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 120 사토 가의 식탁 2(1)
    2022년 08월 26일 21시 12분 3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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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s://estar.jp/novels/22241232/viewer?page=1121 

     

     

     

     찻잔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하늘거린다. 온도차가 심한지, 수증기는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코를 따스하게 하는 뜨거운 수증기는, 겨울 공기에 차가워진 피부에 잘 스며든다.

     

     

     "..............."

     

     

     약 1개월 만의 자택.

     3평 정도 되는 다실에, 탁자가 하나.

     네 명의 남녀가 대각선으로 앉아있다.

     다만 차를 홀짝이는 자는 1명도 없다.

     어떤 자는 심각한 얼굴로.

     어떤 자는 긴장감으로 표정을 굳히고서.

     그리고 어떤 자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

     

     누구 하나 입을 열려는 자는 없다.

     모모코 씨는 물론이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모드 불상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불존(仏zone)에 들어선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슬슬 침묵을 깨는 편이 좋겠다.

     

     "저기, 할아버지..."

     "일단."

     말을 뒤덮는 식으로, 대사가 막혔다.

     

     "뭔가, 할 말이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의 눈은 날카로웠다.

     분위기가 겐사이의 것과 비슷하다.

     이건 화내는 거구나.

     그럼, 그거다.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냐."

     주문에 보답했는지, 할아버지는 눈을 감은채 엄숙히 끄덕였다.

     

     "너, 지금껏 어디 있었니?"

     "프랑스."

     할머니의 물음에 간략히 대답하자,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프랑스라니, 왜 그런 곳에..."

     "그야..."

     모모코 씨한테 시선을 돌린다.

     마술사의 일, 말해도 될까.

     

     "이쪽은 신경쓰지 말고,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괜찮겠어?"

     "네."

     그런가.

     뭐 이 정도로 쉽게 허가가 떨어졌다.

     대략적으로 말해도 문제는 없겠지.

     

     "날 노리는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한테 붙잡혀서 부려 먹혔어."

     할머니는 '뭐?' 라고 말하려는 듯한 얼굴로 눈썹을 찌푸렸다. 역시 너무 뭉뚱그렸나. 하지만, 어디서 설명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보나 마나 그거겠지. 마법사 관련이겠지."

     

     "...알고 있었어?"

     "존재만은. 전시 중에는 권유받았던 적도 있었지."

     "권유라니... 누구한테."

     "그야, 그거다. 시키가미 겐사이한테."

     

     절규하고 말았다.

     

     

     "나와 겐쨩은 소꿉친구인데, 어린 시절에는 자주 둘이서 놀곤 했었지."

     

     소꿉친구.

     아무래도 오래 알고 지낸 모양이다.

     

     

     "싹싹하고 밝은 녀석이었지만, 전쟁이 심화될 무렵부터 아무래도 상태가 이상해져서 말이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자, 어느 날 이런 말을 꺼냈지."

     [이 전쟁은 권력자들의 놀이에 불과해.

     지금이라면 아직 안 늦었어. 이 땅을 버리고 날 따라와. 그리고 나와 세상을 바꾸자. 그럼 너와 네 가족만은 도와줄게]

     그리고 겐사이는 진짜 진지한 얼굴로, 자신은 속칭 마법사라고 밝혔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제안을 받아들이면,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는 거래였던 것이다.

     

     "거절했어?"

     "뭐 그렇지. 그보다, 결국 이야기가 엇나가 싸우게 됐다.

     그 녀석의 주먹, 마치 말발굽처럼 무거워서 말이야.

     건물은 부서지고, 나무는 꺾이고.

     끝내는 목도로 바위까지 잘라버리지 뭐냐.

     그래서 나도 아버지한테서 몰래 사주신 호신용의 38식 보병총을 꺼냈지. 그땐 정말 진짜로 죽을 뻔했다."

     "그, 그래..."

     듣기로는 술식을 팍팍 쓴 모양인데,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용케 안 죽었구나.

     뭐 아직도 벤치프레스 150kg는 드는 모양이니, 그리 위화감은 없지만.

     사람의 껍질을 뒤집어쓴 프레데터니까.

     

     "왜 거절했는데?"

     "임자랑 내 친구는 겐쨩의 범위에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 친구와 애인. 그리고 지금까지 키워준 고향을 버리면서까지 살아남고 싶진 않았다."

     할아버지는 약간 위를 올려다보며,

     

     "그보다 애초에, 마법 따위가 없어도 사람은 충분히 굳세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분수에 안 맞는 짓거리는 영 잼병이라. 내가 권유를 거절한 이유는, 뭐 그런 게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차를 음미하고서, 수면을 바라보는 것처럼 시선을 낮췄다.

