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전편(1)
    2024년 01월 21일 22시 03분 26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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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거리 모퉁이를, 유난히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남녀가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다.



    행인들은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그림 같은 외모에 꽂혀서,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그들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



    그중 몇 명은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약간 웨이브진 금발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늘씬한 여성은 이 왕국의 유서 깊은 후작 가문 중 하나인 라나로와 후작가의 장녀 루이즈다. 살짝 올라간 눈꼬리를 긴 속눈썹이 물들여 독특한 색채를 발산하고 있다. 미녀들이 많기로 소문난 이 후작가의 자매들 중에서도 특히 미모로 유명한 그녀는, 옆에 있는 남자과 팔짱을 끼며 행복하게 웃고 있다.



    그 옆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는, 이 왕국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자크레프 후작가의 차남 카를로스다. 그는 루이스에게 팔을 빌려주며 그녀를 바라보며 볼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때, 건물 뒤편에서 한 여인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그 여성은 갈라진 목소리로 절박하게 외쳤다.



    "아아, 카를로스 님. 드디어 만났어요...!"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나는 그녀와는 달리, 루이즈는 노골적으로 그 여인의 모습에 얼굴을 찡그렸다.



    "어머, 정말 추하네. 못봐주겠어..."



    그 여자는 마치 두꺼비처럼 갈색으로 변색되고 거칠게 상처가 난 피부에, 부분적으로 붕대를 감고 약간 굽은 허리로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칙칙함 속에서도 드러나는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니 분명 중병에 걸린 것 같다. 움푹 파인 눈 밑에는 새빨간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다.

    하지만 등 뒤로 흩날리는 윤기 나는 검은 머리만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루이즈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카를로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분, 카를로스 님을 알고 계신 분인가요?"



    카를로스는 그 여인을 보고 약간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예, 그녀는 저의 오랜 지인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더럽다는 듯이 눈을 찡그리며 눈의 아래쪽 절반을 부채로 가린 루이스를 등지고, 카를로스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서며 그녀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에벌리, 더 이상 너를 만날 수 없다고 말했잖아."



    에벌리는 카를로스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붉은 눈동자를 몇 번 깜빡이다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카를로스 님 댁을 방문할 때마다, 카를로스 님은 일 때문에 바쁘셔서 만날 수 없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카를로스는 험상궂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 네가 예전에 오랫동안 내 곁을 지켜준 것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 그것만으로는 불만이야? 필요하다면 돈은 얼마든지 마련해 줄게. 그러니... 이해해 주겠지? 이제 너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숙인 에벌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럼, 당신이 성인이 되면 저와 결혼해 주겠다는 그 약속은......."



    카를로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먼 옛날의 어린아이의 헛소리였을 뿐이야. 설마 네가 진심이었을 줄은 몰랐어. 너무 대놓고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너를 피하고 있었는데... 잘 생각해 봐. 너와 이 내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나는 저기 있는 루이스 님과 약혼을 하게 되었어.... 나에 대해선 이제 그만 잊어버려.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 줘."



    상처받은 표정의 에벌리의 두 눈에 떠오르는 투명한 것을 외면하듯, 카를로스는 발걸음을 재빠르게 돌렸다.

    그의 가슴에는 아릿한 통증과 함께 아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


    카를로스는 10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중병에 걸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온몸의 피부가 다 터지고, 내장도 병에 걸렸으며, 여러 부위에 종양이 전이된 카를로스에 의사는 두 손을 들었다. 어떤 약도 효과가 없고, 어떤 수술을 해도 낫지 않을 것이며, 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운이 좋으면 1년 정도 더 살 수 있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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