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23년 12월 17일 22시 50분 10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작성자: 비오라트728x90
"물론, 은혜를 잊은 적은 없답니다."
엘레나는 손 안에서 가늘고 작은 기둥을 만들어냈다.
투명한 기둥은 빛을 받아 작고 반짝반짝 빛난다.
"저는 예전부터 작은 기둥을 세우며 놀았는데, 금방 망가지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아무도 모르는 기둥은 금방 망가지고 말겠지요."
방금 만든 기둥을 파괴한다.
한순간 빛이 흩어졌다가 사라졌다.
"기둥은 사람들의 신에 대한 믿음과 성녀에 대한 믿음으로 세워진 것이 아닐까 해요. 사람들이 성녀를 잊어버릴 때, 기둥은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기둥이 사라진 공간을 바라보며, 엘레나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성녀는 왕족과 결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도록. 계속하여 믿음을 모을 수 있도록."
왕국에서 엘레나가 기둥을 세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미레이유뿐이었다.
엘레나는 미레이유를 바라보았다.
"기둥을 올려다볼 때 조금이라도 저를 떠올려 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했어요."
"............"
"만나 뵙고 싶지 않았답니다, 미레이유 님"
미레이유가 자신을 기억해 주기만 해도 엘레나는 만족스러웠다. 데려다주고 키워준 은혜가 있다. 고아가 공작가의 영주의 시녀가 될 수 있다니, 이보다 더한 대접은 없었다.
엘레나는 미레이유를 존경했다.
하지만 왕국의 기둥이 깨졌다.
ㅡㅡ그 사실이, 너무나 슬프다.
"저는 당신의 어둠으로 충분했는데..."
진심이 담긴 말을 하는 순간, 미레이유가 무릎부터 쓰러졌다.
"...... 왕국의 기둥을 세운 건 엘레나에요 ......"
미레이유는 바닥에 엎드린 채,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다.
"저는 ...... 엘레나의 공적을 제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미레이유 ...... 설마, 그런 ......"
오딜롱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 몸이 쓰러지기 전에 볼프람이 목소리를 냈다.
"왕국에서 성녀를 칭한 자에 대한 처벌은?"
볼프람의 물음에, 오딜롱은 목소리를 찢어지게 내며 대답했다.
"...... 일족의 처형이 관례다."
성녀를 자칭한 죄는 그만큼이나 무겁다.
그리고 가짜 성녀만 처벌해도 의미가 없다.
일족들을 모두 처형하지 않으면, 가짜 성녀를 만들어 왕국의 핵심을 노린 자들이 무죄를 받을 위험이 있다.
그래서 왕족은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것은 사랑이나 친절과는 별개의 이야기.
"ㅡㅡ미레이유 님한테는, 그동안 많은 신세를 졌답니다. 그러니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요?"
"...... 진심인가? 엘레나"
"네. 저는 제국의 성녀이기 때문에 왕국에는 갈 수 없답니다. 두 분이 평생 저를 잊지 않는다면 저는 충분하며, 기둥도 안전할 것입니다."
"...... 약속, 합니다....... ......"
미레이유는 바닥에 엎드린 채, 가느다란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
이후 제국 측과 왕국 측에서 세부적인 일정을 정하고, 엘레나는 비밀리에 왕국에 가서 하늘에 새로운 기둥을 세웠다.
"너는 정말 착한 여자로군."
성녀의 호위병으로서 거의 억지로 따라온 볼프람이,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엘레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런가요?"
"나 같으면 복수를 완수했겠지."
그라면 정말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엘레나였다.
하지만 엘레나에게 그 정도의 감정은 없다. 미레이유에게 버림받았을 때는 슬펐고, 괴로웠으며, 추방당한 뒤에는 몇 번이나 죽을 뻔했지만.
"네가 원한다면, 왕국의 모든 땅을 너에게 주마."
왕국의 하늘과 땅을 바라보며 볼프람이 말했다.
그 눈빛은 진심이었다.
"볼프람 님의 선물은 받아도 곤란한 것들뿐이네요."
드레스와 커다란 보석부터 시작하여, 별궁과 수많은 하인들.
게다가 이번에는 왕국의 땅이라니. 받아도 분에 넘친다.
ㅡㅡ하지만 엘레나가 거절해도 언젠가는 가져갈 생각인 것 같다. 무력으로 국토 확장을 노리는 것이 제국이다. 이번에 엘레나와 동행한 것은, 전쟁의 예행연습을 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막을 권리도 이유도 엘레나에게는 없다.
"미레이유 님께는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에요. 추방당하지 않았다면 볼프람 님을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볼프람이 웃었다.
"역시 내 아내에 어울리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농담도."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하는 바보가 있을까?"
"......저는 어둠의 성녀로 충분한걸요"
"그건 무리다. 나에게는, 네가 빛이니까."
ㅡㅡ그 후, 왕국의 기둥이 엘레나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이 왕국 자체에 의해 공표되었다.
미레이유와 공작가가 어떻게 되었는지, 엘레나는 알려고 들지 않았다.
하늘에 떠 있는 기둥은, 제국의 황후가 된 빛의 성녀의 전설과 함께 영원히 빛났다고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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