     

     "...그 뒤, 그 녀석이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몰라.

     기억을 삭제당한 뒤로는 전혀 간섭해오지 않게 됐지. 임자를 포함해서 내 동년배들은 전부 그 녀석을 잊고 말았다."

     말하는 할아버지는, 조금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흔히 못 보는 얼굴이다. 무뚝뚝한 할아버지에 있어, 겐사이 씨는 나름 소중한 사람이었나 보다.

     

     "...하지만, 다이스케와 하나코는 그쪽 애들과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더라."

     "부모님께서..."

     그랬었나.

     그렇게 생각하면 시키가미 가문과 사토 가문의 교류는 꽤 예전부터 있었구나. 할아버지부터 세면 반세기 정도인가. 코즈미와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둘 다, 내도 알아먹게 얘기 좀 해봐요."

     영문을 모르는지, 할머니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이쪽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긴 해도, 마법에 관해서는 나도 존재만 알고 있는 정도라서."

     할아버지는 겸연쩍은 듯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러자 할머니는 날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두 사람한테는 내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편이 좋아 보인다. 오늘은 그를 위해서 여기 왔으니까.

     

     "소스케."

     "알고 있어. 두 사람한테는 내가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의 일도 포함해서, 지금부터 전부 말할게."

     그렇게는 말해도, 뭣부터 말해야 할까.

     먼저 빼놓을 수 없는 건, 내가 이세계에 소환되고 만 일이다.

     

     

     

     

     :"뭐, 이 정도일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생각나는 대로, 그냥 기억을 구술했다.

     

     흘끗 눈앞의 조부모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에 주름을 짓고 있으며, 할아버지는 똑바로 날 바라보고 있다.

     미묘한 분위기다.

     역시, 이런 뜬금없는 이야기는 금방 믿을 수 없겠지. 특히 전반부는 코즈미까지도 믿지 못했던 내용이다.

     

     "그런가."

     "...힘들었겠구나."

     

     조부모의 반응은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아아, 그렇지. 바니키스라는 녀석이, 묘한 연설을 했었다."

     

     거기다 가볍게 마력의 징수도 당한 모양이다.

     그보다, 그것 때문에 가족의 몸을 걱정한 내가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바니키스가 명백히 상대를 무시하는 이유로 전 세계에 부담을 지운 것이다.

     특히 내 가족을 휘말리게 했다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직접 만나면 두들겨 패주마.

     

     "뭐,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일어난 뒤라면, 이런 이야기도 현실감이 들겠네..."

     그렇게 자조 섞어 중얼거리자,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네가 거짓말하는지 아닌지는, 눈을 보면 안단다. 그게 아무리 황당무계한 이야기라도."

     "..........."

     시선을 돌려보니, 할아버지도 같은 의견인 모양이다.

     

     "그...래."

     "... 여러 가지로 할 말은 있지만,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줬으니 눈감아줘야겠구나."

     

     "할머니..."

     "왜냐면 이제부터는 소스케가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잖니?"

     

     거기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

     

     "...소스케?"

     

     침묵하는 내 얼굴을, 할머니가 바라본다. 표정에는 불안감이 깃들어 있다. 여기선 솔직히 말하는 편이 좋겠다.

     

     "프랑스에, 내 동료들이 위험에 처했어. 시간이 아까워. 바로 도우러.."

     "안 돼."

     

     딱 거절당했다.

     짧은 말을 내지른 자는 할아버지였다.

     

     "이 이상, 목숨 거는 일은 내가 용서 못한다."

     단호한 음색이었다.

     동공이 열려있다.

     이것은 진심으로 화났을 때의 눈이다.

     

     "네놈이 전쟁에 참가했다. 그건 좋다.

     아니, 좋지는 않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뭐라 말 안 하마. 하지만, 이 이상 쓸데없는 짓거리는 하지 마라.

     이 마을에서 조용히 있어."

     "하지만...!"

     "뒷일은 어른들한테 맡기면 되지 않겠느냐. 네가 일부러 움직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내가 가야만 하는 이유.

     생각나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무거운 어조로 가로막는다.

     

     "어이 소스케."

     

     "왜..."

     "너, 이 이상 네 할미를 걱정시킬 셈이냐?"

     

     돌아보니, 할머니는 매우 고통스러운 얼굴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왠지 식은땀을 흘리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래.

     그 말대로다.

     할머니는 자식과 며느리를 잃었다.

     그때 느꼈을 고생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을 대 그렇게나 기뻐해 주었다. 그런 내가 스스로 사지로 뛰어드는 건, 현명한 선택이라 말할 수 없다.

     

     "어쨌든 제멋대로의 행동은 하지 마라.

     그보다, 그 녀석들과는 이제 연을 끊어."

