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4부 139화 이국의 땅에서 저너머의 하늘로
    2023년 02월 15일 16시 04분 27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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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크 공, 잠시 어울려주었으면 장소가 있는데, 시간 괜찮으시겠스므니까."

     

     "모레에는 괜찮아요.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요?"

     "예. 실은 꽃집에 가고 싶스므니다. 소인, 왕도의 지리에 아직 익숙지 않스므니다."

     "꽃집이요? 웬일로? 그럼 모레 오전에 가도록 하죠."
     

     저녁식사 후에 욕조에 들어가 있자, 카가치히코가 그런 말을 해왔다. 가르칠 때 이외에는 고용된 몸이라면서 사양하는 그의 등을, 제자로서 가끔은 해줘야 한다면서 벅벅 씻어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수인용 비누로 등과 머리를 씻겨주는 것은 크레슨과 황제로 익숙하니까.

     

     

     그렇게 해서 이틀 후.

     

     아침식사를 끝내고 아침의 수련을 끝낸 우리들은, 마차에 타서 번화가로 향했다. 이른 아침의 훈련만으로는 절대 싫다며 아침에 무진장 약한 내가 단호히 항의했기 때문에, 아침 4시나 5시에 일어나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꽃집이라니 별일인데요. 방에 장식하려구요?"

     "아니므니다. 어제는 부인의 기일이었스므니다. 이제 두 번 다시 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에, 적어도 꽃이라도 살까 생각한 것이므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저택의 메이드한테 부탁해서 어제 함께 았어도 되었잖아요."

     "뭐, 상대는 죽은 사람. 하루 늦은 것 정도로 불만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므니다. 그리고 부인은 그런 여자가 아니므니다."

     

     "카가치히코 씨, 결혼했었군요."

     "이미 3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몸이 약하고 병약하지만 그럼에도 심지가 꽤 강한, 좋은 여자였스므니다. 소인한테는 아까울 정도로. 유행병에 걸려 너무나도 맥없이, 아이를 낳지도 못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지금의 제 처지를 생각해 보면 아이가 없었던 것은 오히려 요행이었을지도 모르겠스므니다."

     대역죄인으로서 지명수배된 카가치히코에게 만일 자식이 있었다면, 분명 염대책임으로 모두 붙잡혀 사형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다는 그는 후회했을 것이고, 어쩌면 가족을 위해서 결단을 내렸을 것이다.

     

     어느 한쪽만 살아남아야 하니 어느 한쪽을 내버려야만 하는 것은 정말 쓰라린 일이었을 테니까.

     

     "인생, 돌고 돌아 무엇에 연결될지 모르는 법이네요."

     "그렇스므니다. 기이한 인연에 인도되어 호크 공과 만나서 이렇게 이국에 땅에서 노후의 여생을 보내게 되다니, 인생이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므니다."

     도착한 꽃집이었지만, 사려고 했던 꽃은 찾지 못했다. 

     

     죽은 자는 여신교의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른 후에 성스러운 불꽃으로 화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이 나라에서는, 제단에 소박한 꽃을 바친다는 관습이 없어서 국화가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다. 주문하면 갖다 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유통량이 걸려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무덤 앞에 꽃다발을 바치는 문화는 있었기 때문에, 국화 대신에 화려한 노란색 장미를 사게 되었다. 무덤 앞에 장미 꽃다발은 일본인의 시점에서는 꽤 위화감이 있지만 외국에서는 평범한 문화라고 한다. 참고로 자파존에서는 화장한 뒤 유골함에 뼈와 재를 담아서 묘지에 수납하는 일본식 장례가 주류라고 한다.

     

     "뭐, 소인은 두 번 다시 안 돌아간다고 정하고 고향은 등진 몸. 사람의 마음과 기원은 시간과 거리를 뛰어넘어 닿는 것이라 믿고 있스므니다.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게 되었스므니다."

     

     구입한 꽃다발은, 카가치히코의 방에서 쟈파존이 있는 방향을 향해 바칠 셈이라고 한다. 원숭이 수인 특유의 긴 꼬리를 좌우로 흔들거리면서, 휴일로 인파가 많은 길을 나란히 걷는다.

