마법에도......"
"진정해."
베른하르트의 머리 위에, 소년이 손을 얹는다.
"미, 미안......"
"아니, 상관없어. 벨은 마법의 일만 되면 눈에 띄게 열성적으로 변하네."
베른하르트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자조 섞인 말을 내뱉었다.
"어울리지, 않지?"
자신도 외면과 내면이 다른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수속성인데도, 내게는 파란색이 어울리는 요소가 어디에도 없어. 어머니가 싫은 건 아니지만, 물려받은 이 외모만큼은 정말 불편해."
"푸른색이 아니어도 되잖아."
소년은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파랑은 수속성의 상징이라고."
베른하르트는 무심코 눈썹을 찌푸렸다.
"그야, 수국이나 마석으로 색깔의 이미지는 있지만 말이야. 지금, 여기는 어딜 보아도 파랗지 않다고."
그의 말을 따라, 베른하르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저녁이어서, 온 세상이 저녁노을로 물들어있다.
"전부, 벨과 똑같은 색이잖아."
소년의 말에, 베른하르트는 눈을 부릅떴다.
물은 무색투명하다. 받아들이는 빛의 반사로 색깔이 바뀌는 것이다.
"....... 그, 런가. 그렇구나."
그 말대로라며, 베른하르트는 다 털어버린 듯 웃었다.
"그리고, 남자는 어머니와 비슷하면 행복해진다고 하니, 벨은 행운이네."
"그런 법인가."
"난 처음 벨과 레미아스를 보았을 때, 성격이 뒤바뀐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왠지 포인세티아 같아서 재밌네."
"그 붉은 꽃이?"
겨울이 다가오는 이 시기에 피는 커다란 붉은 꽃을 예로 들자, 베른하르트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붉은 부분은 사실 꽃잎이 아니라, '포'라고 하는 잎이야. 꽃은 중앙의 작고 노란 것이고."
"그랬구나."
"잎이 너무 화려해서, 귀여운 꽃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야. 하지만 아는 녀석은 꽃을 볼 때마다 바라보게 돼. 벨의 주변에는 그렇게 좋은 녀석들만 있지 않아?"
"맞아. 사교성이 낮은 내게는 이 외모가 딱 좋을지도 몰라."
자신이 눈치채지 못해도, 상대가 알아서 장점을 골라내 주는 것이다.
"오늘은 정말 좋은 참고가 되었다. 고맙다."
새로운 시점을 얻어서, 베른하르트는 만족스레 웃었다. 그리고 "그럼 나중에."라고 인사하고서 그 자리를 떠났다. 떠나는 베른하르트의 표정은 후련한 것이었다.
"서민의 의견이 그렇게 참고가 될 리 없잖아."
소년의 말을 듣고, 류디아는 실눈을 떴다.
"....... 자크, 눈치채지 못했나요?"
"뭐가?"
"베른하르트 님, 기뻐했어요."
"그래. 정말 마법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모르고 있잖아요....."
그가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일까. 첫 번째의 니콜라우스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의도였지만, 이번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는 솔직한 생각을 내비쳤을 뿐이었다.
그것을 그는 모르고 있다.
또 1주일 후, 이번에는 1개월 만에 로이가 방문했다.
"오랜만이구나, 류디아 양."
"네, 로이 님을 만나 뵙는 것을 고대하였답니다. 그들은 소란스러워서 진정이 안 되었거든요."
"그거 미안하게 되었군. 내게 가능한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만."
"귀중한 장미를 갖다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리고 전하의 친구라고는 해도 남자한테 화풀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요."
"그런가. 그럼, 아우구스트 후작 영애들로 치유하는 게 어떤가."
"그럴 셈이에요."
그렇지만 그녀들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냥 함께 별것 아닌 대화를 하며 웃고 떠들면 그걸로 괜찮다.
"류디아 양이 다른 영애들과 친해서 다행이다."
"갑자기, 무슨 말씀인가요......!?"
"갑자기가 아니다. 여자의 질투는 무섭다고 들었다만."
로이의 한 마디로, 류디아는 그의 우려를 이해했다.
이 나라의 제1왕자인 로이의 약혼녀가 된 류디아는, 또래의 여자들에게서는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다.
그의 약혼녀인 류디아에게 스스럼없는 관계인 친구가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걱정은 필요 없어요."
류디아가 갑자기 미소 짓자, 로이는 밀랍 색 눈동자를 부드럽게 하였다.
"그런가. 비팅 백작 영애와 파이트 백작 영애도, 가문의 격 이상으로 높은 교양을 지녔다고 들었다. 류디아 양은 정말 사랑받고 있군."
