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52. 참고로 감자는 잘게 썰려 있었다(3)
    2024년 04월 08일 17시 27분 38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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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그녀는 생명의 은인이었고, 존경하는 사람이었고, 소중한 친구였고, 이 세계의 어머니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었다. 이루고 싶은 마음보다 이루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왜냐면 그렇게 되면 그녀는 내 곁을 떠나게 될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고.
     솔직히 그렇게 말했을 때의 그녀의 놀란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 약속을 어긴 내 잘못. 그 아이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를 포기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렸어. 내 소망도, 그 아이의 소망도 ...... 결국 둘 다 이루어지지 않았어."
    "스승님 ......"
    "...... 후후, 옛날이야기야. 그런 표정 짓지 마, 필리아. 나는 다시는 그 아이를 만날 수 없을 테지만, 그 아이와 함께 보낸 날들은 정말 즐거웠어. 그래서 지금도 웃으면서 기억할 수 있어. 게다가. 그 아이는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눈꼬리를 내리며 나보다 훨씬 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솔직히 나보다 키가 큰 필리아를 이렇게 쓰다듬는 것이 조금 부끄럽지만, 예전에 실수로 시이나에게 하듯 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자 꽤나 기뻐했던 기억이 떠올리면서 손을 움직였다.

     필리아는 한동안 내 손바닥의 감촉에 빠져들 듯 눈을 감고 조용히 있다가 서서히 눈꺼풀을 뜨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 스승님. 기억하시나요? 시이나짱이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했던 약속이요."
    "시이나가 온 날?"
    "제가 원한다면 언제든 함께라고 ......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말했었지."

     그 직후에 시이나와도 같은 약속을 한 것 같다. 아까 아모르와도 그랬던 것 같고.

    "스승님. 저는 언제나 함께 있을 거예요. 절대로 아무데도 가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필리아 ......"
    "에헤헤...... 역시 그, 이런 기분은 무거울까요?"
    "아니, 기뻐. 필리아는 정말이지 언제나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

     정말, 필리아는 왜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좋아해 주는 걸까.
     함께 있자고 하면서 내 손을 감싸 주었을 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어.

     이런 순수한 아이에게 성노예 같은 이런저런 짓을 시키려고 했던 나쁜 놈이 있다는 모양인데요?
     할로라고 하는 .......

    "자, ...... 이제 저녁 준비를 해야겠어. 요즘은 이 집에도 사람이 많아졌으니까 만드는 보람이 있어."
    "도와드릴게요!"
    "후후. 항상 고마워, 필리아."

     원래는 필리아를 사서 야한 짓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왠지 모르게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 빠져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와 그 아이와의 관계를 지금의 필리아와의 관계에 겹쳐보아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를 스승이라 부르며 존경하는 이 아이에게, 과거의 내가 보았던 그 아이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 어딘가에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 그렇다. 분명 그럴 것이다.
     고백까지 받았으면서도, 이 시점에 이르러서도 아직 필리아에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틀림없이 그 때문일 것이다.
     내가 못나서라든가,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것은 이 슬픈 과거가 원인인 것이다!

     역시 나는 겁쟁이가 아냐 ......!
     이것만은 진실이라 말하고 싶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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