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57 마리 누나와 밤의 이야기
    2023년 08월 26일 21시 36분 31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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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의 나는 길스에게 물을 길어다 달라고 부탁하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루레트 씨의 집으로 돌아와서 요리를 했다고 한다.



     전해 들은 이유는, 방금 본 광경의 충격이 너무 커서 현실도피를 해서 ...... 여기는 게임 세계지만.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해낸 것에는, 포테토칩의 지옥을 이겨낸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참고로 내가 만든 음식은 받았던 버섯을 듬뿍 넣은 밥, 나물 및 뿌리채소의 국물, 마을 사람에게서 받은 물고기로 만든 소금구이.



     리베르타에서 구입한 쌀과 조미료가 여기서 활약했다.



     맛있게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한다구?



     다만 나는 그 맛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맛을 느낄 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어느새, 자고 있었을 정도이니 .......



     게다가 악몽에 시달리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



     덕분에 의식은 또렷했지만, 땀에 흠뻑 젖어 깨어나버려 기분은 최악이었다.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떼어내고, 빌려 쓰는 집의 창문을 바라보니 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다시 잠을 자려고 해도 졸음은 멀리 달아났고, 무엇보다 이렇게 땀에 젖은 채로 다시 누워있기 싫었다.



    "밤바람을 맞으면 기분 전환이 되려나. 걷다 보면 땀도 마를 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서 나오려는데, 옆에 있는 루레트 씨의 침대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본 침대는 차가웠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밤하늘에는 붓끝으로 살짝 그린 듯한 가느다란 달이 떠 있으며, 반짝이는 별들이 주변을 섬세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 때문에 [밤눈]이 작동한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마을 안을 뒤져볼 수 있었지만, 루레트 씨는 찾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갔대 ......"



     마을을 나와 숲과의 경계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나무들이 사라지고 대신 작은 언덕이 나타났다.



     그 언덕 꼭대기에 있는 바위 위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



    "루레트 씨 ......"

     

     중얼거림이 들렸는지, 허공을 응시하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한밤중에 조용히 빠져나온 탓인지, 아니면 말이 없었던 탓인지 약간 겸연쩍어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다가, 한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너무 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런 거리.



     침묵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루레트 씨가 말을 쏟아냈다.



    "제 직업은 [나찰녀]라는 권투사의 상위직인데, 실은 정식 서비스 시작부터 초기 직업을 건너뛰었습니다."



    "어, 그런 게 가능한가요?"



     직업 스킬을 획득할 때 이전까지의 경험이 고려되어 개인차가 발생한다는 것은, 예전에 제라 씨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직업까지 바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그레우스의 말로는, 특례라고 하더군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것을 보니, 루레트 씨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나 보다.



     그리고 자그레우스 씨의 특례라면 ...... 그래, 뭐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벤트 클리어 후, 마음대로 부여된 카르마 십만 사건을 떠올리며 무심코 납득했다.



    "더욱 말하자면, [나찰녀]는 베타 테스트 때 어떤 NPC를 만나서 얻은 것입니다."



     옅게 미소 짓는 그녀의 옆모습에는, 그리움과 쓸쓸함이 공존하여 덧없는 섹시함이 묻어나고 있다.



     그리고 들려준 것은, 루레트 씨가 [나찰녀]가 된 구체적인 경위였다.



     드롭을 노리고 레어 몬스터 사냥에 참여했지만 NPC를 희생양으로 삼는 끔찍한 일이라서, 납치된 NPC를 데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간신히 도망치긴 했지만, 피해를 입어 의식을 잃고 깨어났을 때 낯선 NPC ...... 아니, 남성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안경은 남성의 것이었으며, 놀랍게도 네로의 토대가 된 고양이 사역마도 있었다고 한다.



     자연과 공존하는 작은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마음의 상처와 피로가 서서히 치유되었다고 루레트 씨는 말했다.



     하지만 그 평온함도 오래가지 못하고, 사냥을 포기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마을을 습격하여 남성도 희생되었다.



     그때, 몬스터가 된 남성과 루레트 씨도 함께 저항했지만, 수적으로 열세였다고 한다.



     남성이 힘이 다했을 때, 루레트 씨는 다시 죽을 각오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나찰녀]로 각성하여 플레이어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안경을 맡기고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정식 서비스 시작 시의 첫 로그인 때, 자그레우스 씨가 초기 직업을 건너뛰고 [나찰녀]를 선택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격한 감정이 들끓는다.

     

     당사자인 루레트 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을 것이다.



    "남자에게서 받은 안경은 언젠가는 돌려줘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걸 그 제이드라는 사람과의 싸움에서 떠올렸습니다....... 아니, 지적당했죠. 언제까지 빌린 채로 있을 셈이냐면서."



     "실제로도 졌지만요"라며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표정은, 약간이나마 평상시의 분위기를 되찾은 듯했다.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고 나서, 기억을 더듬어 마을이 있던 곳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을은 폐허로 변해 아무도 없었어요. 실망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자, 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말?"



    "네. '언젠가는 그 눈을 받아들이는 자가 나타날 테니. 그때까지 빌려주마'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달라요."



     그 눈빛이, 은연중에 그것이 나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가 말한 그 인물에 내가 끼어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루레트 씨가 그렇게 생각해 주니 기쁘다.



    "위험이 따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마리아 씨는."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술 앞에 세워서, 나는 이어지는 말을 멈추게 했다.



     물어봐도 내 의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신 이렇게 대답했다.



    "빌린 거라면, 이자를 붙여서라도 갚아야겠네요. 그 사람이 안심할 수 있도록."



     밝게 말하는 내 모습에, 루레트 씨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져 있다가, 다시 웃었다.



     작게,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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