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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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1월 23일 20시 07분 0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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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나쁜 마음을 깨끗한 아이라에게 알릴 수는 없어......)



     고민하는 에반을 보며, 아이라는 입을 삐죽였다.



    "내 마음을 정말 모르겠어?"

    "뭐?"

    "지금까지 열심히 어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는 아이라를 보고, 에반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빨리 뭐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어진 아이라의 말에 에반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되어버렸다.



    "좋아해, 에반."



     아이라는 예상치 못한 말에 굳어버린 에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에반은 나를 싫어해?"

    "다, 당연히 좋아하지!"

    "다행이다."



     후훗 하며 웃는 아이라의 모습에, 에반은 무심코 넋을 잃었다.



     오랜 세월의 감정이 전해져 감격을 하는 에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에반은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고백을 하면서도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라가 조금은 미웠다.



     에반은 언젠가 꼭 아이라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 * * *



     그 후 두 사람은 국경의 작은 마을에서 가상의 부부를 연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라가 너무 예뻐서 마을 사람들은 '귀족 아가씨가 신분 차이로 사랑에 빠져 도망친 게 틀림없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두 사람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라는 귀족 출신이지만, 신전에서 자기 일은 스스로 하도록 배웠기 떄문에 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빨래를 말리던 아이라가 말한다.



    "에반. 성녀는 권력자와 결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거 알아?"



     왕족이나 귀족이 성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정치적 균형이 깨져 원치 않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전은 성녀가 권력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한다. 왜냐하면 성녀의 아이 역시 성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라의 뒤에서, 에반이 빨래를 펴면서 대답했다.



    "알지."

    "그럼 나와 에반이 결혼해도 괜찮지 않겠어?"



     에반의 대답은 없었다. 궁금해진 아이라가 빨래를 말리던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에반은 모처럼 펴놓은 빨래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에, 에반?"



      아이라가 에반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빨래를 살짝 잡아당기자, 새빨개진 얼굴의 에반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중요한 말을 갑자기 말하지 마! 내가 먼저 말하려고, 지금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에반은 꽃이 만발한 경치 좋은 곳에서 아이라를 위해 준비한 반지를 건네며 결혼을 청혼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미안해, 에반"



     뺨에 뽀뽀를 받자, 에반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얼굴만이 아니라 온몸이 뜨겁다. 그런데도 아이라는 또다시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완전한 패배를 맛보며, 에반은 행복을 맛보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앞치마를 두른 에반이 식탁에 수프를 가져온다. 식탁에 빵과 숟가락을 놓던 아이라의 빨간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에반의 수프는 정말 맛있어. 다음에 나도 흉내를 내서 만들어 볼까?"

    "부탁이니까, 아이라는 요리만은 하지 말아줘."



     아름다운 성녀의 요리가 치명적으로 맛없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래서 요리는 에반이 담당하고 있다.



     에반의 요리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지만, 아이라가 매일 맛있다고 극찬하며 먹어주기 때문에 은근히 만드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수프를 한 입 베어 문 아이라가 "왠지 밖이 시끌벅적하네"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네."



     두 사람 모두 손님이 올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성녀 아이라를 왕성에서 쫓아낸 히스 왕은, 그 후 애첩이 낳은 둘째 왕자를 왕세자로 삼겠다고 발표한다.



     이것에는 분쟁을 싫어하는 왕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치열한 권력 다툼 끝에 1년 후 왕세자 자리에 오른 것은, 왕비의 아들인 첫째 왕자였다.



     왕비와 왕세자는 이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나라에 필요한 것을 주는 성녀의 기도의 힘이다.



     집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녀님! 성녀 아이라님, 계십니까!?"



     아이라가 일어서자, 에반이 앞치마를 벗었다.



     열린 문 너머에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히스를 연상시킨다. 그 뒤에는 많은 왕궁 기사들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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