     "할아버지..."

     "넌 평범하게 있어라. 이제부터 평범하게 살아가.

     마법이라는 이상한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반박을 못하게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어떤 반박을 한들, 이 사람은 의견을 바꾸지 않으리라.

     나는 18살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것이다.

     아니, 이건 미성년자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할아버지의 우려는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뭐라 말을 못 하겠다.

     왜냐면 이건 올바른 말이니까.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와라."

     

     할아버지는 그런 말을 남기고서, 복도 안으로 사라졌다.

     할머니는 뭔가 말하려 했지만, 아무 말 없이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방에는 나와 모모코 씨만 남았다.

     

     "... 사토 씨."

     "... 미안."

     일어서서 창문을 바라본다.

     약간 빠른 땅거미가 바깥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있다.

     오늘은 추울지도 모른다.

     

     "잠깐 혼자 있게 해 줄래."

     

     

     

     내가 싸우는 이유.

     가족과 천칭에 걸어서까지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이유.

     그걸 생각하면서 정처 없이 바깥을 걷고 있자, 자연스레 부모님의 묘지까지 왔다.

     

     이미 밖은 어둡지만, 가로등의 근처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 밤하늘 아래에서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묘는 제대로 보인다.

     

     여기 오는 것도 오랜만이다.

     보통은 1주일에 1번은 가고 싶지만, 여러 일이 있어서 대략 1개월 만에 오게 되었다.

     헌화는 누구의 것일까.

     밝은 색을 기조로 한 꽃다발이 놓여있다.

     

     "머리를 식혀라라..."

     냉정해졌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가면 구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내 동료는 내 힘으로 돕고 싶다.

     신역에서 만난 그 여자의 일도 있다.

     지금은 로긴스의 주술도 말끔히 사라졌지만, 그건 그 녀석의 힘이었다.

     어떤 인과인지는 몰라도, 알고 만 이상 이 세계에서의 만행을 허락할 수는 없다.

     겐사이가 밝힌 신수계획이라는 것도 신경 쓰인다.

     여기가지 발을 들이고서, 새삼스레 물러설 순 없다.

     

     하지만 가족의 그 모습을 보고 의외로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들고 말았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뭘까.

     가족을 위험에 빠트리고 걱정을 끼치면서도, 사토 소스케가 무언가를 때려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잠깐, 시끄럽다고 너."

     

     문득 제정신을 차린다.

     어깨에 탄 풍신이, 주먹으로 내 관자놀이를 찌르고 있다.

     

     "...시끄럽다니, 왜."

     "이쪽은 네 사고가 팍팍 전해져 온다고. 짜증 나니까 진정 좀 하란 말야."

     "그러냐."

     그럼 이야기가 빠르다.

     조금 내키지 않지만, 객관적인 의견도 들어두고 싶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어떻게라니, 뭐가?"

     

     "내가 프랑스에 가는 일."

     "몰라 그딴 거."

     정나미 떨어지기는.

     인간의 사정은 어찌 돼도 상관없다는 건가.

     

     "내 동료들 사이에선 싸우러 가는 녀석은 대게 웃으며 보내주는 게 보통이야. 누가 걱정하니 못 가라던가, 누가 위험하니 자숙하라던가. 둘 다 말도 안 돼."

     그럼, 난 너무 민감하다는 걸까.

     여기 와서 이렇게까지 고민하다니, 확실히 한심해진다.

     

     "뭐, 연약한 인간이라면 그래도 좋잖아. 정말 최저최약의 요마에 어울려."

     최약인가.

     

     "그보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어?

     결국은 네가 무사히 돌아오면 되는 거잖아?"

     그리 간단히 되겠냐고.

     

     "새삼스럽지만, 너 귀신님을 쓰러트렸지?

     말하기는 뭣하지만, 널 이길 수 있는 녀석은 찾는 편이 더 어려울걸."

     그렇지도 않아.

     요즘 죽을 뻔했다고.

     

     "어라, 그랬어?"

     

     수개월 전, 미키한테....어떤 친구한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지.

     

     "뭔데, 뜬금없이."

     

     세계는 넓다.

     내가 아무리 강해도, 대항할 수 있는 녀석은 찾으면 분명 있어. 그런 녀석이 나타나서 적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마술사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했던 거야.

     

     "...하아."

     그로부터 결국, 술술 말하고 말았다.

     그 결과가 이거다.

     날 돕기 많은 사람을 휘말리게 하고 말았다.

     지금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일도 무관계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족까지도 휘말리게 하고 있다.

     

     ".........."

     내가 지켜낼 수 있는 것에는 한도가 있다.

     그래서 천칭에 거는 것이다.

     본래는 모두 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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