"그, 그건, 다른 분들이 노력한 결과예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노력 아닌가. 역시, 사랑받고 있음이 분명해."
류디아는 그 이상 반론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로이의 방문에서 며칠 후, 기대하고 있던 친구들과의 다과회는 에룬스트 가문에서 이루어졌다. 류디아의 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꽃병에 꽂힌 가을 장미에 자스키아가 눈길을 주었다.
"와, 한송이 한송이가 크고 아름답네요. 색깔도 고급진데, 디아 님의 정원에서 핀 것인가요?"
"아....... 저건 로이 님께서 선물해주신 거라서요."
장미를 선물 받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 도르데리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예레미아스 님이 잘도 무사히 꽃을 갖다 줬네요."
"도르데 님은, 예레미아스 님을 아시나요?"
"네. 가끔 아버지께 대들어서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려서요."
엉뚱한 이야기에, 슈테파니에와 자스키아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류디아는 그럴 법하다면서 시선을 약간 돌렸다.
"나이가 같아서 그런지, 어느 사이에 오빠의 친구가 되었더라고요."
못 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거리고, 도르데리제는 홍차와 함께 나온 케이크를 한입 먹었다.
"음~ 기사단장은 붉은 머리의 아저씨...... 였지요? 그렇다는 말은, 왕자 전하와 자주 함께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예레미아스 님인가요?"
기억을 더듬으면서 슈테파니에가 말한다.
"반대예요. 붉은 머리카락이 예레미아스 님이에요."
그녀의 인식을, 자스키아가 수정했다.
"어, 하지만......"
"무예의 슈타덴 후작과의 지식의 르케부쉬 후작가는, 왕명으로 교우를 다지기 위해 제각각의 영애가 상대의 집에 시집을 갔어요. 그래서 예레미아스 님의 어머니는 르케부쉬 가문 분이고, 베른하르트 님의 어머니는 슈타덴 가문의 분이지요."
"제각각 가문의 적성 속성이 나타났는데, 두 사람 모두 어머니를 닮아서 바뀐 아이라고 농담으로 언급될 정도랍니다."
"바뀐 아이??"
모르는 단어가 나오자, 슈테파니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질문을 받은 도르데리제가 설명을 보충한다.
"귀족의 자식들이 자주 듣는 동화랍니다. 어느 나라의 왕녀가 사실 태어났을 무렵 정령에 의해 빈곤한 평민 아이랑 뒤바뀌어 버렸는데, 데뷔탕트 때 사실이 드러나서 여태까지 오만하게 지내던 왕녀가 빈민으로 추락하고 말았다는......"
"어머, 정령의 장난 같네요."
비슷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슈테파니에는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거렸다. 이번에는 류디아가 익숙지 않은 단어에 의아해한다.
"그 정령의 장난은 뭔가요?"
"서...... 평민이 잠자리에서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빈곤한 집의 여자아이가 15살 생일이 되자, 사실 정령의 장난으로 뒤바뀌었던 공주님이었다는 것을 알고 성에서 행복하게 지낸다는, 여자아이라면 한 번은 동경하는 이야기지요."
"어머나, 저희들에게는 신분을 믿고 교만해지지 말라는 교훈으로 쓰이는 이야기인데, 평민들은 견해가 다르네요."
"예전에는 동경했었지만...... 지금은 공주님이 되고 싶지는 않네요."
"어째서요?"
슈테파니에가 쓴웃음을 지어서, 류디아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냐면, 지금의 저는 백작 영애로 지내는 것도 힘든데, 15세가 되어서 갑자기 공주님이 되라고 들으면 정말 무리라고요......"
슈테파니에는, 귀족의 세계에 진입하고서 꽤 현실적으로 변한 모양이다.
"분명, 교양을 배우는 것도 가혹하겠죠."
현실적으로 생각해 본 류디아는,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예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입어서 좋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영지의 관리도 힘들어 보이고요."
"영지관리까지는 하지 않을 텐데요......?"
"디아 님은 할아버지와의 편지로 영지관리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말했잖아요. 저도 공부하면 조금은 도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헤르만 님한테서 저희 영지의 일을 배우고 있어요."
"그, 그런 거창할 일은 아닌데요....."
의욕에 찬 슈테파니에의 안광에, 류디아는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
"....... 저도 체잘 님께 배워볼까요."
"게라만 후작령의 일을요?"
자스키아의 중얼거림에 도르데리제가 약혼남의 영지의 일이냐며 묻자, 자스키아는 볼을 붉히며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여러분 덕택에, 푸른 머리가 예레미아스 님이고 붉은 머리가 베른하르트 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감사해요."
