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푸른 눈의 뿅간다용이 전력을 다한다면, 지금 성당에 있는 기사와 신부를 십여 초 만에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은 분명 주인인 마리아의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설마, 마리아 양에게는 뭔가 ...... 료 소년과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지크프리트가 깨달은 그 순간.
그의 시야에, 료 일당 몇 명이 날아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홱 뒤를 돌아보니, 주변에는 양분된 천사의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실례. 예옷을 더럽히지 않으려 조심하다 보니 그만 거칠어졌어."
파괴와 폭거의 중심에 서 있는 로이는, 검을 한 손에 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대하는 사람이 본다면, 공포를 넘어서 항복하여 죽지 않을 방법을 고려하기 시작할 정도로 엄청난 미소였다.
"목숨을 빼앗지는 않겠지만,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 그게 우리 임무라고!"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몸부림치는 적대자에게, 로이는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임무를 부여한 사람을 원망해. 나는 내가 가는 길을 방해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겠어. 뭐, 아무리 높게 잡아도 세계에서 두 번째겠지만."
바로 그 순간, 로이의 칼날이 번쩍이며 그의 뒤를 노리던 천사가 몸의 정중앙을 따라 쪼개지듯 두 동강이 났다.
뒤돌아보는 동작조차 보이지 않고 적을 처리하는 모습은, 분명 이곳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임을 증명한다.
"그럼...... 지크프리트 공, 도와주러 왔습니다."
"와줬는가 ......! 하지만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지 않은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지요. 설령 기억을 잃었더라도 그녀와 대치할 사람은 저 말고는 없으니까요."
일어서는 지크프리트에게 팔을 빌려주면서, 로이는 마리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 사, 상대가 누구든 저는 ......! 저는 지지 않아요!"
마리아는 시선을 날카롭게 하며 드높게 외쳤다.
하지만 그 말투에 지크프리트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로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근본이 마리안느와 같았다면, 방금의 말은 '내가 이긴다'라고 말했을 텐데."
해석이 틀렸던 모양이다.
지크프리트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엥."
"기억이 있든 없든 너는 '내가 이긴다'라고 말했을 것이고,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에 '나는 지지 않는다'고 말했던 거지?"
말투 하나만 가지고 갑자기 내 심리를 꿰뚫어 보는 남자를 보고 마리아는 두려움을 느꼈다. 너무 극혐이었기 때문이다.
"알기 쉽게 말해볼까, 마리아 씨. 나로서는 너의 시간 벌기에 어울려줘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어."
로이는 검을 칼집에 넣으며 미소를 지었다.
마리아는ㅡㅡ얼굴은 반반한데 말하는 것이 너무 무섭다며 다시 한번 겁을 먹었다.
◇
한때의 전우들이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전장의 한가운데,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의 사선과 살의가 교차하는 한가운데.
타가하라 유이와 타가하라 료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듯한 고요함 속에 있었다.
"이렇게 너랑 마주 보며 이제부터 싸운다고 생각하니 ...... 옛날이 생각나네."
"...... 료. 당신에게 저는 누나와 거리가 먼 존재일 텐데요. 왜 그렇게 동생을 자처한 거죠?"
유이의 정신 상태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료는 혀를 내두를 뻔했다.
그렇게 마음을 봉인해서 얻은 위엄 따위.......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전환한다.
"당연히 비아냥이지."
"...... 저를 원망하고 있는 거군요. 그렇다면 마리안느 씨를 끌어들인 것도 그 때문인가요?"
"내가 데려온 게 아니라 그 여자가 멋대로 굴러들어 온 거야"
"주운 것은 당신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