     

     "묘지는 괜찮을까요? 카가치히코 씨를 원망하는 녀석들이 도굴이나 비석을 깨트리는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요."

     "제아무리 소인을 원망한들, 고인의 묘소에까지 분노를 표현할 정도로 벌 받을 자는 없을 거므니다. 그리고 절에는 관리인도 있기 때문에."

     카가치히코 씨는 쟈파존이 있는 방향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결국 무덤이란, 산자가 죽은 자를 추억하기 위한 지표에 불과한 것. 중요한 것은 비석보다 마음이 아니겠스므니까."

     "...예. 그 말대로네요."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 쟈파존에서 온 점주가 열었다는 유명한 디저트 가게가 있다길래 경단이나 단팥죽이라도 먹어볼까 싶어서 꽃다발을 일단 마차에 두고 걸어서 그 가게를 향하는 도중.

     

     "호크 골드지?"

     "음? 누구시죠?"

     "순순히 우리와 함께 와주실까."

     "죽고 싶지 않으면 소란피지 마라!"
     

     "호위 하나도 없이 할배와 느긋하게 산책이라니, 제정신이 아니구만 히히히!"

     "덕분에 일하기 쉬워서 땡큐라고! 원망할 거면 네놈의 얼빠짐을 원망해!"

     그야말로 우리들은 양아치입니다, 싶은 불한당들이 나와 카가치히코를 둘러쌌다. 백주대낮에 행인도 꽤 있는 길가에서 이런 범행을 저지르다니, 순회 중인 기사나 경찰관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아니 그래도 마침 잘 됐다. 여기선 그 대사를 말할 절호의 기회다. 한번 말해보고 싶었다고 흐흐흐.

     

     "선생님! 해치워주세요!"

     "좋스므니다."

     나를 감싸면서 카가치히코가 한발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양아치들은 조소가 담긴 미소를 지으면서 웃을뿐.

     

     "앙? 해보자는 거냐 늙은이가!"

     "이 쪽수를 보고도 이길 거라 생각하냐!?"

     "조용히 있었으면 안 다치고 끝났는데 말이지!"

     일섬. 그리고 또다시 일섬. 일태도를 날릴 때마다, 양아치들이 연이어 쓰러진다. 참고로 전부 칼등치기다. 대낮부터 길 한복판을 피로 물들일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골절이 났을 수준으로 칼등을 이용해 목을 얻어맞은 양아치들은, 고통의 표정을 지으며 죽을 듯한 얼굴로 땅바닥에 누워있다.

     

     역시나 선생. 칼등치기라서 아픔을 느끼는 거지만, 칼날 쪽으로 휘둘렀다면 베인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목들이 공중을 날았음이 틀림없다.

     

     "히, 히이이이!?"

     리더 같은 남자가 순식간에 모두 당해버린 동료와 의연하게 서 있는 카가치히코를 보고 겁을 먹는다. 조금 전까지의 기세등등한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이라도 실금 할 듯한 기세로 쫄아버렸다.

     

     "자자, 그럼 바로 심문 시작합니다~"

     "으, 으아아아아!?"

     마법으로 머리와 마음을 열어제끼고(물리적인 게 아냐!), 이 녀석들이 골드 상회의 사장의 자식을 유괴해서 몸값을 받아내려고 꾀한 단순 유괴범임을 확인한 나는 근처에 있던 경찰에게 연락해서 이 녀석들의 신병을 넘겨주었다. 수가 많아서 힘들어 보였기 때문에, 마법으로 운반을 도와줬더니 감사의 말을 듣고 말았다.

     

     "멋있었습니다, 선생님!"

     "그랬스므니까. 그대가 즐거운 것 같아서 다행이므니다."

     사정청취를 끝내고 풀려난 우리들은, 기분전환을 위해 디저트 가게로 향했다. 자, 맛난 경단과 단팥죽, 센베와 앙금빵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뭐? 그런 식생활을 하니 검술을 배우는데도 조금도 살이 안 빠지는 거라고? 알 게 뭐야!


     1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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