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가운데, 다리아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마리 씨는 데이비스 전하의 인간성을 시험하기 위해 지금까지 바보 같은 척을 했다는 건가요?"
[아니요, 지금까지는 정말로 바보였어요]라는 말을 삼키며, 마리는 '네'라고 대답했다.
"마리 씨, 그럼 신의 판결은 어떻게 되었나요?"라는 다리아의 물음에, 마리는 데이비스를 쳐다보았다.
"데이비스 전하. 당신은...... 왕의 그릇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데이비스를 떠받들며 달콤한 말을 속삭이던 그 입으로, 마리는 데이비스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마, 마리?"
데이비스를 무시한 채, 마리는 기사단장의 아들, 재상의 아들, 공작 영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들도 사람 위에 군림할 그릇이 아닙니다."
"뭐!?"
마리는 [뭐!?가 아니라고. 약혼녀에게 폭언을 퍼붓는 남자를 누가 믿어주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데이비스가 "마리가, 마리가 구애를 했잖아!"라며 화를 내자, 마리는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구애한 건 맞지만, 저를 받아들이고 약혼녀보다 우선순위를 매긴 건 당신들뿐이잖아요?"
그렇다, 멍청한 마리는 데이비스 일행 말고도 제2왕자나 후작영식, 그리고 교사에게도 접근하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비스 일행 이외는 분명하게 거절당하고서 거리를 두었다.
특히 둘째 왕자한테서는 "다음에 또다시 나에게 무단으로 손을 대면 너를 처벌하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를 설명하자, 데이비스 일행은 비로소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유혹이라는 이름의 시련을 주어 사람을 판단한다. 이것이 신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의 시련으로 인해 흔들렸습니다."
마리가 다리아에게 말하자, 다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마리 씨, 수고 많으셨어요. 이 건은 제가 폐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니 이미 폐하의 귀에 들어갔을지도 모르지만요."
학생의 신분으로 이미 여왕의 위엄을 뽐내고 있는 다리아를 보면서, 마리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다리아 님, 그동안의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다리아는 우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용서해요."
사형은 면할 수 있었다. 안도한 마리는 온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실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리아 님. 데이비스 전하와 다른 분들도, 신의 뜻이라고는 하지만 저에게 속은 것입니다. 부디 온정을......"
다리아는 웃으며, "그 결정은 폐하께서 내리시는 것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속이지 않았어도, 그들은 언젠가 이렇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걸요?"라며 마리의 귀에 속삭였다.
다리아의 말은 일리가 있어서, 데이비스 일행은 굳이 마리가 속이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여자를 데려와 약혼녀를 소홀히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리아는 "그래서, 결혼 이전에 파국으로 몰고 간 마리 씨에게 우리 모두 감사하고 있어요."라며 마리를 향해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다리아의 시선 끝에서는 기사단장의 아들, 재상의 아들, 공작영식의 약혼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내고 있다.
(아아, 고귀한 아가씨들이...... 멍청한 약혼남과 약혼을 파기할 수 있게 되어 기뻐하고 있어......)
다리아는 마리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마리 씨. 나는 지금까지 당신이 성녀라고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신은 정말 계시네요. 미안해요, 당신은 분명 성모님이에요."
살짝 미소 짓는 그녀의 말에, 마리는 이제 와서 '죄송합니다...... 실은 아니에요.'라고는 말하지 못한 채 씁쓸한 미소만을 지었다.
그 후 마리는 '신의 신탁을 받은 성녀'로서 학교를 그만두고 바로 신전에서 들어가게 되었다.
다리아는 성실한 제2왕자와 다시 약혼을 하였는데, 매우 행복해 보였다. 이번 일로 약혼이 파기된 아가씨들도 새로운 약혼남이 생겼다고 한다.
데이비스 일행은 소란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제각기 변방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심한 꼴을 겪지는 않아서, 어떻게든 그 땅에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신전에서 일하게 된 이후, 마리는 신상 앞에서 매일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부디 모두가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그리고 신의 이름을 팔아버린 저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기를)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성직자도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제게도 언젠가 좋은 만남이 있기를'이라고 오늘도 가짜 성녀 마리는 성녀 행세를 하며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다.
끝