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7. 봄망초
    2021년 11월 26일 13시 34분 3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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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ncode.syosetu.com/n1313ff/59/

     

     

     

     소녀가 봄의 정원을 가벼운 걸음걸이로 나아간다. 목적의 인물을 발견하자, 소녀는 말을 걸었다.

     

     "이자크 오빠."

     

     "어, 플로라."

     

     "오늘, 보여주는 거죠!?"

     

     기대된다는 기색으로, 플로라는 견습정원사 소년의 소매를 몇 번이나 끌어당겼다.

     

     "플로라."

     

     그 목소리에, 플로라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보여, 줄, 건가요......?"

     

     "인사를 먼저 해야지?"

     

     "이자크 오빠, 안녕하세요. 데니스 씨도 얀 씨도, 안녕하세요."

     

     말을 듣고서야 눈치챈 플로라는, 곧장 견습정원사 소년과 그의 아버지와 사제에게 인사를 했다.

     

     "일하는 중, 실례해써요. 휴식의 때를 놓친 모양이어서......"

     

     "아니, 휴식을 거르고 있었는데 덕분에 쉴 수 있어. 고마워, 아가씨."

     

     류디아가 사과하자, 소년은 반대로 감사를 표했다.

     

     "여러분은, 너무 일하는 습관을 어떻게 좀 해야 돼요."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을 느낀 류디아가 지적한다. 그의 말은, 자신과 여동생이 오지 않았다면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시계를 정원 각지에 배치하면 좋을까요."

     

     "손목시계도 없고, 있다 해도 비쌀 텐데."

     

     견습정원사 소년이 생소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손목시계?"

     

     "손목에 두를 정도로 작게 만든 시계."

     

     "그럼, 회중시계보다 작아야겠네요."

     

     회중시계조차 평민은 손에 넣기 어렵다.

     

     "뭐, 있어도 소리가 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그럼 시계의 의미가 없겠네요."

     

     "그럼, 플로라가 가르쳐 줄게, 예요."

     

     그렇게 손을 들며 말하는 여동생은 솔직하다.

     

     "고맙지만, 그럼 플로라가 힘들어."

     

     "괜찮아. 이자크 오빠를 만날 수 있잖아."

     

     "하지만, 내가 노력해야만 하는 일이야. 플로라의 공부 시간도 줄어들고."

     

     "...... 수업, 힘드니까 괜찮은걸."

     

     "아가씨는 제대로 끝내고 나서 온다고."

     

     그 말을 들은 플로라가 분홍색 눈동자를 언니에게 향한다.

     

     "아가씨는 예전부터 배울 건 다 끝내고 왔지. 땡땡이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다, 당연하지요......!"

     

     소년은 이것 보란 듯이 미소 지었다.

     

     "맞지? 플로라의 언니는 멋지다고."

     

     "응. 언니 대단해!"

     

     "그러니까, 우리도 자기 일은 제대로 하자."

     

     "응."

     

     존경을 담아 분홍색 눈동자를 빛내는 여동생을 보고, 류디아는 질린 기색이었다.

     

     류디아와 플로라의 방문을 계기로 휴가의 시간이 되어서, 소년과 함께 그의 자습용 정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걸어가던 소년은 뭔가를 떠올렸다는 기색으로 갑자기 작게 웃었다.

     

     "무슨 일이에요?"

     

     "...... 아니, 아가씨 정말 노력 많이 하는구나 해서."

     

     "뭐가 말인가요??"

     

     "플로라는 지금 다섯 살이지?"

     

     "응, 다섯 살~"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래서다."라고 말했다.

     

     "내가 아가씨를 처음 만났을 때가 그 정도였어."

     

     "그랬어?"

     

     "그래. 하지만 아가씨는 더 제대로 말했었으니, 대단하다고 생각해."

     

     "앗......."

     

     "그랬어!? 어니, 대단해~"

     

     "그렇지? 대단하지?"

