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43부 400+9화 SO BIG FAT 상응(2)
    2024년 05월 30일 23시 24분 3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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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두 사람은 딱 멈춰 섰다.



    "몇 번을 다시 시작해도 그때마다 '아무것도 안 해'. 아무도 선택하지도 않고, 이야기도 만들지 않아. 그저 매일 먹고 자고 일어나고 반복하는 일만 반복할 거야."



     그건 내 팬을 자칭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없을 것이다. 마치 게임 속 주인공이 매일 잠을 자거나 쉬는 명령만 선택해 3년을 계속 반복하는 것과 같다. 몇 번을 반복해도 계속 그렇게 한다면 누구든 보는 재미가 없어진다.



    "발악은 적당히 하는 편이 좋아."



    "그래. 당신이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걸."



    "지루함은 사람의 마음을 죽이는 법이야."



    "견딜 수 있다고 해도, 몇 년, 몇십 년이 한계겠지?"



    "날 얕보지 마. 현실 도피로 인한 사고 정지로 자기 마음을 어둠 속에 가둬놓고 게으름을 피우는 걸 잘한다는 거 알잖아?"



     발악을 하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확신했다. 아무래도 내 팬이라는 말은 비꼬거나 빈정대는 게 아니라 진심인 것 같다. 진심으로 나의 활약을 계속 보고 싶기 때문에, 주연의 자리를 뺏기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엿보였다.



    "뭐야, 이제 와서 루프물이라니! 장난하지 말라고! 내가 걸어온 길은! 지금까지의 인생은! 내가 좌충우돌하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걸어온 나만의 길이라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때그때마다 쌓아온 결과가 결실을 맺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그걸 외부의 사정으로 마음대로 없었던 일로 치부해 버리면 참을 수 있겠냐! 장난치지 마, 이 멍청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법으로 만들어낸 것은 거대한 열쇠였다. 마치 검처럼 뾰족한 황금 열쇠를 양손으로 잡고, 나는 그 끝을 내 심장으로 향한다. 이 열쇠를 꽂으면 나는 폐인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마음을 완전히 닫고 생각을 멈춘 채 매일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인형으로 전락할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이대로 이 녀석들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거야"



    "지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 선택을, 언젠가 되돌고 싶을 때가 올 거야."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을 때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잖아!"



     지나 카카오와 켈리 아히조는, 지극히 슬픈 표정으로 서로를 껴안았다. 뺨을 맞대고 나를 불쌍히 여기는 듯이, 잡은 손의 손가락 끝을 이쪽으로 향하게 한다.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지만, 그만큼 나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귀찮고도 성가신 악성 팬이긴 하지만 그만큼 진지하게 응원해주고 있구나, 하는 일말의 마음이 뒤섞인다.



    "여신이 질린 바람에 잊힌다는 것도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야. 언젠가 신이 우리 세계를 아무도 보지 않게 되고, 화면 앞에 시청자 한 명도 남지 않게 되면 그때는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18살이 되었는데도 야한 짓 하나도 못 하잖아."



     농담처럼 어깨를 으쓱하자, 두 사람은 쓸쓸하게 웃었다.



    "좋아. 아무리 공식이라도 단 한 개의 고정 커플만 내놓는 것은 잘못된 해석인걸."



    "하지만 잊지 마. 비록 화면 앞에 아무도 없어졌다 해도 우리가 당신을 잊은 건 아니라는 걸."



    "비록 직접적인 연결이 끊어졌다 해도"



    "감정이 사라져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날 날까지.""



     작별인사를 하는 두 사람의 손끝에서 눈부신 무지개 빛이 번쩍였다. 달걀 껍데기가 깨지듯 공간에 균열이 생겼고, 곧 그것은 성대하게 부서져 나갔다. 그 너머로 펼쳐진 것은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의 푸른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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