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잔디2021년 11월 25일 20시 02분 2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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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자 햇살이 강해졌다.
오늘은 얀과 정면의 현관 옆의 잡초 제거를 하고 있다.
목에 건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얀이 막 생각난 제안을 하였다.
"형님, 방금 생각났는데, 잔디를 빼곡히 심으면 잡초가 안 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보기 나빠져. 지금의 밀도가 한계야."
"그렇구나."
내가 잔디의 밀도를 올리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자, 얀은 주변을 주욱 둘러보고는 납득했는지 수긍했다.
"그럼, 열심히 해야겠군요!"
"맞아."
나도 의욕을 낸 얀에게 지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생각하며 맞장구쳤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자, 마차가 정문 현관에서 훨씬 앞에 섰다. 마부가 발판을 내리자, 마차의 문이 열린다.
"열심히 하고 있군, 이자크."
처음으로 마차에서 내려온 소년은, 여름의 햇빛을 반사하여 이상하게 눈부신 황금색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켁, 왕자님임까!? 송구스럽슴다."
내가 고개를 숙인 것을 따라서, 얀도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웃으려는 레오보다 먼저, 생소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느 쪽이야, 전하!"
"어이, 전하보다 앞서지 마."
용맹한 목소리와, 그걸 제지하는 목소리. 하지만 제지를 듣지 않은 모양인지 성급한 발걸음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너냐."
"레이어스, 적당히 해."
눈앞의 소년의 뒤통수에, 두꺼운 책이 명중했다. 맞은 소년한테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벨, 뭐 하는 거야! 흉터 나면 어쩌려고!"
"네 돌머리가 그리 간단히 다칠 리가 없잖아. 오히려 내 책 쪽이 걱정이다."
나는 멍하게 두 사람의 대화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소중한 책이면 던지지 말라고."
화내면서 눈썹을 치켜드는 소년의 머리카락은 파랗다.
"내가 말해도 멈추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냉정하게 대답하는 소년의 머리카락은 빨갛다.
외모의 인상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성격이 정반대다.
전대물의 레드와 블루가 뒤바뀐 느낌.
"블루한 레드와 레드한 블루."
"형님, 그게 뭠니까?"
"잠깐 생각났을 뿐이야........ 그래서, 언제 그만두실 건가요."
눈부심을 참으면서 물어보자, 레오는 떠들썩하게 대화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미안, 평소의 일이라서. 예레미아스, 베른하르트, 그 정도로 하는 게 어떤가."
온화한 레오의 말에, 두 사람은 말다툼을 그쳤다.
"로이 님, 도대체 이건 무슨......?"
이 타이밍에, 정면 현관에서 빠르게 다가온 아가씨가 당황하며 물어본다.
"류디아 양, 급하게 예고를 줘서 미안하다. 나의 신하가 그대의 가문의 하인에게 실례를 하고 말았다. 그의 사과를 주게."
아가씨는 레오 일행을 객실로 안내하였고, 나는 밀짚모자와 수건을 메이드에게 맡기고서 가볍게 몸단장을 하고 나서 객실로 향했다. 얀에게는 아버지께 사정을 전해달라고 하였다.
객실에 들어서자, 이미 차를 마시는 레오가 1인용 소파에, 3인용 소파에 소년 두 사람이, 맞은편 소파에는 아가씨가 혼자 앉아있었다. 남은 자리는 아가씨의 옆 정도다.
레오는 방구석에서 마테우스 형과 함께 서 있는 반장에게 시선을 주고는, 그 뒤 아가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에밀리아는 괜찮아요."
"그런가."
아가씨의 대답에 만족한 레오는, 이번에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었다. 격식 차리지 않아도 돼."
".......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았어."
서 있는 것도 뭣해서, 비어있는 아가씨의 옆에 앉는다.
"그는 예레미아스. 내 직속 신하 중 하나다. 전에 기사 놀이를 했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진 모양이라서."
"들었다! 너, 전하와 겨룰 정도로 강하다며."
"뭐? 아니, 매번 지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어서 레오 쪽을 바라보자, 심술궂은 미소가 돌아왔다.
과자를 먹던 푸른 머리가 말한다.
"전하의 말을 들은 레미아스가 그대에게 흥미를 가졌기 때문에 고집을 부려서 오게 되었다. 미안하다."