     

     첫 대면 때 그런 면에서 감탄했다고는 몰랐기 때문에, 이제야 알게 된 류디아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갈 곳 없는 감정에 휩싸여서, 류디아는 소년의 옆으로 다가가서는 그에게만 들릴 성량으로 속삭였다.

     

     "성격 더럽다고 말해놓고서, 잘도 그런 생각을......"

     

     "하지만, 아깝잖아."

     

     "네?"

     

     "귀여운데도, 그때부터 계속 불만만 말했다면, 찌푸린 얼굴이 고정되어서 아깝잖아."

     

     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말했었다니, 생각도 못했다.

     그 후, 류디아는 떠들썩한 여동생과 함께 봄의 정원을 즐겼다.

     

     

     "...... 그래서, 또 자크가 즉석으로 생각해서 말했어요."

     

     "이자크의 발상은 참신하니까."

     

     탄식하며 말하는 류디아의 말을, 로이는 흥미로운 듯 듣고 있다.

     에룬스트 공작저의 정원에서, 류디아와 로이는 다과회를 하고 있다. 세간에서 보기에는 약혼자끼리의 만남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친구와의 근황 보고에 불과하다.

     

     "저기...... 로이 님, 시계를 설치할 수는 없나요?"

     

     "어째서?"

     

     "귀족과 평민들은 시간의 감각이 다르잖아요? 중앙 광장의 분수나, 주택가의 우물 등 사람이 모이기 쉬운 장소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장소에 커다란 시계를 설치해두면 같은 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류디아가 진지하게 생각한 제안을 듣고, 로이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류디아 양도 꽤 재미있는 관점을 갖고 있군."

     

     "그런가요.....?"

     

     "그래. 마을의 모습을 볼 기회가 적었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을 하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건...... 로이 님이 마을의 모습을 말씀해주셔서....."

     

     "아니, 류디아 양은 좋은 혜안을 갖고 있다. 검토해보마."

     

     "괜찮을까요.....?"

     

     류디아의 확인에, 로이는 미소 지으면서 수긍했다.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류디아 양은 언제 친구들에게 말할 건가?"

     

     "? 무엇을요."

     

     "이자크의 일이다."

     

     어째서 로이는 류디아가 다른 친구에게 그의 일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짐작한 것일까.

     

     "나는 남자라서, 류디아 양의 상담에 응해줄 수 없는 일도 생길 거다."

     

     "카트린이냐 에밀리아로는 안 되나요......?"

     

     동성의 상담 상대라면, 이미 그의 존재를 아는 그녀들이 있다. 왜 그녀들은 안 되는가.

     

     "실례했다. 류디아 양에게 있어서는 그녀들도 친구였지. 안 되지는 않지만..... 나는 그대의 친구로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미소 짓는 로이의 말에 이해심을 느끼고, 류디아는 생각했다.

     그녀들이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에, 이후로도 계속 숨긴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꼈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요....."

     

     "류디아 양의 마음 가는 대로 말하면 돼."

     

     그런 류디아에게, 로이는 격려하는 것처럼 미소 지었다.

     

     

     

     며칠 후, 에룬스트 공작저에서는 소녀들이 담소를 나누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류디아의 방에서, 그녀의 친구들이 찻잔이 놓인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다.

     

     "저기......."

     

     "무슨 일이죠?"

     

     류디아가 말을 꺼내들자, 세 친구는 들을 자세를 갖췄다.

     

     "여러분께 들려주고 싶은 일이 있어서....."

     

     류디아는 가슴 앞으로 양손을 모으고 꾹 움켜쥐고는 결의를 다졌다.

     

     "...... 제, 제게는."

     

     한번 숨을 깊게 내쉰다.

     

     "평민 친구가 있어요!"

     

     "저도 원래 평민이었는데요?"

     

     슈테파니에가 자신을 가리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당가의 하인이며."

     

     "그라는 뜻은 남자아이인가요!?"

