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견실에 들어서니 이미 성녀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앞쪽 의자에 앉아 "얼굴 좀 들어봐요"라고 말을 건넸다.
"실례합니다."
"편하게 있어도 상관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라를 위해 애써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
"과분한 말씀을 주셔서 영광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상서로운 태도에 감탄했다. 역시 성녀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나에게 사랑이란, 널리 베푸는 것이다. 이 나라의 왕족으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것을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실제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왔다고 생각한다. 현명한 왕으로 명성이 자자한 아버지의 뒤를 어떻게든 쫓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면 기쁘고, 내 공이라고 칭송받으면 보람도 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의무감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넓고 깊은 사랑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런 게 아니라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위선을 행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사랑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셨지만, 그만큼 아버지와 유모가 나를 소중히 여겨주셨다. 조슈아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언제나 자신의 사랑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성녀는 나와 다를까. 의무라서 그래야만 하는 나와 달리, 진정한 하해와 같은 사랑으로 백성을 구하고 지키려고 하는 것일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나에겐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음 마을에서 피해가 큰 땅의 정화가 완료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고도 하던데."
"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전하께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최근 사흘 사이에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마을에는 이미 기사단과 마도사를 파견했고, 주민들의 대피도 완료된 상태다. 그러나 마수의 수가 너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논과 밭, 집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면 이후 주민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급히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성녀는 어제 막 다른 마을에서 돌아왔을 뿐인데도 이따가 또 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폐하께서도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말해보거라."
"감사합니다...... 이번 토벌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형 마수가 출현했다고 하는데, 산간지역이라서 전투가 힘들고 정화해야 할 땅이 넓습니다. 그래서 만일의 사태에 일어날지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만일의 경우. 아직 어린 그녀가 짊어지기에는 무거운 각오가 아닌가 싶다. 역대 최고 수준의 마도사로 유명한 마도부대의 대장 오스왈드가 동행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상황인가.
"그러니, 부탁입니다. 제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동생에게 불편을 주지 말아주세요."
"그래, 알았......, 음 ......?"
"부디 동생에게 불편을 주지 말아주세요"
"아, 아니, 음, 듣기는 했는데."
난 귀가 좋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 여동생 ......?"
"네, 4살 아래인 첼시라고 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 멍하니 있는 나를 두고, 성녀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여동생은 낯을 가리는 성격 때문에 사교계에 거의 나가지 않아요. 또한 마력도 적고, 당연히 싸움 같은 건 할 줄도 모르지요. 부모님은 여동생을 사랑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분 모두 조금 순수하기 때문에 남에게 이용당할 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제가 없어진 후 동생이 저 대신에 떠받들리거나, 반대로 학대받거나, 어쩌면 길거리에 나앉는 일이 없도록 동생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그 아이에게 슬픈 일을 겪게 하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