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제9화
    2023년 10월 09일 23시 12분 5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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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나와 릴리의 마법으로 어지럽혀진 방을 간단히 정리했다. 그렇게 다시 마주 보며 소파에 앉아 있는데, 내 맞은편에는 릴리......와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는 귀여운 첼시가 있다. 이상하지 않아?



    "처음부터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그 전에. 첼시, 너 왜 울고 있었니. 이 남자 때문이라면 역시 조용히 설명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릴리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그녀가 여동생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언니가 온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뻐서 울고 말았어요. 오스왈드 님 때문이 아니에요."



     ...... 그리고 첼시도 언니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됐다며, 릴리는 첼시의 손을 꼭 잡았다.



    "릴리. 소문에 의하면 네가 첼시를 못난이라고 소문낸다고 들었다만."

    "그건 사실이에요."

    "둘이 사이가 좋으면, 왜 그런 짓을."

    "...... 언니는 저를 보호해 준 거예요."



     쿨하게 인정한 릴리를 대신하여 첼시가 말을 꺼냈다.



    "옛날, 어린이들만의 다과회에서 남자아이에게 떠밀려서 ...... 넘어진 것을 보고 여자아이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바람에 저는 낯가림이 심해졌어요. 마침 그즈음에 제가 마술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사교계에 나가면 장차 성녀가 될 거라는 언니와 비교당할 것을 뻔히 알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서 그것을 잘 피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언니는 일부러 저를 나쁘게 말해서 사교계에 나가지 않아도 되게끔 해 주셨어요."



     ...... 확실히,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으면 직접적으로 무례한 말을 듣거나 그런 뒷담화를 들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학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고, 귀족이라면 대부분 가정교사를 두기 때문에 공부에는 지장이 없다. '성적이 좋지 않아 사교계에 내보낼 수 없다'고 하면 자신은 못된 여자라고 손가락질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첼시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성녀의 여동생'에게는 못났다는 비판보다 동정의 목소리가 더 많을 정도였다.



    "제가 여동생을 학대한다는 소문은 오스왈드 님의 귀에도 들어갔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이용해 동정심을 사서 보내려고 한 거예요."

    "......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인데?"

    "여동생은, 예전부터 당신을 좋아했어요."



     시무룩한 릴리의 옆에서, 첼시가 얼굴을 붉히고 있다.



    "처음 듣는 얘기인데."

    "그렇겠죠. 당신이 이 아이를 만난 건 몇 번밖에 안 되잖아요. 그런데도 첼시의 마음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저는 솔직히 오스왈드 님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까부터 나를 쳐다볼 때 눈빛이 노려보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은 그 때문인가. 여동생을 좋아한다는 것은,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시스콘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 그런데도 첼시가 예전부터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얼굴 때문에?



    "솔직히, 좋아해 줄 만한 행동을 한 기억이 없다만. 언제부터였지?"

    "...... 언니의 약혼남으로서 처음으로 저희 집에 왔을 때요. 오스왈드님은 그때...... 언니를 지켜주겠다고 하셨잖아요....... [너의]."



    [네 누나를 지켜줄게. 내가 반드시 무사히, 네 곁에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할게]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첼시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본성을 숨기던 때였고,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성녀가 여동생을 학대하고 있다'는 소문도 흘려듣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약혼녀의 귀여운 여동생에게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언니는 강하니까 ...... 부모님조차도 언니한테는 성마법이 있으니 괜찮다고 하셨어요. 물론 언니의 성마법은 발동하면 마수를 막을 수는 있지만, 그전까지는 무방비 상태인데....... 그래서 오스왈드 님께서 '지켜주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기뻤어요. 안심이 되었고......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어, 첼시도 충분히 시스콘답다. 그랬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옆에서 "그냥 얼굴도 좋아하잖아?"라는 말이 들려왔다. 역시 얼굴인가.



    "언니! 지, 지금은 ...... 얼굴 말고도, 좋아해요."



     얼굴이 붉어진 첼시가 어눌하게 중얼거렸으니, 뭐, 이 일은 그렇다고 치자.



    "그, 그래서 오스왈드 님은 정말 언니를 지켜주셨어요. 누나를 보호하고서 누워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어요."

    "......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서, 이왕이니 대신 약혼녀로 가라고 했어. 첼시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상, 어차피 나는 언젠가 약혼을 파기할 생각이었고. 동정심을 사면서 헌신적으로 보살피면, 오스왈드 님도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잘 된 것 같네."



     그렇군. 그렇다면.



    "첼시. 네가 혼자서 우리 집에 온 것은."

    "......? 빨리 만나고 싶어서요."

    "시녀를 한 명도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은."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낯선 사람이 늘어나면 오스왈드 님에게 부담이 될까 봐서요."

    "...... 아까 소란의 원인은."

    "언니를 껴안으려다가 테이블에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요."



     모든 게 다 내 기우였다는 거구나.



    "...... 릴리, 한 가지만 정정할 게 있다."

    "뭔데?"

    "첼시는 동정심을 사려 하지 않았다....... 너를 나쁘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 전부 내 착각이었다. 릴리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얼굴이 파랗게 변했던 것은, 분명 '언니에게 학대받았다고 동정심을 사라'는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짓말이라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많이 갈등했을 것이다.



     릴리가 놀란 표정으로 첼시를 바라본다. 첼시는 또 눈물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마, 말하지 못했어요. 언니가 세상에서 저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스왈드 님한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어요. 말해버리면 언니가 만들어준 기회를 망칠 것 같아서요. ...... 오스왈드 님께서 저를 아껴주실 때마다, 사실은 제가 그렇게 친절하게 대접받을 자격이 없는데 ...... 언니의 자리였을 텐데 하는 생각에 괴로웠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약혼남이었던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보."라고 말했다. 바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릴리는 첼시를 껴안고서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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