     

     "그거, 왕자 전하가 질투하지 않아요!?"

     

     슈테파니에와 자스키아가 무심코 테이블에 양손을 짚으며 일어섰다.

     

     "아뇨...... 로이 님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 혹시, 제가 만난 적이 있는 분 아닌가요?"

     

     기억을 더듬으면서, 도르데리제가 류디아에게 물어보았다.

     도르데리제는 몇 년 전 파티에서 그의 얼굴을 몇 번 보았을 뿐인데도 용케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류디아는 놀랐다.

     

     "기억하고 있어요.....?"

     

     "아, 역시. 그 동지 분이네요."

     

     "설마, 꽃받침의 그대인가요!?"

     

     자스키아도 자신의 댄스 상대가 되어준 소년을 떠올렸다.

     

     "아,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디아 님을 만나기 전에 나돌았던, 유령 같은 사람 아닌가요."

     

     "유령......"

     

     자기만 만난 적이 없었던 슈테파니에는, "좋겠다." 라며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저택에도 안 보이길래, 그만뒀나 하고 걱정했었답니다."

     

     도르데리제가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건, 그는 사실 견습 정원사라서......"

     

     "꽃의 이름에 해박한 이유가 그거였네요!"

     

     납득한 자스키아는, 댄스도 잘하다니 대단하다며 미소 지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나요......?"

     

     류디아의 질문에, 세 사람은 잠깐 얼굴을 마주 보고는, 그 후 미소 지었다.

     

     "디아 님을 소중히 생각하는 분이니까요."

     

     "잠시 대화한 것만으로도, 그건 알 수 있어요!"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디아 님의 친구라면 나쁜 사람은 아닐 것 같아요."

     

     류디아는 따스한 것이 가슴에 북받쳐 올랐다.

     

     "고마워요."

     

     치밀어 오르는 감사를 입에 싣고서, 류디아는 부끄러워했다.

     

     친구들과 미소를 나누고는 진정한 차에, 슈테파니에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파니 님, 무슨 일이라도?"

     

     "치사해요."

     

     "네?"

     

     "여러분이 아는데, 저만 그분을 본 적이 없잖아요."

     

     "아...... 지금이라면 테라스에서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류디아는 여기에서 확인할 방법을 말해주었다.

     그녀의 제안에 응하여, 친구들은 테라스로 향했다. 2층 테라스에서는 화단에 핀 봄꽃을 한 번에 볼 수 있어서, 세 사람은 순간 목적도 잊고 감탄의 탄식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쉽게 보이지 않아서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다. 류디아도 난간에 손을 대고서 화단을 내려다보았다.

     

     "있어요."

     

     "어, 어디요!?"

     

     슈테파니에가 류디아의 시선을 따라간다.

     

     "아. 아저씨가 있네요."

     

     "근처에 두 사람 있어요...... 어느 쪽일까요?"

     

     "음, 데니스...... 체격이 큰 정원사의 오른쪽 분이에요."

     

     "얼굴은 잘 안 보이네요. 그런데도 찾다니, 디아 님은 대단해요!"

     

     류디아는 집안사람이라서 구분은 어렵지 않다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인가요?"

     

     슈테파니에는 류디아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는, 자크...... 이자크라고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자주 상담을 해주던 상대예요."

     

     "그럼, 소꿉친구네요."

     

     슈테파니에의 맞장구에, 수긍해도 될까 하고 류디아는 생각했다.

     

     "정원의 일만 생각하고 있으니, 그에게 정원사란 천직이겠죠. 하지만 잘 돌봐준다고나 할까 오지랊이 넓다고나 할까..... 곤란해하는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면 도와주려고 움직이고, 저의 댄스 대리처럼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해주고는 해요."

     

     그는 자신에게 가능한 범위라고 알면 손을 내민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에요."

     

     "소중히 여기시네요."

     

     "네. 제가 저로 있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랍니다."