"벨도 까다로운 거, 이 녀석한테 묻고 싶어서 왔잖아."
"그건......"
"너희들, 적당히 해. 아가씨를 무시하지 마."
"자크."
스스로 이용당한 레오는 제쳐두고, 아가씨를 핑계로 삼은 것은 마음에 안 든다.
"너희들은 아가씨를 만나러 온 왕자를 따라온 거잖아. 그럼 제대로 인사하라고."
"나한테는 화내지 않는군."
"넌 이미 사과해서 아가씨한테 혼났잖아."
"로이 님을 혼내다니 그런 불경한 일은 안 해요! 다만..... 조금만 더 유예를 줬으면 하고 부탁했을 뿐이랍니다.
반론할 셈이었던 아가씨의 말은, 결국 그걸 긍정하는 것이었다.
"네 말대로다. 류디아 님, 죄송합니다!"
"저희들까지 오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두 소년의 사과를 받자, 아가씨는 쓴웃음으로 대답한다.
"예레미아스 님도 베른하르트 님도, 부디 얼굴을 들어주세요."
찌릿하는 전기의 기척을 피부로 느꼈다. 옆의 아가씨를 보자, 번개의 정령의 기척을 두르고 박력 있는 미소를 짓고 있다. 아가씨, 화났네.
푸른 머리는 아가씨의 기백에 잠깐 입을 다물었지만, 곧장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류디아 님의 말대로다. 난 예레미아스 폰 슈타덴. 시비를 걸어 미안했다!"
"아니, 괜찮아. 나는 이자크 바움가르트너. 이 저택의 견습정원사다."
"다음에는 제대로 붙어보자."
""뭐?""
다음의 말을 생각지 못했던 나와 아가씨는, 그의 말에 이해하지 못하여 얼어붙었다.
"강해 보이는 녀석과는 한번 겨뤄봐야지 않겠어?"
그런 말은 강적에게 해줬으면 한다. 나는 일반 서민이라고.
"이자크, 포기하는 편이 좋아. 이 녀석은 이렇게 되면 말을 듣지 않으니. 아, 나는 베른하르트 폰 르케부쉬다."
붉은 머리 쪽이 피곤에 찌든 한숨을 쉬면서, 동정의 말을 내게 건넨다.
"베른....... 으음."
"부르기 어렵다면, 벨이라고 불러."
"벨도 뭔가 묻고 싶은 일이 있다고 방금 이......"
"나는 레미아스로 부르면 돼."
"레미아스가 말했었는데."
"베른하르트 님은 자크에게 무슨 볼일인가요?"
"그건......"
우리들의 시선을 받자, 벨은 겸연쩍은 듯 고개를 숙였다.
"전하께서, 그대가 무영창으로 마법을 쓴다고 들었다. 평민이면서 주문 없이 마법을 쓰는 자는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묻고 싶어서..... 가능하다면 실제로 볼 수 없을까 하고....."
"그거야 상관없지. 하지만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줘야겠어."
"정말!?"
말을 끝내자마자, 벨이 확 고개를 쳐든다.
"평민은 마력량이 적어서 일상적으로 마력을 쓰는 일은 그다지 없다고 들었어. 하지만 그대는 적극적으로 마법을 쓰고, 적성 속성 이외의 것도 쓴다며!? 그쪽의 이야기도 부디 들려줬으면 해. 나도 같은 수속성이니, 마력량의 차이로 비교 검증도 할 수 있어."
"잠깐, 잠깐."
"미....... 미안."
"베른하르트 님은 공부에 열심이라고 들었지만, 마법의 이야기가 나오면 이렇게나 열심히 말하시네요....."
어안이 벙벙한 아가씨가 중얼거린다. 아가씨도 이런 벨은 처음 보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는 두 사람을 알고 있었어?"
"로이 님과 동반으로 갔던 다과회에서 만났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는 인사 정도만 해서, 제대로 대화해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아가씨의 표정을 보고,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고 판단했다.
"음, 난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디겠어. 끝날 때까지 저택 바깥을 뛰어도 될까."
"안 돼. 일단은 전하의 호위도 겸하고 있으니,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
레이아스의 주장에, 곧바로 벨이 반대하였다.
"으음, 그럼 나중에 벨을 연못 쪽으로 와줄 수 있어?"
"알았어요."
작업이 끝나면 내가 마법을 쓰기 쉬운 연못까지 안내를 부탁하자, 아가씨가 승낙해주었다.