이걸로 인사할 때 착각하지 않겠다면서 슈테파니에가 진지하게 말해서, 다른 친구들은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라며 서로 웃었다.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류디아는 포인세티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친구들은 분명 잘 들여다보고 꽃을 눈치채는 쪽의 사람일 것이라며, 마음속으로 자랑스럽게 느끼는 류디아였다.
"이리오너라~!"
며칠이 지나자, 또다시 도전하는 듯한 목소리가 에룬스트 저택의 현관에 울린다.
류디아는 가을 장미를 받아 들고는, 그대로 정자로 안내하였다. 정자의 벤치에서 기다리던 소년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어때!?"
예레미아스는 인사보다 먼저 물어보았다.
"음. 합격."
"그럼, 승부다!"
"안 해."
주먹을 쥔 예레미아스의 도전을, 견습정원사 소년은 즉시 거절했다.
"합격했잖아!?"
"아니, 합격하면 도전을 받는다는 말 안 했는데."
예레미아스는 크으으, 하며 분한 듯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자크는 훈련하고 있잖아. 그런데 왜 안 싸워!?"
"레이아스. 넌 왜 훈련하고 있는데?"
"강해져서 지키기 위함이지!"
"도망치기 위해."
"뭐?"
"나는, 위험한 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훈련해. 그래서 싸우지 않아."
몇 초 지나자, 손녀의 말을 이해한 예레미아스는 들끓어 오르는 듯한 분노를 느꼈다. 이런 연약한 생각을 가진 자에게 도전하려 했었다니.
"겁쟁이잖아!"
"뭐라고 말하든 똑같아."
"흘려들을 수 없네요."
류디아가 견습정원사 소년의 앞에 서서, 하늘색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예레미아스 님이 지향하는 기사의 본분은, 왕국과 민중을 지키는 거잖아요."
"그, 그래."
"적에게 대들기만 해서는 민중을 지킬 수 없어요. 전황에 따라서는 후퇴도 전략이 되잖아요? 위협에 맞설 역량이 부족할 경우에는, 도망친다고 결단을 내리는 것도 용기가 아닐까요!?"
"으......."
기사단장인 아버지에게 혼났을 때와 비슷한 말을 듣자, 예레미아스는 기가 죽었다.
"저기, 아가씨, 그런 어려운 말은 하지 않아도......"
"자크는 조용히 하세요."
"예......"
"잘 들어요, 예레미아스 님. 백성이 자기를 방어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예요. 그들까지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기사가 있는 거잖아요!"
"그, 말대로다.....!"
예레미아스는 무릎부터 쓰러지더니, 정자의 돌바닥에 양손을 짚었다.
"지켜야 할 백성에게 나는 무슨 말을...... 이제 이자크에게 도전하겠다는 말은 않겠다!"
"알아주시니 다행이네요."
대화를 지켜보고, 견습정원사 소년은 이걸 하고 싶었던가 하며 납득하였다.
"아. 레미아스는, 왜 그렇게 강해지고 싶어?"
"그건 기사가 되기 위해서......"
"아니, 더 단순하게."
강함을 고집하는 이유는, 예레미아스에게 있어 숨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주먹을 강하게 쥐고 대답했다.
"내 겉모습이 약해보여서다!"
"뭐?"
"아버지처럼 강하지 않아. 근육이 붙어도 옷을 입으면 약하게 보이고, 불을 내어도 어울리지 않다는 말을 들어. 그래서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강함을 손에 넣고 싶은 거다!"
견습정원사 소년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어울리는 푸른 화염을 내면 되지 않겠어? 불도 빨강보다 파랑 쪽이 강한데."
"정말이냐!?"
파랑 쪽이 강하다는 사실에, 예레미아스는 달려들었다.
"분명, 빨강보다 파랑 쪽이 훨씬 온도가 높을...... 거야. 레이아스, 마력이 강하니 낼 수 있지 않을까?"
"좋아, 난 푸른 화염을 낼 수 있게 되겠어!"
새로운 목표가 정해지자, 예레미아스는 곧장 발걸음을 돌렸다.
"푸르게 되면, 이자크한테도 보여줄게. 그럼 안녕이다!"
"잠깐만요!"
예레미아스가 돌아보자, 그곳에는 표정이 사라진 류디아가 서 있었다.
"돌아가시는 것은 자유지만, 자크에게 했던 겁쟁이 발언은 철회해주신 다음에 해주실까요."
"예."
그날, 예레미아스는 미인이 진심으로 화나면 무섭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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