     

     "이자크라는 분은, 좋은 친구네요."

     

     "멋진 분이니까요."

     

     도르데리제의 만족스러운 미소에, 자스키아는 볼에 홍조를 띠며 동의했다.

     

     "우리들보다 키가 커 보이는데, 혹시 연상인가요?"

     

     "이제 곧 13세가 되지요."

     

     "그럼, 만의 하나 통과한다면 내후년에는 학교에 입학할지도 모르겠네요."

     

     "통과......?"

     

     류디아와 슈테파니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마력량 측정을 받을 시기잖아요? 통과하면 마도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겠죠."

     

     "기숙사......"

     

     만일 그가 입학할 경우, 자신이 입학하기까지의 2년은 거의 만날 수 없게 된다.

     그 사실을 깨달은 류디아는 아연실색하였다.

     

     "이웃집에 있던 언니는, 만일 학교에 들어가면 귀족 도련님과 애인 사이가 되어서 한때의 꿈을 꿀 수 있다고 자주 말했어요."

     

     "애, 인......?"

     

     슈테파니에의 말속에서, 그 단어만이 류디아의 귀에 남았다.

     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그도 성숙한 나이가 된다. 이제는 정원뿐만이 아니라 이성에도 흥미를 가질 것이다. 슈테파니에의 지인처럼, 한때의 꿈을 품고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거나ㅡㅡ

     그 앞을 상상하려다가, 류디아는 힘이 빠진 것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디아 님?"

     

     그녀의 옆에서 웅크린 도르데리제가 부축한다. 다른 두 사람도 걱정하여 다가왔다.

     곧장 메이드들이 부축해주는 것을 확인하고서, 도르데리제는 자신의 팔을 붙잡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류디아는 니겔라의 꽃과 같은 푸른 눈동자를 불안감에 물들였다.

     

     "...... 도르데 님."

     

     "네."

     

     "자크...... 자크는, 항상 이 정원에 있었는데...... 그래서, 없어진다고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고는."

     

     도르데리제는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 지었다.

     

     "어떻게 느꼈는데요?"

     

     가슴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토로해도 된다고 허락받자,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히 입에 나온다.

     

     "..... 싫, 어요."

     

     "디아 님, 죄송해요."

     

     기세 좋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슈테파니에는, 울먹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디아 님이 그렇게나 이자크 씨를 좋아하는지 몰라서....."

     

     "에?"

     

     "네?"

     

     류디아 답지 않은 얼빠진 대답에, 슈테파니에도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몇 초 간,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이 테라스를 지배한다.

     침묵을 깨트린 자는, 생각과 호흡을 동시에 멈추었을 가능성이 높은 류디아였다.

     

     "......... 다....... 앗!?"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인 류디아는, 도르데리제의 옷소매를 쥐던 힘을 무의식적으로 더했다. 매달리는 친구의 모습에, 도르데리제는 실눈을 떴다.

     

     "후훗, 자각하셨나 보네요?"

     

     "그...... 그런 말씀하셔도.......!"

     

     "왕자 전하의 앞에서도 의연했었는데, 좋아하는 분의 일이 되면, 디아 님은 이렇게나 귀여워지네요."

     

     "키아 님까지!"

     

     가득 미소 짓는 자스키아가 맞장구를 치길래, 류디아는 원망 섞인 목소리를 내고 만다. 하지만 새빨개진 얼굴로 항의해도 효과가 없어서, 친구들과 메이드들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어디까지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로이의 제안은 옳았다.

     그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밝히는 것으로, 설마 자신의 사랑을 자각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또한 친구들에게 알려진 덕에, 혼자서 고민하는 미래가 강제적으로 사라졌다.

     

     그건 그렇고, 다음에는 어떤 표정으로 그를 만나면 좋을까.

     앞날의 문제가 아닌, 바로 코앞에 닥쳐온 문제를 마주한 류디아는 머리를 싸매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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