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라트의 번역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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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2월 02일 02시 25분 44초에 업로드 된 글입니다.
    작성자: 비오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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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랑카 위글스워스 후작영애는 하얗다.

     외형적인 특징은 이것으로 끝난다.

     피부도 머리색도 눈처럼 하얗기 때문에, 귀백영애로 불리며 그 탈인간적인 미모로 유명했다.

     그러나 눈동자만은 루비처럼 붉다.



     머리색도 눈동자 색도 아버지 드웨인과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불륜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블랑카 양은 위글스워스 후작 가문 특유의 기억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기억의 눈...... 그것은 이른바 순간 기억 능력이다.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는다.

     아버지인 후작은 그 눈을 활용해 재상으로 맹활약했고, 블랑카 역시 국립학교에서 최우수 학생이었다.



     또한 그 특이하고 하얀 미모는, 블랑카가 신의 총애를 받는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블랑카가 기억력만 좋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 보석상은 이렇게 말했다.



    "보석광산의 판로 문제로 후작 저택을 방문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귀백영애를 만날 수 있었지요. 친선의 표시로 트렁크 안에 가득 있는 돌 중에서 원하는 돌을 드린다고 말했더니, 가장 좋은 돌을 단번에 골라내더군요. 특별히 눈에 띌 만큼 큰 돌도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귀백영애는 소문대로 보통 사람이 아니더군요."



     물론 우연이다.

     블랑카는 특별히 보석을 원하지 않았지만, 거절하기도 귀찮았다.

     그래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자신의 눈동자 색과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돌을 고른 것뿐이다.

     액세서리로 만들면 눈동자 색과 어울리니 쓸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생활용품상은 이렇게 말했다.



    "귀백영애에게 필요한 것이 있냐고 물었죠. 그러자 그분은 저를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베개'라고요. 소문으로 듣던 귀백영애라고는 하지만 열여섯 살짜리 아가씨의 섹시함은 아니었지요. 바로 농담이라며 웃어넘겼지만, 그 이후로는 제가 너무 동요한 바람에 제대로 된 흥정이 이뤄지지 않았지요."



     블랑카가 그 당시 편안한 베개를 원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베개'라는 말을 꺼낸 후, 침구류는 너무 의미심장한 말인가 싶어서 취소했다.

     사실은 그것뿐이었는데, 상인의 망상력이 블랑카를 확대 해석해 버린 것이다.



     국립학교에서 한 학년 아래인 한 여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손수건을 떨어뜨렸을 때, 수놓아진 문장만 보고 찾아서 전해주셨어요. 저와 전혀 안면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아무 관계도 없는 남작가의 문장을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겠어요? 아아, 역시 그분은 특별한 분이세요."



     기억의 눈의 소유자이니, 문장과 그 여학생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단지 근처의 교실이라서 전달한 것뿐이다.

     블랑카에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블랑카 숭배자의 수는 확실히 늘어났다.



     어쨌든 그녀의 주변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

     모든 것이 블랑카의 허상을 키우고 있었다.

     실제로는 최대한 즐겁게 살고 싶은 소녀였을 뿐인데도.



              ◇



    "블랑카야. 너도 열일곱 살이 되었구나."

    "네."



     아버지인 후작이 불렀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혼담이 왔다."



     그렇겠네요.

     아버지는 블랑카가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혼담을 거절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블랑카 본인이 선택하게 하겠다면서.

     드디어 열일곱 살이 되었으니 이야기가 온 것이겠지.

     아아, 귀찮아.



    "어느 쪽을 할지 선택하거라."



     시집을 가야만 하나.

     한숨을 내쉬고 싶지만, 이것도 귀족으로 태어난 숙명이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너무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만한 할 때인 것 같다.



     블랑카는 신상명세서 뭉치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무겁다, 꽤나 많은 양이다.

     역시 후작가의 딸 정도가 되면,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은 사람이 많구나.

     가장 놀 수 있는 남편은 누구일까?

     블랑카는 자신의 스펙을 거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간의 소문으로 부풀려진 허상이 많은 사위 후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위글스워스 후작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럴 수도 없잖아요."



     앗, 내 대답에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셔.

     별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일반론일 뿐인데.

     우리 가문은 오빠가 든든하니 후계자 문제는 없는 걸로 치고.......



    "아버지."

    "뭐지?"

    "혼담은 이것뿐인가요?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앞으로 더 추가될 것 같나요?"

    "추가는 있겠지만, 그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즉, 아버지의 눈에 맞는, 주요한 자들은 다 나왔다는 뜻인가.

     계속 추가되지 않는 것은, 게으른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도 스스로 선택해 주셔도 되었는데.

     내가 고르라고 하는 건 나를 너무 높이 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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