"고마워, 아가씨."
"이제 작업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네요."
아가씨가 작업으로 돌아가도록 권유해서 일어섰다.
"그때까지, 류디아 양의 상대는 맡겨달라."
"아니, 넌 아가씨를 만나러 온 거잖아."
지금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레오가 핀트에 어긋난 말을 한다.
내 지적에, 레오는 그렇군, 하며 반짝거리는 미소로 대답했다.
저녁노을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 일을 끝낸 나는 서쪽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에 도착하자, 이미 정자에는 네 명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미안, 기다렸어!?"
"아니, 방금 온 참이다."
편하게 앉은 레오가 그렇게 대답한다.
"그래서, 어떤 마법을 보여줄 건데?"
흥미진진한지 눈을 빛내는 벨이 물어본다.
나는 여기로 온 목적을 떠올리고는, 벨 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기대해도, 난 마력량이 적어서 사소한 것 밖에 못한다고?"
"오히려 그걸 보고 싶다!"
즉시 대답하는 벨을 보고, 나는 무심코 웃었다.
"보잘것없는 서민의 마법을 보고 싶다니 이상한 녀석이네."
목소리에 담긴 웃음기를 숨기지 않은 상태로, 나는 잠들기 시작한 수련이 떠 있는 연못을 향해 양손을 들었다. 연못 표면의 물을 약간 공중에 띄워서, 미세한 물입자로 만든다.
그냥 그걸 공중에 띄워서, 태양이 제대로 반사되도록 조절한다. 정말 그것뿐인 마법이다. 다루는 물의 양도 얼마 안 된다.
하지만, 석양을 반사하여 작은 무지개가 생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무지개를 조금 오래 유지할 뿐의......"
옆의 벨 쪽을 바라보자, 더욱 반짝거리는 눈을 이쪽으로 향하며, 품은 책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대단해, 정말로 무영창으로 쓰다니! 그리고 마력이 적은 만큼 컨트롤의 정밀도가 높아. 무지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은, 입자의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뜻."
"이런 평범한 일은 대단하지......"
"그렇지 않아!"
"그래요!"
내가 부정하려 하자, 벨과 아가씨가 강하게 반론했다. 왜 아가씨까지 열을 내는 거지.
"우리들 귀족은 자신의 마력을 토대로 영창 없이 마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이자크는 도대체 어떻게 발동에 필요한 자원을 준비하는 거지?"
"그거야, 정령한테 돕게 해서......"
"정령이 발동을 보조하고 있단 말이야!? 어떻게!?"
"아니, 그, 마법도 보여줬으니, 난 슬슬 돌아가야......"
"부디, 자세히 가르쳐 줘!"
"그런 것보다, 나랑 승부해라."
아무래도 참다못한 레미아스까지 자기주장을 하고 나섰다.
"베른하르트, 예레미아스."
레오가 이름을 부르자,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류디아 양, 오늘 온 것은 전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서 말이다."
"네...... 뭔가요?"
"이제부터 조금 바빠진다. 그러니 시즌 오프가 시작되면 방문 빈도가 줄어들 거다."
"그런가요."
아가씨는 당황하면서도 맞장구를 친다.
"그래서 말인데, 너희 둘. 바쁜 내 대신 선물을 배달하는 역할을 맡아주지 않겠나?"
""예?""
의도를 알 수 없었던 나와 아가씨는 입을 다물었고, 부탁받은 레미아스와 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받아준다면, 시즌 오프가 끝나고 에룬스트 가문에 정기적으로 올 수 있게 된다."
미소 짓는 레오의 보충설명을 듣고, 두 사람은 뜻을 이해하고서는 눈을 부릅떴다.
"할래!"
"부디."
레미아스와 벨의 대답을 들은 레오는 더욱 미소 지었다. 가을이 되면 소란스러워질 미래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레오, 너, 여동생뿐만 아니라 친구한테도 너그럽구나."
그러자 레오는 허를 찔린듯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
"....... 어, 음."
다시 부르자, 레오는 제정신을 되찾고는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 둘 다 나의 좋은 친구다."
수면의 반사 이상의 반짝임으로, 정말로 기쁜지 레오는 미소를 가득 지었다.
그리고, 나는 작업도구 중 하나인 시력을 잃지는 않을까 하며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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